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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부터 다시 군산 한길문고 상주작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작가회의가 운영하는 '2019년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로 일합니다. 문학 코디네이터로 작은서점의 문학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자리를 만듭니다. 이 연재는 그 기록입니다. - 기자말
 

지난 여름까지는 서간도 통화현에서 '으뜸 고운' 사람이 누구인지 관심 없었다. 첫날밤에 서방님한테 '각시가 나이 많아서 싫소? 박색이라 싫소?'라고 묻던 강주룡, 비어 있는 이부자리를 팡팡 두드리며 어서 들어오라던 강주룡 덕분에 골몰했다. 누구도 묻지 않았지만 말하고 싶었다. 나한테 으뜸 고운 작가는 <체공녀 강주룡>을 쓴 박서련 작가라고.

군산에서 이틀 자고 간 <체공녀 강주룡> 박서련 작가

한길문고 에세이 쓰기 시간이든, 북클럽 시간이든 <체공녀 강주룡> 얘기를 꽤 했다. 선생님들은 좋은 작품을 읽게 되어서 기쁘다고 했다. 나처럼 작가에 대한 팬심이 생긴 선생님들도 있었다. 오, 예! '2019년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을 준비하면서 박서련 작가에게 가장 먼저 전화 걸 명분이 생겼다.
 
 박서련 작가 군산 예스트서점 강연회
 박서련 작가 군산 예스트서점 강연회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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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련 작가와 통화할 때 나는 완전 똥멍청이 같았다. "군산의 작은서점인 예스트서점과 우리문고에 와주세요"라는 말을 똑바로 못하고 횡설수설했다. 정말이지, 삭제키를 눌러버리고 싶은 순간이었다.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이메일과 카톡이 있었다. 글을 읽고서야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한 박서련 작가는 답장을 보내왔다.

"제안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꺼운 마음으로 참여하겠습니다. ^^ 군산은 늘 가보고 싶은 도시였는데 멋진 계기가 생겨서 기쁩니다. 알찬 이야기를 준비해보겠습니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5월까지 작은서점 작가 강연회를 매주 토요일 오후 3시에 했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이 페이스북에 댓글을 달거나 따로 카톡을 보내왔다. "평일 저녁에 강연회를 열어주세요." 주말에는 밀린 일도 하고, 경조사도 챙기고, 아이들을 데리고 가까운 데라도 다녀와야 한다는 사정을 털어놨다.

다시 시작하는 작은서점 작가 강연회는 평일 오전과 저녁에 한다. 수도권에서 꼭두새벽에 집을 나서서 대중교통을 타면 오전 10시 반까지 군산에 못 온다는 분도 있었다. 제주도보다, 오사카보다 더 먼 곳이 지방소도시일 수도 있다는 걸 절감한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박서련 작가에게 카톡을 보냈다. 답장은 명쾌했다.

"내일 늦지 않게 가겠습니다."
"여기는 작은 도시라서 지각 하셔도 독자들이 막 웃으면서 기다립니다."

  
 군산 예스트서점, 박서련 작가 강연회
 군산 예스트서점, 박서련 작가 강연회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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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7일 수요일 오전. 박서련 작가는 강연 시간보다 15분 먼저 군산 예스트서점에 도착했다. '늘 가보고 싶은 도시'라는 말은 진짜였다. 친구와 함께 전날 도착해서 구시가도 가보고 하룻밤 묵었다고 했다. 책을 읽고 온 독자들은 소설 속 주룡을 대하듯 박서련 작가를 다정하고 뜨겁게 바라봤다.

점심을 먹은 박서련 작가는 철길마을을 비롯한 군산의 이곳저곳을 돌아보고는 저녁에 우리문고로 왔다. 오전과 똑같이 토크박스를 이용한 강연이었다. 참석한 독자가 다르고, 질문도 달라지니까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도 새로웠다. 밤이라서 그런지 더 깊게 사람들 마음을 파고 들었다. 질문을 하던 참가자 김준정 선생님은 목이 메어서 몇 초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끝나고 나니까 밤 9시쯤 됐다. 서울 가는 버스는 11시까지 있지만 서둘렀다. 나는 박서련 작가와 친구를 배웅하기 위해 차를 몰았다. 그런데 터미널로 바로 가지 않아도 괜찮았다. 이 사랑스러운 작가는 게스트하우스에 2박을 예약하고 군산에 온 거였다.

서울에서 원정 오게 만든 <진이, 지니> 정유정 작가
  
 군산 한길문고, 정유정 작가 강연회
 군산 한길문고, 정유정 작가 강연회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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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9일에는 한길문고에서 정유정 작가의 <진이, 지니> 북 콘서트를 했다. 군산 같은 작은 도시에서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일. 눈덩이처럼 소문이 커져서 서점에 독자들이 꽉 들어차기만을 바랐다. 왜 하필 휴가철에 정유정 작가를 섭외했느냐는 원망을 듣기도 했지만, 날짜를 조정할 수 없었다. 그게 최선이었다.

딱 봐도 "서울 사람이다!"라는 느낌이 팍 나는, <소년의 레시피> 덕분에 친구가 된 대도시 사람 나윤님에게도 정유정 작가 강연회를 알려주었다. 그날 하루 휴가를 내고, 최대 네 명이서 오겠다고 약속했다. 나윤님은 강연회 하루 전날에 카톡을 보내왔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저희 내일 군산 가요! ㅎㅎㅎ 도착하자마자 계곡가든 갈끄예요.ㅋ"
 

간장게장으로 유명한 그곳은 군산 외곽에 있다. 나윤님과 친구들은 밥부터 먹으러 갈 거라고 했다. '점심때쯤이면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하겠지!'라고 생각한 나는 또 똥멍청이였다. 바쁘고 부지런하게 사는 서울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짐작조차 못하고 있었다.

나윤님과 친구들이 군산에 도착한 때는 오전 10시. 식당은 택시로 14분 거리, 곧바로 꿈에 그리던 음식을 먹으러 갔다. 그리고는 치밀하게 작전 수행 중인 요원들처럼 군산 구시가의 신흥동 일본식 가옥(히로쓰 가옥)과 마리서사에 들렀다.

자동차 보닛에 달걀 후라이를 해도 될 만큼 뜨거운 한낮이었다. 확 들러붙는 습습한 더위 때문에 고초를 겪던 나윤님과 친구들은 게스트 하우스로 갔다. 일본식 정원의 나무 그늘에 몸을 기대거나 의자에 앉아 체크인을 기다리면서 나한테도 연락을 했다.

"군산 너무 덥고 좋아요!!!"
 

준비하는 사람들은 강연회 시작할 때까지 긴장한다. 신청하고도 사정이 생겨서 못 오는 사람이 많고, 주차 하느라 5분쯤 지각하는 사람들도 제법 있기 때문이다. 그날은 500쪽이 넘는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을 읽고 1시간이나 먼저 온 아리울초등학교 김태은 학생 덕분에 마음이 놓였다. 잘 될 것 같았다. 그러려고 독자들에게 줄 굿즈도 쌓아 놓았다.

한길문고 문지영 대표가 준비한 건 유시민 작가 소주잔, 스마트폰 방수팩, 에코백, 필통, 머그컵 등이었다. 거기에다가 군산에서 유일하게 디제이가 음악을 틀어주는 카페 '음악 이야기'에서 한 달 동안 날마다 커피와 차를 마실 수 있는 쿠폰 여덟 장을 독자들에게 내놓았다. 시시한 문제를 유쾌하게 풀고 굿즈를 받은 사람들의 얼굴은 환했다.

정유정 작가는 사육사 인간 진이와 영장류인 보노보 지니의 교감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엄마 아빠를 따라서 곧장 유치원에서 서점으로 온 아이들만 지루해 했다. 부모님 손을 끌고 자꾸 서가로 나갔다. 빈자리는 뒤늦게 온 사람들이 와서 앉았다. 준비한 의자 100개가 거의 꽉 찼다.
  
 군산 한길문고에서 진행한 정유정 작가 강연회.
 군산 한길문고에서 진행한 정유정 작가 강연회.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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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 작가에게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과 방법까지 미동도 않고 들은 사람들은 질문하려고 너나없이 손을 들었다. "왜 작가가 되었나요?" "동네 서점에서 이렇게 유명한 작가를 만나는 게 너무 신기합니다" 같은 순박한 질문에도 정유정 작가는 답을 해주었다. 마침내 마이크를 잡고서 입을 떼려던 한 독자는 감격해서 울먹였다.

서울에서 온 나윤님과 친구들은 질문할 기회를 끝내 얻지 못했다. 그래도 참 좋았다고, 한길문고에 오길 잘했다면서 사람들 틈에 서서 정유정 작가의 사인을 받았다. 그 여운을 음미하기 위해서 저녁만 간단히 먹고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갔다. 다음날 오전 6시에는 서울행 버스를 타야 하기도 했고.

"작가님의 도시는 참 다정하고 멋지고 위엄있는 곳이에요."

서울에 도착한 나윤님은 카톡을 보내왔다. 코끝이 찡한 채로 나는 "ㅋㅋㅋ" 웃었다. 군산에 온 여행자들이 동국사나 히로쓰 가옥, 근대문화만 보고 가지 않기를, 한길문고와 동네서점에도 꼭 들렀다 가게 하고픈 내 야망이 무모하지 않다고 확인받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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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독립청춘>, <소년의 레시피>, <서울을 떠나는 삶을 권하다>를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