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우 평양> 포스터

<헬로우 평양> 포스터 ⓒ (주)다자인소프트

 
2012년, 대한민국은 큰 변화의 물결 한 가운데 놓이게 된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면서 3대 세습이 이뤄진 것이다. 북한의 지도자가 바뀌고 남북관계도 변화를 맞았다. 당시 20대 후반의 젊은 지도자였던 김정은 국방위원장은 스위스 유학생활을 한 만큼 더 열린 마음과 개혁의 의지를 지니고 있지 않겠느냐는 추측도 나왔다. 독일의 영화인 그레고르 뮐러는 그런 호기심을 안고 평양을 향했다.
 
<헬로우 평양>은 그레고르 뮐러와 앤 르왈르가 경험한 평양을 담아낸 작품이다. 그들은 정식으로 촬영을 허가받은 게 아니기에 DSR 카메라를 통해 사진을 찍는 척 몰래 녹화를 진행했다고 한다. 다큐멘터리 촬영이라는 목적을 숨기고 북한에 온 그레고르 감독은 360도 원형으로 이루어진 레스토랑과 친절한 사람들, 볼거리가 풍성한 관광코스를 통해 즐거운 여행을 경험한다. 하지만 그 여행 안에 그가 경험한 '북한'이라는 공간에 대한 메시지를 담아낸다.
  
 <헬로우 평양> 스틸컷

<헬로우 평양> 스틸컷 ⓒ (주)다자인소프트

 
첫 번째 메시지는 '세뇌'다. 그는 2013년 당시 처음 북한을 여행할 때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한다.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인데 왜 서방의 국가들이 여행을 허락하는지, 또 북한은 미국 등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닌 국가들을 적으로 규정하면서 왜 외국인 관광객들을 받아들이는지 말이다. 북한에 도착한 감독은 그 이유를 알게 된다. 가이드와 함께 여행을 하는 그는 자신들의 체제를 찬양하는 그들의 말에 마치 세뇌를 당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어딜 가나 김일성과 김정일, 두 전 지도자들에 대한 찬양이 반복되고 그들 체제의 우월성에 대해 찬송한다. 그는 그 말에서 모순을 발견하지만 종교와 같은 믿음에 혀를 내두른다. 한 박물관에서 가이드는 경제 체제를 비교하며 남한은 잘 살지만 자본의 노예가 되어버렸고 북한은 그들보단 경제적으로 뒤처지지만 더 의미 있는 가치를 추구한다 말한다. 이에 그레고르 감독은 경제 체제라는 건 소득과 발전이 있어야 의미가 있음을 강조한다.
 
또 북한이 남한보다 경제적으로 뒤쳐진다는 점을 인정하느냐는 질문에 가이드는 먹고 사는 문제보다 체제가 먼저라고 말한다. 감독은 김일성이 썼다는 수많은 책을 보며, 과연 이 엄청난 성과가 모두 한 사람의 것인지에 대해 합리적인 의문을 품는다. 그는 가이드들이 한 순간도 자신들의 체제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 믿고 있는 진실에 대한 의문을 표하지 않는 것을 보며 세뇌의 무서움을 경험한다.
  
 <헬로우 평양> 스틸컷

<헬로우 평양> 스틸컷 ⓒ (주)다자인소프트

 
두 번째 메시지는 감시다. 감독은 평양에 대해 1970년대 SF 영화 속 도시 같다고 평가한다. 평양은 경제적으로 뒤처져 있다. 동시에 조지 오웰의 < 1984 >를 연상시키는 듯한, 감시가 흔한 공간이기도 하다. 가이드들은 2인 1조로 묶여 관광객을 감시한다. 매일 보고서를 올리기에 그들은 관광객 앞이라고 함부로 체제에 대한 불만이나 불평 또는 그들의 하는 말에 대해 동조를 할 수 없다.
 
그레고르는 여행 내내 가이드들에게 가정을 바탕으로 체제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 중 하나가 통일에 대한 질문이다. 1949년 분단된 정부가 들어섰던 독일은 1990년에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고 통일을 이뤘다. 하지만 통일 이후 독일은 경제적인 문제와 지역 차별 문제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이런 독일의 고통을 경험한 그레고르는 북한의 연방제 통일안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북한은 1국가 2체제의 통일안을 선전한다. 남과 북은 하나의 대한민국을 이루지만 그 안에는 두 개의 분리된 체제가 있다는 연방제 통일안이다. 이에 대해 그레고르는 상상해 보자며 통일 후 북한 체제가 받을 위협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이런 그레고르의 질문은 가이드들을 당황시키고 중간에 가이드가 교체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는 이런 북한이란 공간에서 1970년대 SF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느낀다.
  
 <헬로우 평양> 스틸컷

<헬로우 평양> 스틸컷 ⓒ (주)다자인소프트

 
세 번째는 변화다. 감독은 북한 여행을 마치면서 다시는 북한에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의 감시와 체제 선전 하에서는 제대로 된 북한의 모습을 찍을 수 없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2017년, 제28회 만경대상 국제 마라톤 경기대회가 평양에서 열리자 다시 북한을 방문하게 된다. 4년 만에 방문하게 된 북한의 모습에서 감독은 작지만 확실한 변화를 느끼게 된다.
 
고층 건물과 음료수 등 서양 문화가 유입되면서 그가 4년 전 보았던 북한과 판이하게 달라졌다. 2013년 북한을 향했을 때 그가 젊은 지도자에게 품었던 기대가 2017년에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는 이 달라진 모습의 평양을 달리며 온몸으로 변화를 느끼고 싶어 한다. 하지만 마라톤을 달리면서 이전에 느꼈던 그림자가 다시 한 번 그의 마음에 생겨난다. 마라톤 코스마다 마치 벽처럼 둘러싼 사람들의 존재에서 말이다.
 
웃는 얼굴로 응원의 목소리를 보내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에서 감독은 여전히 그들 체제를 보호하고 그 내부를 보여주지 않겠다는 생각을 읽게 된다. 자유롭게 평양을 뛰어다니지 못하게, 그가 여행코스에서 느꼈던 것처럼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보여주겠다는 그 의지를 다시 한 번 경험하게 된다. 그에게 평양은 흥미롭고 새로운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곳이지만 여전히 70년대 SF영화처럼 세뇌와 설득의 늪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헬로우 평양>은 '평양'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변화와 유지가 공존하는 북한의 모습을 담아낸다. 관광코스만을 여행할 수 있고 가이드하고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제한된 환경 속에서 그레고르 뮐러 감독은 최대한의 감상을 뽑아내기 위해 분투한다. 어쩌면 그가 평양의 한복판을 질주한 마라톤은 세계적인 기대와 흐름에 부응하지 못하는 북한의 더디고 힘겨운 변화의 모습을 표현한 게 아닌가 싶다. 26일 개봉.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헬로우 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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