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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현산천문대를 오르는 길.
 보현산천문대를 오르는 길.
ⓒ 영천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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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악스럽던 여름이 꼬리를 감췄다. 새벽녘 불어오는 바람에서 북쪽 벌판 바람이 느껴져 달력을 보니 어느새 9월 말. 사람들은 결실의 계절을 맞았고, 경북 영천시는 찾아올 여행자를 맞을 준비에 분주하다.

문턱을 넘어온 가을. 한약 내음 가득한 한의마을, '꿈'의 메타포인 '별'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한 보현산천문대, 아직도 호국의 함성 선명한 영천전투 메모리얼파크 등 영천 여행의 핫 플레이스를 돌아보며 받은 감흥을 공유하고자 한다. 

백석의 시를 떠올리게 하는 '영천시 한의마을'

조용한 평일 오후. 경북 영천시 화룡동으로 차를 몰았다. 깔끔하게 조성된 한옥 위 날렵한 검은 기와가 인상적인 동의참누리원 영천한의마을에 들어서니, 자연스레 시 한 편이 떠올랐다. 한의원 혹은, 한의사를 접할 때면 예외 없이 기억나는 백석(1912~~1996)의 <고향>이다.

나는 북관에 혼자 앓아누워서
어느 아침 의원을 뵈이었다.
의원은 여래(如來) 같은 상을 하고
관공(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더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 정주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 씨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 씨를 아느냐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막역지간이라며 수염을 쓴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다시 넌지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손길이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영천 한의마을 입구의 흥미로운 조형물.
 영천 한의마을 입구의 흥미로운 조형물.
ⓒ 영천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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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방비누 만들기 체험.
 한방비누 만들기 체험.
ⓒ 홍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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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인이 타향에서 몸이 아파 한의원에 갔다. 거기서 긴 수염을 기르고 온화한 표정을 가진 한의사를 만났는데, 고향 어르신의 친구였다. 그의 위로와 진맥에 앓던 몸은 물론, 마음까지 편안해졌다는 내용을 담은 시. 영천한의마을과 썩 어울리는 작품이다.

한방 약재로 만든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약선음식관, 다양한 한방차를 준비하고 있는 찻집, 연인과 가족 단위 관광객들의 숙박이 가능한 한옥체험관을 갖춘 영천한의마을 안엔 전문의가 운영하는 한의원도 자리하고 있다.

"이곳 건물들은 인간의 몸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순환과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오장육부를 모티프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

한국 한의학의 발전 과정과 다양한 약초·약재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의기념관에선 한방을 통해 건강을 지키는 방법도 소개하고 있다. 한의마을 곳곳에 설치된 조형물 또한 대부분 '기(氣)의 순환'을 통해 인간의 몸을 보호한다는 주제로 제작된 것들이다.

'한방 테마거리'에서 즐길 수 있는 족욕 체험과 한방비누 만들기는 어른과 아이들 모두에게 인기다.

6천원을 지불하면 컴퓨터와의 문답을 통해 자신의 체질을 파악할 수 있고, 체질에 따른 건강 상식도 알려준다. 이후 한약재가 들어간 따끈한 물에 발을 담그고 15분쯤 편안한 휴식을 만끽하게 된다. 어성초 등 한약재를 이용하는 한방비누 만들기 체험에 참여한다면 자신이 직접 만든 비누 3개를 가져갈 수 있다.

영천시는 1960년대부터 한약재의 집산지이자 유통 중심지로 이름이 높았다. 이곳에서 거래되는 약재만도 500종에 가깝다.

이런 지역적 특수성을 감안해 해마다 열리는 '영천한약축제'는 건강 문제에 민감한 현대인들의 관심을 모은다. 올해 축제는 27일부터 29일까지 한의마을에서 개최된다.

'행복한 가을 힐링'이란 슬로건 아래 펼쳐질 제17회 영천한약축제에선 한방명의 진료관, 사상체질 체험관, 한방뷰티 체험관 등이 운영될 예정이다. '건강·치유 체험'과 함께 한약재 전시장, 야생화 전시관, 약초동산·약초터널도 만들어져 방문객들과 만난다. 행사장에선 각종 한약재와 영천 특산물도 구입할 수 있다.

구불구불 산길을 올라 별과 만나는 보현산천문대
 
 영천시 보현산천문대의 밤.
 영천시 보현산천문대의 밤.
ⓒ 영천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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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현산 천문과학관을 찾은 아이들.
 보현산 천문과학관을 찾은 아이들.
ⓒ 영천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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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무게는 약 85kg. 하지만 이건 지구에서 측정했을 때다. 달이나 태양에서 몸무게를 잰다면 얼마나 될까? 이 궁금증은 보현산천문대에 설치된 체중계 위에서 풀렸다.

영천은 '별의 도시'다. "별을 관찰하기에 가장 좋은 위치"라는 보현산이 있고, 해발 1124m 산 정상엔 동양에서 가장 큰 1.8m 광학망원경이 설치돼 있다.

영천시 화북면에 자리한 보현산 천문과학관은 드넓은 우주와 빛나는 별에 관심을 가진 학생들을 위해 각종 천문과학 학습 시설을 마련했다.

"어린이들이 무한한 우주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보며 다가올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것이 천문과학관 측의 바람이다.

이를 위해 '게임으로 배우는 우주 훈련' '가상 태양계 행성 탐험' '우주에서의 적응 방법' 등 흥미로운 체험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1박2일로 진행되는 '천문과학 캠프'도 참여자들의 만족도가 높다.

시간이 넉넉한 여행자라면 천문과학관을 둘러본 후 보현산천문대로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산꼭대기가 지척인 곳까지 올라가면 주차장이 있다. 거기에 차를 세우고 20분쯤 쉬엄쉬엄 걸어가면 보현산천문대가 나온다. 산새의 울음소리만이 청아한 조용한 숲길은 아름답고 낭만적이다. 데이트를 즐기기에도 그저 그만일 듯했다.

평소엔 해가 진 이후 출입이 제한되지만, 매년 과학의 날(4월 21일)을 전후해서는 야간 공개행사가 열린다.
 
 태양에서의 내 몸무게를 알려주는 보현산천문대 체중계.
 태양에서의 내 몸무게를 알려주는 보현산천문대 체중계.
ⓒ 홍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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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재밌는 정보 하나. 지구에서 85kg인 사람이 달에 가면 몸무게가 13kg으로 줄어든다. 태양에 가면 내 몸무게가 놀랍게도 2364kg이 된단다.

'아픔의 현대사'와 만나는 영천전투 메모리얼파크
 
 영천전투를 재현한 메모리얼파크 전시실.
 영천전투를 재현한 메모리얼파크 전시실.
ⓒ 홍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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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천지구 전적비.
 영천지구 전적비.
ⓒ 홍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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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시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투가 벌어진 지역 중 하나다. 그해 9월 5일부터 13일까지 남과 북의 군인들은 영천 일대에서 향후 전개될 전쟁의 주도권을 놓고 치열하게 맞붙었다. 그랬기에 이 전투를 '조국의 명운을 건 영천 대혈투'라고도 부른다.

만약 이 전투에서 밀렸다면 낙동강 동·서 보급로가 모두 차단되는 것은 물론, 남한의 마지막 방어선 전체가 흔들리게 됐을 것이다. 국군 8사단은 부대원 전체가 목숨을 건 호국의지로 영천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영천시 창구동에 들어선 '영천전투 메모리얼파크'는 한국전쟁의 전세를 극적으로 뒤집은 영천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메모리얼파크는 전망타워와 전시관, 가상 전투 체험장 등으로 이뤄졌다. 2개 층으로 구성된 전시관에선 임진왜란 당시 영천 지역 의병들의 활약상과 일제강점기 의병 활동, 앞서 언급한 영천전투와 관련된 생생한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전시실 '1950, 영천 대혈투 속으로'에서는 대형 화면을 통해 상영되는 역동적인 입체 영상을 볼 수 있다. 한국 현대사에 관심을 가진 10대 학생들이 좋아하는 공간이라고 한다.

시원스레 펼쳐진 야외에선 시가전과 고지전 전투에 참여해볼 수도 있다. 20~30대 관광객들에게 인기인 '서바이벌 체험'이다. 이곳에선 페인트 총과 디지털 헬멧, 보호용 장갑을 착용한 사람들이 지휘통제소의 안내에 따라 안전하게 '전투 체험'을 진행하고 있었다.

서바이벌 체험장과 함께 영천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타워를 통해 바깥으로 나가면 '영천지구 전적비'가 방문객을 맞는다. 그 앞에 서면 숭고한 희생을 통해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젊은 군인들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신문>에 게재된 내용을 일부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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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등의 저자. 경북매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