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인 인터뷰 사진

정해인 인터뷰 사진 ⓒ CGV아트하우스

 
"'대세'라는 수식어는 저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 같다."

배우 정해인이 당차게 소신을 밝혔다. 앞서 드라마 <당신이 잠든 사이에> <슬기로운 감빵생활> 등을 통해 꾸준히 인상깊은 연기력을 선보여온 정해인은 지난해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를 통해 '신흥 대세 스타'로 떠올랐다.

올해 방송된 MBC 드라마 <봄밤>에서도 그는 미혼부 역할을 맡아 깊이 있는 연기를 펼치며 다시 한 번 연기력을 인정 받았다. 그런 그에게 '대세'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처럼 보였지만 정해인은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스스로 대세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그게 참 제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수식어인 것 같다. 저는 배우로서 건강하게 오래 일하는게 꿈인데, 그런 수식어가 붙으면 (부담스럽다). 저도 사람이라 환경에 휩쓸리고 싶지 않지만 그럴 때가 있지 않나. 중심을 잡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물론 그렇게 불러주시는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스스로 대세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수식어 없이 계속 지켜 봐주셨으면 좋겠다. 대세는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 거니까 슬픈 단어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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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 인터뷰 사진 ⓒ CGV아트하우스

 
23일 오후 서울 삼청동 모 카페에서 정해인을 만났다. 인터뷰 현장에서 만나는 정해인은 늘 정장 차림이다. 정해인은 이에 대해 앞서 "예의를 갖추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날 역시 정해인은 말끔한 정장 차림이었다. 인터뷰에 임하는 그의 자세 만큼이나 진정성 넘치는 답변이 내내 이어졌다. 

<유열의 음악앨범>은 유열이 라디오 DJ를 시작한 1994년 10월 1일 제과점에서 우연히 만난 미수(김고은)와 현우(정해인)가 엇갈리고 다시 마주치는 것을 반복하며 사랑을 찾아가는 멜로 영화다. 정해인은 과거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방황하는 청년 차현우 역으로 분해 섬세한 내면 연기를 펼친다. 

1994년부터 2005년까지를 배경으로 하는 <음악앨범>에는 PC통신부터 과거 메신저 프로그램까지 추억을 자극하는 여러 소품과 설정들이 등장한다. "평소 아날로그 감성을 좋아한다"는 정해인은 연기를 하면서 추억에 젖었던 적도 많았다고. 

"<음악앨범>은 제가 진짜 하고싶었던 장르의 작품이었다. 과거 그 시절의 이야기지 않나. 1990년대부터 IMF도 나오고 밀레니엄 넘어가면 휴대폰이 나온다. 실제로 나도 중학교 3학년 때 휴대폰을 샀다. 그때 번호가 017이었다. 윈도우95도 익숙하고 MS도스로 게임했던 것도 기억난다. 지금은 인터넷이 발달해서 원하는 정보를 쉽게 얻고 연락도 빨리 할 수 있지만, 그땐 이메일을 보내고 한참 기다려야 했다. 그 때의 기억이 있어서 연기하면서 이질감 같은 게 전혀 안 느껴졌다."

멜로 호흡을 맞춘 김고은과 정해인은 앞서 tvN 드라마 <도깨비>에서도 잠시 만난 적이 있다. 당시 정해인은 극중에서 김고은의 첫 사랑 야구선수로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김고은과의 호흡을 묻자 그는 "(김)고은씨가 상대방의 말을 귀기울여 듣더라. 그게 너무 고마웠다. 연기를 하면 본인 몫을 하기도 벅차고 바쁘고, 상대방이 연기할 때 주시하고 경청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 그렇게 해주는 걸 피부로 느꼈다. 고은씨는 정지우 감독님과 한번 호흡을 맞췄고 나는 현장이 처음이었다. 내가 빨리 현장에 동화되고 적응하는 데 고은씨 도움이 컸다"고 전했다.
 
 정해인 인터뷰 사진

정해인 인터뷰 사진 ⓒ CGV아트하우스

 
영화는 주로 미수의 시점으로 진행되다보니, 관객이 현우의 선택이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특히 현우는 과거의 트라우마에 매여 있는 인물이기에 연기하는 입장에서도 쉽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정해인은 "현우의 행동과 대사를 100% 이해하고 작업을 시작했다"고 자신했다. 이어 그는 "캐릭터를 이해하는 작업이 첫 번째인 것 같다. 촬영 들어가서도 이해를 못하면 걸림돌이 생기고 어색한 연기를 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며 "작품 속 캐릭터와 인간 정해인을 분리시키려고 노력했다. 현우 속에도 (제가) 조금씩 녹아들어 있고 닮은 부분도 있지만 (현우가) 저는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정해인은 극중에서 현우가 학교폭력을 저지른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앞서 언론배급시사회에서 영화가 공개된 후 일각에서는 '주인공이 학교폭력 가해자인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기 때문.

그는 "태성이와 친구들은 그냥 보통 학창시절 때 몰려다니는 멤버들일 뿐이다. 불의의 사고로 안 좋은 일을 겪는데, 오해하실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장난기 넘치고 놀기 좋아하는 친구들이지, 학교폭력은 절대 아니다"라며 "영화에서 자세히 그리지 않은 건 현우의 트라우마를 더욱 극대화시키기 위해 (정지우 감독이) 연출을 그렇게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음악앨범> 속 현우를 정해인은 '자존감'이라는 단어로 해석했다. 과거의 사고로, 또 주변의 시선 때문에 자존감이 떨어진 상태의 현우를 이해하려 노력했다고. 

"(촬영하면서) 자존감에 대해서 진짜 많이 생각했다. 현우는 세상과 담을 쌓은 상태였고 얼굴에 그늘이 가득하다. 그런데 미수를 만나면서 웃음도 많아지고 자존감이 조금씩 높아지면서 긍정적으로 바뀐다. 영화를 보면, 서로 사랑하는 사람의 자존감을 위해 노력을 많이 하지 않나. 그런데 결론적으로 남이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자존감은 스스로의 몫이라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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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 인터뷰 사진 ⓒ CGV아트하우스

 
정해인 역시 배우로서 스스로 자존감이 떨어질 때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인터뷰 내내 단단해 보였던 그에게서 나온 의외의 고백이었다.

"연기하고 캐릭터를 표현할 때, 제 역량으로 할 수 없다는 걸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때 자존감이 흔들리고 벽에 부딪힌다고 느낀다. 그렇다고 촬영 중에 포기할 수는 없지 않나. 끝내야 하고 내가 맡은 바를 해내야 한다. 내가 고민한 결과가 이거밖에 안 되나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특히 <봄밤> 때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가장 어려웠지만 그만큼 애착이 가는 작품이다. 작품이 끝났을 때도 공허하고 허탈한 감정이 많이 들었다. <봄밤>처럼 스치듯 훅 지나가버린 것 같다."

흔들리는 정해인을 단단하게 붙잡은 사람들은 역시 가족과 주변 친구들이었다고. "친구들 만나서 맥주 마시고 부모님과 얘기하고 동생과 같이 시간을 보내"며 마음을 다잡았다는 그는 무엇보다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제 연기를 묵묵히 봐 주시고 응원해주시는 팬분들도 힘이 됐다. 꾹꾹 눌러 쓴 손편지 읽으면서 체력이 쌓이듯이 차곡차곡 자존감도 쌓였던 것 같다."

드라마에 이어 영화에서도 흥행을 기대하냐는 물음에 정해인은 "다 잘될 수는 없다"며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는 의연한 답변을 내놓았다.

"(잘 안 되는 것도) 다 과정이지 않을까 싶다. 저는 연기를 오래하고 싶다. 물론 잘 되면 좋겠지만 잘 안 되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것조차도 다 과정이고 다잡고 열심히 하고 그러고 싶다. 제가 하는 일이 다 잘될 수만은 없지 않나. 드라마도 결과가 안 좋은 것도 있었다. 사람들은 흥행한 것들만 기억해주시기 때문에 (제가) 갑자기 나타났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포털에 한번만 저를 검색해 보신다면 아실 것이다."
정해인 유열의음악앨범 김고은 정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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