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이하 한국시각) 현재 메이저리그 평균자책점 상위 10명의 순위를 살펴 보면 내셔널리그 소속의 투수가 7명이나 포함돼 있다. 아메리칸리그에는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선발 3인방(저스틴 벌랜더, 게릿 콜, 잭 그레인키) 만이 '탑 10'에 이름을 올리며 자존심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사실 그레인키의 경우엔 휴스턴 이적 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유니폼을 입고 23경기에 등판한 기록이 포함된 것이다).

그렇다고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뛰어난 투수들이 내셔널리그에 몰려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내셔널리그와 아메리칸리그에는 지명 타자 제도 유무라는 특수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메리칸리그 투수들이 9번에 한 번씩 타격에 특화된 지명타자를 상대하는 반면, 내셔널리그 투수들은 9번에 한 번씩 투수 타석에서 숨을 돌릴 기회가 주어진다. 2사 이후 득점권에 주자가 나가 있을 때 8번타자가 종종 고의사구로 출루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내셔널리그에도 매디슨 범가너(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나 스티븐 스트라스버그(워싱턴 내셔널스)처럼 남다른 타격재능을 가진 투수들이 있다. 특히 범가너는 빅리그 11년 동안 통산 18개의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리고 23일 LA 다저스와 콜로라도 로키스의 경기에서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이 통산 3개의 홈런을 기록한 '코리안 특급' 박찬호에 이어 빅리그에서 홈런을 때린 2번째 한국인 투수로 이름을 올렸다.

고3때 홈런 쳤던 동산고 4번타자, 한화 입단 후 투수에만 전념
 
 LA 다저스 류현진이 29일(현지시각)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체이스필드에서 열린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2019 메이저리그(MLB) 경기에 선발 등판했다.

LA 다저스 류현진이 29일(현지시각)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체이스필드에서 열린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2019 메이저리그(MLB) 경기에 선발 등판했다. ⓒ AP/연합뉴스

 
프로 레벨로 들어가면 투수와 야수는 몸 관리부터 운동 방법까지 전혀 다른 스케줄을 소화하지만 학창시절에는 투수와 타자의 재능을 동시에 타고난 선수가 자주 등장한다. 따라서 팀 내에서 에이스와 중심타자를 동시에 소화하는 선수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물론 이는 미국이나 일본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선수층이 얇은 대한민국 학생 야구의 슬픈 현실과도 연관이 있다).

실제로 과거 선린상고의 박노준이나 경북고의 이승엽, 신일고의 봉중근, 경남고의 이대호(롯데 자이언츠), 부산고의 추신수(텍사스 레인저스), 서울고의 강백호(kt 위즈) 등은 고교 시절 에이스와 중심 타자를 모두 소화하느라 바쁜(?) 학창시절을 보냈다. 심지어 프로 원년에는 해태 타이거즈의 김성한이 타자로 타율 .305 13홈런 69타점, 투수로 10승 5패 평균자책점 2.88의 성적을 올리는 진기록을 내기도 했다.

류현진 역시 동산고 시절에는 팀에서 4번 타자를 맡은 적이 있을 정도로 투타에 모두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 타격폼은 다소 투박하지만 타고난 힘을 바탕으로 심심찮게 장타를 생산하곤 했다. 실제로 고교 시절 류현진의 타격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류현진은 고교 3년 동안 타율 .293(58타수 17안타)로 준수한 타격 성적을 기록했다. 3학년 시절이던 2005년 10월 18일 대전고와의 경기에서는 고교 야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홈런을 때려내기도 했다.

하지만 동성고의 한기주(삼성 라이온즈), 북일고의 유원상(NC 다이노스)과 함께 '고교 빅3 에이스'로 불리던 류현진을 투수가 아닌 타자로 활용하려고 생각한 프로 구단은 없었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타격 재능만 믿고 류현진을 야수로 육성하기에는 고교시절 이미 '완성형 투수'로 평가 받았을 만큼 뛰어났던 투수로서의 재능을 썩히기가 너무 아까웠기 때문이다.

결국 류현진은 200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1라운드(전체 2순위)로 한화 이글스에 입단한 후에는 전문 투수로 활약했다. 류현진은 프로에 입단하자마자 투수 부문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며 정규 리그 MVP와 신인왕을 휩쓸었고 동산고 4번 타자는 그렇게 류현진의 학창 시절 추억이 됐다. 실제로 류현진은 한화에서 활약한 7년 동안 단 한 번도 타석에 서지 않았다.

빅리그 입단 7년 만에 터진 홈런, 이제 류현진도 걸리면 넘어간다
 
 류현진(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이 22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미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홈경기에서 5회 말 선두 타자로 나와 홈런을 치고 있다.

류현진(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이 22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미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홈경기에서 5회 말 선두 타자로 나와 홈런을 치고 있다. ⓒ AP/연합뉴스

 
류현진이 동산고의 중심타자였다는 사실마저 야구 팬들에게 거의 잊혀져 가던 2013년, '동산고 4번타자'는 야구 종주국인 미국에서 다시 타석에 서기 시작했다. 류현진이 2012 시즌이 끝나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면서 내셔널리그 구단인 다저스에 입단했기 때문이다. 류현진은 다저스 입단 첫 해 .207의 타율과 4타점을 기록하며 만만치 않은 타격 솜씨를 뽐냈다. 

하지만 내셔널리그에서 투수의 역할은 출루한 주자를 다음 루로 진루시키는 것이다. 류현진은 2014년 8개의 희생번트를 성공시켰지만 타율 .149 2타점으로 타격성적이 하락했다. 2013년 4개였던 장타 개수는 2개로 떨어졌고 이듬해 어깨 수술을 받으며 2년 동안 공백기를 가졌다. 류현진은 .269의 고타율을 기록했던 작년 시즌에도 홈런은커녕 장타 단 1개를 때려내는 데 그쳤다.

류현진은 올 시즌에도 투수의 본분인 '보내기'에 집중하고 있다. 류현진은 올 시즌 12개의 보내기 번트를 성공시키며 빅리그 데뷔 7년 만에 처음으로 두 자리 수 보내기 번트에 성공했다. 반면에 15일 뉴욕 메츠전까지 시즌 타율은 .130에 불과할 정도로 타석에서는 상대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못했다. 지난 5월 26일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전에서 우측 펜스 상단을 때린 1타점 2루타가 올 시즌 류현진의 유일한 장타였다.

따라서 23일 콜로라도전에서 터진 빅리그 데뷔 첫 홈런은 다저스의 동료들과 한국의 야구 팬들을 놀라게 하기 충분한 한 방이었다. 현지에서 해설을 하고 있던 오렐 허샤이저와 노마 가르시아파라는 류현진의 홈런이 터지자 믿을 수 없다는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반면에 류현진에게 방망이를 빌려준 다저스의 간판타자 코디 벨린저는 "류가 내 방망이로 홈런을 쳤다는 사실보다 아직 박리그에서 홈런이 없었다는 사실에 더 놀랐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빅리그 데뷔 홈런을 쳤다고 해서 류현진이 갑자기 벨린저나 놀란 아레나도(콜로라도) 같은 공포의 타자로 거듭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을야구를 앞두고 류현진이 "걸리면 충분히 담장을 넘길 수 있는 타자"라는 인식을 심어준 것은 매우 고무적인 사실이다. 이제 류현진은 마운드 뿐 아니라 타석에서도 상대를 긴장시킬 수 있는 선수로 또 한 단계 진화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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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LA 다저스 류현진 코리안 몬스터 동산고 4번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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