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 스피릿> 포스터

<틴 스피릿> 포스터 ⓒ 찬란

 
영화는 우리가 할 수 없는 것, 이 세상에서 불가능한 것, 하지만 언제나 꿈꾸는 것을 제공해준다. 물론 영화 외에 소설과 음악 같은 다른 장르의 예술도 우리의 욕망을 채워준다. 하지만 영화관에서 제공하는 시청각적인 (이제는 촉각까지 활용하는 공감각적인) 자극은 그 어떤 장르보다도 빠져나오기 힘든 생생한 매력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영화를 통해서 가장 그럴듯하게 우리의 욕망을 (잠시나마) 현실에서 충족시킨다.  

따라서 영화라는 상품은 다수의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욕망을 자극시켜 최대한의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캐릭터나 내러티브가 전체적으로 비슷한 작품들이 나오기도 하는데, 이는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공통적인 욕망을 포착해 구현한 영화라 할지라도 자신만의 개성 또한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영화는 단지 상품이 아니라 상상력과 창의력이 발현된 예술 작품의 자격이 있을 테니까. 그러나 엘르 패닝 주연의 <틴 스피릿>은 안타깝게도 예술 작품이 되지 못한 많은 영화들의 전철을 밟고 말았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당연 '바이올렛(엘르 패닝)'이다. 그녀가 억압적인 상황에서 벗어나 자신의 꿈을 이루는 내용이 90여 분의 러닝타임을 채우고 있다. 이는 관객들이 그 시간 동안은 그녀의 감정과 행동 등 모든 것을 따라갈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틴 스프릿>은 자신만의 독창성이 전무하다고 실토해버린다. 

영화의 주인공 바이올렛은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빠는 그녀를 떠났고, 좋아하는 노래는 할 수 없고, 농장에서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싫다. 10대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안 좋은 상황들만을 모아 놓은 듯한 설정들인데, 이 때문에 바이올렛은 그저 관습적인 캐릭터로 보이기도 한다. 
 
 <틴 스피릿> 스틸컷

<틴 스피릿> 스틸컷 ⓒ 찬란

 
<틴 스피릿>은 바이올렛의 과거를 풀어내는 방식을 살짝 비틀면서 관습으로부터 탈피하려고 한다. 실제로 영화는 바이올렛의 아빠에 대해서 많은 정보를 주지 않는다. 이를 통해 바이올렛의 행보에 호기심과 긴장감을 불어넣기도 한다. 문제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그에 대해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의 후반부는 앞서 쌓아 올린 플롯들을 통해 논리적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그러나 <틴 스피릿>의 경우 바이올렛의 아빠에 대해 미리 제시한 단서나 플롯이 매우 빈약하다 보니 영화 후반부의 전개가 불친절하고 작위적으로 느껴진다.

그렇기에 후반부의 바이올렛의 행동이나 감정선은 관습적일 뿐만 아니라 쉽사리 이해도 가지 않는다. 관객 개개인들이 바이올렛의 감정선을 추론해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바이올렛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불만과 꿈을 지닌 아무 특색 없는 인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영화의 캐릭터가 특색이 없다는 것은, 그 인물에 대해 흥미가 동하지 않고 그의 이야기를 볼 이유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뛰어난 음악 영화, <스타 이즈 본>이나 <라라랜드>의 경우 영화 OST가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바 있다. 하지만 이는 단지 뛰어난 노래의 퀄리티 때문만은 아니다. 영화 속 인물들의 감정에, 그리고 영화의 전개에 깊이 몰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리고 음악 영화를 표방한 <틴 스피릿>의 OST가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틴 스피릿> 스틸컷

<틴 스피릿> 스틸컷 ⓒ 찬란

 
<틴 스피릿>의 바이올렛은 전형적이지만, 최소한의 공감 요소는 가지고 있다.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역경을 딛고 성공하는 경험이 있고, 또 그렇게 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으니까. 따라서 그녀의 도전과 실패 모두 울림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캐릭터 자체는 그녀에게 쏟아지는 차별과 억압에 도전하는 인물로 만들어 놓고, 정작 그 과정을 보여주는 방식이 너무나도 익숙한 것은 분명 문제다. 모든 영화의 전개가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 머무를 뿐이라서 바이올렛의 도전, 변화, 성장이 보여주는 극적 매력마저 앗아가기 때문이다. 그녀의 성공이 심심하게 느껴지는 것은 덤이다. 이처럼 도전과 변화를 거부하는 방식으로 도전의식이 가득한 인물의 이야기를 다루려 하니, 영화 OST 또한 단순한 음악 이상의 쾌감이나 카타르시스를 표출하지 못한다.

그래도 <틴 스피릿>은 삶으로부터의 탈출을 바라는 한 소녀의 심리를 화면에 효과적으로 담아낸다. 영화 도입부터 등장하는 황량한 평야와 같은 배경 설정, 회색빛의 무채색 필름, 전체적으로 어두운 조명 등은 바이올렛의 좌절감과 답답함을 적절히 환기시키는 장치들이다. 영화의 배경처럼 인물들도 자신의 감정을 강하게 분출시키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건조한 영화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특정 장면들에서는 급격한 색과 분위기의 반전이 이루어진다. 주로 바이올렛이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장면들에서 드러나는 이 변화는 그녀의 극적인 성공과 비상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실제로 화려한 조명과 강렬한 색채로 가득한 무대들은 전체적으로 건조한 배경 설정 덕분에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당긴다. 이처럼 <틴 스피릿>에는 스타일적인 측면이나 분위기가 영화 속 인물 그리고 내러티브의 지향점과 일치하는 인상적인 대목이 존재한다. 단지 이러한 스타일리시한 매력도 <틴 스피릿>의 진부한 내용을 새롭게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따라서 <틴 스피릿>은 스타일도 좋고 화려한데 알맹이가 부족한 영화다. 상반기에 개봉했던 엘르 패닝 주연의 <갤버스턴>과 비슷한 장단점을 지닌 듯 보이기도 하고. 영화의 독특한 분위기와는 별개로 서사의 허술함을 지닌 영화들. 음악, 역경, 극복, 오디션, 인생 역전. 이 좋은 요소들을 살려내지 못한 것은 명백한 실책으로밖에 보이지 않아서 진한 아쉬움을 남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원종빈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된 글입니다.
영화리뷰 틴 스피릿 엘르 패닝 음악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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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는 하루, KinoDAY의 공간입니다. 서울대학교에서 종교학과 정치경제철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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