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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국 법무부 장관이 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사법개혁 및 법무개혁 당정협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조국 법무부 장관이 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사법개혁 및 법무개혁 당정협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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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여당이 재산비례 벌금제를 도입한다는 입장을 밝히자 찬반양론이 대립한다. 같은 죄를 지어도 재산의 정도에 따라 벌금액이 달라야 한다는 것이 재산비례벌금제다.

일수벌금형제도(日數罰金刑制度)라고도 하는 재산비례벌금형은 범행의 경중에 따라 벌금 일수를 먼저 정하고, 피고인의 재산 정도를 기준으로 1일 벌금액을 산정한 다음 벌금일수와 1일 벌금액을 곱해서 최종 벌금액수를 정하는 방식이다. 벌금일수를 먼저 정하기 때문에 일수벌금형이라고 한다.

반면에 총액벌금형제도(總額罰金刑制度)는 일정한 범죄에 대하여 벌금액을 먼저 정해서 선고한다. 그리고 벌금을 납입하지 않을 경우 1일 얼마로 계산해서 해당 기간 만큼 노역장에 유치(환형유치)하게 된다. 총액벌금형이라 칭하는 이유다.

재산비례 벌금제는 전두환 정부 시절인 1986년부터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1992년 형사법 전면개정 과정과 2004년 사법개혁위원회에서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논의된 바 있다. 또 2008년과 2009년 18대 국회, 2015년에도 국회에 형법개정안이 제출됐다. 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 김황식 국무총리가 일수벌금형제에 대해 개혁과제로 삼고 검토하고 있다고 발언한 바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제도가 아니란 소리다. 

2014년 초에 허주호 대주그룹 회장 황제노역 사건으로 여론이 들끓을 때도 마찬가지로 등장해 논의가 되었다. 하지만 당시(2014. 5. 14.)에는 형법 제70조 2항을 '선고하는 벌금이 1억 원 이상 5억 원 미만인 경우에는 300일 이상, 5억 원 이상 50억 원 미만인 경우에는 500일 이상, 50억 원 이상인 경우에는 1000일 이상의 유치기간을 정하여야 한다'라고 신설하는 데 그쳤다. 하루 벌금액수가 지나치게 높은 것을 일부 제한하는 방식이었지만 경제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이의 불평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했다.

돈 많은 사람에겐 형벌 가치 없는 현행 제도

총액벌금형제도는 두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먼저 형의 불균형이다. 같은 벌금형이 선고되더라도 경제력을 가진 사람은 별반 부담이 되지 않아서 형 집행의 위하력이 없게 된다. 위하력은 범죄의 급부로서 형벌을 부과할 때 "잠재적 범죄자"인 다른 일반인들에게 위협이 가해짐으로써 그 범죄가 얼마나 억제되겠는지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다시 말해 위하력이 존재하지 않는 형벌은 형벌로써의 가치가 없게 된다. 수천억 원을 가진 재력가에게 벌금 500만 원은 별반 위하력이 없어서 형벌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

또 하나의 문제는 벌금액을 정하고 이를 납부하지 않을 경우 환형유치를 하게 되는 과정에서 벌금액이 큰 경우에는 황제노역의 문제가 발생한다. 벌금을 납입하지 아니한 경우 환형유치할 수 있는 기간은 1일 이상 3년 이하다(형법 제69조 제2항). 따라서 3000억 원의 벌금이 부과되었을 때 가장 긴 3년의 기간 노역장에 유치한다면 1일 2억 7000만 원 이상으로 계산된다. 100억 원의 경우에도 1일 900만 원이 넘어서 마찬가지로 황제노역이 되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황제노역의 문제가 발생하면 벌금제도 개선이 도마 위에 오르고, 그때마다 일수벌금형제도가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다.

일수벌금형제도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거를 몇 가지 짚어보자. 일수벌금형제도는 소득에 따른 합리적 벌금 산정이 가능해서, 경제력에 따른 공평한 처벌이 가능하다는 점을 도입근거로 제시한다. 그런데 이 제도 도입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소득이 많고 적음에 따라서 벌금액을 차등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평등의 원칙에 반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범죄의 유형에 따라서 벌금일수는 동일하고 다만 환형유치를 위한 1일 벌금액의 산정에 있어서 재산을 고려해 벌금액을 정할 뿐이다. 따라서 소득이 많다고 해서 무겁게 처벌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벌금액을 차등적으로 정하는 것은 형의 실효성 확보를 위한 것이다. 오히려 소득을 고려하지 않고 벌금액을 동일하게 적용했을 경우에는 소득이 많은 사람은 형벌의 효과가 별로 없기 때문에 사실상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것과 동일해 오히려 평등의 원칙에 반하게 된다. 따라서 총액벌금형 제도에 비하여 일수벌금형제도가 실질적 평등에 기여하는 것은 분명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산이 피고인의 형량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 맞느냐, 돈 많은 게 무슨 죄가 되느냐, 합법적으로 형성된 재산에 벌금을 많이 부과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는 주장도 한다. 그러나 재산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벌금을 내도록 하거나, 합법적으로 형성된 재산에 벌금을 부과하는 것도 아니다. 개인이 형법상의 범죄를 저질렀을 때 일정한 일수의 벌금형을 선고하고, 그 벌금형을 대신해서 일정 금액을 납입할 경우 형 집행을 완료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합법적으로 형성된 재산이나 돈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다액의 벌금을 내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

벌금을 많이 걷기 위한 수단으로 일수벌금형제도를 도입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일수벌금형제를 채택한다고 해서 벌금이 더 많이 걷히는 것도 아니다. 일수벌금형제는 벌금일수가 1일 이상 365일 이하 등으로, 1일 벌금액의 경우에도 만 원 이상 1000만 원 이하 등으로 규정한다. 오히려 지금처럼 몇천억 원의 벌금을 선고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다.

현실적인 문제로 소득을 어떤 기준으로 파악할 것이냐, 단순한 급여로 판단할 것이냐 아니면 재산의 정도로 판단할 것이냐, 월급 소득자는 소득파악이 쉽고 자영업자는 상대적으로 어려운데 직종에 따른 형평성 논란이 있는 것은 아니냐는 반론도 있다. 가장 합리적인 반대론의 근거다. 그러나 예전에 비해서 지금은 개인의 재산 파악이 훨씬 쉽게 이루어진다. 모든 것들이 투명하게 관리되고 노출되는 시대다. 따라서 세무서나 건강보험공단 등에서 파악하고 있는 자료들로 개인의 재산 파악이 가능하다.

또한 단순한 월급이 아니라 개인이 가지고 있는 재산을 근거로 벌금액을 산정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개인이 살고 있는 집, 이용하는 승용차, 월 소비하는 정도가 얼마인지 등도 고려해야 할 요소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재산 파악을 위한 자료를 활용한다면 상당 부분 소득의 파악이 가능하다고 본다.

벌금을 산정하려면 국민 재산 정보를 수사기관이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수사 기관이 재산에 관한 너무 많은 정보를 갖게 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그러나 1일 벌금액은 법원에서 판단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법원에 제출해야 할 자료다. 그리고 그러한 자료는 다른 목적으로는 사용할 수 없고, 곧바로 폐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면 된다. 반드시 수사기관이 개인의 재산에 관한 자료를 가지고 있어야 할 필요는 없으니, 남용 가능성은 크지 않다.

재산비례 벌금제를 시행했을 때 얼마나 범죄 억제 효과가 있을 것이냐는 의문도 제기한다. 그러나 재산비례 벌금제는 위하력을 더 높여서 범죄의 억제효과를 올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경제적의 유무에 따라서 형벌의 위하력에 차이가 나는 것을 바로잡으려는 것에 불과하다. 최소한 일수벌금형제를 채택한다고 해서 범죄의 억제 효과가 줄어드는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30년 동안 거론된 재산비례 벌금제, 지금이 도입 기회

외국의 입법례를 보면 1921년 핀란드에서 도입한 이래 스웨덴(1931), 덴마크(1939), 독일(1975)과 프랑스(1983), 오스트리아 등에서도 일수벌금형제를 채택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1992년 제도를 도입했다가 재산조사의 어려움을 이유로 시행 6개월 만에 폐지했다. 미국은 아직 이를 채택하지 않고 있다.

참고로 아래와 같이 독일형법 제40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일수벌금형 방식은 우리 국회에 제출된 개정안의 경우와 비슷하다.

①벌금형은 일수로 정하여 선고한다. 벌금형은 최소 5일로 하고, 법률에 다른 규정이 없는 경우에는 최고 720일로 한다. ②벌금형의 일수정액은 행위자의 개인적, 경제적 사정으로 고려하여 법원이 정한다. 이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행위자가 일일 평균적으로 벌거나 벌 수 있는 순수입을 기준으로 한다. 일일 벌금정액은 최소 1유로(약 1500원), 최고 3만 유로(약 4500만 원)로 결정된다. ③일수를 산정하기 위하여 행위자의 수입, 재산 기타 기초사실 등이 사정될 수 있다. ④벌금형의 일수와 일수정액은 판결로 고지된다.

일수벌금형제가 조국 법무부 장관의 개혁 과제로 등장하자 반대의 목소리가 생각보다 크다. 아마도 조국 장관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목소리를 키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수벌금형 제도는 조국 장관과 관련 없이 거의 30년이 다 되어가는 시간 동안 주요 추진 과제로 등장했다. 따라서 어느 정부서 시행하느냐, 어떤 법무부 장관이 개정안을 주도하느냐에 대한 문제는 사실상 논쟁을 벗어난 것이다.

황제 노역에 분노한 사람들이라면 현재의 총액벌금형제가 갖는 문제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그 대안으로 일수벌금형제를 채택할 필요가 있는지를 고려하면 된다. 개혁은 시기를 놓치면 언제 또다시 기회가 올지 알 수 없다. 지금이 벌금형 제도의 개혁을 위한 좋은 기회임은 분명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정범씨는 법무법인 민우 소속 변호사,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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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변호사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겸임교수(기업법, 세법 등)로 활동하고 있는 김정범입니다. 공정한 사회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함께 더불어사는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배치되는 비민주적 태도, 패거리, 꼼수를 무척 싫어합니다. 나의 편이라도 잘못된 것은 과감히 비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