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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기간 중 자행되었던 일제의 조선인 강제징용은 식민지배의 폭력성이 전쟁이라는 사건 속에서 구체화된 하나의 비극적 사례였다. 종전 후 일본, 적어도 일본정부는 한 번도 전쟁과 식민지배로 인한 피해보상과 배상, 그리고 진심어린 사과의 절차를 밟지 않았다. 그러므로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그에 대한 일본 정부의 거부가 부딪쳤을 때, 사건의 표면에 드러난 것은 경제 분야의 교류를 둘러싼 긴장이었지만, 배후에는 오래 묵은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갈등이 무겁게 자리 잡고 있었던 셈이다.

대법원의 판결 후 양국 정부는 경제적, 군사적으로 날카롭게 대립하기 시작했고, 한국의 시민사회에는 반일정서와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었다. 양심적인 일본의 시민들이 머리를 숙이고 우리와 손을 잡았지만, 아베 정권의 오만함과 일본의 극우세력이 부추긴 '혐한' 분위기 또한 사소하지 않았다. 하나의 사안을 둘러싼 양국 정부의 온도차는 컸고, 시민사회의 분노는 한여름의 열기보다 뜨거웠다. 소년의 나이에 징용공으로 끌려갔던 이춘식씨는 95세 노인이 되어 배상판결을 받았지만, 이 모든 사태에 어쩔 줄 몰랐고, 끝내 "나 때문에...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한 개인의 삶이 전적으로 그 자신의 의지로만 구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 저항할 수 없는 제국의 폭력에 떠밀려 징용공이 되었던 이춘식씨의 경우는 예외적인 개인사가 아니라, 어둡고 고통스러운 한국근현대사의 일부인 것이다. 우리는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고, 일본 정부의 책임 있는 사과와 배상을 촉구하며 그의 고통에 마음을 보탠다. 과거와 현재는 이런 식으로 이어져 있다. 시인 김시종의 말처럼, "사람은 이어진다/ 연고와 이어지고 일과 이어지며/ 세속에 녹아들어 대중"이 (「이어지다」)되기도 하고, 불편부당에 맞서 함께 싸울 때 동지로 거듭나기도 한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 날카로운 분위기가 만들어질 때마다 재일(在日) 한국인들이 자꾸 마음에 밟힌다. 차별과 불편은 그들의 유구한 일상이었고, 특정한 사건들 속에서 그들은 자주 폭력과 혐오의 타깃이 되어왔다. 이 여름의 분위기가 또 그들에게 어떤 불안과 고통의 짐을 지우는 건 아닐까. 하지만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서 살아가는 삶을 자명한 것으로 여기는 우리에게 '재일'은 여전히 멀리 있다. 보이지 않는 그들, 한국에도 북한에도 일본에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그들이 일본 땅 어디엔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자주 잊는다. 한국 땅에 살고 있는 우리가 마음껏 일본정부를 비판하고 규탄하고 싸움을 벌이는 이 순간에도 바깥에 있는 그들은 우리와 같은 방식으로 싸울 수 없다. 그들은 대부분 분노를 감추고 숨을 죽인다. 이것이 어쩌면 '재일'의 운명이고, 이런 식으로 그들은 '재일을 산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천천히 들여다보면 '재일'에도 여러 얼굴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먹고 살기 위해 전쟁무기를 제조하는 공장에서 노역하는 재일도 있었고, 그들에게 차라리 굶을 것을 설득하던 재일도 있었다. 조선어와 의복을 고수하며 폭력의 타깃이 되기를 자처하고 '본명선언'을 통해 입신출세의 길을 스스로 봉쇄하는 '재일'도 있지만, 조상의 언어와 고향을 기억에서 지움으로써 스스로 일본인이 되고자 애쓰는 '재일'도 언제나 있어왔다.

그래서 김시종은 "저는 목소리가 없어요/ 소리를 지를 만한 의지처가/ 제겐 없어요/ 그저 중얼거릴 뿐/ 목소리는 제 귓속에서만 울리고 있어요"(「창공의 중심에서」)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혹은 시인이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자는 언제나/ 빛 속에서 검어진다"(「조어(鳥語)의 계절」)고 했을 때, "이젤에 기대어 있는 망향처럼 비상(飛翔)은 오로지 재일(在日)의 한가운데에서 시들고 있다"(「전설이문」)고 했을 때, 그는 어쩌면 '불길한 검은 새'와 감응하며 삶과 죽음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청년 이춘식이 일본의 한 군수공장에서 강제노역을 하고 있었을 때, 제주 소년 김시종은 황국신민을 꿈꾸었다. 하지만, 해방 후 소년은 4.3항쟁의 일부가 되었고, 죽지 않고 살기 위해 다시 일본 땅에 스며들어 공산주의자로, 조선어 선생으로, 시인으로 '재일'을 살았다. "정주(定住) 외국인인 조선인" 김시종은 '마음의 지평'에서나 "조상의 땅과 제주도가 재일(在日)과 섞여들어"(「여행」) 감을 감각할 만큼 오래 나라 바깥에 머물렀고, "겸손하지 않으면 견딜 수도 없다/ 둔해지지 말고 썩지 말고 늘어지지 말고/ 소박하게 보듬으며 앞을 양보하자"(「여름 그후」)라고 말할 만큼 파란만장의 삶을 살았다. 그런 그의 눈높이에서 '재일'은 역사의 피해자나 제국 안의 약자가 아니며, "재일을 산다는 것은 틈새나 간극의 고통이나 불편함을 오히려 긍정적인 공간으로 바꾸는 것"(이진경, 「김시종, 어긋남의 존재론」)이 된다.

이 여름의 끝에서 아흔 넘은 두 노인, 청춘의 나이에 식민지를 살았던 그들의 목소리를 생각한다. 삶의 궤적은 달랐지만, 그들이 공유했던 고통과 상처의 역사는 우리에게도 이어져 있다. 우리는 지금 그 마음의 한쪽 끝자락을 붙잡아 역사의 다음 페이지에 이어 붙이고 있는 중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권연대 <사람소리>에도 실립니다. 해당 글을 쓴 권용선 님은 수유너머104 연구원으로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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