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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입사한 이후로 한 직장에서만 근무했습니다. 유리천장을 깨부술 성별·학벌·인맥은 없지만, 그곳에서 끈질기게 출근하고 일하며 살아가는 40대 여성 직장인의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회사의 기술시험은 직급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치러야 한다.
 회사의 기술시험은 직급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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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니는 회사는 몇 년 전부터 기술지향적인 기업으로 변모를 꾀했다. 첫 번째 변화는 사내에 기술시험 제도를 도입한 것이었다. IT 회사답게 각종 언어와 시스템설계 시험 제도를 마련했다. 이에 맞춰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직원들을 가르쳤고, 시험 점수를 연봉 제도와 연동하도록 체제를 개선했다. 그때부터 직원들은 직급을 가리지 않고 매년 기술시험을 치른다. 사원에서부터 팀장, 정년퇴임을 얼마 앞두지 않은 '부장님'들까지. 예외는 없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회사에서 기술시험을 치렀다. 시험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과목은 개발 언어와 시스템 설계였다. 오전, 오후로 나누어진 시험이었다. 점심까지 굶으며 막판까지 '벼락치기'를 했지만, 예상대로 결과는 처참했다. 점수를 확인하자마자 화면을 닫았다.

시험 결과지는 왜 틀렸는지, 나의 답은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세세하게 알려줬지만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 연봉에 영향을 주는 직원 평가와 연동되는 시험이니, 아마도 올해는 좋은 평가를 받기는 글렀을 거다. 시험을 잘 본다고 연봉을 얼마나 높여 받으려나 싶은 마음도 있다.

제도가 시행된 초반에는 결과를 받아들 때마다 자괴감이 들었다. 이 실력으로 지금까지 어떻게 IT 업계에서 밥 벌어 먹고살았나 싶기도 했다. 여태까지 내가 설계한 시스템들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했던 걸까.

회사 사람들은 사내 ​기술시험 제도 도입 이래 첫 번째 시험이 가장 어려웠다고들 말했다. 갈수록 난도가 낮아졌다는 뜻이다. 그런데 내 점수는 첫 시험 이후로 계속 하락세였다. 역시 나의 실력은 바닥이었다. 왜 계속 점수가 낮아지는지 모르겠다고 하니 누군가 알려주었다.

"시험공부를 안 하니까 그렇죠. 시험은 공부를 해야 점수가 잘 나오는 거예요."

그렇다. 난 시험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느라 공부할 시간도 없었을 뿐더러 시험을 위해 공부하기도 싫었다. 시험공부라면 학창 시절부터 죽어라 하기 싫던 분야다. 그런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까지 들어간 건 기적이었다. 회사에서 친 기술시험 점수를 보니 지금까지 일하고 있는 것도 기적 그 자체였다. 이 어려운 IT 분야를, 적성에도 맞지 않으면서 용케 18년이나 버텼다니. 순간 나 자신이 참 대견하게 느껴졌다.

성실함은 자괴감을 넘어섰다

참 무식하게 성실했다. 남들이 1시간이면 짜는 코딩을 하루 종일이건 며칠이건 걸려서 해내긴 했다. 남들이 하루 만에 이해하는 코딩 방식을 인터넷에 검색해가면서 어쨌든 해결을 해내긴 했다.

한 번은 '코딩 천재'의 도움을 받아서 며칠 동안 풀지 못했던 코딩을 반나절 만에 해결한 적도 있었다. 내가 오래도록 헤매던 것을 한 방에 해결하다니. 자괴감이 밀려왔다. 그런 자괴감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다시 출근했다.

나의 성실함은 자괴감을 넘어섰다. 어려우면 도망갈 법도 하지만 끝내 도망가지 않았다. 프로그램 설계에는 능력이 없었지만, 성실하게 버티는 능력 하나는 타고난 것 같았다. 

내가 코딩한 시스템을 실제 운영환경에 반영할 때마다 긴장했다. 신규 시스템을 개시할 때마다 가슴 떨리곤 했다. 혹시나 내가 개발한 시스템에서 에러가 날까봐 스트레스가 많았다. 대형 시스템을 개시할 때는 한 달 전쯤부터 잠을 설쳤다.

버틴 이유는 스트레스보다 돈 없는 것이 더 무서워서다.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지속한 비결은 '돈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나는 성공하기 위해서 회사에 다니는 게 아니었다. 어쩌면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딱 잘리지 않을 만큼 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그렇다고 회사가 싫다거나 일이 질린 건 아니다. 일도, 회사도 좋다. 가난해지지 않을 만큼 적당한 돈을 주니까.

근무하는 동안 회사는 계속 변화해왔다. 어느 날은 컨설팅이라는 개념을 내세워 고객 가치를 추구했다. 어떤 날은 융합 기술을, 어떤 날은 관리 기술을 내세웠다. 긴 시간 동안 끊임없이 변하는 회사의 모습에 나는 지루할 틈이 없었다.

회사가 제자리에 머물지 못하고 계속 변화를 시도하는 건 돈 때문이다. 회사는 고객의 사랑을 잃지 않기 위해 쉴 새 없이 노력했다. 회사는 고객이 주는 사랑만큼 돈을 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회사도 무조건 고객에게 퍼주는 사랑은 하지 않는다. 회사도 나름 고객과 '밀당'을 한다. 장사와 비슷하다. 남는 게 없다고 하지만 항상 이익을 취하는 거래를 한다. 간혹 손해를 보는 듯한 거래를 하지만, 그것 또한 더 큰 이익을 노리는 계산이다. 회사는 늘 이익을 챙긴다. 

회사의 밀당, 나의 밀당
 
 그렇게?누군가는 먼저 내리고, 누군가는 다시 채워졌다.
 그렇게 누군가는 먼저 내리고, 누군가는 다시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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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적당한 선에서 회사에 나의 애정을 보이고 있다. 사랑하는 회사니까. 그러나 사랑은 '밀당' 아니던가. 회사와 적당히 긴장 관계를 유지하는 태도는 회사 생활에 재미를 더해줬다. '적당히'라는 타협안을 내놓으면서 회사생활에 활력을 찾기도 했다.

나는 회사 일을 잘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올인'하지는 않는다. 회사를 사랑하지만, 회사가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회사에서는 직장인으로 충실한 삶을 살지만, 회사 밖에서는 재테크 모임에 참석하거나 글쓰기 모임을 이끄는 등 '딴짓'을 한다. 회사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자연인 '나'로 돌아왔을 때를 대비하는 것이다. 언젠간 반드시 돌아올 현실이므로.

회사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필요하다. 불도저 같은 추진력으로 회사를 이끌고 나가는 사람도 필요한 반면, 나처럼 한자리를 오래 지키며 자기 일을 꾸준히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18년간의 직장생활을 돌이켜 보건대, 잘난 인재들은 다른 회사로 스카우트되거나 이직했다. 물론 그 자리는 또 다른 인재로 채워지기도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자리를 지키는 사람도 필요한 법이다. 너도 나도 잘났다고 떠든다면, 그 조직은 잘 될 리가 없다. '나를 따르라' 했는데, 아무도 안 가고 혼자만 가는 꼴 아니겠는가.

이 모든 것들이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 회사다. 회사가 기술지향적인 변화를 시도했을 때 많은 인재들이 떠났다. CEO가 '나를 따르라' 했는데, 따르지 못한 사람들은 이직을 하거나 퇴직을 한 것이다. 나는 남았다. 늘 그랬던 것처럼. 

떠나는 사람들의 목적지가 어떤 곳이든 사람을 보내는 일은 늘 아쉬웠다. 버스를 타고 목적지까지 같이 갈 줄 알았던 사람들이 돌연 '안녕, 나는 다른 버스를 타고 갈 거야'라며 작별을 고하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누군가는 먼저 내리고, 누군가는 다시 채워졌다. 누군가는 나처럼 오랜 시간 같은 자리를 지켰다. 누군가는 나처럼 회사와 '밀당'을 하고, 누군가는 불평불만을 하면서 앉아 있다. 가만히 관찰해보니 연차가 높은 사람일수록 불평불만보다는 밀당하는 쪽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키며 버티는 노하우를 스스로 깨친 사람들일 것이다.

올해 시험 결과가 나온 날, 나는 나 자신에게 칭찬을 듬뿍 해줬다. 밀당도 잘하고, 오랫동안 잘 버티었으니 말이다.

나는 오늘도 회사와 밀당을 한다. 회사와 이별하는 날,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혜선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longmami) 및 브런치(https://brunch.co.kr/@longmami)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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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여행·문화 담당 기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기 위해선 이야기의 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