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시선> '너흭가 임산부를 아느냐' 편 프로그램의 한 장면

▲ <다큐 시선> '너흭가 임산부를 아느냐' 편 프로그램의 한 장면 ⓒ EBS


오랜 세월 임신과 출산은 자연의 이치처럼 당연한 일로 간주하여 왔다. 그런데 누구도 임신과 출산에 대해 제대로 알려준 적이 없다. 미디어는 짧은 고통 소리로 임신의 고통을 표현할 뿐, 아기가 만들어진 후 여성에게 일어나는 여러 일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 임신과 관련된 책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대부분 태아와 관련한 내용만 다루고 있다. 최근에야 <아기 말고 내 몸이 궁금해서>, <나는 아기 캐리어가 아닙니다> 등 여성을 주목한 책이 나왔을 따름이다.

태아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임산부의 정신적, 신체적 변화는 그저 받아들여야 한다는 '태아 중심적 사고방식'은 여성을 철저히 소외시켜 왔다. 지난 9월 26일 EBS에서 방송한 <다큐시선> '너희가 임산부를 아느냐' 편은 임신하면 배만 나오는 게 아니라며 진짜 임신이 무엇인지 조명한다.
 
<다큐 시선> '너희가 임산부를 아느냐' 편 프로그램의 한 장면

▲ <다큐 시선> '너희가 임산부를 아느냐' 편 프로그램의 한 장면 ⓒ EBS


"엄마는 모성애가 있기 때문에 다한다", "배가 너무 안 나온 거 아니야?", "임신이 벼슬이냐?", "임산부가 커피를 마시네?" 등 우리는 이런 말들을 일상에서 흔히 내뱉거나 또는 듣곤 한다. 인류의 탄생한 이래 수없이 반복되어온 10달, 40주, 280일의 과정을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현실은 절대 만만치 않다. 출산은 여성의 신체가 맞는 가장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출산은 엄청난 출혈을 동반한다. 자연분만은 500cc, 제왕절개의 경우엔 1000cc 정도 출혈을 한다. 지혈이 안 되면 자칫 응급상황으로 이어진다. 2017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출생아는 35만 7771명, 사망한 산모는 28명이다. 얼핏 숫자가 적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인구 10만 명 당 산모 사망은 7.8명으로 패혈증 사망률(7.8명)과 비슷하다. 유방암 사망률(4.9명)은 월등히 앞선다. 출산은 사지를 넘나드는 힘든 과정의 연속이다.

아기를 기다리는 동안 엄마와 아빠에겐 많은 일이 생긴다. 임신테스트기의 두 줄은 아이를 가졌다는 기쁨, 때론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는 당혹감을 안겨준다. 이후 초음파 검사를 통해 접하는 아기의 심장 소리는 임신이 선물한 신세계를 경험하게 해준다. 1차 기형아 검사를 무사히 마쳤을 때 비로소 부부는 마음을 놓는다.
 
<다큐 시선> '너희가 임산부를 아느냐' 편 프로그램의 한 장면

▲ <다큐 시선> '너희가 임산부를 아느냐' 편 프로그램의 한 장면 ⓒ EBS


임신 초기엔 인체에 엄청난 지각 변동이 일어난다. 특히 호르몬이 폭등한다. 입덧이 심해지는 때이기도 하다. 입덧은 음식을 먹거나 냄새를 맡으면 일으키는 토덧, 울렁거림을 먹을 것으로 채우는 먹덧, 자신의 침을 삼키지 못해 계속 뱉거나 흘리는 침덧, 양치질만 하면 헛구역질이 나오는 양치덧 등 종류가 다양하다. 입덧약이 있긴 하나 약간 완화해주는 수준이다. 게다가 부작용으로 무기력과 졸음이 몰려온다.

임신 중기에 접어들면 대부분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하나, 여전히 마음을 졸여야 하는 순간은 많다. 임신에는 출산의 고통만 있는 게 아니다. 건강했던 사람도 임산부가 되면 얼마든지 아플 수 있다. 임신성 당뇨, 태반 조기 박리, 임신소양증, 임신중독, 부유방, 전치 태반, 자궁경부무력증 등 생전 처음 듣는 병과 마주한다.

조산기로 출산 전까지 병원 생활을 해야 하는 여성이 있는가 하면, 자궁경부무력증으로 자궁경부봉합술을 받는 여성도 100명 가운데 1~2명이다. 8명 중 1명이 자연 유산을 경험하는 현실에 대해 이근영 산부인과 전문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보통 임신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일종의 생리적인 현상이라며 가볍게 지나가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임신이 되면 전신이 다 변해요. 전신 대사의 변화, 심혈관의 변화, 골격계의 변화 등 산모에게 많은 변화가 있다. 일반적으로 임신이 되면 40주까지 누구나 간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많은 분이 못 갑니다."
 
<다큐 시선> '너희가 임산부를 아느냐' 편 프로그램의 한 장면

▲ <다큐 시선> '너희가 임산부를 아느냐' 편 프로그램의 한 장면 ⓒ EBS


임신 후기는 곧 몰아칠 진통을 준비하며 아기, 그리고 엄마의 탄생을 기다리는 시간이다. 과거와 달리 요즘은 분만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아빠들이 늘고 있다. 아이를 적게 낳는 현실이라 평생 한 번일지도 모를 임신을 기념하기 위해 만삭 사진도 많이들 찍는다.

이 시기에 내려야 할 가장 큰 결정은 자연분만을 할 것인가, 제왕절개를 할 것인가 여부다. 요즘 자연분만과 제왕절개는 거의 1:1 비율이라고 한다. 조현구 산부인과 전문의는 자연분만의 장점도 있지만, 제왕절개를 결정해도 산모의 잘못은 아님을 분명히 한다.

"예전에는 자연분만 쪽을 많이 추구하는 쪽이었고, 요즘은 수술을 원하시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자연분만을 못 하면 사실 산모나 가족들이 약간은 죄책감을 느끼셨어요. '옳다, 그르다'보단 '선택의 부분'이라고 말씀드립니다."
 
<다큐 시선> '너희가 임산부를 아느냐' 편 프로그램의 한 장면

▲ <다큐 시선> '너희가 임산부를 아느냐' 편 프로그램의 한 장면 ⓒ EBS


<다큐 시선> 제작진은 임신한 여성들의 고통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동시에 임산부가 아이를 배고 출산했다는 이유만으로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소외되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열심히 공부하여 원하는 직장에 들어갔지만, 임신하는 순간부터 여성의 삶은 180도 변한다.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 모두 엄마는 이래야 한다는 모성 신화의 잣대를 들이대며 압박한다. 유은정 정신과 전문의는 서로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임산부도 심리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고, 요즘 산모들이 일도 하고, 노산도 많고, 핵가족화 되면서 주변에서 같이 키워줄 수 있는 문화가 많이 없어졌어요. '누구나 다 아이를 키우는데 너만 그렇게 특별하냐?' 이런 분위기가 아니라, 요즘 임산부들이 더 힘든 이유를 이해하는 분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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