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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산팔경의 제2경 강선대에서 내려다본 금강. 강 건너 숲이 송호관광지의 야영장 등이다.
 양산팔경의 제2경 강선대에서 내려다본 금강. 강 건너 숲이 송호관광지의 야영장 등이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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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꾸려오면서 '풍경'이란 꼭지를 두고, 일상과 여행지에서 만난 경관을 담고 이런저런 소회를 붙인 지 10년이 훨씬 넘었다. 내가 만나는 모든 장면은, 그것이 자연이든, 인공물이든, 사람이 있든 없든 '풍경'으로 수렴된다. 물론 그것은 저마다 다른 모습,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풍경(風景)은 '바람과 볕'이다. 건축가 승효상은 '물적 대상'에 불과한 서양의 '랜드스케이프(landscape)'와 달리 우리말의 '풍경'은 '사람이 주체적으로 빛을 보는 일'이라고 해석한다. 그는 '풍광(風光)'이나 '경관(景觀)', '관광(觀光)'도 마찬가지 의미로 새기는데 나는 그의 의견에 흔쾌히 동의한다. 

흔히 경치라고 부르는 풍경은 단순한 사물, 대상이 아니라, '바람과 볕'의 어우러짐이라는 결과물이다. 똑같은 대상도 거기 부는 바람과 부서져 머무는 볕(빛)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과 인상을 연출한다. 그것은 한편으로 그것을 바라보는 이의 눈길과 정서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풍경'이 객관적 사물에 그치지 않고 인간과 교감할 때, '정경(情景)'이 되고 '풍정(風情)'이 되는 이유다.

좁은 나라지만, 지역에 따라서도 풍경은 달라진다. 같은 지역에서도 남부와 북부가, 서부와 동부가 다르니 도계를 넘으면 그 풍정조차 새로워진다. 딱 부러지게 어디가 어떻게 다르다고 말하긴 그렇지만, 그 미묘한 차이는 그 땅에 사는 사람의 인심과 정서로도 나타나기 때문이다. 

들머리가 장황해진 것은 얼마 전 흔치 않은 충청도 나들이를 다녀왔기 때문이다. 지난 한가위 다음날, 나는 모처럼 가족과 함께 도계를 넘었다. 따로 할 일도 없고, 집에서 시간을 죽이기보다는 어디 가까운 데 바람이라도 쐬는 게 좋다고 생각해서였다. 

귀성객들의 상경이 시작될 터이지만, 오전인데 어떠하랴, 오는 길은 귀경길과는 거꾸로니 길 막힐 일도 없을 터라고 생각했는데 짐작은 제대로 맞아떨어졌다. 9시쯤 출발한 우리는 내비게이션이 안내대로 거의 텅 비다시피 한 국도를 시원하게 달려 예상보다 일찍 송호관광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양산을 지나는 금강을 사람들은 '양강'이라 불렀다. 예사롭지 않은 물살은 강변의 나무 그림자로 완화된다.
 양산을 지나는 금강을 사람들은 "양강"이라 불렀다. 예사롭지 않은 물살은 강변의 나무 그림자로 완화된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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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영동군 양산면에 있는 송호관광지는 영동군이 직접 운영하는 국민 관광지다. 금강 강가에 수령 100년이 넘는 소나무 2천여 그루가 들어찬 솔숲이 있는 송호관광지는 28만4천㎡ 규모의 터에 야영장을 비롯한 캐러밴, 물놀이장, 산책로, 축구장, 놀이터 등의 시설을 갖추어 놓고 있었다. 

연휴라 관광지는 휴장이어서 우리는 관광지를 끼고 개설된, 이른바 양산(陽山)팔경을 거치는 금강 둘레길을 둘러보기로 했다. '양산팔경'이라고 하면, 통도사를 포함한 경남의 그것을 생각하기 쉬운데, 여기 양산은 영동군 양산면을 이르고 그 팔경은 양산의 고찰 영국사(寧國寺), 비봉산, 강선대, 용암, 봉황대, 함벽정, 여의정, 자풍서당 등 여덟 군데다. 

날씨가 꽤 더웠기 때문에 우리는 둘레길을 돌다가 적당한 그늘에서 싸간 도시락을 먹고, 좀 쉬다가 돌아가기로 했다. 지역의 이름난 경치에 '팔경(八景)'을 붙이는 건 익숙한 관습이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따를 일은 없다. 우리는 둘레길 강변의 산길을 반쯤 가다가 강변의 벤치에서 도시락을 먹었고, 함벽정에서 발길을 돌렸다. 

팔경 가운데 우리가 머문 곳은 세 군데다. 관광지에서 다리를 건너면 금강(이 지역에서는 양강陽江이라 부른다)을 끼고 도는 둘레길이 시작되는 곳에 제2경 강선대(降仙臺)가 있었다. 금강이 휘도는 물줄기를 내려보며 노송에 둘러싸인 육각형의 정자는 '신선'을 불러올 만해 보였지만, 신선이 머물기엔 너무 낮은 곳은 아닌가 싶었다. 
 
 양산팔경 중 제5경인 함벽정. '시인 묵객들이 음풍농월하고 학문을 강론하던 곳'이라는 설명 외에 유래에 대한 설명도 없었다.
 양산팔경 중 제5경인 함벽정. "시인 묵객들이 음풍농월하고 학문을 강론하던 곳"이라는 설명 외에 유래에 대한 설명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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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벽정 마루에서 내려다본 비단강. 이 마루에서 바라본 비봉산 낙조가 빼어나 '함벽정 8경'을 따로 두었다던가.
 함벽정 마루에서 내려다본 비단강. 이 마루에서 바라본 비봉산 낙조가 빼어나 "함벽정 8경"을 따로 두었다던가.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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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머문 곳은 제5경 함벽정(涵碧亭)이었다. 같은 이름의 정자는 충북 청주, 전북 익산과 정읍에도 있다. 강가의 커다란 암반 위에 서 있는 검박하고 단아한 이 정자는 '시인 묵객들이 음풍농월하고 학문을 강론하던 곳'이라고 전할 뿐, 안내판에는 그 유래에 대한 설명이 한 줄도 없었다. 

이 정자에서 바라보는 비봉산 낙조 등이 무척 아름다워 따로 '함벽정 팔경'을 둘 정도로 절경이었다고 하는데, 글쎄다. 우리는 마루에 걸터앉아 꽤 세찬 물살로 흘러가는 강물을 한동안 내려다보며 쉬었다. 

마지막은 관광지 솔숲에 있는 제6경 여의정(如意亭)이다. 영동이 낳은 악성 난계 박연의 후손인 만취당 박응종이 벼슬에서 물러나 귀향, 금강 주변에 해송 씨를 뿌리고 이를 송전(松田)이라 했고, 소나무가 숲을 이루자 거기 정사를 지어 후학을 가르쳤다. 그의 후손이 1935년 바위 위에 지은 콘크리트 정자가 여의정이다. 

잠가 놓은 관광지 입구 대신 우리는 솔숲 안의 식당으로 들어가는 길로 야영장으로 들어갔고 강변에 앉아 바위 위 정자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길고양이 두 마리가 바위를 뛰어올라 정자로 오르는 것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눈치챘겠지만, 나는 양산팔경에는 거의 눈길을 빼앗기지 않았다. 우리가 탄성을 지른 것은 강선대를 지나 산길을 오르면서 언뜻언뜻 나타나는 비단강(금강(錦江))의 강물과 거기 반짝이는 햇빛, 그리고 강 저편에 일렬로 나란히 서 있는 나무들, 강 이편의 수풀이 드리우는 그늘이 녹아 있는 풍경이었다.

나지막한 산등성이를 배경으로 차분하게 가라앉은 나무와 강이 연출하는 것은 고요와 평화였다. 보는 이의 눈높이에 따라 달라지는 빛 때문에 고요와 평화는 더욱 깊어지고, 우리는 마치 낯선 이국의 강변에 와 있는 듯한 착시를 느낄 정도였다. 

"와! 이건 마치 존 컨스터블의 풍경화 같네요!"

아들 녀석이 겨운 감정을 실어 외쳤고, 나는 "누구?" 하고 반문했다. 풍경화를 주로 그린 영국 화가라고 아이는 설명했는데, 나는 요령부득으로 말꼬리를 흐리고 말았다. 알지 못하는 화가의 그림을 거기 겹쳐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존 컨스터블의 풍경화를 연상시킨 금강의 물길과 주변 풍경.
 존 컨스터블의 풍경화를 연상시킨 금강의 물길과 주변 풍경.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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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물이 곁들여지면 풍경은 그 본연의 빛과 깊이가 더해지는 법이다. 산수유가 드리워진 냇물, 벚꽃의 행렬이 이어지는 호수를 상상해 보라. 물 위에 어룽진 화사한 꽃 그림자가 건네는 이야기는 얼마나 내밀한 울림으로 다가오는가.

야영장 너머 비단강 강변에 다다라서야 우리는 일렬횡대로 이어지고 있는 나무가 은행과 단풍나무라는 사실을 알았다. 풍성한 잎을 늘어뜨리고 은행과 단풍나무는 이제 막 노랗고 빨갛게 물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강변의 벤치와 나무 밑에 간이 의자를 놓고 앉아서 쉬고 있는 사람들은 부러울 만큼 여유로워 보였다. 

우리는 거세게 흐르는 강물을 지켜보면서 꽤 오래 거기 머물렀다. 강 건너 함벽정은 잘 보이지 않았고, 강물에 비친 푸른 산과 흰 구름이 강의 평화와 고요를 심화하고 있었다. 금강을 떠나면서 나는 강변 숲의 단풍이 절정이 될 무렵에 다시 이곳에 들르겠다고 마음먹었다.

잊어버린 화가의 이름을 확인하여 인터넷으로 존 컨스터블(John Constable, 1776~1837)을 검색해 본 것은, 한 열흘쯤 뒤였다. 소박한 시골 풍경을 정감 있고 아름답게 그려낸 존 컨스터블은 윌리엄 터너와 함께 영국 낭만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라고 했다. 미술사에서 최초로 야외에서 그린 풍경화를 서양미술의 중요한 장르로 끌어들인 그는 근대 풍경화의 선구자가 되었다고. 
 
 존 컨스터블이 그린 ‘위벤호 공원(Wivenhoe Park)’ (1816)은 우리가 만난 비단강의 풍경과 흡사하지 않은가.
 존 컨스터블이 그린 ‘위벤호 공원(Wivenhoe Park)’ (1816)은 우리가 만난 비단강의 풍경과 흡사하지 않은가.
ⓒ 존 컨스터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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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검색으로 살펴본, 숲과 들과 물이 어우러진 그의 그림 가운데 '위벤호 공원(Wivenhoe Park)' (1816)은 우리가 양산의 비단강에서 만난 풍경과 거의 비슷한 인상이었다. 풍경을 구성하는 소재의 이미지는 달랐지만, 함께 어우러져 드러나는 느낌은 하나로 수렴되고 있었다. 

그의 그림을 눈여겨 바라보라. 돔형의 빨간 벽돌 건물이나 풀을 뜯고 있는 젖소들, 그리고 울타리의 목책, 물 위에 뜬 새 따위는 다소 이질적인 소재들이지만, 그것들이 어우러져 드러내는 정서는 '평화'다. 그것이 양산의 비단강과 영국 남동부 곡창지대 서포크 지역의 풍경을 묶어준 것이다. 

어디에나 풍경은 있다. 파인더에 들어오는 피사체로서만 존재하는 단순한 대상이라면 그것은 '랜드스케이프'일 뿐이다. 그러나 바람과 햇빛, 그리고 나의 시선이 만나 어우러지면서 주관적으로 재현되는 장면은 마침내 '풍경'이 되는 것이다.
 
 송호관광지 야영장 주변의 은행과 단풍나무의 행렬. 가을이 깊어지면 불타는 단풍을 찾으러 가볼 일이다.
 송호관광지 야영장 주변의 은행과 단풍나무의 행렬. 가을이 깊어지면 불타는 단풍을 찾으러 가볼 일이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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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영동의 금강과 그 둘레길에 머무른 시간은 불과 몇 시간이었다. 그러나 흐르는 강물과 수면 위로 쏟아져 내리는 햇빛, 강을 가로질러 불어오는 바람, 강변의 은행과 단풍나무에 머무는 바람과 햇살을 '정경(情景)'으로 바꾸어낸 것은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본 우리의 눈길이었다. 

그래서다. 우리가 비단강과 솔숲의 '정경'과 '풍정(風情)'을 마음속에 담고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덧붙이는 글 | 송호관광지의 진가는 가을날에 맛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금강을 배경으로 솔숲의 야영은 제격이 아니겠는가. 송호관광지(http://songhotour.yd21.go.kr/) 누리집을 참고하시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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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 기사 포함, 모두 1천여 편의 글을 썼다. 2019년 5월, 블로그 '이 풍진 세상에'에 연재한 '친일문학 이야기'를 단행본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인문서원)으로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