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말하는 쪽은 항상 살아남은 자이다. '세상 이치가 다 그런 거지'라며 얼버무리고 말지만 그냥 넘기기에 너무 억울한 경우도 있다. 살인 사건이 그렇고, 최근 모두를 경악하게 만든 이른바 '한강 몸통 시신 사건'이 그렇다. 피해자는 살해당한 것도 모자라 시신이 토막 난 채로 한강에 버려졌으며 여전히 신체 일부를 다 수습하지 못한 상태이다.
 
 피해자를 살해한 뒤 여러 차례에 걸쳐 훼손한 시신을 한강에 유기한 혐의를 받고있는 피의자 장아무개(39·모텔 종업원)씨가 18일 경기도 고양시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피해자를 살해한 뒤 여러 차례에 걸쳐 훼손한 시신을 한강에 유기한 혐의를 받고있는 피의자 장아무개(39·모텔 종업원)씨가 18일 경기도 고양시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피의자 장아무개씨는 자수하면서 피해자가 먼저 시비를 걸었으며 죽을 짓을 했기 때문에 자신이 한 일에 대해 미안하지도 반성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죽은 피해자는 말을 할 수 없으니 언론에는 장씨의 말과 평소 생활, 인터넷 활동 내역 등만 나열될 뿐이다.

그래서일까. 인터넷 기사 댓글에는 장씨의 발언에 공감하는 내용이 꽤 많다. 죽인 건 좀 심하지만 피해자가 잘못했기 때문에 당한 일이라는 것이다. 자신들이 갑질 당한 경험까지 떠올리며 피의자 장씨를 옹호하는 내용의 댓글은 가히 충격적이다.

자극적인 언론 보도... 피해자의 인권은 안중에도 없다

살인 사건, 그것도 토막 살인 사건이 일어났는데 가해자의 반성하지 않는 막말에 공감하는 이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중 언론의 자극적인 보도 태도를 빠뜨릴 수 없을 것 같다. 먼저 사건의 이름부터 자극적이기만 할 뿐 피해자의 인권은 안중에도 없다. '몸통 시신 사건'이라니. 대중의 시선을 끄는 데 확실한 효과가 있겠지만 피해자의 인권은 어디로 갔나. 얼마 전까지 살아 숨 쉬던 피해자를 '몸통 시신'으로 치환시켜 끔찍한 모습을 상상하게 하고 그를 모독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죽은 자신이 '몸통 시신'과 같은 말로 불리길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모텔살인 사건', '한강 시신 훼손 사건' 정도로도 충분히 사건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이번 사건이 잔혹한 범죄로 언론의 조명을 받으면 받을수록 죽은 피해자는 계속해서 더 능욕당하고 있다.

언론들은 피의자 장씨에 대한 불필요한 정보를 너무 많이 제공한다. 피해자가 죽고 그의 말을 전혀 들을 수 없는 상황에서 장씨의 일방적인 주장인 살해 동기를 여과 없이 그대로 전달하는 것은 문제다. 똑같은 일을 경험해도 각자 자기 위주로 해석하기 마련인데 장씨의 주장만 계속해서 노출되니 이에 공감하고 동조하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설사 장씨의 주장이 모두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살인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그런데도 그는 카메라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있고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평소 성격이 어땠는지, 인터넷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 은둔형 외톨인지 아닌지까지 대중들이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다. 자극적인 보도로 대중의 살인자에 대한 원초적인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고 시청률이나 클릭 수를 올리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찾기는 어렵다. 반성하지 않는다는 피의자의 사정을 자세히 알고 그를 이해해주기라도 하란 말인가. 그렇다면 아직 시신 수습도 다 하지 못한 피해자의 사정은 누가 알아줄 것인가. 공익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언론들이 앞다퉈 자극적인 보도를 하는 데에만 열을 올리고 피해자의 인권이나 보도가 미칠 영향은 생각하지 않는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다.
  
 언론은 '몸통 시신 사건'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피해자의 인권을 생각하지 않았다.
 언론은 "몸통 시신 사건"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피해자의 인권을 생각하지 않았다.
ⓒ 포털사이트 갈무리

관련사진보기

 
이런 언론의 보도 태도가 이번 사건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지적이 있음에도 여전히 사건의 이름은 피해자에 대한 정보로 붙여지고, 언론 보도는 피해자의 삶보다 가해자의 사정,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불가피한 이유로 가득 채워진다. 우리는 장자연 사건, 여대생 살인 사건, OO녀 성폭행 사건 등에 이미 익숙하다. 또한 늘 비슷한 레퍼토리인 가해자의 불우한 어린 시절, 주변 사람들의 증언(보통은 평소에 순한 사람이었다는 내용이다), 범죄를 저지르게 된 동기 등을 보고 듣는 것에도 익숙하다. 그런데 억울한 피해자의 삶이나 사정은 도대체 어디에 있나. 그들이 범죄 피해 이후에 어떤 삶을 사는지 언론은 관심을 가진 적이 있는가.

언론은 잔혹 범죄에 대해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며 보도하지만 정작 그 어디에도 피해자를 배려한 보도는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의 보도가 넘쳐난다. 이제는 살인 사건 피의자의 범행 동기에 공감하며 그를 감싸는 인터넷 댓글을 흔하게 볼 수 있는 지경까지 되었다.

황색 저널리즘, 독자가 멀리하고 비판해야

언론이 계속해서 시청률이나 클릭 수에 연연하며 자극적인 보도를 이어간다면 이제는 우리 대중들이 똑똑해져야 할 때이다. 사건의 이름에 예민해져야 한다. 지금은 조두순 사건이라 불리는 것이 처음에 뭐라고 불렸는지 기억하는가? 처음에는 '나영이 사건'이었다. 그런데 여러 사람이 피해자를 강조하는 이름 붙이기에 이의를 제기했고 이제는 모두 '조두순 사건'으로 명명하고 있다. 예전보다 사건 이름에 문제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고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우리는 계속해서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

또 하나, 가해자의 사정을 지나치게 상세히 보도하는 언론을 멀리하고 비판해야 한다. 가해자의 신상, 어린 시절, 평소 행실 등을 알아서 달라지는 것이 뭐가 있는가. 가해자를 이해해서 그에게 감정 이입하려는 것도 아닐 테니 그런 보도를 멀리하고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하려고 노력하자. 그 피해자가 나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피의자를 무조건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든지, 언론에서 천하에 나쁜 놈으로 다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보도들은 지나치게 가해자에게 치중되어 있고, 이로 인해 피해자가 2차 피해를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당장의 호기심을 충족하는 것보다 사건 보도로 인해 한 번 더 능멸당하는 피해자의 인권을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댓글2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