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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떨어진 물은 어딘가로 흘러가 그 기능을 지속하게 될 것이다. 고문을 위해 활용되었던 물이 순환되고 되살아나며 폭력이 재발되는 것을 연상시킨다.
▲ 김예슬 작가의 <분실> 바닥에 떨어진 물은 어딘가로 흘러가 그 기능을 지속하게 될 것이다. 고문을 위해 활용되었던 물이 순환되고 되살아나며 폭력이 재발되는 것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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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했던 역사, 고문의 공포를 마주하다

권력과 체제를 지탱하기 위해 폭력을 동원하며 통제하던 시절이 있었다. 국가가 주도하여 모든 저항의 싹을 말살하기 위해 작동된 방식이었다. 반공이데올로기로 국민의 사상을 틀어막았고, 간첩조작 사건은 공포의 도가니였다. 그럼에도 저항은 부단히 자생했고 폭력에 맞서며 지금의 민주주의를 견인했다.

남영동 옛 대공분실은 박종철의 죽음으로 확인된 1987년의 흔적을 간직한 채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이 건물은 고문과 감금이 용이하도록 설계되어 건축되었다. 지금은 역사와 민주주의를 되새길 수 있는 민주인권기념관으로, 유의미한 전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지난 8일부터 임민욱 작가의 총괄 기획으로 <끝없는 여지(Endless Void)>가 진행 중이다. 임 작가는 일본 아이치트리엔날레의 '표현의 부자유전'에서 소녀상 작품이 전시 중단된 것에 항의하며 자신의 작품을 전량 회수한 바 있다.
 
1층에서 5층의 취조실로 올라가는 나선형 철제계단이다. 계단참이 생략되었고 수직이 가파른 경사이다. 여기에 눈을 가린 피의자로써는 거리 및 공간에 대한 감각이 제한된다. 그리하여 공포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 대공분실 철제계단 1층에서 5층의 취조실로 올라가는 나선형 철제계단이다. 계단참이 생략되었고 수직이 가파른 경사이다. 여기에 눈을 가린 피의자로써는 거리 및 공간에 대한 감각이 제한된다. 그리하여 공포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 황융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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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국내외 13개 팀의 청년작가를 전면에 세웠고 장르를 혼합한 퍼포먼스와 영상, 설치 작품을 선보인다. 1층에서 만나는 오카모토 하고로모의 비디오 영상 '목소리와 온도'는 대공분실 건물을 살피며 공포와 폭력의 표면적인 실체를 내재화하고 있다. 바로 옆에 있는 철제 계단을 피의자처럼 눈을 가린 채 오르는 장면도 담겨있다.

3층에는 이유지아의 <말랑말랑한 모듈러 #2>가 다이알 비누 가루를 사용해서 대공분실의 설계도를 바닥에 그려 놓았다. 민주투사였던 김근태가 받은 고문 중에서 물에 젖은 수건에 배어있던 그 냄새가 트라우마로 각인되었다는 피해자의 술회에서 착안된 것이다.
 
다이알 비누 가루를 사용해서 대공분실의 설계도를 바닥에 그려 놓았다.
▲ 이유지아 작가의 <말랑말랑한 모듈러 #2> 다이알 비누 가루를 사용해서 대공분실의 설계도를 바닥에 그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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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분실의 욕조 속에 죽은 나무와 살아있는 가지를 잇대고 감싸 그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 이이난 작가의 <기념비> 대공분실의 욕조 속에 죽은 나무와 살아있는 가지를 잇대고 감싸 그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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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난의 '기념비'는 대공분실의 욕조 속에 죽은 나무와 살아있는 가지를 잇대고 감싸 그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물고문이 자행된 작은 욕조는 생과 사를 가르는 공포의 도구였고 이를 시각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또한 욕조 안을 물과 돌로 채워 묵직함을 더했다.

김예슬의 '분실'은 상수도에서 창문으로 연결된 관을 통해 물줄기가 건물 밖으로 뿜어져 나온다. 바닥에 떨어진 물은 어딘가로 흘러가 그 기능을 지속하게 될 것이다. 고문을 위해 활용되었던 물이 순환되고 되살아나며 폭력이 재발되는 것을 연상시킨다. '분실'은 악랄한 고문이 전개된 구체적인 공간이며, 특정 사물을 잃어버리거나 의미를 망각한 상태마저 아우른다.

전시는 건물 내부에서 자행된 무시무시한 고문의 실체를 호출하며, 우리를 일깨워 그 중심에 서도록 한다. 고문의 피해를 경험한 그들만의 문제로 제한하려는 현실을, 혹은 근엄한 척 외면하는 세태를 폭로하는 것은 아닐까. 기억의 박제화를 경계하며 공감을 부르고, 사그라지지 말자고 끄집어내어 미래의 삶을 유추하도록 권유한다.

우리가 사는 시대에 폭력은 사라졌는지

예전의 폭력이 신체를 훼손하며 직접적인 타격에 의존했다면, 민주주의가 완성되었다는 지금 여기서의 폭력은 완전히 사라졌을까. '분실'이 보여주는 반복처럼 폭력은 멈추지 않은 채 다른 양상으로 재생산되며 우리를 포위하고 있다. 국가 정책에서 밀려났고 대책의 부재로 고통 받고 신음하는 층위가 존재하는 것은 이 시대가 생산하는 결과물이자 폭력이지 않을까.

2016년 촛불로 집권한 현 정부의 구성원은 대공분실이 함축하는 탄압과 저항성을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톨게이트 투쟁을 비롯하여 공무원노조의 해고자, 전교조 인정이 봉착된 현실, 영남대의료원 노조의 제반 문제, 용산참사와 세월호 진상조사, 김용균법 등. 모든 현안에서 노동존중과 정의가 실현되도록, 공동체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폭력의 종식에 가까울 것이다.

피의자로 거명되어 감금된 채 고문당했던 그들만이 실체를 증언한다면 역사의 퇴보를 막을 수 없다. 만연했던 폭력의 역사를 현재로 불러와 변모된 시대에 견주고 살펴야 미래의 폭력성을 제어할 수 있지 않을까. '끝없는 여지'는 마감되지 않은 상태를 함축하는 것이며, 여전히 폭력성이 생동감 있게 전개되고 있다는 현실을 자각하도록 이끈다.

많은 곳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들춰보며 절멸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으로 관람이 되기를 권한다. 전시의 퍼포먼스와 실연은 날짜별로 기획되어 진행되는데 www.dhrm.or.kr/에서 확인 가능하다. 전시는 18일까지다.

태그:#끝없는 여지, #민주인권기념관, #대공분실, #임민욱,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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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응의 질서를 의문하며, 딜레탕트Dilettante로 시대를 산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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