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우 감독 인터뷰 사진

정지우 감독 인터뷰 사진 ⓒ CGV아트하우스


정지우 감독 특유의 섬세한 멜로 영화를 기다려 온 팬들이 많았던 탓일까. <유열의 음악앨범>은 28일 개봉 첫날 17만 3562명을 동원하며 <늑대 소년> 이후 7년 만에 멜로 영화의 역대 최고 오프닝 기록을 경신했다. 개봉 전날이었던 27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모처에서 만난 정지우 감독은 "시사회가 끝나고 격려와 덕담을 많이 듣고 있다. 다행이라는 마음이 드는데, 그래도 여전히 조마조마하다"고 흥행에 대한 기대감을 전했다. 

<유열의 음악앨범>은 우연히 제과점에서 만난 미수(김고은 분)와 현우(정해인 분)가 오랜 시간 엇갈리고 다시 만나는 것을 반복하며 사랑을 찾아가는 멜로 영화다. 극 중에서 두 사람은 1994년 10월 1일 가수 유열이 '유열의 음악앨범' DJ로 첫 방송을 하는 날 처음 만난다. 

영화에서 미수는 IMF 위기 때문에 취업이 힘들어지고 현우 역시 비슷한 이유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정지우 감독은 IMF 구제금융이 결정됐던 겨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1997, 1998년 IMF 구제금융이 결정된 겨울을 영화의 중요한 기준점으로 삼았다. 그 이야기가 영화에서 표면적으로 크게 나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만들기 이전에도 그 시기에 졸업을 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세대의 사람들이 되게 궁금했다. 그게(IMF가)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그게 너무 인상적이었고 영화에 담아보고 싶었다."
 
 정지우 감독 인터뷰 사진

정지우 감독 인터뷰 사진 ⓒ CGV아트하우스

 
그러나 IMF로 인한 어려움이 영화에 전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미수의 대사에서, 현우가 처한 상황에서 'IMF인가 보다' 하고 얼핏 추측할 수 있을 정도다. 이에 대해 정지우 감독은 "그 이야기(IMF)를 굵은 글씨체로 강조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 배경을 굵게 설명하면 선명해 보일 것이다. 그러나 대신 주인공들의 관계는 작고 미묘한 영역의 이야기인데, 그걸 더 세고 자극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이 생긴다. 그래서 모든 것을 좀 더 작고 미묘하게, 조금 진하지 않은 상태로 표현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음악앨범>을 통해 정지우 감독은 7년 만에 김고은과 재회했다. 앞서 2012년 영화 <은교>를 통해 신인 배우 김고은을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았던 정지우 감독이니 만큼, 이번 작업은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정 감독은 "성공해서 돌아온, 잘 키운 자식 같았다"며 웃었다. 

"현장에서 김고은이 저를 보호하려는 순간들이 있었다. 현장에서는 여러 가지 상황이 갑자기 일어나지 않나. 촬영하다가 난처한 상황에 처했을 때 그걸 빨리 본인이 나서서 수습한다거나, 바쁜 상황에서 식사시간이 다가오면 '얼른 하고 밥을 먹자'고 제안하더라. 그런 도움들이 기억에 남는다. 성공해서 돌아온, 잘 키운 자식마냥 힘이 됐다."

반면 처음 함께 작업한 정해인에 대해서는 "늘 사력을 다 해서 임한다"고 표현했다. 이어 정지우 감독은 그가 '멜로 장인'이라 불리는 이유 역시 같은 맥락에서 설명했다. 그는 "무대인사를 할 때 관객에게 '반갑습니다'라고 악수를 하러갈 때조차 사력을 다 하는 느낌이다. 매사에 그렇다. '어떻게 버티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라며 "정해인이 '멜로'에 특화됐다고 생각하는 데 근거가 있다면 외모가 아니라 이 점이라고 생각한다. 잘생긴 사람들은 (정해인 이외에도) 많다. 하지만 정해인 만큼 멜로에 대해 신뢰감이 드는 배우는 많지 않다. 그가 하는 멜로 드라마를 보고 싶은 이유를 이것 만큼 잘 설명해주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해인이 맡은 현우는 학창시절 순간의 실수로 인해 인생이 완전히 바뀌는 인물이다. 그 기억은 현우에게 트라우마로 남게 되는데 영화에서 이를 친절하게 설명하지는 않는다. 언론배급시사회 이후 일각에서 현우를 학교폭력 가해자로 오해하는 반응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정지우 감독은 그런 연출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해당 사건을) 구체적으로 장면화하기 싫었다. 이를테면 출판사 사장 종우(박해준)는 아침 드라마의 실장님 같은 캐릭터가 아니다. 아주 공을 들여서 이 인물을 만들었는데 '사람을 돈 가지고 어떻게 해보려고 하는 비호감'이라는 문장 하나로 묶으면 (씹기 좋은) '껌'이 된다. 그동안 경험했던 영화 만드는 과정들을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너무 거칠게 묶어버릴 때가 있는 것 같다. 사고 장면과 관련된 것을 명료하게 만들든 그렇지 않든, 이것을 읽고 싶은대로 읽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고 그걸 원하지 않기도 했다. 

그리고 (학교폭력을) 우리가 진짜 민감하게 다루지 않나. 이 영화는 가해자 서사를 해보고 싶은 욕망에서 나온 게 아니다. 그런 면에서 어떤 연상작용도 불러일으키지 않기를 바랐다. 그런 사고 장면을 사람들의 기억에 남겨서, 비슷한 장면에 익숙해지게 만드는 게 싫었다. 이러한 영역의 문제에 대해 오래 전부터 고민하고 있다. 예를 들면 폭력의 묘사를 어찌해야 하나. 극 중에서 현우가 주먹다짐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최대한 멀리서 자극 없는 방식으로 찍었다고 생각한다. 그걸 의도한 것이다. 폭력을 다룰 때는 그렇게 다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정지우 감독 인터뷰 사진

정지우 감독 인터뷰 사진 ⓒ CGV아트하우스

 
<음악앨범> 속 미수와 현우를 통해 20여 년 전 청년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이들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는 결국 지금의 청년들이 하는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 청년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냐'는 물음에 정지우 감독은 "(청년들에게) 어떻게 이야기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방법을 못 찾고 있다"고 오히려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현 청년 세대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가 내게는 가끔 있는 편인데 너무 막막해 보인다. 그래서 다들 (말을 건네기도) 어려워 하지 않나. 수 년 전에 제가 영화제에서 심사할 때의 이야기인데, 백몇십 편의 단편영화 중에 어마어마한 편수의 영화에서 편의점 알바하고 고시원에 살고 학자금 대출 갚고 있는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이거는 단순하지 않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제가 그 영화들을 영화적으로 보면서 '청년들에게 이 영화는 위로가 되겠구나, 권해볼만 하구나' 싶은 것조차 찾기 쉽지 않았다. 굉장히 고통스럽고 바닥에 떨어진 상태를 그리기 때문이다. 지금 이 영화(음악앨범)가 만약에 청년들에게 위로가 된다면 나을 것 같다. 정서적인 의미의 위로가 됐으면 한다. < 4등 >에서는 우리가 지금 어떤 상황에 있다고 보여드리는 면에서 자신감이 있었다면, 이 영역(청년) 문제에 대해서는 그런 자신감이 없다."


이어 정지우 감독은 <음악앨범>이 관객들에게 우리 주변의 누군가를 돌아볼 수 있는 영화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자기가 스스로 가라앉고 있다고 느낄 때 누군가 내 주위에 있어서, 괜찮아지는 순간을 맞닥뜨리는 과정이 이 영화의 메시지인 것 같다. 보는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한테도, 우리한테도 누군가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정지우 유열의음악앨범 김고은 정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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