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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칠레 시민들이 빚어낸 오케스트라 시위. (유투브 캡처)
▲ El Pueblo Unido 지난달 27일 칠레 시민들이 빚어낸 오케스트라 시위. (유투브 캡처)
ⓒ Ilich Tor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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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곳곳이 반정부 시위로 시끌벅적하다. 그 중 칠레 산티아고 광장에서 지난달 27일 벌어진 '단결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El pueblo unido, jamás será vencido)' 오케스트라 시위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퍼졌다. 한국 촛불, 홍콩 유수에 이어 칠레 국민이 또 한번의 대단한 장면을 만들었다. 뒤늦게 해당 영상을 보는데 유하 감독의 '결혼은 미친 짓이다' 이별 장면이 겹쳐졌다. 

영화에서 뜨겁게 사랑했던 준영(감우성)과 연희(엄정화)는 결국 메뉴 합의 결렬로 이별한다. 사랑한다며 사회적 규범도 허물던 이들(불륜)이 고작 '오늘은 뭘 먹지'로 헤어질 때 이 영화 현실 보정 일도 없어 잔인하다 싶었다.

준영은 라면을, 연희는 콩나물국을 먹겠다고 대립하는 동안 터져나온 감정은 하루이틀 묵은 게 아니었다. '라콩 게이트'가 열어 재낀 이별 뒤에는 서로를 좀먹는 상태가, 그리하여 동일시를 거부한 두 사람이, 거창하게 말하면 사랑을 위해 기꺼이 접어둔 각자의 욕망이 서 있었다. 고작 그 정도에 사랑이 흔들린다는 건, 두 사람의 지반이 그만큼 약해졌다는 의미다. 

칠레의 반정부 시위는 지하철 요금 30페소 인상으로 촉발됐다.칠레의 최저임금은 한국보다 3.5배 적은 50만원 수준인데, 지하철 요금은 1300원대로 비슷하다. 천연자원도 풍부한 자원부국에다 평균 4% 경제성장률을 유지하는 칠레에서 서민들이 먹고 살기 힘들다면 그건 파이를 공정하게 나누지 않는다는 소리다. 파이도 독식하는데 기회라고 공정할까. 한화로 단돈 50원에 열린 반정부 시위 안에는 불평등이라는 30년 묵은 고통이 짓물러 있었다.

시위 규모가 커지자 놀란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이 부랴부랴 기초연금 인상, 최저임금 인상, 의료비 부담 완화를 약속했지만 칠레 시민들이 원하는 건 유화책이 아니라 함께 쓰는 새로운 헌법이다. 산티아고에서 울려퍼진 시민 오케스트라는 '불평등 반대', 어렵게 말하면 '소득 양극화 해소' 쉽게 말하자면 '믿고 맡겼더니 무시당한 시민의 권리 사수'를 위한 합창이다.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를 휩쓴 신자유주의는 사실 자유라는 미명아래 자행된 경제독재다. 파이를 공정하게 나누지 않아도 됐던 건 이를 국가가 용인해서다. 하물며 불같던 사랑도 한쪽만 희생하면 갈등으로 번지는데, 모두에게 충분히 주어져야 할 먹고 살 권리가 소수에게 쏠렸다면, 국가를 위해 기꺼이 접어둔 저항 의지 꺼내야지. 칠레 시민들은 안다. 신뢰가 무너진 관계는 이별이 답이다. "구태 정치 아웃"이 그들이 내린 결론이다. 

사랑도 정치도 본성이 추상이라 계기 없인 구체화되지 않는다. 사랑은 연애로, 정치는 정책으로 구체화 되지만 모든 구체화가 견고한 건 아니다. 라면과 콩나물과 단돈 50원에 무너지기도 한다.

물론 실패 할 수 있다. 실패 자체가 나쁜 건 아니지만 그냥 두면 부패한다. 고작 50원에 한 나라가 흔들린다는 건, 국가 기반이 그만큼 부패했다는 의미다. 칠레에서 들린 노래 서초동을 향해 불러본다. 단결이 어려워 그렇지 "단결한 민중은 실패하지 않는다"
 

태그:#칠레반정부시위, #결혼은미친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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