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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중대재해 사업장 노동자 국회 증언대회’가 열렸다. 고 김태규씨의 가족들.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중대재해 사업장 노동자 국회 증언대회’가 열렸다. 고 김태규씨의 가족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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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으면 기업에서 내는 벌금 평균이 420만 원이다."
 
지난 4월 10일 경기도 수원시 고색동 건설현장에서 추락해 사망한 고 김태규씨의 누나 김도현씨가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된 '2018년 12월의 김용균, 2019년의 김용균들, 중대재해 사업장 노동자 국회 증언대회'에 참석해 한 말이다.
 
김씨는 "경찰이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아서, 동생 태규가 죽은 지 200일이 넘었는데도 계속 경찰에 '수사를 해달라'는 요청을 하며 싸우고 있다"면서 "현장 조사를 왜 유가족이 해야 움직이는지 모르겠다. 사람이 죽지 않게만 해달라고 한 건데, 그게 그렇게 말이 안 되는 말인가"라고 울분을 토했다.
 
김씨의 동생 태규씨는 일한 지 사흘째 되는 날 사고를 당했다. 당시 그는 안전화와 안전벨트를 지급받지 못한 채 오래된 검은색 운동화를 신고 작업하다 5층 작업용 승강기 틈새에 빠져 추락했다.
 
이날 증언대회 현장에는 김태규씨처럼 위험한 산업현장에서 일했거나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직접 나와 자신이 겪은 '중대재해'에 대해 고백했다. 고 김용균씨의 직장 동료를 비롯해 거제에서 일하는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경기지역 건설노동자, 포스코 하청 노동자, 일하다 부상을 당한 이주노동자들이 참석했다.
 
"김용균 사망 이후에도 현장은 변하지 않았다"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중대재해 사업장 노동자 국회 증언대회’가 열렸다.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중대재해 사업장 노동자 국회 증언대회’가 열렸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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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가장 먼저 증언대에 선 고 김용균씨의 동료 이태성 발전노조 한전산업개발본부 사무장은 "다수 국민들이 김용군의 사망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아는데 현장은 바뀌지 않았다"라는 말부터 꺼냈다.
 
"지난 8월 19일 특조위 권고 발표가 나왔지만 현장에선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 안전장치와 펜스만 강화했을 뿐이다. 그것도 태안화력에만 국한됐다. 다른 사업장은 달라진 것이 없다. 1급 발암물질에 노출된 채 일했다는 사실도 이번에 알게 됐다. 그런데 발전소가 대책이라고 내놓은 건 마스크 하나 바꿔준 거다."
 
이 사무장은 "김용균에게 책정된 월급이 원래 520만 원이었다. 그런데 실제 월급은 200만원 수준이었다"면서 "나머지 300만 원이 넘는 돈은 어디로 간 것인가. 중간에서 노무비를 착복한 것 아니냐"라고 주장했다.
 
거제에서 올라온 박광수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역시 울분을 감추지 않았다. "2008년 비정규직으로 입사해 만 10년을 생활했다"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박씨는 "입사하자마자 후배들이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연이어 당하는 걸 보고 계속 일해야 하는지를 고민했다. 하지만 으레 조선소는 그런 일이 당연하게 일어난다고 생각해 버텼다. 그런데 사고가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는 걸 보고 이건 아니다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2017년 5월 1일 거제에서 발생한 삼성중공업크레인 사고를 언급하며 "그리 큰 사고가 났는데 현장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모든 책임을 하청에만 전가했다. 이렇게 되면 산재는 끊임없이 반복된다"라고 강조했다. 박씨는 "다음 생에는 정규직으로 태어나라"라고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중대재해 사업장 노동자 국회 증언대회’가 열렸다.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중대재해 사업장 노동자 국회 증언대회’가 열렸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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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중공업 크레인 참사는 2017년 5월 1일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이동 중이던 골리앗크레인이 고정식 타워크레인과 충돌해 발생한 사고다. 타워크레인이 무너지면서 휴게실을 덮쳐 6명이 죽고 25명이 다쳤다. 법원은 지난 5월 업무상 과실치사상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삼성중공업 전·현직 직원과 협력업체 대표, 직원 등 15명에 대해 금고형 집행유예(7명)와 벌금(4명), 무죄(4명)를 각각 선고했다.
 
"법을 지킬 이유가 없다"
 
'위험의 외주화 금지 대책위원회' 공동대표를 맡은 김철홍 인천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산재사고를 당하는 것을 보면, 조선업의 경우 80% 이상이 하청업체 노동자"라면서 "지금의 법체계는 기업들 입장에서는 굳이 지킬 이유가 없다"라고 일갈했다.
 
"우리나라에서 법이 안 지켜지는 이유는 기업들이 안전에 투자하는 것보다 처벌을 받는 것이 값싸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안전에) 투자를 하겠나? 결국 기업과 자본을 움직이려면, 근본적인 견인 동력인 금전적인 처벌이 병행돼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불이익이 확실해야 움직인다."
 
김 교수는 "지금 당장 위험의 외주화 금지법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즉각 제정돼야 한다"면서 "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공약을 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라"라고 요구했다.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중대재해 사업장 노동자 국회 증언대회’가 열렸다.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중대재해 사업장 노동자 국회 증언대회’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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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 중대산업재해 국민참여 특별조사위원회에 위원으로 참가했던 임상혁 녹색병원 원장도 "중대재해 사망사고는 하청 노동자에 집중돼 있고 추락 등 특정한 재해유형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면서 "과태료 부과 수준에 머무는 등 정부의 행정처분이 관대하게 이뤄진 것도 재해의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발제자로 참여한 전주희 전 김용균 특조위 특조위원도 "김용균 사망 이후 고용노동부가 특별근로감독 등을 통한 특별안전대책을 제시하고, 위법한 사항을 적발하며 시정명령을 내렸지만 여전히 사고는 반복되고 있다"면서 "노동안전을 위한 직접고용 정규직화를 통해 노동자의 실질적인 권리를 보장해줘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김용균 특조위는 지난 8월 22개의 권고안을 발표하며 첫 번째 사항으로 '노동안전을 위한 연로 및 환경설비 운전, 경상정비 노동자의 직접고용 정규직화'를 권고했다. 이날 증언대회에서 현장 노동자들이 문제 삼은 '노무비 착복과 제도 개선'은 특조위가 권고한 두 번째 사안이었다. 특조위의 권고안에는 노동안전을 위한 필요인력 충원과 정부의 관리감독 강화 및 실효성 확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마련, 기업의 사회책임 경영 강화 등이 주를 이뤘다.

태그:#김용균, #국회, #문재인, #중대재해기업처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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