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성인 남녀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한 결합? 이 이상적인 문구마저도 각 사회가 처한 상황에 따라 의미가 다를 것 같다. 우리나라만 해도 결혼은 젊은 남녀의 자유로운 선택이라고들 하지만, 결혼 과정에서 부모의 경제력이나 서로의 집안 등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 않은가.

이 때문에 우리 사회의 결혼 제도는 세계적 기준에 따르면 '불완전한 자유 결혼'이라 평해진다. 아직까지도 개인의 자유 의지보다는 '조건'이나 '환경'이 우선하는 결혼 제도이기에,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결혼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는 '비혼 선언'도 등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은 어떨까? 중앙집권적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은 각 지역별로 사회, 문화적 발전이 불균등하게 이뤄져 있다. 그로인해 벌어진 격차는 사회 발전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 이런 중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젊은 여성들은 어떤 고민을 안고 있을까? 

'2019 EBS다큐영화제'에서 소개된 <위기의 30대 여자들>은 여성이 16살~17살이 되면 가족이 남편감을 찾아 나서는 전통을 가지고 있는 이스라엘 출신의 쇼쉬 슐람, 힐라 메달리아 감독이 제작한 다큐멘터리다. 이들이 다큐를 통해 살펴본 동시대 중국 여성들의 모습에선 근대의 삶을 겪어내야 하는 여성들의 '동병상련'을 확인할 수 있다.
 
 2019년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 2019)에서 상영된 다큐멘터리 <위기의 30대 여자들> 중 한 장면

2019년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 2019)에서 상영된 다큐멘터리 <위기의 30대 여자들> 중 한 장면 ⓒ EBS

  
'성뉘, 잉여 여성'

중국 정부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인구를 조절하기 위해 1980년대 이래로 한 자녀 정책을 실시해왔다(인구 감소에 따라 2013년 폐지). 여전히 전통적 '남아 중심 사상'이 남아 있는 중국 사회였기에, 전체 인구 비율상 남성 인구가 여성 인구보다 3천 만 명 정도 더 많다. 당연히 결혼 적령기에 들어선 남녀의 비율이 맞지 않는 상황이 되자 중국 정부는 여성들에게 20대, 특히 27세 이전에 결혼할 것을 강권한다. 

그렇지만 2012년 기준, UN 통계에 따르면 중국의 27~29세의 여성 중 4명 중 한 명이 미혼이며 이 비율은 더 늘어나는 상황이다. 이에 중국에서는 결혼하지 않는 고학력의 이른바 '골드 미스'들을 '남는 여성들'이라는 의미의 '성뉘'(잉여 여성)라고 비하해 부르는 분위기가 생긴다. 미혼 여성들을 결혼 제도 속에 편입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압박하고 있는 셈이다. 

<위기의 30대 여자들>은 본의 아니게 '성뉘'가 되어버린 추화메이, 쉬민, 가이치 등 여성 세 명의 이야기를 다룬다. 
 
 2019년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 2019)에서 상영된 다큐멘터리 <위기의 30대 여자들> 중 한 장면

2019년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 2019)에서 상영된 다큐멘터리 <위기의 30대 여자들> 중 한 장면 ⓒ EBS

   
34살 여성 변호사가 '불리한 조건'?

결혼 중매 회사를 찾은 34살의 변호사 추화메이. 그가  자신의 일을 존중해 주며 집안 일도 같이 해주는 남자를 찾고 있다고 하자, 중매 회사 관계자는 난색을 표한다. 34살인 추화메이의 나이가 많다는 것이다. 거기에 변호사라는 직업이 '성격이 강해보이게' 만들기 때문에 좋은 조건이 아니란다. 그러면서 중매 회사 관계자는 그녀에게 눈높이를 낮출 것을 요구한다. 답답한 마음에 공원에서 열린 부모들의 중매 시장을 찾은 그. 남자측 어머니는 변호사라는 그의 직업을 들은 뒤 '그가 법으로 자신의 가족을 해코지 할 수도 있다'며 말도 못붙이게 한다. 

베이징에서 차로 4~5시간 거리에 있는 산둥성의 추화메이네 집. 그녀가 집에 돌아오자마자 가족들은 '괜찮은 남자 찾았니?'라며 한숨부터 늘어놓는다.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20대에는 결혼을 해야 하는데, 너무 늦었다는 것이다. 결혼하기 싫다는 추화메이는 언니들에게 "먼저 결혼해서 좋냐"고 물어보지만, "결혼이 좋아서 하는 게 아니라 때가 되서 하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올 뿐이다.

황당하게도 가족들은 추화메이에게 "가방끈이 길어 눈만 높아졌다"라며 핀잔까지 준다. 심지어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학비까지 대줬더니 동네 사람들에게 '딸 시집 못 보낸 집안'이라 손가락질 받게 생겼다"며, 추화메이더러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바보"라고 온가족이 닦달을 한다. 결국 추화메이는 눈물을 흘리고야 만다. 

추화메이는 이후 가족들의 성화에 못 이겨 다시 중매 회사를 찾는다. 어렵사리 같은 고향 출신에 조건이 괜찮은 남자를 만났지만, 이 남자는 '남성 우월주의'가 강한 산둥성의 전통을 따르겠다고 대놓고 선언한다. 그는 법적인 부분에서는 그녀의 조언을 따르겠지만, 집안의 주도권은 자기가 쥐어야겠다며 당당하게 말해 추화메이를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혹시나 늦은 결혼 때문에 아이를 낳지 못할까 하는 우려에 추화메이는 산부인과를 찾는다. 의사는 그녀에게 "산모가 35살 이상이면 노산이며 자궁 내막이 건강하지 않아 기형아 출생률이 5배나 높다"며 겁을 준다. 또한 의사는 "정자를 보관해 주는 정자 은행은 있지만 난자를 냉동시켜 보관해 주는 난자 은행은 태국이나 미국에 가서 알아보라"고 말한다. 
 
 2019년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 2019)에서 상영된 다큐멘터리 <위기의 30대 여자들> 중 한 장면

2019년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 2019)에서 상영된 다큐멘터리 <위기의 30대 여자들> 중 한 장면 ⓒ EBS

  
28세 여성인데 '노처녀'라고?

<베이징의 매일>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자 쉬민은 이제 28살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밸런타인데이 데이트 이벤트에 참석하는 그녀에게 결혼, 그리고 결혼할 남자에 대한 생각은 다소 이상적이다. 활발하고 긍정적인 성격의 남자였으면 좋겠다는 그녀. 구체적으로 이상형을 묘사해달라고 하자, 고학력에 베이징에 살아야 하며 공무원이나 엔지니어, IT계열에, 집도 있어야 하고, 키는 175cm 이상이었으면 좋겠다는 등 조건이 점점 까다로워진다. 

하지만 이런 까다로운 조건은 그저 쉬민만의 생각이 아니다. 쉬민은 밸런타인데이 데이트에서 공무원인 남성을 만나서 설레는 마음으로 집에 돌아온다. 하지만 부모님과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부모님, 특히 엄마는 '속을 수도 있다'면서 조건을 더욱 까다롭게 따진다. 이런 상황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녀의 엄마는 딸의 결혼이 늦었다며 초조해 하면서도, 무남독녀인 그녀가 만나는 남자의 장점보다는 단점을 지적하면서 늘 연애의 장애물이 되어왔다. 좋아해서 만나던 남자를 엄마의 반대로 계속 만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사사건건 반대하며 트집을 잡는 엄마 때문에 심리 상담까지 받으며 힘들어 하던 쉬민은 결국 어머니 앞에서 폭발하고 만다. 어머니 역시 맨날 성화인 할머니 때문에 비슷한 집안의 아빠를 만나 결혼하게 된 케이스다. 엄마 때문에 남자 만나기도 힘들다며 눈물을 흘리는 쉬민에게 엄마는 "집도 사줬는데 이제 와서 엄마를 무시한다"며 오히려 서운해 한다. 독립적이고 성숙한 여성으로서 자기 삶의 파트너를 선택하고 싶지만, 중국에 사는 28세 그녀로서는 이마저도 쉽지 않다. 
 
 2019년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 2019)에서 상영된 다큐멘터리 <위기의 30대 여자들> 중 한 장면

2019년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 2019)에서 상영된 다큐멘터리 <위기의 30대 여자들> 중 한 장면 ⓒ EBS

  
여성이 결혼하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것들

36살의 여성 가이치는 영어 강사로 일하고 있다.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녀지만, 47살에 파킨슨 병을 앓기 시작한 아버지로 인해 배우자를 찾기가 쉽지는 않았다. 나이가 많아서,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아서, 집안이 번듯하지 않아서... 그녀의 결혼에 장애물은 너무 많았다. 

그러나 그녀는 다행히도 결혼에 성공했다. 이런저런 조건에도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는 연하남이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의지할 수 있는 연상의 안정적인 남자가 좋다고 말하지만, 그녀는 그저 웃고 만다. 가이치는 결혼 후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 나섰고, 광저우 대학으로 일터를 옮겼다. 학생들과 함께 페미니즘 영화를 보던 그는 페미니즘과 결혼이 공존할 수 있냐는 학생들의 질문에 자신의 바뀐 결혼관에 대해 솔직하게 말한다.

20대에는 집 있는 남자를 원했다는 가이치. 아버지가 아프실 때는 그런 그녀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의지할 수 있는 남자를 바라곤 했다고. 서른 살이 넘은 뒤에도 바라던 조건의 남자가 나타나지 않자,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고 미혼으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타협점을 찾을 것인가 고민했다고 한다. 그런 그녀 앞에 나타난 사람이 바로 '괜찮은 연하남'이었던 것. 

결혼 후 광저우 대학으로의 이직을 고민하고 있을 때 남편은 그녀에게 적극적으로 이직을 권했다. 아이를 낳고 싶어하던 남편은 가이치에게 '생활비가 더 적게 들기 때문에 아이 키우기에 광저우가 적당할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원래 가이치는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었다. 그럼에도 가이치는 남편의 바람에 따라 아이를 낳고 광저우에서 직장도 구한 것이다.

그녀는 말한다. 재미로 따지면 결혼 전 인생이 재밌었다고. 결혼 후 인생은 재밌지는 않지만 더 많은 행복감을 준다고. 결혼도 하고 자신의 삶도 누리기 위해서는 무언가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자신의 결혼을 성공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고 말이다.  
 
 2019년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 2019)에서 상영된 다큐멘터리 <위기의 30대 여자들> 중 한 장면

2019년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 2019)에서 상영된 다큐멘터리 <위기의 30대 여자들> 중 한 장면 ⓒ EBS

  
연하남과의 안정적인 결혼에 성공한 가이치와 달리 추화메이는 프랑스로의 유학을 선택한다. 추화메이는 결혼에 대한 편견을 '전족'에 빗대 표현한다. 포부가 작은 여자는 작은 발을 가진 여자처럼 전족 같은 결혼에 맞춰 살아갈 수 있지만, 자기 인생에 대한 포부가 큰 그녀는 이 나라의 결혼 제도에 맞춰 살기가 쉽지 않다는 것. 

하지만 추화메이의 삶은 망망대해에서 끊임없이 밀려오는 거센 파도에 홀로 맞서는 처지처럼 보인다. 추화메이는 '노처녀'란 단어에 발목 잡히고 싶지 않지만, 끊임없이 그녀를 향해 밀려오는 사회적 편견의 파도는 질식할 것 같이 만든다고 토로한다. 결국 그녀가 선택한 건 멋진 인생을 살기 위해 다른 나라로 떠나는 것이었다.

추화메이는 자유로운 삶을 위해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떠나는 결정을 내렸다. 과거 추화메이가 결혼을 안 한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곤 했던 아버지는 그녀의 출국 전에서야 '아들이 없으면 무시당하던 시대를 살던 자신의 꿈을 그녀가 대신 이루어 주었다'고 자랑스러워 하며 손을 잡는다. 고향을 떠나며 아버지를 안고 눈물을 흘리는 추화메이는 비록 여기저기를 떠돌겠지만 편견을 상대로 한 싸움을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2019년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 2019)에서 상영된 다큐멘터리 <위기의 30대 여자들> 중 한 장면

2019년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 2019)에서 상영된 다큐멘터리 <위기의 30대 여자들> 중 한 장면 ⓒ EBS

  
<위기의 30대 여자들> 속 결혼이라는 제도에 얽매인 중국 여성들의 모습은 불과 한 몇 십 년 전 우리 여성들의 복사판 같다. 아니, 그저 몇 십 년 전 일이라 예단할 수 있을까? '노처녀'라는 낙인을 피해 자신의 의지대로 살기 위해 조국을 떠나는 추화메이나 결혼이라는 제도에 딸려 오는 사회·경제적 압박을 벗어나기 위해 '비혼'을 선언하는 우리 사회 젊은이들의 처지는 나라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 속에 담긴 압박에 대한 저항은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행복한 결혼을 위해 포기해야 할 것이 있다'는 가이치의 토로에 가장 공감할 사람은 한국의 '직장맘'이 아닐까. 나라는 다르지만 저마다의 문화적 상황에 맞춰 여성들의 삶은 재단되고, 그렇게 재단된 삶을 탈피하기 위해 오늘도 많은 여성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고뇌하고 싸우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IDF2019 위기의30대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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