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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서 정치 이야기를 가장 많이 나누는 사람은 택시노동자가 아닐까. 그런 '정치 고(高) 관심자'가 주민 직접 정치 전도사가 됐다. 지난 8일, 노원에서 17년째 거주 중인 택시노동자 양명수씨를 만났다.

요즘 양씨의 주 관심사는 단연 '검찰개혁'이다. 양씨는 서초동과 광화문에서 세 대결하듯 벌어지는 시위에 대해 못마땅하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는 "촛불로 바꿔놨더니, 자기들 권력 가져가려고 세 싸움 하는 거 아니냐"며 "국민은 먹고살기 바빠 죽겠는데 그런 꼴이 곱게 보이겠냐"고 쏘아붙였다.

구정에 대한 쓴소리도 이어졌다. "남은 돈 지출 안 하면 다음 해 예산이 축소되니까 멀쩡한 도로 뜯어고치는 일이 있다던데, 그게 말이 됩니까? 자기 돈도 아니고 국민 혈세를. 이런 건 주민들이 제재 안 하면 똑같이 되풀이될 거예요. 애초에 주민 의견을 수렴해서 예산에 반영해야죠."

한참 열변을 토하던 양씨는 "그래서 우리가 직접 정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기성정치에 대한 분노와 환멸이 그에게 '직접 정치'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킨 듯했다.

"헌법에도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라고 했는데, 사실 우리는 투표할 때만 권리를 행사하고 그 외에는 권리 주장을 못 하잖아요. 떠들어 봤자 공허한 메아리고. 우리가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정치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해요."

노원주민대회 조직위에 속한 단체들은 지난 6개월간 노원 주민요구안 설문조사를 벌여왔다. 매해 10월부터 구 예산이 편성되는 것에 착안, 주민의 의견을 예산에 반영하자는 취지였다. 정치, 복지, 육아·보육, 주거, 노동, 여성 등 1만 건에 가까운 요구가 취합됐다. 조직위는 주민대회에서 주민요구안을 놓고 구청장과 협상을 벌인다.
 
주민대회 홍보 전단을 들고 웃는 택시노조 조합원.
 주민대회 홍보 전단을 들고 웃는 택시노조 조합원.
ⓒ 김선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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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씨가 소속된 노동조합은 요즘 각자가 모는 택시에 '노원주민대회' 전단을 한 뭉치씩 싣고 다닌다. 그리고 노원 지역에서 타고 내리는 승객들에게 대회 참여를 권한다고 한다.

"손님과 한참을 같이 (정치에 대해) 욕하다가도 '그래서 국민이 나서야 하고, 목소리를 강하게 내서 정치권에 우리의 생각을 알려야 한다. 마침 노원에서 주민대회가 열리니까 손님도 가셔서 얘기도 들어보고 참여하시라'고 하면서 전단을 드려요. 그러면 대부분이 끄덕이면서 관심을 갖더라고요."

그는 "'새로운 발상이다', '이런 건 처음이다'라는 반응이 많다. 물론 '이게 될까'라는 의구심도 많지만, 좀 더 대화 나누다 보면 결국 '이렇게만 되면 참 좋겠다'고 기대를 표하더라"라고 자랑하듯 말했다.

양 씨는 택시회사 입사와 동시에 노동조합 활동에 뛰어들었던 경험이 있다. 회사와 결탁한 어용노조 하에 불이익이 두려워 모두가 입을 다무는 현실을 참을 수 없어 직접 총대를 멨다. 그리고 온갖 회유와 압박, 형사처벌과 부당해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회사의 실태를 조합원과 주민들에게 알리고 또 알렸다.

그러기를 7년. 손 놓고 방관하는 구청에도, 이쪽저쪽 눈치 보며 표 계산만 하는 정치권에도 아무런 기대를 할 수 없었다. 결국 '노동하는 사람이 정치해야겠구나' 하는 신념이 생겼다.

"국회의원들 월급이 천만 원이 넘는다면서요? 땀으로 일궈낸 재산이 아니니까 일하는 사람들의 아픔을 모르는 거예요. 정치는 자기들끼리 나눠 갖고 편하게 살려고 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변화를 만드는 거잖아요.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은 자기와 같은 국민에 대해서 '연대의식'이 있어요. 배운 사람들처럼 앞뒤 재고 따지면서 자기 이익만 따지지 않지요."

양 씨에게 '노원주민대회에 바라는 점이 있냐'고 물었다.

"노원에서 본보기를 잘 만들어서 서울 전역으로, 대한민국으로 퍼졌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한국사회가 제대로 바뀔 거 같거든요."
   
노원주민대회 조직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의견을 개진하는 양명수 씨.(오른쪽)
 노원주민대회 조직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의견을 개진하는 양명수 씨.(오른쪽)
ⓒ 김선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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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본 글은 '현장언론민플러스'에 중복 게재되었습니다.


태그:#노원주민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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