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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는 부채의 고향이다. 특히 합죽선 하면 전주가 으뜸이다 할 수 있다. 전북에는 부채를 만드는 도 무형문화재 선자장 장인들이 여려 명 있다. 선자장(扇子匠)은 전통 부채를 만드는 기술과 그 기능을 보유한 장인을 말한다.

우리나라 부채는 형태에 따라 방구부채와 접부채로 구분한다. 방구부채는 부챗살에 깁(紗)이나 비단 또는 종이를 붙여 만든 둥근모양의 부채로 단선(團扇), 원선(圓扇)이라고도 하는데 태극선이 대표적이다.

접부채는 접고 펼 수 있는 부채를 말하는데 합죽선(合竹扇)이 대표적이다. 합죽은 대나무의 겉대와 겉대를 붙여서 만든 것으로 우리나라에선 고려시대에 대나무로 유명한 전남 담양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 들어선 전라감영이 있는 전주에 선자청(扇子廳)를 만들어 관청의 장인들이 부채를 만들기도 했고, 부채 장인들이 집단을 이뤄 사는 부채마을도 존재했었다. 이때만 해도 합죽선은 2부(골선부, 수장부) 6방(합죽방, 골선방, 낙죽방, 광방, 도배방, 사북방)으로 나누어 분업화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모든 공정을 장인 혼자 하고 있다.

합죽선은 임금이 신하들에게 주는 하사품일 정도로 정성이 많이 들어갔고 그 품질 또한 우수했다. 지금도 중국이나 일본에선 한국의 합죽선이 높이 평가받고 있지만 그 실정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4대째 합죽선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선자장 김동식(77, 국가무형문화재 제 128호) 장인 또한 열악한 환경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허름한 4평짜리 공방
 
 선자장 최초 국가무형문화재 제128호 지정된 김동식 장인. 1대 라경옥 명인부터 4대째 140년의 부채 가문을 이어가고 있다.
 선자장 최초 국가무형문화재 제128호 지정된 김동식 장인. 1대 라경옥 명인부터 4대째 140년의 부채 가문을 이어가고 있다.
ⓒ 김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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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 장인은 1943년 전주의 가재미 마을에서 태어났다. 14세 때 당시 고종에게 합죽선을 진상할 만큼 뛰어난 명인이었던 외조부 라학천과 외삼촌들에게 배우면서 부채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지금은 외가 쪽에서 맥이 끊어진 상태에서 김동식 장인이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2015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전통기술 그대로의 합죽선을 만들고 있다.

그런데 지난 13일 찾은 그의 공방은 허름한 4평 남짓한 공간이 전부였다. 마땅한 작업실이나 전시 공간이 없어 살고 있는 집 방 한 칸이 공방이다. 좁은 작업실엔 합죽선을 만드는 도마부터 칼 등 도구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고, 몇 점의 합죽선이 거실에 전시되어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공방이라 하기가 민망할 정도다. 선자장 김동식 장인은 그래도 매일 오전 8시에 시작하여 오후 9시까지 앉아서 부채를 만든다.

선자장 김동식 장인은 합죽선을 만드는 과정을 손수 보여주며 그 용도를 진지하면서도 유머를 섞어 설명한다. 특히 왕대나무를 쪼개어 겉대를 만드는 과정을 시연하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함부로 보여주지 않는 거라면서 넉넉한 웃음을 보인다.
   
 황칠백첩선. 백첩선은 살 50개에 백번 종이를 접었다 해서 붙여졌다. 김동식 장인이 백첩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황칠백첩선. 백첩선은 살 50개에 백번 종이를 접었다 해서 붙여졌다. 김동식 장인이 백첩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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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자장으로서 최초의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받았다고 들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다른 분야에선 국가무형문화재가 많지만 부채는 국가중요무형문화재가 없었습니다. 전주에도 도무형문화재는 두세 분 정도 있지만 국가무형문화재는 없습니다. 그러다 문화재청 간담회에 갔었는데 기존에 없는 분야도 국가문화재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기술인가 논의가 있었습니다. 논의 결과 인정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고, 국가문화재 공모를 통해 실사를 봤습니다. 15일 정도 시험 봤지요. 5명 정도 봤는데 최종적으로 합격하여 국가무형문화재가 됐습니다. 그게 2015년 7월입니다."

- 도 무형문화재와 국가 무형문화재의 차이가 있나요?
"전통기술의 여부죠. 전통기술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가에 있죠. 한 마디로, 손으로 시작해서 마무리까지 손으로 끝내야 합니다. 기계를 이용하거나 열 가지 기술 중에서 한두 개라도 빠지면 온전한 전통이라고 말하기가 그렇죠."

- 언제부터 부채를 배우기 시작했고 누구한테 배웠는지요?
"초등학교 졸업하고 부채를 배우기 시작했으니 1956년 14살부터 배우기 시작했죠. 당시엔 먹고 살기 힘든 시기라 월사금을 낼 형편도 안 되고 해서 아버지로 권유로 배우게 됐죠. 기술을 배우면 굶어 죽진 않을 거라며 당시 부채 명인이었던 2대 외조부 라학천과 외삼촌인 라이선, 라태순 등으로부터 배웠는데 내가 4대째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140년 정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죠.

처음엔 심부름 같은 허드렛일을 하다가 어깨 너머로 배우기도 하다 손재주가 있었는지 제법 따라하기도 했죠. 그렇게 8년 정도 배우다 독립을 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63년째 부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위 왼쪽부터 옻칠승두선, 쪽불염색선, 황칠백첩선, 흑단승두선. 합죽선은 두 개의 겉대를 합하여 만든 것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손으로 제작한다. 그 공정이 100번 이상의 손이 가야한다. 합죽선은 보면 볼수록 수준이 매우 높은 정교함은 물론 세련미가 있는 우리 나라 고유의 부채이다.
 위 왼쪽부터 옻칠승두선, 쪽불염색선, 황칠백첩선, 흑단승두선. 합죽선은 두 개의 겉대를 합하여 만든 것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손으로 제작한다. 그 공정이 100번 이상의 손이 가야한다. 합죽선은 보면 볼수록 수준이 매우 높은 정교함은 물론 세련미가 있는 우리 나라 고유의 부채이다.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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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지금 외가 쪽은 부채 만드는 일을 하는 분이 안 계신가요? 전수자는?
"아쉽게도 대부분 일찍 작고했거나 생활하기가 어려워 그만두고 현재 외가 쪽은 맥이 끊겼고 저만 남았습니다. 전수자로 아들이 하고 있습니다."

- 아들이 직접 부채 만드는 일을 한다고 했나요?
"그렇진 않습니다. 아들(김대성, 43)은 상업 쪽의 일을 했습니다. 이게 한 마디로 상노동이라 누가 배우려고 하지도 않아요. 돈 줄 형편도 안 되고요. 그런데 내가 올해 77세인데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잖아요. 내가 죽으면 전통기술의 맥이 끊기는 거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과 상의를 했죠. 4대째 이어져 온 전통을 깰 수도 없고 아들이 안 하면 합죽선 만드는 기술은 사라지는 거잖아요. 다행이 아들이 한다고 했는데 힘이 많이 듭니다. 기술도 기술이지만 부채 만드는 일로 아직은 생활이 안 되니까."

"명패만 주고 나몰라라... 우리나라 현실이 좀 그럽디다"
 
 공방의 모습. 장인이 작업하는 공방은 4평 남짓한 작4은 방이다. 특별한 공간이 없어 작은 방 하나를 공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때론 옥상에서 작업을 한다. 화로의 수분이 잘못하면 부채의 형태를 틀어지게 하기 때문이라 한다. 장인은 이곳에서 1년에 이삼백 개의 합죽선을 만들고 있다며 작업도 하고 홍보도 할 수 있는 작은 전시관이 있길 소망하고 있다.
 공방의 모습. 장인이 작업하는 공방은 4평 남짓한 작4은 방이다. 특별한 공간이 없어 작은 방 하나를 공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때론 옥상에서 작업을 한다. 화로의 수분이 잘못하면 부채의 형태를 틀어지게 하기 때문이라 한다. 장인은 이곳에서 1년에 이삼백 개의 합죽선을 만들고 있다며 작업도 하고 홍보도 할 수 있는 작은 전시관이 있길 소망하고 있다.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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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같은 경우엔 장인들이 대접도 받고 경제적으로도 넉넉한데 우린 그렇지 못한 것 같아요.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지요?
"우습지만 우린 완전히 꽝이에요. 마이너스죠. 대접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아요. 전수자가 없는 이유가 먹고 살기 힘들기 때문이죠. 전수자에게 2년이나 3년 정도 어느 정도 생활할 수 있게 정부나 지자체에서 보조를 해주면 다른 데 신경 안 쓰고 열심히 배울 수 있는데 그게 안 되니 어렵지요. 사실 지방문화재니 국가문화재니 명패만 딱 만들어주고 활동비 명목으로 얼마 정도 주는데 그리 도움이 안 되죠.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외국에 나가서 전시도 하고 하면 좋은데 지금 당장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전시회 같은 건 어렵죠. 돈도 많이 들고요. 무형문화재도 인기 없는 것들은 더 그렇습니다."

- 도나 시에선 어떤 도움이 있나요?
"허허. 시 입장에선 당신은 국가무형문화재니 국가에서 할 일이지 시와는 상관이 없다 뭐 이런 식이죠. 시에 전수관 하나 지어 달라 한 적이 있죠. 도무형문화재 여러분과 한지와 연관해 전수관을 지으면 합죽선의 홍보에도 많은 도움이 되지 않겠어요. 전주에 국가무형문화재는 저 혼자입니다. 다른 시나 도에선 국가무형문화재가 되면 매우 많은 신경을 쓰는데 우리는 전혀 그렇지 않은 현실이 좀 그렇습니다." 

- 중국이나 일본의 부채와 한국의 합죽선의 차이가 있나요?
"있죠. 가장 큰 차이는 우리 합죽선은 대나무 겉대를 이용하고, 중국이나 일본은 대나무 속대를 쓰는 거지요. 합죽선은 왕대나무를 사용하는데 겉대 두 개를 붙여 한 살로 만듭니다. 그 과정이 숙련된 기술을 필요로 합니다. 합죽선 하나 만드는 데 최소 15일 정도 걸리고 100번 이상의 손이 갑니다."

- 합죽선은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드나요?
"좀 복잡합니다. 먼저 대밭에서 대나무를 자른 후 부재칫수에 맞게 대를 쪼갠 다음 끓는 물에 양잿물을 풀어 삶아 진을 뺀 다음 햇빛에 말려 색깔을 냅니다. 이것이 첫 공정이에요. 다음에 하는 일이 대나무 속을 깎는 작업을 하죠.

보통 대나무속을 깎는 일을 합죽을 깎는다고 말하는데 요게 숙련된 기술을 필요로 해요. 여기 있는 화로도 필요하고요. 합죽선의 특징은 얇게 깎은 대나무 껍질과 껍질을 풀로 붙여 한 살로 만드는 것이 특징이죠. 부채 합죽선 하나를 만드는 데 보통 대나무 조각 90쪽을 붙여야 합니다. 이따 시범 보여줄 터인데 이런 공정을 거쳐 마지막 사북을 박으면 하나의 합죽선이 완성이 됩니다."

-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요?
"제가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후계자 양성이죠. 아들이 전수자로서 배우고 있지만 생활이 안 되니까 부채 만드는 일에 전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배우라고 하지만 아들도 생활은 해야 되잖아요. 그게 참 안타깝습니다. 두 번째는 홍보입니다. 실제로 합죽선에 대해 아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몇천 원짜리는 합죽선이 아니에요. 보통 접선이라고 하죠. 그래서 저는 초중고 대학생들에게 합죽선을 직접 만드는 공정을 직접 보여주면서 우리 합죽선을 알리고 싶어요. 세 번째는 아직 힘이 있을 때 좋은 작품을 만들어 놓는 일입니다. 이 세 가지가 남은 생애 제가 해야 할 목표입니다. 그러다 보면 제 삶도 끝마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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