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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다합(Dahab)에서 스쿠버다이빙 오픈워터(OpenWater)부터 다이브마스터(DM) 자격증을 취득하기까지의 과정입니다. 물 공포증이 있었던 필자가 2018년 12월 27일부터 2월 19일(55일)까지의 생생한 기록입니다. - 기자말
 
 일출 풍경
 일출 풍경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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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도 높은 훈련

교육을 따라 들어가는 일상이 반복됐다. 거의 30kg 장비를 착용하고 하루에 4~6번 다이빙이 이루어졌다. 9시 30분부터 시작해 오후 6시가 되어서야 끝날 때가 많았다. 온몸이 슈트 안에서 염분에 절어 퉁퉁 부는 듯했다. 손과 발도 붓더니 손톱과 발톱 끝이 갈라졌다. 짠물에 내내 잠겨 있던 손톱이 장비 세팅과 해체를 반복하다 보니 견뎌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곳에 바셀린을 발랐다. 며칠 더 지나니 허리 위쪽 부분에 염증이 생겼다. 공기통을 짊어졌을 때 끝이 닿는 부분이었다. 비상약으로 가지고 온 마데카솔을 발랐다.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바르지 않은 것보다 낫겠지 싶었다.

숙면을 취하기도 힘들었다. 이론 공부를 하다가 잠들곤 했는데 자정 전에 다리가 경직되고 결려서 눈을 뜨곤 했다. 어떤 날은 허기가 져서 바나나와 요플레, 우유를 마시고 다시 자기도 했다. 목이 잠기고 기침이라도 하면 커피포트에 물을 끓여서 마시고는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잠을 자는 동안에도 나는 긴장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연속적으로 훈련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이빙과 다이빙 사이 쉬는 시간이 있었다.

2. 다이빙과 다이빙 사이
 
 센터 2층에서 바라본 풍경
 센터 2층에서 바라본 풍경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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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다이빙을 하고 나오면(20m 이하 수심) 30분 정도 휴식을 취해 주어야 한다. 30m 이상 들어갔을 때는 한 시간 정도로 하고 있다. 질소 배출을 위한 시간이다. 꼭 지켜야 할 의무 사항은 아니지만 안전을 위한 의무 사항 아닌 의무 사항이 됐
다. 이런 면에서 조나단은 철저했다.

쉬는 동안 젖은 수트를 전부 다 벗을 수는 없다. 윗부분만 벗어 허리에 슈트를 걸친 채로 햇볕으로 나간다. 찬기를 날리고 몸을 말리면서 체온을 유지해야 한다. 햇볕은 오전에 뒤뜰에 머물다가는 오후가 되면 한참 뒤로 물러나 있다. 그럴 때는 햇볕을 따라 이동 한다.

쉬면서도 긴장을 늦출 수는 없다. 다음 다이빙 때 교육생들 앞에서 혹시 실수를 하지 않을까, 라는 걱정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스트레스가 쌓였다. 풀어야 했다.

다행히 음악이 있었다. 견딜 수 없이 피곤하거나 스트레스가 쌓이면 음악이 내 신경들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었다. 인터넷 연결이 잘 되지 않아서 데이터를 아끼느라 그동안 듣지 않고 있었다. 45분 점심시간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나만의 시간이 됐다. 숙소에서 마음껏 음악을 들으며 마음을 다스렸다. 오후 다이빙을 위해서 말이다.

하루하루 더해가는 강도 있는 훈련은 나를 시험케 했지만 그럴수록 오기가 생겼다. 5시 30분 기상. 조깅. 아침 식사. 아침 수영. 센터 출근해서 다이빙 등. 힘들면 힘들수록 묘한 쾌감이 돌았다. 굴복하지 않고 견디고 있다는 만족감이었다. 비록 부족하지만 다이빙 횟수가 올라갈수록 실력이 늘 거라는 믿음이었다. 다이빙을 할 기회가 생기면 몸이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따라 들어갔다.

나는 37m 딥 다이빙에서 질소 마취에 걸리기도 했고 호흡기를 아주 세게 깨물어 마우스피스가 뜯겨 나가 보조 호흡기로 바꿔 사용하기도 했으며 핀 벨트가 떨어져 나가 다시 사야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물속이 좋아지고 있었다. 호흡과 중성부력만 잘 유지한다면 바닷속도 하늘과 다를 바 없었다. 다이빙은 창공을 나는 거였다. 비록 공기통의 한계로 시간 제약이 있지만.

3. 다양한 교수법
  
 아침 일찍 출근하면 샤미르가 청소를 하고 있다.
 아침 일찍 출근하면 샤미르가 청소를 하고 있다.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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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따라 들어가면서 다양한 교수법을 접했다.

조나단이 무뚝뚝하기는 하지만 교육은 정확했다. 펀 다이빙을 따라다니면 재미는 붙기는 하나 DMT 과정이 기술 없이 가이드 옆에서 도움만 받는 것도 문제였다. 펀 다이빙을 가더라고 그들을 케어할 수 있는 실력이 되어야 한다고 그가 말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교육생들이 스킬을 익힐 때 스킬을 정확히 숙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려면 그들이 움직이지 않고 강사에게 집중해야 했다. DMT들의 보조가 잘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붕, 뜨는 교육생들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이런 교육을 보조한 어느 날, 나는 5m 수심 수면에 떠 있는 교육생을 발견하였다. 현지인 강사가 담당하는 교육생이었다. 조나단과 줄리아의 교육에서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교육을 끝내고 뭍으로 나왔을 때 규가 말했다.

"현지인들은 종종 뜨는 사람을 내버려두더라고요. 뭐랄까, 혼자 수면에서 바닥으로 내려올 때까지요."

나는 그들의 '헐렁해 보이는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얼마 뒤에 알게 되었다. 펀 다이빙을 따라갔을 때였다. 이제 막 어드밴스 자격증을 딴 다이버들이 다수 있었는데 그들 중 몇은 출수하자마자 붕붕 떴다. 가이드가 그들을 잡아 내리느라 제대로 가이딩을 하지 못했다. 펀 다이빙이 교육 다이빙이 되어버린 순간이었다.

S 강사를 따라 들어갔을 때는 내 콤플렉스와 마주한 시간이었다. S는 다합에서 강사 자격증을 딴 한국인이다. 일주일 뒤 귀국하는 그에게 마침 마지막으로 훈련을 시킬 교육생이 생겼다. SDI보다 까다로운 PADI 교육생이었다. 조나단은 내게 S를 따라 들어가라고 했다(다양한 교육 방법을 익히라는 조나단의 배려였다).
 
 S 강사(가운데)와 J. 이상하게 다이빙을 함께하고 나면 지상에서와 다른 친밀감이 생긴다.
 S 강사(가운데)와 J. 이상하게 다이빙을 함께하고 나면 지상에서와 다른 친밀감이 생긴다.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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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는 출수부터 섬세하게 교육생들을 인도했다. 물속 스킬에 있어서는 내가 여태 보지 못한 것들을 가르쳤다. 나는 어드밴스 자격증을 취득했으나 여러 물속 스킬을 건너뛴 채로 합격했다는 것을 그때야 알았다.

교육 훈련이 이루어질수록 나는 나를 냉정하게 점검하고 있었다. 여전히 호버링을 하지 못해서 교육생들이 바닥에 무릎을 꿇을 때 같이 무릎을 꿇었다(그렇지 않으면 호버링을 한다고 자꾸 핀을 움직여서 바닥 흙을 건드려 먼지를 일으켰다). 공기 먹는 하마였다(출수할 때 J와 비교하곤 하는데 그와 거의 50 Bar 차이가 났다). 어떨 때는 교육생들보다 앞질러 가기도 했다(아직까지 속도를 조절하지 못했다).

이런 실력으로도 DMT라는 역할을 해내야 했다. 보조는 못할망정 교육생보다 월등해야 했다. 그 압박감이 상당했다. 나는 최선을 다하더라도 실력이 늘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바로 나처럼 말이다. 점점 자신감이 떨어지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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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차노휘는 소설가이자 광주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2016년부터 도보 여행을 하면서 ‘길 위의 인생’을 실천하고 있다. 2009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얼굴을 보다〉가 당선되었고 저서로는 소설집 《기차가 달린다》와 소설 창작론 《소설창작 방법론과 실제》, 여행 에세이집 《쉼표가 있는 두 도시 이야기》, 장편소설 《죽음의 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