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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여 년 전 4·3항쟁과정에서 희생된 4·3영령들에 대한 위령제가 9월 29일 쓰시마시 사오자키공원 바닷가에서 열렸다. 4·3당시 7년 7개월 동안 제주에서 학살당한 제주민들의 시신들이 대마해류를 타고 나가사키현 쓰시마시의 서해안인 사고만(佐護灣) 지역으로 표류된 유해들이 안장된 곳이기 때문이다. 이번 위령제는 '제주4·3한라산회(고문 나가타 이사무)'와 '제주큰굿보존회(회장 서순실 심방)'가 주관했다.

이승만 정부시절 제주민들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희생되거나 한국전쟁 당시 예비검속으로 동양척식 주식회사 제주지부인 주정공장 창고에 수감되었다가 바다로 끌려가 수장(강제로 바닷물에 빠져 죽임)을 당한 사람들과 한국전쟁으로 희생된 한국인들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 가운데 4.3 당시 예비검속으로 제주앞바다에서 수장된 제주민들이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이승만 정부는 2천여 명을 예비검속(향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군대가 내려 올 경우 협력이 예상 되는 자들을 미리 구속)한 후 주정공장에 수감, 고문과 폭력으로 고통을 주었고, 이중 500여 명은 알몸으로 배에 태워져 차가운 바닷물 속으로 수장되었다. 이때 수장된 시신들이 대매난류를 타고 대마도 해안으로 표류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쓰시마시 사오자키공원내 사고만 지역에 쌓인 엄청난 쓰레기 속에는 한반도에서 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플라스틱 소주병 여러 개가 눈에 띄었다.
 
대마도 해안에 쌓인 쓰레기  대마도 사고만 해안가에 쌓인 쓰레기들로  한반도에서 배출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플라스틱 소주병
▲ 대마도 해안에 쌓인 쓰레기  대마도 사고만 해안가에 쌓인 쓰레기들로 한반도에서 배출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플라스틱 소주병
ⓒ 박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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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한라산회 나가타 이사무(72)씨는 2014년 5월에 미네마치 오오미(峰町青海)해안에서 첫 위령제를 지낸 후, 2018년 9월에 이어 올해도 위령제를 지내고 있는데 "제주에서 희생된 시신들이 차갑고 어두움 속에서 이곳으로 떠내려와 묻혔다. 인간의 기본권은 말살당한 이들의 고통은 국경을 넘어 지켜져야 하는 소중한 권리"이기에 더욱 소중한 행사임을 강조하였다.

제주4.3한라산회는 120여 명의 회원으로 행사시마다 한사람당 5만엔의 자비를 들여 참여하고 있으며, 2008년 제주4.3항쟁 60주년 때부터는 매년 제주에서 열리는 4.3추념식에도 참석하고 있을 정도로 4.3항쟁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추모하고 있다. 
 
대마도에서 4.3위령제 9월 29일 대마도 서북해안 사고만(佐護灣)에서 제3회 제주도4.3사건 희생자 대마?제주위령제 행사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나가타 이사무선생
▲ 대마도에서 4.3위령제 9월 29일 대마도 서북해안 사고만(佐護灣)에서 제3회 제주도4.3사건 희생자 대마?제주위령제 행사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나가타 이사무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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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에서의 위령제는 지난 2001년 8월 9일 제주에서 방문한 4.3희생자유족들이 대마해협 남단에서 선상위령제를 처음으로 지냈고, 2002년 9월 26일에 4.3당시 희생된 혼백들을 모시는 진혼제를 지낸 후 멈추었으나 4·3의 생존자이자 4·3의 진실을 밝히고자 많은 노력을 해온 시인 김시종씨를 비롯해 일본인들에 의해 위령제를 다시 봉행되고 있다.

4.3위령제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제주4.3한라산회를 통해 위령제를 주최하고 있는 김시종(91, 나라현 이코마시 거주)씨는 "4.3은 미국군사정부시기 일본제국주의의 잔제들과 통일된 나라를 위해 희생된 제주민들이 대마해류를 타고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이다. 이들의 시신들을 에토 히카루씨 등 대마 섬주민들이 수습해 주었고, 공양탑을 만들어 매년 위령을 해줌에 마음을 같이 모으고자 위령제를 준비하게 되었다"며 관계자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였다.
 
대마도에서 4.3위령제 9월 29일 대마도 사고만(佐護灣)에서 제3회 제주도4.3사건 희생자 대마?제주위령제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김시종 선생
▲ 대마도에서 4.3위령제 9월 29일 대마도 사고만(佐護灣)에서 제3회 제주도4.3사건 희생자 대마?제주위령제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김시종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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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 서북해안 사고만에서의 위령제는 제주에서 참여한 서순실 심방(제주큰굿 보존회장)의 집전으로 진행이 되었다.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영령들을 불러서 혼을 달래고, 고통스럽게 희생된 영가님들의 저승길을 밝혀 왕생극락을 비는 굿"이며 "요왕(용왕의 제주어)길과 영가길을 안내하는 질(길의 제주어)찾기를 통해 모른(마른의 제주어)밭으로 불러내어 혼백들을 4.3평화공원의 묘역으로 모실 것"이라고 이번 위령굿의 의미를 설명하며 초감제로 시작되었다. 
 
대마도에서 진행된 4.3위령제 9월 29일 대마도 사고만에서 제3회 제주도4.3사건 희생자 대마?제주위령제를 서순실 심방의 초감제 시작으로 위령 굿이 열리고 있다.
▲ 대마도에서 진행된 4.3위령제 9월 29일 대마도 사고만에서 제3회 제주도4.3사건 희생자 대마?제주위령제를 서순실 심방의 초감제 시작으로 위령 굿이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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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 4.3위령제 9월 29일 대마도에서 제3회 제주도4.3사건 희생자 대마?제주위령제가 서순실 심방의 집전에 따라 요왕(용왕의 제주어)길에서 혼백을 불러 요왕문과 영가의 12대문을 에토 유카하루씨, 나가다 이사무씨, 송승문 회장이 무릎 끓고 염라대왕 길을 열고 있다.
▲ 대마도 4.3위령제 9월 29일 대마도에서 제3회 제주도4.3사건 희생자 대마?제주위령제가 서순실 심방의 집전에 따라 요왕(용왕의 제주어)길에서 혼백을 불러 요왕문과 영가의 12대문을 에토 유카하루씨, 나가다 이사무씨, 송승문 회장이 무릎 끓고 염라대왕 길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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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제에 앞서 가미아가타정 사고만의 시신 표류지 입구에 설치된 공양탑에서 일본 승려의 축원 염불도 진행되었다. 이곳 공양탑은 4.3당시 표류해온 시신 2백여 구를 에토 유키하루의 아버지와 동네 분들이 몇 개월동안 시신을 수습한 곳이기도 하다. 당시 표류된 시신들을 수습하는데 동네 사람들이 무서워 나서지 않자 에토 유키하루의 아버지가 지인들을 설득하여 시신들을 수습한 후 장작불에 화장을 하였으나 너무 많아 해안 인근에 매장하였다고 한다.

공양탑은 에토 유키하루의 아버지의 뜻에 따라 2007년에 설치되었으며, 에토 유키하루씨는 봄과 가을 등 일년에 3회 정도 위령제를 지내 왔다고 전했다. "많은 시신들이 표류해 왔으나 모든 시신을 수습해 묻지는 못했다. 긴 시간 물속에 잠겨 있던 유해들은 살이 물러지고 팔과 다리를 잡으면 떨어지기 일쑤였다. 제주민들의 시신을 수습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따르다보니 일부 시신은 조류를 타고 다시 흘러가도록 할 수밖에 없었다"며 당시 상황을 아버지의 증언을 통해 설명해 주었다. 
 
대마도 공양탑에서 위령 9월 29일 대마도 사고만 표류지 입구에 에토 유키하루씨가 제막한 공양탑 앞에서 일본 승려의 집전으로 제를 지내고 있다.
▲ 대마도 공양탑에서 위령 9월 29일 대마도 사고만 표류지 입구에 에토 유키하루씨가 제막한 공양탑 앞에서 일본 승려의 집전으로 제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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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최측의 한 사람이자 4.3당시 제주항 주정공장에서 태어난 송승문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은 "멀리 일본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간 아픈 역사의 영령들을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본인들의 모임을 이끌고 있는 나가타 이사무씨와 한라산회, 공양탑을 만들어 매년 위령제를 지내고 있는 에토 유키하루씨, 4.3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는 김시종씨 등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어 4.3후손으로써 일본에 있는 유골들을 수습하지 못함으로 인해 2010년 태평사와 서산사내에 유골 주변의 흙을 채취하여 제주4.3평화공원내 행방불명인묘역 비에 안치되었음을 알리며, "제주 후손들의 마음을 모아 대마도에 위령비를 건립하고 싶다는 마음"도 밝혔다.
 
대마도에서 4.3위령제 9월 29일 대마도 사고만에서 제3회 제주도4.3사건 희생자 대마?제주위령제중 희생자를 위한 월미(흰죽의 제주어)를 에토 유키하루씨가 바다에 뿌리며 영혼들을 달래고 있다.
▲ 대마도에서 4.3위령제 9월 29일 대마도 사고만에서 제3회 제주도4.3사건 희생자 대마?제주위령제중 희생자를 위한 월미(흰죽의 제주어)를 에토 유키하루씨가 바다에 뿌리며 영혼들을 달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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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3년 정부가 밝힌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제주4·3은 해방 후 미소냉전체계 구축과정에서 미국군사정부와 친일 부역자를 포함한 이승만 세력이 군인과 경찰을 동원하여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를 토벌한다는 명분으로 제주도민을 무차별하게 학살한 사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주정공장은 일본 제국주의 강점기시절 제주도의 물자를 수탈하기 위해 일본이 만든 동양척식 주식회사의 제주지사(1940년)로 절간(切干) 고구마를 원료로하여 에탄올을 연간 15천톤을 생산한 후 일본 병참본부 항공연료와 제주도에 주둔한 일본군의 자동차 연료를 생산한 곳이다.

4.3당시 주정공장은 군인들에게 고초를 당한 제주민들의 수용소로, 48년 10월 초토화작전과 11월 불법 계엄령에 의해 대한민국 군인과 경찰의 탄압이 시작되자 산으로 피신했던 제주민들이 배고픔과 혹독한 겨울을 한라산에서 보냈고, 49년 3월 제주도지구전투사령부(사령관 유재흥 대령)가 설치되면서 토벌대는 무장대와 전면전을 펼치는 한편으로는 귀순작전을 통해 제주도민과 무장대를 분리하는 정책을 펼쳐 나갔다.

군인과 경찰로 이루어진 토벌대는 한라산 일대에 헬기로 귀순을 권유하는 전단지를 살포했고, 이때 많은 주민들이 하산하였으나, 경찰서와 군부대의 수용소가 부족하자 남녀노소를 가리지않고 귀순자들을 동양척식 주식회사 제주지사 시설인 주정공장 창고를 수용소로 전환하였는데, 당시 수용된 자들은 치료를 받아야 할 부상자와 출산을 앞둔 임산부 등도 예외가 없었다.

그리고 토벌대는 빨갱이 색출이라는 명분으로 귀순한 제주민들을 혹독한 고문을 하고 이로 인한 후유증과 열악한 수용환경으로 많이 도민들이 죽어 나갔으며,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기도 하였다. 불법적인 재판을 통해 타 지방형무소로 끌려가기도 한 아픔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올해 대마도 사고만에서 진행된 4.3위령제는 한국에서는 문화재청의 지원을 받은 제주칠머리당보존회와 일본의 제주4.3한라산회가 주관을 할 예정이었으나 일본이 대한 수출시 절차 면제를 철회하며 한일관계가 경제적 긴장 관계가 형성되면서 취소되자 제주에서 활동해온 제주큰굿보존회가 나섰고, 제주4.3평화재단의 일부 후원을 통해 성사가 되었다.
 
대마도에서 진행된 4.3위령제 9월 29일 대마도 사고만에서 제3회 제주도4.3사건 희생자 대마·제주위령제에 참석한 4.3관계자들. 첫째 줄 오른쪽부터 송승문 유족회장, 김시종 시인, 박진우 집행위원장, 진덕문 사무국장, 홍성용 위원장.
▲ 대마도에서 진행된 4.3위령제 9월 29일 대마도 사고만에서 제3회 제주도4.3사건 희생자 대마·제주위령제에 참석한 4.3관계자들. 첫째 줄 오른쪽부터 송승문 유족회장, 김시종 시인, 박진우 집행위원장, 진덕문 사무국장, 홍성용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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