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스페셜-요즘 것들의 돈라벨

MBC스페셜-요즘 것들의 돈라벨 ⓒ MBC


  
2017년 <쇼미더머니> 시즌6에서 화제가 된 노래가 있다. <요즘 것들>이란 제목의 곡은 '꼰대'에 의해 규정된 자신들의 처지를 통렬하게 읊는다. 하지만 오십 평생 열심히 모아도 집조차 살 수 없는 저금리 시대를 살아가는 장본인의 처지라면? 부모 세대처럼 덜 먹고, 덜 입어 돈을 모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닌데? 평생직장은커녕 당장 정규직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세상을 살아간다면? 이게 어른들이 한심해 하는 '요즘 것들'이 살아가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 것들'도 돈을 번다. 단지, 부모들이 살아왔던 시대의 방식과 다를 뿐이다. 지난 16일 방영된 < MBC 스페셜 >은 바로 이 달라진 '요즘 것들'의 돈벌이 트렌드를 살펴봤다.
 
공개 개그 프로그램 출연자인 개그맨 안가연씨. 하지만 그는 최근 2개월 동안 무대에 서지 못했다. 바로 3개월 단위로 등수가 정해지고 선택을 받지 못하면 코너가 없어지는 프로그램의 방식 때문이다. 불규칙한 일자리로 인해 전두 탈모라는 스트레스성 질환까지 시달리던 안씨는 그런 자신의 처지를 반추하다 또 다른 재능을 발견했다. 그는 우연히 '자치로운 생활'이라는 웹툰을 그리게 되었고, 그것은 그의 또 다른 직업이 됐다.
 
웹툰 주인공 츄카피는 바로 다음 달 월세를 걱정하는 처지의 안가연씨 자신이고, 다른 캐릭터 또한 안씨 주변인들이 모델이다. 정기적이지 않은 무대에 오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개그맨의 자취생활이 안씨의 웹툰 소재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시대, 정규직조차 얻는 게 쉽지 않은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선택한 방법은 바로 여러 개의 직업을 갖는 'N잡러'를 자처하는 것이다.
 
공인중개사-아이스링크 알바생-전자상거래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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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스페셜-요즘 것들의 돈라벨 ⓒ MBC



31살 유두희씨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주말, 실내 아이스링크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런데 다음날 그는 아이스링크장의 작업복을 벗고,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집을 보러간다. 그의 본업은 공인중개사로, 벌써 6년차다. 그는 사무실 임대비용에 들어가는 금액을 아끼기 위해 온라인 공간에 사이트를 만들어 신축 빌라 분양을 매개하는 일을 하고 있다. 3년 전만 해도 일주일에 1200만 원을 벌기도 했다는 그가 최근 올린 성사 건수는 극히 미미하다.
 
그렇다고 낙담할 일은 아니다. 정작 고정 수입을 올려주는 건 주휴수당까지 챙겨주는 아르바이트와 함께 하고 있는 전자 상거래 사업이다. 그는 전자 상거래 사업으로 월 100만 원 정도의 수익을 올린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다시 자리를 옮긴 그는 어느 틈에 농사일 할 때 쓰는 모자와 긴 장화까지 챙겼다. 한우 농장으로 향한 그는 소들이 좋아하는 풀을 베느라 비지땀을 흘린다.
 
지난 7월 16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년 10명 중 8명은 첫 직장에서 200만 원 미만의 월급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르바이트 노동자 김승현씨는 주거비로 50만 원, 통신비로 6만 원 등을 쓴다. 밥을 굶어도 한 달에 기본으로 나가는 돈이 60만 원에 달하는 것이다. 아껴 쓰는 걸 안하고 싶어도, 하루를 맘껏 쓰면 다음 날은 굶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이게 세상에 떠밀려 홀로서기를 한 많은 청춘들의 자화상이다. 이들에게 N잡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서 돈만이라도 계획대로?

앞서 살펴봤듯 돈을 벌기 위해 여러 가지 직업을 택하는 'N잡러'가 있다면, 또 다른 편에는 고전적 방식으로 돈을 아끼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아끼는 방식이 좀 다르다.
 
'티끌 모아 한솔'이라는 개인 방송을 진행하는 한솔은 자신의 경험이 곧 돈이 된 케이스이다. 금리가 높은 상품, 쿠폰 모아 돈 벌기, 교통비 아끼는 팁 등 대학을 다니면서도 1300만원을 모으고, 현재 통장만 16개가 된 생생한 경험이 곧 그녀의 방송 자산이다. 한창 멋 부릴 나이지만, 화장품도 옷도 많지 않다. 봉값을 아끼기 위해 집게를 이용해 커튼을 설치했지만, 한솔은 돈을 모으는 게 행복하다.
 
그러나 무조건 아끼기만 하는 건 아니다. 한솔은 '사고 싶은 것을 사고 싶을 때 사는 것도 능력'이라 생각한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서 돈만큼은 계획대로 모으고 쓰고 싶다는 그녀가 가장 잘하는 건 '참는 것'이다. 심지어 취미로 시작한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조차 한 장에 500원에 판다. 집 사는데 걸리는 30년을 20년으로 단축하기 위해서.
 
신상만 나오면 사는 게 취미였던 공부방 선생님 이초롱씨는 '남의 돈 버는 게 쉽지 않다'는 걸 깨닫고 삶의 방식을 바꿨다. 물론 '요즘 것들'답게 그녀는 '애플리케이션'과 '재테크'의 합성어인 '앱테크'를 통해 돈을 번다. 영수증을 모으고 은행 출석 체크를 해서 조금씩 모은 포인트는 어느새 그녀의 화장품 값이 되고, 손님 접대비용이 된다. 이런 식으로 한 달에 모은 돈이 지난달만 해도 15만9000원이다.
 
이렇게 '요즘 것들'을 위한 다양한 금융비서 앱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하늘 아래 같은 색은 없다지만 이렇게 사들이시면 같은 색을 또 사는 게 아닌가요'라는 애교 섞인 멘트로 '과소비'를 경고해주는가 하면, 무지출을 게임식으로 유도한다. 이런 '앱테크'를 활용해 이초롱씨는 지난해에만 3000만 원을 절약했다.
 
경제 자유 위해 조기 퇴직 준비하는 '파이어족'
 
이런 요즘 것들의 '돈라벨'은 예전처럼 무조건 허리띠를 졸라매 막연한 먼 미래를 기약하는 것과는 좀 다르다. 목표로 하는 여행이나 자아 가치 실현을 위한 자산 관리라는 뚜렷한 각자의 목표가 있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최근 다른 나라에도 경제적인 자유를 위해 조기 퇴직을 준비하는 '파이어족(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이 등장하고 있다.
 
미국 엘리트 직장인들 사이에서 최근 갑자기 등장한 이 신종족은 100만 달러(11억2620만 원) 만들기를 목표로 이 금액을 달성하면 미련 없이 직장을 나온다. 이들은 자신들이 모은 100만 달러로 주식을 하거나 은행에 예치한 뒤 거기서 나오는 수익이 5~6%만 되면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다고 본다. 대부분 고연봉을 받는 IT 종사자나 금융권 종사자 사이에서 불고 있는 '파이어족' 열풍은 현재 비록 많은 돈을 벌고 있지만 일로부터 오는 스트레스와 일로 인해 가족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현실을 벗어나, 조금 덜 먹고 덜 쓰더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살고 싶다는 소망에서 비롯된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이다.
 
딸을 하나 둔 김상진씨 부부 역시 '파이어족'을 지향한다. 회사원인 김상진씨는 주말을 이용하여 마카롱 아이스크림 등을 파는 통신 판매업을 겸업하는 중이다. 본사와 점포 사이를 연결해 주고 수수료를 받는 식이다. 그런가 하면 공무원인 아내는 경매에 나섰다. 이미 상가 경매의 달인 수준으로, 이것으로 벌어들이는 돈은 아내의 본봉을 넘어섰다. 거기에 더해 재개발 지역 부동산을 통해 거의 1년 연봉에 버금가는 돈을 만진다.
 
부부가 이렇게 본업 이외의 직업에 열심히 매달리기 시작한 건 딸을 낳고서다. 아이가 생기고 아이가 더 자라기 전에 가족끼리 시간을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낀 부부는 본격적으로 부업 전선에 뛰어 들었고 부업만으로 살 수 있을 때 기꺼이 회사를 떠날 것을 약속했다.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이 시대 젊은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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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스페셜-요즘 것들의 돈라벨 ⓒ MBC


물론, 방식을 달리 하는 경우도 있다. 하루 16시간 일하던 요리사 병훈씨는 이제 편의점 알바를 하며 '적게 벌고 적게 쓰는 삶'을 실천하고자 한다. 더 이상 자신을 사회 속에서 혹사시키고 싶지 않다는 결심이 그의 삶의 방식을 변화시켰다. 경제적으로는 불안하지만, 지금의 행복에 집중하고자 한다.
 
이렇게 목표는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지금을 투자해 미래를 얻으려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 잡히지 않으려 한다. 그런 선택의 중심에 그 예전 세대들이 한 마디로 규정짓던 '요즘 것들'이 있다. 이렇게 예전과 다른 요즘 것들의 '돈라벨'의 방식 그 기저에는 바로 불안을 안고 사는 이 시대가 있다.
 
수능만 잘 보면, 그래서 대학만 잘 가면 되던 시대는 끝났다. 평생직장도 사라졌다. '과연 50살까지 모아서 집을 살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이 이 시대 젊은이들 사이에 흐른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무언가를 준비한다. 영수증을 모으고, 쿠폰을 모으고, 하루 24시간, 평일과 주말 할 것 없이 여러 가지 일을 하고, 그러면서 그 속에서 '자신'을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어른들이 펼쳐놓은 세상에, 어른들처럼 했다가는 떡은커녕 굶어죽기 십상이니, '요즘 것들' 방식대로 고군분투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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