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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를 낳은 뒤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대전으로 내려왔다. 아이를 낳기 직전까지 해외에 있었던 남편은 내가 조리원에 있는 사이 부동산을 돌며 겨우 집을 구했다. 집이 있는 동네가 어떤지, 어떻게 생겼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대전에 내려왔다. 가끔 주말에 남편이 바람 좀 쐬고 오라며 등을 떠밀면 마지못해 나왔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30~40분을 열심히 걸어 커피숍 하나를 찾아내고 뿌듯해 하다가 1km도 떨어지지 않은 옆 블록이었다는 것을 알고 허탈해 했던 적도 있다. 지리를 잘 몰라 같은 장소를 뱅뱅 돌았다.

한 달쯤 지나 아이 출생신고를 하러 주민센터에 가야 했을 때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가야 하는지도 몰랐다. 평일이라 남편은 출근하고 혼자서 아이를 데리고 가야 했는데, 아기를 안고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인지부터 길을 찾을 수 있을지, 택시를 타게 되면 기사가 짜증을 낼 만큼 가까운 거리는 아닌지 모든 것이 무섭고 떨렸다. 고작 서울에서 두시간 떨어진 곳임에도 그렇게나 절절맸다. 돌이켜보면 별것 아니지만 낯선 환경이라는 것은 때로 사람을 위축시키고 아무것도 못 보게 만들었다.

가난조차 증명하지 못한 탈북 모자
 
 서울 관악구 한 아파트에서 사망 추정 두 달 만에 발견된 탈북 모자의 집 현관이 굳게 잠겨있다.
 서울 관악구 한 아파트에서 사망 추정 두 달 만에 발견된 탈북 모자의 집 현관이 굳게 잠겨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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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31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아파트에서 탈북민 한아무개(42)씨와 아들 김아무개군이 숨진 채 발견됐다는 보도를 보았다. 기사를 읽고 오랫동안 생각했다. '어떻게 그 지경이 되도록 들여다보는 사람이 없었을까' '왜 엄마는 어떤 일이든 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굶어 죽을 때까지 그냥 가만히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등  충분한 사정이 있었겠지만 그 사정이 무엇일지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했다.

알고 봤더니 아이에게는 간질이 있어 많이 아팠고, 엄마는 아이를 홀로 두고 일하러 나갈 수 없었다고 한다. 아이는 7세로 우리 아들과 동갑이었다. 어린이집에서는 간질이 있는 아이를 맡지 못한다고 했단다. 한 달 학비가 저렴한 곳은 30만 원, 일반적으로는 50만 원씩 하는 유치원 역시 엄마는 보낼 수 없었을 것이다.

탈북민 지원 제도나 재단이 있기는 하지만 그녀로서는 방법을 알기 어려웠을 것이다. 의지할 대상이 오직 아이 하나뿐인 상황에서 엄마는 그대로 두고 나갔다가 언제 잘못될지 모르는 아이를 그대로 방치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도움을 청할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이웃들에게 물어봤자 대부분 싸늘했을 것이 뻔하고, 혼자서 탈북민 40~50명을 상대해야 하는 담당 공무원은 바빴을 것이다. 결국 모자는 있는 제도를 이용하기는커녕 도움도 제대로 구하지 못한 채 죽어갔다.

마태 효과, 삶은 있는 자에게 유리하게 돌아간다
 
 법무부 장관 후보자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사무실 로비에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법무부 장관 후보자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사무실 로비에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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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딸이 장학금을 받은 것에 대해 생각했다. 사실 이미 논란이 많이 되는 상황에서 비난을 얹고 싶지는 않다. '내가 그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하고 생각해 보니 집이 아무리 넉넉해도 누군가 장학금을 준다고 하면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은 한' 거절하지 않았을 것 같기 때문이다. 논문에 참여하는 것 또한 놓칠 수 없는 흔치 않은 기회라 생각하여 덥석 하겠다고 나섰을 것 같다. 생각해 보니 그렇다.

지난해 가을부터 나라에서는 양육수당과 별개로 한 달 15만 원씩 어린이 수당을 더 주고 있다. 제도가 도입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당시에는 '그 돈 전 국민한테 찔끔찔끔 주는 대신 어려운 사람들에게 몰아 주지'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준다는데 굳이 받지 않을 이유가 없어 당연히 신청했다.

그런데 받기 시작하니 좋았다. 개인적으로 매달 15만 원을 어려운 가정에 자발적으로 기부하는 방법도 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의 사정과는 관계없이 마땅히 받아야 할 돈 같았다. 실은 대부분의 인간이란 결국 그 정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가슴이 아픈 것은 그런 것이다. 똑똑한 사람들은 뛰어난 머리로 모든 제도를 꿰뚫고 있다.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샅샅이 이용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점점 더 많은 기회를 만난다. 반면 어려운 사람들은 있는 제도조차 제대로 이용하는 법을 모른다. 이용할 수 있는 것을 이용하는 것이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정보의 차이,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도움이 딱히 필요 없는 상황에서도 돌봄과 관심이 끊이지 않는 누군가가 있지만, 정작 그런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은 때로 굶어 죽기도 한다는 것. 2019년 국민소득 3만 달러인 나라에서 이러한 일이 벌어진다는 것. 그 차이가 단순히 개개인 한 명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참으로 가슴이 아프고 안타깝다.

기사를 읽다가 아는 이 하나 없는 낯선 곳에서 낯선 집에서 서로 꼭 껴안고 주린 배를 움켜쥐고 죽어갔을 모자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런 상황에서 "집 주지, 기초생활 보장 수급자로 돈 주지, 병원비 주지, 뭘 더해주나"란 댓글이 가장 많은 추천수를 받은 것을 보니 자꾸만 눈물이 흐른다.

삶이 공평하지 않다는 것이 미안해서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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