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중순까지만 해도 이렇게 될 줄은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시즌 143번째 경기까지만 해도 위태롭지만 KBO리그 정규리그 선두를 지키고 있었던 '디펜딩 챔피언' SK 와이번스가 한국 시리즈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17일 서울 구로구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렸던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키움 히어로즈가 SK에 10-1 대승을 거두며 시리즈 전적 3연승 스윕을 거뒀다. 시리즈가 싱겁게 끝나면서 키움은 2014년 이후 5년 만에 한국 시리즈 진출을 확정지었다.

3차전은 이정후의 한 방으로 승부가 갈렸다. 3번타자로 선발 출전했던 중견수 이정후가 3회말 2사 1, 2루에서 SK의 선발투수 헨리 소사를 상대로 깊숙한 우전 2루타를 날리며 누상에 있던 주자들을 싹쓸이한 것이다. 결승타를 포함하여 3차전에서만 5타수 3안타 2타점 2득점을 기록한 이정후의 활약으로 승부의 추는 일찌감치 기울었다.

144번째 경기에서 1위 내준 SK, 3경기 만에 끝난 가을
 
 17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9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 3차전 키움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10-1로 패배한 SK와이번스 선수들이 굳은 얼굴로 경기장을 떠나고 있다. 2019.10.17

17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9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 3차전 키움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10-1로 패배한 SK와이번스 선수들이 굳은 얼굴로 경기장을 떠나고 있다. 2019.10.17 ⓒ 연합뉴스

 
사실 여름까지만 해도 SK는 2위권과 넉넉한 승차로 치고 나가고 있었다. 디펜딩 챔피언의 위용을 뽐내며 와이번스 구단 역사상 최다승 기록인 정규 시즌 88승을 기록했다. 그리고 9월 중순까지만 해도 여유있게 한국 시리즈에 직행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9월 태풍의 북상을 전후로 리그의 흐름이 바뀌었다. 두산 베어스와 키움이 시즌 막판에도 상승세를 유지하며 SK를 추격하고 있었고, 오히려 선두에 있던 SK가 쫓기는 분위기가 되어 버린 것이다. 5위 NC 다이노스와 6위 kt 위즈의 순위 경쟁과 더불어 1~3위권 순위 경쟁이 시즌 막판까지 주목을 받았다.

에이스 김광현을 필두로 하여 앙헬 산체스 그리고 교체 용병으로 합류한 헨리 소사까지 선발투수 3인방이 이끄는 투수진은 그래도 정규 시즌에 다른 팀들에 비해 탄탄했다. 문제는 여름까지 뜨겁던 타선이 태풍의 북상을 전후로 급격히 식어버린 것이다.

여름까지 잔여 경기가 상당히 적었던 SK였지만, 9월 4일부터 7일까지 태풍의 영향으로 경기가 4일 연속 미뤄졌다. 이 때 경기 감각을 잃어버린 SK의 타선은 그 이후로 급격히 페이스가 떨어졌다. 이 4일 동안의 우천 순연 이후 SK가 8점 이상 점수를 냈던 경기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결국 정규 시즌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SK와 두산 그리고 키움은 서로의 상대 전적까지 계산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여기서 SK는 승패 마진이 -1이었고, 두산의 승패 마진은 0, 키움의 승패 마진은 +1이었다. 만일 마지막 날에 3팀이 모두 동률이 될 경우 정규 시즌 우승은 키움에게 돌아갈 수도 있었다.

막판에 키움의 승차가 살짝 벌어지면서 마지막 순위 결정은 SK와 두산만 남게 됐다. SK는 9월 19일에 있었던 두산과의 더블헤더 2경기를 모두 패하고 바로 다음 날 키움과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도 패했는데, 이 3경기를 모두 패한 것이 결국 정규 시즌 우승을 놓친 원인이 됐다.

더블헤더를 포함하여 6연패를 당했던 SK는 결국 자력으로 정규 시즌 우승을 확정지을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반면 2위였던 두산은 9월 24일 NC와의 경기에서 무승부를 기록(이 경기로 kt 탈락)한 이후 마지막 5경기를 모두 승리했다. SK가 6연패를 끊은 이후 마지막 5경기에서 4승 1패를 거뒀지만 삼성 라이온즈에게 당한 그 1패(9월 28일 7-9 패)로 인해 마지막 날에 동률을 허용했다.

결국 SK는 정규 시즌 143번째 경기까지 선두를 지키면서도 순위를 확정짓지 못하고 긴 여정에 지친 주전 선수들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마지막 날 승리한 뒤 두산의 마지막 경기를 지켜본 SK는 결국 10월 1일 마지막 날 두산의 경기를 지켜본 뒤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마지막 날에 정규 시즌 우승을 놓친 충격은 컸다. 그 여파는 플레이오프에서 무기력한 경기력으로 드러났고, 결국 키움을 상대로 한 경기도 잡지 못하며 스윕패를 당했다. 1차전은 김광현이 역투했지만 타선이 침묵했고, 2차전에서는 타선이 7점을 내긴 했지만 선발 앙헬 산체스가 무너졌다.

3차전에서 어떻게든 이겨야겠다고 생각한 SK는 소사가 3회에 이정후에게 결승타를 허용하자마자 빠른 투수교체를 단행했다. 그러나 이어 등판한 SK의 불펜이 줄줄이 무너지면서 일리미네이션 게임에서 9점 차 대패를 당했다. 한국 시리즈 진출에 실패했기 때문에 SK는 정규 시즌 승률 공동1위를 기록하고도 최종 성적은 3위까지 밀려났다.

골고루 활약한 "히어로즈", 플레이오프 MVP는 이정후

사실 키움은 선발 맞대결에서는 준플레이오프 상대였던 LG 트윈스나 플레이오프 상대였던 SK에 비해 네임 파워가 밀리는 편이었다. 준플레이오프 1차전만 해도 선발투수들의 명품 투수전으로 인해 키움의 타선은 무기력하게 물러나는 듯 했다.

그러나 키움은 결국 타선의 힘으로 상대 팀의 투수들을 제압했다. 2013년 준플레이오프 5차전과 2018년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9회에 동점 홈런을 날렸던 적이 있었던 박병호는 준플레이오프 1차전 0-0으로 맞섰던 9회말 선두 타자로 등장, 초구를 통타하여 끝내기 홈런으로 경기를 끝냈다. 그 동안 포스트 시즌 9회 동점 홈런을 날리고도 패했던 아픔을 이 홈런으로 씻어내기도 했다.

보통 포스트 시즌에서는 "미쳐주는" 선수가 나와야 승리한다는 속설이 있다. 그러나 키움은 이번 포스트 시즌에서 특정 선수만 미친 활약을 펼친 것이 아니었다. 준플레이오프에서 박병호가 이끌어준 뒤 플레이오프에서는 다른 선수들이 골고루 활약했다.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는 연장 11회 김하성이 적시타를 날리며 영웅이 되었고, 2차전에서는 김규민(정규 시즌 타율 0.248)이 2루타 2개로 2타점을 기록하며 최우수 선수가 됐다. 3차전에서는 4타수 3안타 2타점 3득점을 기록했던 송성문(정규 시즌 타율 0.227)이 최우수 선수가 되었다. 매 경기 "영웅"이 골고루 터져나오며, 그야말로 "히어로즈" 팀 이름에 걸맞는 시리즈였다.

플레이오프의 시리즈 MVP는 이정후가 차지했다. 2017년 신인상, 2018년 외야수 골든글러브 등을 수상하며 매년 점점 성장하는 이정후였지만, 2018년은 개인적으로 이정후에게 아쉬웠던 시즌이었다. 시즌 막판 어깨 부상으로 포스트 시즌 때 팀에 보탬이 되지 못한 것이었다.

이 어깨 부상의 여파로 이번 2019 시즌에도 초반에는 다소 부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정후는 결국 시즌 193안타로 리그 안타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15타수 8안타 타율 0.533으로 펄펄 날았다. 특히 3차전에서 팀의 한국 시리즈 진출을 결정짓는 2타점을 기록하며 시리즈 MVP에 선정됐다.

구원투수 조상우는 지난 해 5월 말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리면서 전력을 이탈했다. 그러나 무혐의 판정을 받고 나서 올 시즌 복귀했고, 정규 시즌 48경기 2승 4패 8홀드 20세이브 평균 자책점 2.66으로 부활했다. 그리고 플레이오프에서는 승부처에 등판한 2경기 1.2이닝 무실점으로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했다.

조상우와 함께 전력을 이탈했던 포수 박동원은 올해 조상우와 함께 복귀했으나 부상으로 전력을 다시 이탈했다. 그러나 삼성에서 트레이드되어 키움에 합류한 포수 이지영이 그 공백을 완벽히 메웠다. FA로 영입되었던 강민호에게 주전을 내준 이후 키움에 합류한 이지영은 박동원의 공백을 메우며 플레이오프 11타수 4안타로 활발히 활약했다.

두산과 키움의 한국 시리즈, 역대 최초 "서울 시리즈"

1982년 KBO리그가 출범한 이래 역대 한국 시리즈에서 서울 잠실 야구장이 빠진 적이 없었다. 옛날에는 한국 시리즈 진출 팀의 연고지에 관계 없이 5차전부터 7차전까지 3경기를 잠실에서 치르는 규정까지 있었을 정도였다. 잠실 중립 경기가 열리지 않았던 해는 1985년(삼성 전후기 통합 우승), 1987년과 1991년(해태 타이거즈 스윕) 그리고 2010년(SK VS 삼성, SK 스윕) 뿐이었다.

한국 시리즈 5~7차전 잠실 중립 경기장 제도는 2016년부터 완전히 폐지됐다. 그러나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두산이 5년 연속 한국 시리즈에 진출하면서 잠실 야구장은 한국 시리즈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사실 그 동안 한국 시리즈가 서울에서만 열렸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 말은 여태까지 잠실 라이벌인 두산과 LG가 한국 시리즈에서 서로 맞붙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뜻이 된다. 히어로즈는 목동 시절인 2014년 한 차례 한국 시리즈에 진출했는데, 이때는 삼성과 시리즈를 치렀다.

잠실 야구장을 연고로 하는 두산과 고척 스카이돔을 연고로 하는 키움이 맞붙게 되면서 KBO리그 역사상 최초로 한국 시리즈가 서울에서만 열리는 "서울 시리즈"가 성사됐다. 잠실에서 1, 2, 6, 7차전 4경기가 열리고 고척에서 3, 4, 5차전 3경기가 열린다. 두 팀의 대결은 종합운동장역과 구일역을 오가는 지하철 시리즈로 호텔에서 단체 숙박하는 대신 각자의 집에서 출퇴근할 가능성이 높다.

플레이오프가 일찍 끝나버린 탓에 한국 시리즈까지는 4일의 휴식일이 생겼다. 미디어데이 행사는 21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릴 예정이며, 22일 화요일 저녁부터 잠실에서 한국 시리즈 1차전이 열린다. 잠실의 우천 순연 없이 7차전까지 진행될 경우 시리즈는 30일에 종료된다.

100% 확률도 깨뜨린 포스트 시즌, 한국 시리즈에서는?

이번 포스트 시즌에서는 유독 기존에 유리하게 보였던 확률과 반대로 결과들이 나왔다. 준플레이오프에서 시리즈를 패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LG가 키움과의 준플레이오프에서 1승 3패로 패했고, 역시 플레이오프를 패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SK가 키움에게 무기력하게 스윕을 당했다.

다만 계속해서 유지되는 확률도 있었다. SK의 염경엽 감독은 히어로즈 감독 시절부터 포함하여 포스트 시즌에서 앤디 밴 헤켄(은퇴)이 등판하지 않은 경기에서 좀처럼 이기지 못하고 있는데,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3경기를 모두 패하면서 밴 헤켄이 등판하지 않은 포스트 시즌 경기 13연패가 이어지게 됐다(2014 한국 시리즈의 경우 밴 헤켄이 등판한 1,4차전만 승리).

한국 시리즈에 직행하는 정규 시즌 우승 팀이 한국 시리즈 챔피언까지 차지한 확률은 2018년까지 무려 80%이며, 단일리그 체제 기준으로는 81.5%다. 정규 시즌 우승 팀이 한국 시리즈 챔피언 트로피를 놓친 사례는 총 6번(1987, 1989, 1992, 2001, 2015, 2018) 있었으며, 가장 최근인 2018년에는 SK가 업셋 챔피언을 달성했다.

현재의 10구단 체제에서 상위권으로 갈수록 객관적인 전력에서 크게 우세한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정규 시즌이 끝난 뒤 2주 이상을 푹 쉬고 경기를 하기 때문에 투수들의 경우 지친 어깨를 쉬어줄 수도 있었다. 다만 너무 오랫동안 쉬어서 경기 감각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경기 외적인 문제로 업셋 챔피언이 발생한 경우도 있었다. 2015년 포스트 시즌이 진행되는 동안 정규 시즌 우승 팀이었던 삼성에서는 일부 선수들의 해외 원정 도박 논란이 있었다. 당시 삼성 감독이었던 류중일(현 LG 감독)은 결국 논란에 휩싸였던 선수들을 모두 빼고 시리즈를 치렀지만 분위기 반등은 커녕 1승 후 4연패로 챔피언 트로피를 놓쳤다.

7전 4선승제의 장기전에서 1차전을 먼저 잡는 팀이 우승한 확률은 71.4%였다. 1차전에서 패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시리즈 챔피언을 차지한 마지막 사례는 2017년이었다. 당시 KIA는 1차전에서 더스틴 니퍼트를 넘지 못했으나, 2차전 양현종의 1-0 완봉승(11탈삼진)으로 기세를 뒤집으며 1패 뒤 4연승으로 시리즈를 끝냈다.

한국 시리즈에 직행한 두산도 2015년에 업셋 챔피언을 달성했으며, 2018년에는 반대로 SK에게 업셋을 당했던 사례가 있다. 정규 시즌 성적도 승차 2경기에 불과했던 만큼 한국 시리즈에서 어느 한 팀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지도 불리하지도 않다. 시작하기도 전에 화제를 불러모으고 있는 서울 시리즈에서 최후에 웃는 팀은 어떤 팀이 될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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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 SK와이번스 키움히어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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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브랜더/서양사학자/기자/작가/강사/1987.07.24, O/DKU/가톨릭 청년성서모임/지리/교통/야구분석(MLB,KBO)/산업 여러분야/각종 토론회, 전시회/글쓰기/당류/블로거/커피 1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있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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