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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30일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 이후 한일관계가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매일 수많은 분석과 주장과 논란들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많은 부분이 정확한 사실에 입각해 있지 않다. 오랜 역사를 가진 문제이고 법적으로도 복잡한 문제인 만큼 사태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시리즈에서는 법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면서 주요 쟁점들을 정리해보기로 한다.[편집자말]
연재를 시작한 지난 7월 30일 이후 '판'이 계속 커지고 있다. 8월 2일에는 아베 정부가 2차 통상공격을 감행했다. 8월 22일에는 한국 정부가 「대한민국 정부와 일본국 정부 간의 군사비밀정보의 보호에 관한 협정」(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했다. 지난 해 10월 30일의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로 시작된 국면이 커다란 패러다임 전환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느낀다'.

'법의 역사'를 공부하는 일개 연구자가 그 큰 판 전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주제넘은 일이다. 하지만 여러 문제들이 서로 겹쳐 있으니 금을 밟지 않을 수도 없다. 가급적 '수비범위'를 지키면서 연재를 마무리해 보기로 한다.

과거청산과 통상·안보는 분리해야 한다
 
25일 독도를 비롯한 인근 해역에서 열린 동해 영토수호훈련에서 해군 특전요원들이 독도에서 사주경계를 하고 있다. [해군 제공]
▲ 독도서 열린 영토수호훈련 25일 독도를 비롯한 인근 해역에서 열린 동해 영토수호훈련에서 해군 특전요원들이 독도에서 사주경계를 하고 있다. [해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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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 중인 일본 해상자위대.
 훈련 중인 일본 해상자위대.
ⓒ 해상자위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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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국면에서 과거청산과 통상·안보가 사실상 연계되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아베 정부의 통상공격은 대법원 판결에 대한 반발이며,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은 그에 대한 대응이다. 그렇다고 모두를 뒤섞게 되면 도긴개긴에 빠져들 위험이 크다. 문제가 복잡할수록 핵심을 찾고 요소들을 분리해야 한다.

핵심은 대법원 판결을 어떻게 볼 것인가이다. 이 연재에서 밝힌 것처럼, 대법원 판결은 국제법의 원칙에 따라 「청구권협정」을 해석한 것이다. 그 근거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으며, 결론 또한 타당하다. 따라서 아베 정부의 반발은 잘못이다. 적어도 아무런 근거도 제시하지 않으면서 '국제법 위반', '청구권협정 위반'이라고 비난하는 것, 구체적인 내용은 제시하지 않으면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고 으르대는 것은 대등한 주권국가 사이에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무례한 작태일 뿐이다.

통상공격에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베이징=연합뉴스) = 21일 오전 중국 베이징(北京) 구베이수이전(古北水鎭)에서 '제9차 한·중·일 외교장관 회의'가 열린 가운데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이 3국 회담을 마친 뒤 한일 양자 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2019.8.21 [베이징 특파원 공동취재단]
▲ 악수하는 한일 외교장관 (베이징=연합뉴스) = 21일 오전 중국 베이징(北京) 구베이수이전(古北水鎭)에서 "제9차 한·중·일 외교장관 회의"가 열린 가운데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이 3국 회담을 마친 뒤 한일 양자 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2019.8.21 [베이징 특파원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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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아베 정부의 통상공격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다. 대법원 판결에 대한 비난으로 일관하던 아베 정부가 지난 7월 1일에 1차 통상공격을 감행할 때 내세운 이유는 '신뢰관계의 현저한 훼손'이었다. 이것은 정치·외교의 문제를 통상 문제와 부당하게 결부시키는 것으로서 명백하게 WTO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등 국제통상규범을 위반한 것이다.

그런 지적이 나오자, 곧바로 외무대신이 나서서 양자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라고 우기며, 이번에는 위 협정 제21조의 "안전보장을 위한 예외"를 내밀었다. 하지만 '안전보장상의 중대한 이익의 보호를 위해 필요한 조치'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아베 정부의 '신뢰관계 훼손' 주장은 정치·외교와 통상을 부당하게 결부시키는 것이므로 국제법 위반이며, '안전보장을 위한 예외' 주장은 명확한 근거가 없으므로 국제법 위반이다. 따라서 이 연재 ④에서 인용한 2018년 10월 30일 및 11월 29일의 외무대신 담화의 수신인은 다름 아닌 아베 정부인 셈이다. 한국 정부는 아래와 같은 담화를 아베 정부에게 돌려줄 수 있을 터이다.

「일본 정부의 통상공격에 관해」

 1. 일본 정부의 통상공격은, 정치·외교와 통상을 부당하게 결부시키는 것이거나 명확한 근거가 없는 것이므로, WTO 일반협정을 비롯한 통상관련 국제법에 명백히 반하며, 한일 우호협력관계 및 국제 통상질서의 법적 기반을 근본으로부터 뒤집는 것이다.
    
2. 대한민국으로서는, 일본이 즉각 국제법 위반의 상태를 시정하는 것을 포함하여, 적절한 조치를 강구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3. 즉각 적절한 조치가 강구되지 않는 경우에는, 국제재판이나 대항조치도 포함하여, 모든 선택지를 시야에 넣으면서 의연한 대응을 강구한다.

참고로 지난해 10월 30일 및 11월 29일에 발표된 일본 외무대신 담화는 다음과 같다.
 
1. 대한민국 대법원의 판결은, 일한청구권협정 제2조에 명백히 반하며, 1965년의 국교정상화 이래 구축해온 일한 우호협력관계의 법적 기반을 근본으로부터 뒤집는 것이다.
2. 일본으로서는, 대한민국이 즉각 국제법 위반의 상태를 시정하는 것을 포함하여, 적절한 조치를 강구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3. 즉각 적절한 조치가 강구되지 않는 경우에는, 국제재판(이나 대항조치)도 포함하여, 모든 선택지를 시야에 넣으면서, 의연한 대응을 강구한다.

- 「대한민국 대법원에 의한 일본 기업에 대한 판결 확정에 관해」(외무대신 담화)
 
사정이 이러함에도, '일본이 통상공격을 해서 큰일이니 대법원 판결에 대한 일본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무언가 해야 한다'라는 주장이 국내 여기저기서 쏟아지고 있다. 서로 다른 것을 뒤섞는 것이니 논리 파탄이다. 표적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니 실리적이지도 못하다. 통상공격과 과거청산을 뒤섞어서는 안 된다. 통상문제는 어디까지나 통상에 집중해서 대응해야 한다.

안보협력이야말로 신뢰관계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김유근 국가안보실 1차장이 22일 오후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연장 여부 브리핑을 위해 입장하고 있다. 김 1차장은 "정부는 한일 간 '군사비밀정보의 보호에 관한 협정'(GSOMIA)을 종료하기로 결정했으며 협정의 근거에 따라 연장 통보시한 내에 외교 경로를 통하여 일본 정부에 이를 통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유근 국가안보실 1차장이 22일 오후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연장 여부 브리핑을 위해 입장하고 있다. 김 1차장은 "정부는 한일 간 "군사비밀정보의 보호에 관한 협정"(GSOMIA)을 종료하기로 결정했으며 협정의 근거에 따라 연장 통보시한 내에 외교 경로를 통하여 일본 정부에 이를 통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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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22일에 청와대는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발표하면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일본 정부가 지난 8월 2일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한일 간 신뢰훼손으로 안보상의 문제가 발생하였다는 이유를 들어 '수출무역관리령 별표 제3의 국가군'(백색국가 리스트)에서 우리나라를 제외함으로써 양국 간 안보협력환경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한 것으로 평가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안보상 민감한 군사정보 교류를 목적으로 체결한 협정을 지속시키는 것이 우리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아베 정부가 명확한 근거 없이 신뢰훼손을 내세우며 안보상의 문제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통상공격을 하는 상황에서 안보상 민감한 군사정보 교류를 계속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믿을 수 없다'라고 공공연히 떠드는 상대와 안보협력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지당하다.

지소미아는 "어느 한쪽 당사자가 다른 쪽 당사자에게 이 협정을 종료하려는 의사를 90일 전에 외교경로를 통하여 서면 통보하는 경우"에는 종료된다(제21조 3항). 특별한 이유를 제시할 필요도 없다. 한국 정부의 종료 결정과 통보는 위의 「협정」에 근거하여 연장 통보시한 내에 이루어진 것이며, 게다가 그 자체 타당한 명확한 근거에 입각한 것이다.

그럼에도 아베 총리는 "(한국이) 한일청구권협정을 위반하는 등 국가와 국가 간의 신뢰 관계를 해치는 대응이 유감스럽게도 계속되고 있다", "그들이(한국 정부가) 국가 간의 약속을 지키도록 요구해 나갈 생각"이라고 했다고 한다.

서로 다른 것을 뒤섞으며 근거도 없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쁜 나라 한국'이라는 비난 프레임을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청구권협정」 위반'은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일방적인 비난일 뿐만 아니라, 애당초 지소미아와 관련이 없다. 종료 결정은 지소미아 위반이 아닌 것은 물론이고, 지소미아라는 '약속'에 따른 조치일 뿐이다. 안보 또한 안보에 집중해서 대응해야 한다.

대법원 판결 사건은 판결 집행으로 해결해야 한다
 

과거청산은 통상·안보와 분리해서 대응해야 한다. 그리고 과거청산 중에서도 대법원 판결 사건과 과거청산 일반은 분리해서 대응해야 한다.

이 연재 ⑤에서 살펴본 것처럼, 지난해 10월 30일 이후의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들은 일차적으로는 한국인 개인과 일본 기업이라는 사적 주체들 사이의 개별 분쟁에 대한 판단이다. 따라서 패소한 일본 기업이 대법원 판결에 따라 배상을 하면 일단락된다.

일본 기업들은 한국 최대의 로펌을 동원해 10년이 훨씬 넘게 법정에서 열심히 다투었다. 2012년의 파기환송판결을 뒤집으려고 '사법농단'을 기도했다는 혐의조차 있다. 그런데도 정작 판결이 선고되자 못 따르겠다고 한다. 그들의 상대는 고령의 '강제동원' 피해자들이다. 판결이 선고되었을 때 그 대부분은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일본 기업들의 판결 거부는 대한민국의 사법권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고령의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저버린 것으로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베 정부도 대법원 판결의 집행에 대한 부당한 간섭을 거두어야 한다. 일본 기업들에게 배상을 하지 말라고 지시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일이다. 1992년 3월 9일의 일본 중의원 예산위원회 회의에서 일본 정부는 한국인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에 관해 어떤 취급이 이루어질 것인가에 관해서는 재판소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라고 했다. 청구권의 실현 여부는 재판소의 판단에 맡겨서 결정할 문제라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대법원 판결은 바로 그 "재판소의 판단"에 해당하는 것이다. '일본 재판소의 판결만 따른다는 의미였다'라고 할 것인가? 자국중심주의의 오만일 뿐이다.

한편, 이 연재 ⑤에서 살펴본 것처럼, 국내에서는 해결책이라며 2+2, 2+1, 1+1, 1+1/α 등 각종 '해법'들이 쏟아졌다.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자 이번에는 1+2(일본 기업, 일본 정부, 한국 정부)라는 '해법'이 불쑥 튀어나오기도 했다.

대법원 판결의 결론은 '강제동원 문제는 1965년 청구권협정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강제동원 문제에 관한 한 한국 정부는 책임이 없고, 무상 3억불로부터 지원을 받은 한국 기업들도 책임이 없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그 모든 '해법'은 책임이 없는 한국 정부와 한국 기업이 나서라는 것이라는 점에서 대법원 판결을 거스르는 잘못된 처방인 것이다.

서로 다른 것을 어설프게 뒤섞어서는 안 된다. 어설픈 봉합은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문제의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든다. '위로금' 10억 엔을 받는 대신 반인도적 범죄행위의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에 동의해 준 2015년 일본군'위안부' 합의의 잘못을 또 다시 반복해서는 안 된다. 법과 역사에 무지한 박근혜 정부의 그 잘못된 합의 때문에 치러야 했던 비용이 얼마나 컸던지를 되새길 일이다.

대법원 판결 사건의 현 상태는 확정판결에도 불구하고 채무자가 채무 이행을 못하겠다고 버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강제집행을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법이다.

다만 한 편에서 논의되고 있는 화해를 통한 해결의 길을 처음부터 닫을 필요는 없다. 일본 기업이 나서서 화해를 제안하고, 화해의 조건에 사건 원고들이 합의한다면 화해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다만 원고 승소 확정판결이 선고된 이후인 지금의 시점에서의 화해는 단순히 금전적 해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α를 담는 것이어야만 한다. +α는 불법행위 사실에 대한 명확한 인정, 명확한 사죄와 배상금 지급, 추가적인 진상규명에 대한 약속, 사망한 피해자들에 대한 지속적인 위령 등이다. 나아가 같은 기업에 의해 강제동원 피해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피해자들도 포함하는 화해라면 더욱 바람직하다. 그것이야말로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진정한 문제해결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은 별개의 과제이다

소송이라는 방식을 동원할 수 없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로부터 피해자로 인정받은 인원은 21만여 명이지만, 현재까지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는 1천여 명뿐이다. 소송을 제기하기 위해서는 피해를 입증할 엄격한 증거가 필요한데, 오랜 세월이 지난 피해에 대해 그러한 요건을 갖추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그런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나 기업의 불법행위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방법은 한국 정부의 외교적 노력을 통한 해결 이외에는 없다. 어쩔 수 없는 법의 한계이다.

그런데 한 편에서 그러한 피해자들을 위해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국가의 보호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거나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된 부분에 대한 책임 이행이 미흡하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한국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청구권협정」에 의해 해결된 부분에 대해서는 1970년대에 '피징용사망자'에 한해서이기는 하지만 일정한 보상을 했고, 2007년 및 2010년 지원법을 통해 전면적인 '인도적 지원'을 했다.

기존의 '지원'에 미흡한 점이 있다면 추가 '지원'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 피해자 판정 절차를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거나, 생존 피해자에 대한 지원이 충분하지 못하다거나, 유골 봉환을 지속적으로 챙겨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 국민적 합의에 따라 기존의 법률을 개정하거나 새로운 법률을 제정해서 대처하는 것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한국 정부가 져야할 책임의 범위 내에서의 과제이다.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인 강제동원에 대한 일본 정부와 기업의 법적 책임과 뒤섞어서는 안 된다. 한국 정부와 기업이 만든 재단을 '마중물' 삼아 일본 정부와 기업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은 서로 다른 책임을 뒤섞는 것이기에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과거청산 일반은 장기과제로서 대처해야 한다
 

대법원 판결은 강제동원 피해자의 권리를 확인한 것인 동시에, '식민지지배 책임'이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선언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대법원 판결의 취지에 따라 일본의 '식민지지배 책임'이 해결되지 않았다고 명시적으로 선언하고, 그 해결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가야 한다.

'식민지지배 책임.' 커다란 과제이다.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려운 과제이다. 상대가 전면 부정하는 상황에서는 결국 장기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당장 해결할 수 없는 과제는 묵혀두는 지혜가 필요하다.

다만 긴 호흡으로 차근차근 챙기면서 나아가야 한다. 가해자인 일본이 피해자인 한국에게 무릎 꿇으라고 눈을 부라리는 본말전도의 암울한 풍경이 펼쳐지게 된 일차적인 원인은 말할 것도 없이 적반하장격으로 우겨대는 일본에 있다. 하지만 한국이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대응과 추궁을 하지 못한 것이 빌미가 되었다는 사실 또한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 정부는 충분한 자료와 명확한 논리를 갖추고 있었는가? 한국의 관련 기관들은 체계적인 자료 수집과 정리, 분석과 연구를 해왔는가? 혹은 애당초 그렇게 할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는가? 한국은 그 국격에 어울리는 '법'에 대한 감수성을 길러왔는가?

지금이라도 챙겨야 한다. 한일 과거청산은 지속적인 과제일 수밖에 없다. 당장의 현안과 관련해서, 머지않은 북일수교 과정에서, 그리고 장차 다가올 한반도 통일 과정에서 거듭 부각될 수밖에 없는 과제이다.

자료를 더 많이 쌓아야 한다. 이미 공개되어 있는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수집·정리·분석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일본 정부에 대해 근거 없이 억지만 부리지 말고 가지고 있는 자료를 모두 공개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논리를 더 꼼꼼하게 다듬어야 한다. 현실 세계에서 국가 간의 관계는 결국 힘에 의해 좌우되지만, 그 힘은 물리력만은 아니며 논리 또한 힘의 중요요소이다.

과제를 찬찬히 풀어나가는 역량을 펼쳐야 한다. 더 이상 '가난하고 힘없는 나라이니 배려해달라'라고 읍소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외교일 수는 없다. 당당하게 권리를 주장하고 책임있게 의무를 이행함으로써 진정한 주권국가로 우뚝 서야 한다.

대법원 판결 국면 초기부터 '컨트롤 타워가 없다'라는 지적이 이어졌다는 사실을 다시금 되새겨야 한다. 정부는 물론이지만, 관련 기관들이 주어진 역할을 다했는지 전면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기능조정은 물론이고, 필요하다면 통폐합이나 새로운 기관의 설립을 적극 검토해야 할 터이다.

일본 시민들에게 새로운 연대를 호소한다

대법원 판결은 한일 간에 '식민지지배 책임' 문제가 미해결인 상태로 남아 있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것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그 문제는 1965년에 한일 양국 정부가 해결하지 않은 채 봉인했던 것이다. 1990년대 초부터 한국인 피해자들이 일본에서, 미국에서, 한국에서 30년 가까운 세월동안 소송을 통해 다투면서 그것을 끄집어냈다.

소송이 거듭되면서 '식민지지배 책임'이 문제의 핵심이라는 사실이 점점 더 선명해졌다. 관련 국제인권법도 현저하게 발전했다. 그런 가운데 권위주의 시대의 국가폭력에 대한 국내의 과거청산소송 과정에서 개인의 권리와 국가의 책임에 대한 감수성을 키운 한국의 법원이 '식민지지배 책임'을 미해결 과제로 확인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다.

역사에 터잡아 정의를 지향하고 법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만든 그 지난한 과정의 맨 앞에 반인도적 불법행위의 피해자들이 서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광복 이후에도 여전히 '약자'였던 그들이 노구를 이끌고 20년 이상이나 소송을 진행하며 심각한 인권 침해에 대한 구제를 요구하지 않았다면 대법원 판결은 빛을 볼 수 없었다.

또한 그 피해자들 곁에 헌신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은 한국과 일본 그리고 전 세계의 시민들이 있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미국 소송과 한국 소송은 일본 소송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으며, 일본 소송은 연구자들과 법률가들을 포함한 일본 시민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지금도 일본 시민들은 거리에 나서서 "NO 아베"를 외치며 "삼권분립이 있고 사법부가 하는 말은 행정부가 말을 하면 안 되는데 일본의 행정부가 지나치다"라고 명쾌하게 지적한다. 한국의 이른바 '보수' 언론들이 근거도 논리도 옳게 제시하지 않은 채 연일 '문재인 정부가 문제다', '대법원 판결이 문제다', '한국 정부가 해결해라'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과 너무나 선명하게 대비된다. 그 대비가 너무 참담하여 황망한 마음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다만, 대법원 판결이 새로운 한일 연대라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해두지 않을 수 없다. 일본에서는 오랫동안 한국인 피해자들이 제기한 문제를 '전후보상 문제'라고 불러왔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일본 시민들은 그것을 제2차 세계대전에 따른 피해의 문제로서 자리매김해 왔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은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 의미를 가진다. 문제의 핵심이 '전쟁 피해'가 아니라 '식민지지배 책임'이라고 선언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인 피해자들은 '다시는 우리와 같은 아픔을 겪는 이들이 없게 해달라'라고 호소한다. 그들의 아픔은 전쟁으로 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식민지 인민이었기에 겪어야 했던 특별한 아픔이었다. 그들의 호소에 응답하기 위해서는 전쟁이 없는 세상도 만들어야 하지만, 동시에 서로를 존중하는 대등한 관계 속에서 함께 인권과 평화를 지향하는 동아시아 그리고 전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 일본의 시민들에게 지금부터 그 길을 함께 가자고 호소한다.

우리는 왜 3.1운동 100주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는가?

끝으로 올해가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라는 사실을 새삼 되새긴다. 수많은 기념행사들이 이미 넘쳐났고 앞으로도 계획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왜 기념하는 것인가?

대법원 판결의 가장 밑바닥에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명기된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이 자리잡고 있다.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은 다름 아닌 일제의 식민지지배를 전면 부정하는 것, 그것이 불법강점이라고 선언하는 것이었다.

식민지지배 책임, 1965년의 「기본조약」에서 관철하지 못했고 「청구권협정」에서 해결하지 못했던 과제이다. 대법원 판결은 그것이 과제이다라고 다시 한 번 명확하게 선언한 것에 다름 아니다. 당연히 '1965년 체제'로는 대응할 수 없는 과제이다. 따라서 이제 한일관계의 새로운 법적 틀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아베 정부는 '식민지지배 책임'이라는 과제 자체를 부정하며, '1965년 체제'라는 낡고 헤진 그물로 어떻게든 가려보려 하고 있다. 아베 정부의 헌법개정 추진은 그래서 한반도로부터도 주목된다. 「일본국헌법」 9조는 일본이 더 이상 침략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식민지지배 책임'을 부정하는 것은 그 다짐의 진정성을 심각하게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일이다. 그래서 「일본국헌법」 9조의 무력화는 일본의 또 다른 침략의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일본의 '보통국가화'는 '식민지지배 책임'의 명확한 인정과 이행이 전제되지 않는 한 허용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다만 '식민지지배 책임'의 추궁은 '새로운' 현상이다. 식민지지배 책임이 처음으로 국제적인 차원에서 다루어진 것은, 2001년 8월 31부터 9월 7일에 걸쳐 남아프리카 더반(Durban)에서 개최된 '인종주의, 인종차별, 배외주의 및 그에 관련되는 불관용에 반대하는 세계회의'에 이르러서였다. 하지만 과거의 식민지 지배국들이 여전히 국제질서에 중요한 영향을 있는 상황에서도 식민지지배 책임이 전 세계적인 과제로서 '마침내' 다루어지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것은 분명 새로운 흐름의 시작이었다.

식민지지배 책임 물은 나라가 어디에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식민지 때가 더 좋았다거나 식민지지배 덕을 봤다거나 일본에게 물을 책임이 없다고 강변하는 사람들조차 있다. 그들에게 묻는다. 한국인 피해자들이 지난한 사투 끝에 확인한 '식민지지배 책임'의 추궁이 전 세계적인 흐름이 되어 가고 있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이 앞장 서서 묻는 것이 도대체 왜 문제라는 것인가? 식민지의 상흔은 여전히 깊다. 식민지인의 사고방식이 매일 같이 그것도 당당하게 머리를 치켜들고 있다. '식민지지배 책임'은 일본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국내에서도 심각하게 추궁해야 할 과제인 셈이다.

이 모든 과제들을 포함하여, 대법원 판결이 올해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왜 기념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는 소중한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 국면 점검' 글 싣는 순서

1. 한-일 '강대강' 대결의 진원... 대법원 판결 핵심 정리
http://omn.kr/1k7th

2. '불법강점'은 청구권협정의 대상이 아니었다
http://omn.kr/1k829

3. '강제징용'이 아니다, '강제동원'이다
http://omn.kr/1k8bz

4. 청구권협정, 파탄 직전이다
http://omn.kr/1k8r8

5. 한국 정부가 나서야 한다니... 도대체 왜?
http://omn.kr/1k9be

6. 대법원 판결이 한국 정부의 결정을 뒤집었다?
http://omn.kr/1kct7
 

태그:#강제동원, #대법원 판결, #한일, #일본, #징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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