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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폭격으로 불타는 낙동강 어느 강변마을(1950. 8.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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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 기자의 NARA 앨범' 이번 회는 1950년 8월의 전란 모습을 담아봤다.
국군과 유엔군은 전쟁 발발 후 지속적으로 지연전을 펼치면서 후퇴했다. 1950년 7월 말에는 전 국토의 90%를 인민군이 점령하고 있었다. 게다가 약 7만여 명의 병력이 손실됐다. 이런 피해는 유엔군 증원부대가 한반도에 도착하기까지의 시간을 벌어줬다.
1950년 8월 1일 미 제8군사령관 워커 중장은 유엔군의 모든 부대를 낙동강 부근으로 철수시켰다. 이는 최후의 보루인 부산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이때부터 지연전은 막을 내라고 낙동강을 사이에 둔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낙동강 최후 방어선은 남해안 마산에서 북쪽으로 낙동강을 따라 경북 상주 낙동리까지 약 160km에 이르며, 또 이 지점에서 동해안 영덕까지 약 80km는 산악지대로 방어에 아주 적합했다. 이렇게 형성된 낙동강 방어선을 '워커라인'(Walker Line) 또는 '부산교두보'라고 불렀다.
이 시기의 유명 전투는 다부동전투, 안강․기계전투, 포항전투 등으로 양측 모두 사활을 건 공방전을 별였다. 지상전은 팽팽한 접전이었지만 공중전은 유엔군이 주도권을 쥐고 한반도 상공을 누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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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전쟁으로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판자촌 마을(1950.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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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전란 중 피란민들의 보금자리, 다리 아래 움집(1950. 8.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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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원산, 열차 정비공장이 미군 폭격으로 폐허가 되었다(1950. 8.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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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국군 병사들이 기관총(LMG) 손질을 하고 있다(1950. 8. 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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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임시포로수용소에서 포로들이 배식을 받고 있다(1950. 8. 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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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미 B29 전투기가 청진의 공장지대를 융단폭격하고 있다(1950.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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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울산 부근, 폭격으로 불타고 있는 마을(1950. 8. 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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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대구, 임시로 유엔군 묘지를 마련하여 십자가를 세우고 있다(1950. 8. 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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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인민군 포로들이 붙잡혀 임시포로수집소에 수용되고 있다(1950.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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