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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에 떠있는 길다란 쇠기둥과 여기저기 박혀있는 둥근 쇠말뚝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서늘하다.
 바다에 떠있는 길다란 쇠기둥과 여기저기 박혀있는 둥근 쇠말뚝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서늘하다.
ⓒ 김숙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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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변화는 어김이 없다. 처서를 지나며 부는 바람에 삽상한 가을 기운이 묻어오기 시작한다. 그래서 두 달 만에 통영에 갔다. 족히 서너 번은 다녀올 기간이지만 여름의 통영은 마치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공처럼 사람과 차들로 넘치기에 그저 마음으로만 몇 번 다녀오곤 했다.

늘 가던대로 강구안에 들어섰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하다. 바다에 기중기같은 길다란 쇠기둥이 서있고 둥근 쇠말뚝이 여기저기 박혀있다. 바닷가에는 방음벽처럼 생긴 가림막도 군데군데 서있었다. '선박이동안내문'이라고 적힌 표지판도 보인다. 강구안친수시설사업이 추진되므로 정박중인 선박을 대체부두로 이동하라는 내용이다. 
 
 거북선이 있던 자리. 전시되어 있던 거북선과 판옥선은 공사가 끝날 때까지 도남관광단지에 정박하게 된다고 한다.
 거북선이 있던 자리. 전시되어 있던 거북선과 판옥선은 공사가 끝날 때까지 도남관광단지에 정박하게 된다고 한다.
ⓒ 김숙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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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림막이 서있는 문화광장.  바다도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가림막이 서있는 문화광장. 바다도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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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없는 강구안이라니...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궁금한 마음에 발걸음을 재촉하여 문화마당 한쪽, 통영의 마지막 톱장인 할아버지가 늘 자리를 지키시던 곳으로 가보았다. 주인 잃은 낡은 작업대만 구석에 덩그러니 세워져 있다. 몇 년 전 시집까지 내신 할아버지는 내가 통영을 드나든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항상 그 자리에 계셨다. 할아버지는 다시 돌아오실 수 있을까.
 
 문화광장 한쪽, 통영의 마지막 톱장인 강갑중 할아버지가 늘 자리를 지키시던 곳에는 주인잃은 낡은 작업대만 세워져 있다. 할아버지는 다시 돌아오실 수 있을까.
 문화광장 한쪽, 통영의 마지막 톱장인 강갑중 할아버지가 늘 자리를 지키시던 곳에는 주인잃은 낡은 작업대만 세워져 있다. 할아버지는 다시 돌아오실 수 있을까.
ⓒ 김숙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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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여 년 전쯤 카메라에 담은 할아버지의 모습. 작업대 위에는 수십 년 세월을 할아버지와 함께한 낡은 연장통이 늘 놓여 있었다.
 10여 년 전쯤 카메라에 담은 할아버지의 모습. 작업대 위에는 수십 년 세월을 할아버지와 함께한 낡은 연장통이 늘 놓여 있었다.
ⓒ 김숙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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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건너 이층 찻집으로 올라갔다. 창가 자리에서 강구안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좋아 자주 들르던 곳이다. 그런데 찻집 이름도 주인도 바뀌었다. 물어보니 예전 주인은 이사를 갔다고 한다. 새주인이 얼음커피가 담긴 유리컵을 놓고 간다. 옛주인이 생각난다.

쟁반에 꽃잎을 새긴 뜨개받침까지 얹어 컵을 놓고 따로 작은쟁반에 보리건빵 한 봉지를 늘 같이 내왔었다. 작지만 따사로운 정은 이제 없다. 창밖으로 보이는 강구안 풍경까지 더해져 몹시 쓸쓸하고 허전하다.

찻집에서 나와 강구안 골목길을 걸으며 백석을 만나고 여전히 풀무질에 여념이 없는 성녕간 어르신의 모습을 보며 잠시 위안을 얻었지만, 허전하고 쓸쓸한 마음은 종내 가시지 않았다.

섬진강은 통영만큼이나 아끼는 곳이다. 지난 봄, 벚꽃을 보러 하동에 들렀다가 같은 일을 겪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나는 평사리공원에서 화개쪽으로 향하는 길의 벚나무터널이 빚어내는 풍경을 가장 좋아한다. 그날도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할 생각에 들떠 공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길은 공사중이라 막혀 있고 아름드리 벚나무가 군데군데 잘려나가 있었다.

나는 공원에 차를 세우고 한참 동안 마음을 추스려야 했다. 좀 과장해서 말한다면 내 한쪽 팔이 잘려나간 기분이었다. 그날, 화개장터로 가는 길가에는 차선을 넓히기 위해 파놓은 붉은 흙들이 쌓여 있었고 구간구간 벚나무들도 잘려나간 채 쓰러져 있었다.

돌아나오는 길에 들른 십 년 단골 재첩국식당 주인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불편함을 전혀 느낀 적이 없는데 벚꽃축제기간 고작 보름 동안 편하자고 그 아까운 벚나무를 잘라내다니...' 하며 한숨을 쉬었다.

이곳에서도 쉽사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나마 가림막이 없는 바닷가에 걸터앉아 고만고만한 배들이 정박해 있는 강구안을 바라본다. 배 안에서 중년부부가 열심히 그물을 손질하고 있다.

배가 먼 바다로 떠나기도 하고 조업을 나갔던 배가 돌아오기도 한다. 어부는 잡아온 고기를 배에서 내리고 기다리던 아내는 내린 고기를 함지박에 담아 종종 걸음으로 길건너 활어시장으로 간다.

내가 강구안을 사랑하는 이유는 바다에 기대어 살아가는 소박한 사람들과 그런 사람들을 품고 함께 숨쉬는, 살아있는 바다가 있기 때문이다. 공사가 끝난 후에도 예전의 편안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강구안을 바라보며 통영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데크길이랑 광장도 생겨 더 좋아질 거다'라던 찻집주인의 말이 떠오른다.

그럴지도 모른다. 자고 일어나면 변하는 세상. 또 그것을 오롯이 발전이라고 여기는 사람들. 하지만 그런 세상을 바라보는 내마음은 편치가 않다. 소중한 무언가가 시나브로 빠져나가는 것 같고 사라지는 옛것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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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나를 살아있게 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풍광과 객창감을 글로 풀어낼 때 나는 행복하다. 꽃잎에 매달린 이슬 한 방울, 삽상한 가을바람 한 자락, 허리를 굽혀야 보이는 한 송이 들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날마다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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