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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오전 인텍스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6월 28일 오전 인텍스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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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가 최악이다. 돌이켜보면 한일 양국의 반목과 갈등의 역사는 그 뿌리가 깊다. 고대는 협력과 부조(扶助)의 역사보다는 지배와 피지배의 허구를 구축하기에 급급했으며 근대 이후에는 가해와 피해의 역사로 점철되어 왔다. 그리고 현재 두 나라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징용공 문제로 상징되듯이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자국 중심적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극한 반목과 대립이 극에 달해 있다. 한편에선 자국사 중심의 역사 인식에서 벗어나 서로를 객관적으로 이해함으로써 상생적 한일관계 구축하고 화해의 길로 나아가기 위한 시민들의 교류 또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화해란 '싸움하던 것을 멈추고 서로 가지고 있던 안 좋은 감정을 풀어 없앰'(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이라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화해의 전제로서 존재하는 싸움의 내용, 개인이나 일정한 이익을 공유하는 집단이나 국가 등 분쟁 당사자의 성질과 분쟁 당사자 간의 관계(개인 대 개인과 같은 대등한 관계, 혹은 정부 대 개인과 같은 비 대칭적 관계, 국가 대 국가와 같은 정치적 관계)는 실로 다양하다. 따라서 다양한 분쟁 양상에 모두 대응할 수 있는 화해의 포괄적 정의는 몹시 어렵고, 정치학·종교학·사회학·법학·심리학 등 의 다양한 학문 영역에서 다룰 수 있는 사항이기에 결국 의미 또한 다의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 가운데 화해는 일반적으로 '법률상의 화해'와 '심리적 화해' 두 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 법적인 의미로서의 화해는 "당사자가 서로 양보하여 당사자 간에 존재하는 다툼을 그만둘 것을 약속하는 것"으로 법률상의 다툼에 대한 종결을 의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어떤 의미에서는 심리적 화해를 동반하지 않는 형식적인 화해라 할 수 있어 분쟁 당사자 간의 적대심이나 감정적 상처를 해소하지는 못한다.

문제의 본질을 동아시아에 한정시켜 이야기해 보자면 이 지역의 진정한 화해는 현재진행형이다. 아시아·태평양전쟁이 끝나고 일본으로부터의 점령과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지 70여 년이 지났고, 한·중·일 3국이 국교를 수복하고 정상화 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도 가해국가 일본과 피해국가 한국(북한 포함), 중국이라는 도식은 더욱 고착화되고 견고해지고 있다. 일본은 법률상의 화해는 물론이고 공식 혹은 비공식의 채널을 통해 수차례, 아니 기회 있을 때마다 자신들이 저지른 과오에 대해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는 심리적 화해 또한 시도해 왔다. 그러나 심리적 화해의 전제가 되는 그들의 반성과 사죄는 지금도 반복되는 정치인들의 정치적 언행에 의해 그 진정성을 의심 받고 있다. 종군위안부는 모두 매춘부였다는 망언, 독도·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북방영토를 둘러싼 영토분쟁,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역사 ·사회 교과서의 자국 중심적 기술 문제 그리고 최근 들어 급증하고 있는 헤이트스피치(혐한) 등은 지금까지 일본 정부와 민간이 보여주었던 반성과 사죄가 과연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는가를 의심하게 만들고 있다.

이렇듯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이 과거사 문제로 대립과 불화를 반복하는 근본 이유는 '공적(公的) 기억'에 대한 인식과 소비의 차이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무엇보다도 내셔널리즘의 망령에 사로잡힌 그들의 집단기억이 보편적 윤리감각을 밀어내고 있다. 최근 들어 두드러지는 우경화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정의로운 화해를 통한 항구적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선 일본은 물론 중국과 한국 모두 보편적 역사인식이 집단 기억 및 내셔널리즘과 충돌하는 문제를 직시해야 할 것이다. 이는 국가이성(國家理性)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이 지역에서의 미래지향적 동반자 관계의 구축은 지난 과거에 대한 변명이 아니라 자신들의 과오에 대한 직시, 그리고 통절한 성찰과 반성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어린 사과와 사죄가 전제되어야 한다.

일본은 분명 제국주의 시절 자신들이 저지른 과오에 대해서 유감의 뜻을 표했다. 두 번 다시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결의 또한 표명했다. 각종 차관이나 원조의 형태로 막대한 보상금을 지불했다. 이를 통해 자기들 스스로 일방적으로 과거사에 대한 종결을 선언하고 완결 지었다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용서를 구한 적은 없다. '화해'라는 것은 일반적인 선언으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화해란 잘못에 대한 용서를 피해 당사자로부터 구하고 그것을 상대방으로부터 얻어낼 때 비로소 성립하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의 진정한 화해, 나아가 지난 세기 지구 도처에서 자행되었던 전쟁과 침략, 살육에 대한 민족 간, 국가 간의 진정한 화해는 아직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사죄'는 가해자의 일방적 선언이 아니라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고 피해자로부터 용서를 받음으로써 완결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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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 특임 강의교수. 근대 일본 교육사상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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