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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무형문화재 79호)
▲ 조영숙 발탈보유자 (국가무형문화재 79호)
ⓒ 조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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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배우나 탤런트 중 연기를 못하는 사람에게 '발연기'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발연기'로 인간문화재가 된 사람이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79호 발탈 조영숙(86) 보유자이다. 발탈은 발에 탈을 쓰고 등장하는 발탈꾼과 재담꾼이 티격태격하며 재담으로 다투는 전통연희의 종합예술이다.

발에 탈을 씌우고 공연을 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 발에 탈을 씌워서 하는 공연이라 인형극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발탈은 재담과 춤, 익살과 해학이 있는 마당놀이에 가깝다. 

조영숙 보유자는 함경도에서 판소리 명창인 조몽실씨의 딸로 태어났다. 1951년부터 임춘앵 여성국극단에서 배우 생활을 했으며, 임춘앵의 대역을 할 정도로 인정받은 여성국극 역사의 산증인이다. 이후 1980년대 중반 고(故) 이동안(1906∼1995) 보유자를 만나 2000년에 전수교육조교, 2012년에 예능보유자가 되었다.

많은 무형문화재가 전통계승에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지만 발탈은 그중에서도 명맥을 유지하기조차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다. 발탈은 현재 가사, 줄타기와 함께 긴급보호무형문화재(전승·보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종목)로 지정돼 있다.

조영숙 보유자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2013년 팔순을 맞아 단독 갈라쇼 '광대 팔순전'을 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며 꿋꿋이 전통을 지켜오고 있다. 오는 21일 민속극장 풍류(서울 강남구 소재)에서 공개행사를 준비 중인 조영숙 보유자를 10일 자택에서 만났다.
  
(국가무형문화재 79호)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조영숙 발탈보유자 (국가무형문화재 79호)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CPN문화재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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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무형문화재 제79호 발탈에 대해 소개한다면?
"발탈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발에다가 탈을 씌워서 하는 놀이입니다. 인형극이라고 딱히 할 수도 없고. 또 단막극이라고 할 수도 없고. 내용 자체가 다양하기 때문에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렵지만, 마당극에 가깝다고 보면 됩니다."

- 어떤 내용으로 구성돼 있나요?
"출연자는 탈꾼, 재담꾼, 조기 장사 아낙네 세 사람이 나와요. 판소리를 위주로 해서 남도민요, 경기민요가 있고 비나리, 살풀이, 액막이도 있어요. 재담과 노래, 춤이 있는 국악 코미디 같습니다."

- 발탈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고(故) 이동안 선생님께서 살아계실 때 TV에 출연한 일이 있었습니다. 사회자가 한 말씀 하라고 했는데 그때 선생님이 '내가 좋아하는 형님 조몽실 선생님이 있는데 그 딸이 조영숙이다. 조영숙은 이것을 보면 나를 꼭 찾아오너라'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아마 그때 발언한 테이프 찾아보면 KBS 어딘가에 있을 거예요. 그것이 인연이 돼서 시작했어요. 그런데 발탈을 배워 보니까 대본이 괜찮더라고요. 연극 대본도 훌륭하고 여러 장르가 다 들어가 있어서 '이거 괜찮겠다' 생각해서 하게 됐어요."

- 고(故) 이동안 선생님은 보유자의 어떤 점을 보고 같이하자고 했나요?
"내가 여성국극을 하면서 다져진 노하우가 있고 재담도 잘하고 코믹한 것도 많이 했거든요. 그런 점을 높게 평가해 주신 것 같습니다."

- 발탈의 매력은?
"한 작품에 여러 장르가 다 들어 있잖아요. 이런 것이 없어요. 다른 종목을 보면 판소리면 판소리, 무용이면 무용, 살풀이면 살풀이, 북춤이면 북춤 하나잖아요. 그런데 발탈은 여러 가지가 다 들어있어요. 그래서 참 재밌어요."

- 여든이 넘는 나이인데 힘들지는 않은가요?
"그게 희한해요. 공연이 끝나면 힘이 쫙 빠지죠. 그런데 그전까지 화장도 신나게 하고 머리도 하고 의상 입고 신이 나요. 평소에는 걸을 때 불편한 점이 있는데 무대에 올라가면 나도 모르게 춤을 추더라고요. 그 끼를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웃음)"
 
- 현재 줄타기, 가사와 함께 긴급보호무형문화재입니다. 전수에 어려움이 있다면?
"내가 연기하는 데 어려움은 없어요. 그런데 배우려고 하는 사람이 없어요. 발탈은 세 명이 해야 완판이 되는데 개인 종목이라 배울 것이 많아요. 다른 종목은 혼자 하는 것이 많잖아요. 무용도 판소리도 경기민요도 심지어 줄타기도 혼자 할 수 있잖아요. 발탈은 여러 장르를 해야 하니까 배우기가 힘들어요."

- 발탈을 하면서 힘들었던 순간이 있다면?
"전수조교 시절 성북구청 옆 지하에서 학원을 했어요. 여름에는 습기가 차서 200벌 가까이 되는 의상에 곰팡이가 생기고 했는데 돈이 없어 다른 곳으로 갈 수가 없었어요. 당시 국가에서 전수조교에게 지급되는 금액이 60만 원이었어요. 그 돈으로 집세, 학원비 30만 원 주고 나면 30만 원 갖고 살았어요. 여기에 전기요금, 수도세 등 내고 나면 항상 적자였죠. 거기서 7년 동안 있었어요. 돈이 부족하면 행사 같은 데 가서 메꿨어요. 배우러 오는 애들 밥이라도 사서 먹여 줘야죠. 오는 게 고마우니까. 발탈은 학생이고 누가 배우러 잘 안 와요."

- 전수관은 아니더라도 제대로 된 연습장을 구할 생각은 안 했나요?
"성북구에다가 얘기했어요. 그런데 구청장이 바뀌면 모르쇠가 돼버려요. 나는 성북구청 공사가 한창일 때 왔거든요. 상당히 오래됐어요. 그때부터 문화과에 얘기해서 하다못해 '창고 같은 곳이라도 좋다' '우리는 무용처럼 넓은 공간도 필요 없다. 몇 명이 앉을 수 있고 한쪽에 짐이라도 갖다 놓을 수 있는 여섯 평만 되면 좋겠다'고 했는데 잘 안됐어요. 그렇게 해주면 구청 행사 때 우리가 무료로 공연해주면 서로 좋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구청장 바뀔 때마다 갔었어요. 지금이 세 번인가 네 번 바뀌었는데 이번에는 안 갔어요."
  
(국가무형문화재 79호)가 공연 자료를 보며 발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조영숙 발탈보유자 (국가무형문화재 79호)가 공연 자료를 보며 발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CPN문화재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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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이 있다면?
"내가 더 늙기 전에, 발탈을 할 수 있을 때, 빨리 가르쳐 주고 싶어요. 이제 와서 내가 돈을 벌려고 이것을 하겠습니까. 제자들이라도 열심히 가르쳐 놓자는 것이죠. 비루하게 사는 것은 나 때로 끝내고 제자들은 좀 편안하게 이것을 유지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발탈이 긴급보호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는데 우리 큰 제자 김광희가 어서 조교가 돼서 내 뒤를 이어줬으면 합니다."
 

- 21일 하는 행사는 어떤 행사인가요?
"공개 행사죠. 국가무형문화재들이 1년에 한 번씩 하는 행사입니다. 21일(토) 오후 4시 강남구에 있는 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 '풍류'에서 합니다. 무료공연이니까 오셔서 많이 응원 부탁합니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발탈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 하는 사람, 보고 싶어 하는 사람 등 우리의 예술적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나는 너무너무 고마워요. 앞으로 끊임없이 사랑해 주면 우리가 힘을 더 얻어서 기계에 휘발유와 기름을 넣어 시동을 거는 것처럼 열심히 아주 신나게 잘할 것 같습니다. 끝까지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인터뷰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2L2FkKg1SnU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CPN문화재TV에도 실립니다.


태그:#조영숙, #발탈, #국가무형문화재,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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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에서 행복 찾는 것을 좋아합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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