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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3대 트레일 중 가장 길고 험하다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acific Crest Trail·이하 피시티) 4300km. 미국 LA 문화단체 '컬쳐앤소사이티(대표 줄리엔 정)' 기획으로 고난의 행군을 자처한 한국 하이커들의 이야기를 연재한다. - 기자말

* 1편에서 이어집니다.
  
감사한 분들을 참 많이 만났다.
▲ 깊은 산 속 만난 한국인들. 감사한 분들을 참 많이 만났다.
ⓒ 정힘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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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북부 레이크 타호(Lake Tahoe, 운행 83일째, 운행거리 1700km)를 걸을 때다. 폭설로 인해 많은 길이 지워져 길을 자주 잃었다. 난 휴대전화로 피시티 길 찾기 애플리케이션 하프마일 (halfmile)을 보며 길을 걸었다. 산 바위 능선을 맨손으로 부여잡고 기어오르기도 하고 우거진 나뭇가지를 헤치며 걷기도 했다. 한참을 그렇게 산을 걷고 있었다.

그런데 오후 2시쯤 맞은편 산에서 뭔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곰인가?' 자세히 보니 텐트였다. 고요한 산에서 발견한 인간의 흔적이 너무 반가워 "헬로" 하고 소리쳤다. 5초 뒤에 반대편에서도 "헬로" 하고 답이 돌아왔다. 산정 호수 반대편에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난 다시 한번 소리를 질렀다. 또 화답이 왔다. 수건을 머리 위로 돌리고 춤을 췄다. 난 길을 잃지 않았다!

30분쯤 쉬고 다시 걸었다. 숲을 뚫으며 걸을수록 아까 그 텐트와 가까워졌다. 1시간을 걸으니 그들 가까이에 있었다. 그들은 설산에서 썰매를 타고 있었다. 아시아계 남녀였다. 그들이 내게 물었다.

아시아계 남녀: "안녕하세요?(How are you?)""
나: "좋아요. 아까 대답해 줘서 고마워요(Good! Thanks for asking)"
아시아계 남녀: "아니에요. 재미있었어요. 어디서 여행 오신 거예요?(You're welcome. It's Great. Where are you from guys?)"
나: "한국이요(I'm from South Korea)"
아시아계 남녀: "어? 한국인이세요? 나도 한국인인데! 그럼 한국말 할 줄 아세요?"
나: "그럼요, 당연하죠!"


깊은 산속에서 같은 피가 흐르는 한민족을 만나다니. 반가움은 놀라움으로 변했고, 끝도없이 서로의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은 거지꼴인 나에게 라면과 김치, 미역국, 밥을 만들어 줬다. 오랜만에 맛보는 한식이었다. 한인 가족은 10명 정도였다. 레이크 타호에 캠핑을 자주 온다고 했다. 대가족이 고요하고 경이로운 자연의 품 안에서 맘껏 뛰놀 수 있다는 게 부러웠다.

다시 길 떠날 채비를 하던 중 그들 일행 중 한 명이 내 신발끈을 바라봤다. 내 신발 끈은 물에 젖어 있던 것을 불에 말리다 많이 타 있었다. 그는 핑크색 새 신발끈을 나에게 선물했다. 꼬질꼬질한 신발에 핑크색 신발끈이 새롭게 묶였다. 이렇게 묶일 수 있는 인연도 있었던가. 웃겼지만 감사했다. 아직도 그 핑크색 신발끈을 간직하고 있다.  
 
피시티의 half mile 에 도착했다. 핑크색 신발끈과 함께.
▲ 하프마일 피시티의 half mile 에 도착했다. 핑크색 신발끈과 함께.
ⓒ 정힘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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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매는 내비게이션, 흔들리는 멘탈

피시티를 걷기 시작한 지 100일이 지났을 무렵 오리건 주로 들어갔다. 오리건은 평지가 많고 경사가 완만해 속도를 낼 수 있다. 다리와 몸, 짊어진 배낭의 무게, 정신 상태 등 모든 것이 트레일에 완전히 적응했다고 생각했다. 자연에 대한 두려움도 자신감으로 바뀌었다.

한참을 걷고 있는데 길이 점점 협소해지고 나뭇가지도 더 우거졌다. 길치 본능에 따라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한 시간 정도를 걷는데 막다른 길이 나왔다. 주위 어디에도 트레일은 보이지 않았다. 뒤를 돌아봤다. 내가 지나온 길이 맞나 싶을 정도로 길은 보이지 않았다. 길쭉하게 뻗은 나뭇가지와 커다란 잎사귀, 내 몸통보다 더 두껍운 나무뿐이었다.

머리가 하얘졌다. 나는 길 찾기 앱 하프마일(halfmile)을 다시 켰다. 앱을 따라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그것도 잠시, 지나왔던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 걸었던 길이 잘못된 것인가. 완전히 패닉에 빠졌다. 30분 정도를 자리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정신을 다시 부여잡고 앱을 다시 봤다. 이번에는 화살표가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 가리키는 곳에는 울창한 숲만 있었다.

나는 이 앱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인가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대안이 없었다. 앱을 보며 숲을 뚫고 걸었다. 나뭇가지를 물리치고 잎사귀를 쳐내며 산을 탔다. 흙투성이, 바위 무덤의 산등성이를 맨손으로 잡고 올라갔다. 가방에 매달린 호루라기도 힘껏 불었다. 누가 있으면 대답 좀 해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주변은 고요하기만 했다.

40여 분 헤맸을까. 산 능선에서 정식 트레일이 보였다.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돼 있었다. 가지고 있던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는 바위에 걸터앉았다. 잠시 내가 오만했던가. 가쁜 숨을 몰아쉬는 사이 언덕 아래에서 하이커 한 명이 올라오고 있었다.
 
비와 눈, 계속되는 오르막과 함께했던 워싱턴.
▲ 워싱턴 비와 눈, 계속되는 오르막과 함께했던 워싱턴.
ⓒ 정힘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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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신은 나를 위로하지 못했다

피시티 피날레 구간인 워싱턴주는 유난히 오르막길이 많았다. 오르고, 또 오르고 다시 올랐다. 비까지 오는 날이면 정신도 무너졌다. 비는 엉덩이를 타고 허벅지를 따라 등산화 속으로 흘렀다.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다. 비를 피할 곳도 없었다. 어쩌다 커다란 나뭇잎을 발견하면 그 아래서 잠시 숨을 돌렸다. 피시티 막바지에는 눈까지 내렸다. 몸과 마음도 얼어붙었다.

하이킹을 시작한 지 159일. 그토록 바라던 캐나다 국경 매닝파크에 도착했다. 하지만 기쁨보다 공허함이 밀려왔다. 목적지에 다다르면 서풍의 신 제피로스가 나를 황홀한 곳으로 데려다 줄 거라 생각했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목적지 공기는 눅눅했고 땀에 절은 하이커들의 거친 숨소리만 들렸다. 하이커들은 배낭에 담아 온 샴페인을 터트렸다. 환호성을 지르고 춤을 춤췄다. 난 태극기를 펄럭이며 사진과 영상을 찍었다. 부모님에게 감사 영상 편지를 만들어 보냈다.

세리머니를 끝낸 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남미 전병인 토르티야에 초콜릿 잼 누텔라를 발라 먹었다. 곰 젤리 '하리보'를 색깔 별로 꺼내 질겅질겅 씹었다. 그 고생을 했는데 그냥 갈 수 없었다. 목적지인 모뉴먼트(기념비)에서 무언가를 계속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공허함은 이길 상대가 아니었다. 난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멍한 눈빛으로 모뉴먼트를 바라봤다. 눈물이 툭 떨어졌다.

피시티에서 무엇을 배웠냐고 자문한다면, 글쎄, 한 단어로 정리하기 어렵다. 집념, 오기? 그건 아니다. 결국 허무인가? 그것도 아니다. 난 걷고 걸었으며 주어진 한 끼 식사를 온 힘을 다해 먹었다. 하루하루가 치열했고 또 견뎌냈다. 넉달 간의 사투를, 내 품에 담아 둔 그 말로 줄인다.

"당신은 자유롭지 않아요. 당신이 묶인 줄을 잘라 버리지 못해요... 인간이 이 줄을 자르지 못하면 살맛이 뭐 나겠어요?... 잘라야 인생을 제대로 보게 되는데." -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 중.
 
멕시코 국경과 캐나다의 국경 사이에서 하이파이브.
▲ 하이파이브 멕시코 국경과 캐나다의 국경 사이에서 하이파이브.
ⓒ 정힘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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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정힘찬, #피시티, #퍼시피 크레스트 트레일, #하이킹, #미국 트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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