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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노고단(1507m)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서
 지리산 노고단(1507m)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서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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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에도 늘 산이 그립다. 산을 찾고 싶은 내 마음을 연이은 폭염도 이기지 못하는 것 같다. 지난해에 오른 지리산 노고단의 여운이 여전히 가시지 않아 지난 8일, 새송죽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노고단(1507m) 산행을 또 나서게 되었다.

오전 8시 창원 마산역에서 출발해 성삼재(1090m, 전남 구례군 산동면)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은 10시 40분께. 성삼재로 올라오는 동안 한참이나 이어진 구불구불한 길로 차멀미를 심하게 해서 산행 초입부터 걷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피아골 직전마을로 하산하는 장거리 산행코스를 가지 않고 모처럼 노고단 정상까지 다녀오는 한가한 산행을 하기로 작정했다.
 
노란 원추리꽃에 노닥거리듯 잠자리가 앉아 있는 한가한 풍경이 좋았다.
 노란 원추리꽃에 노닥거리듯 잠자리가 앉아 있는 한가한 풍경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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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 이맘때에도 걸었던 친숙한 길이라 그때 일들이 하나하나 떠올라서 마음이 즐거웠다. 11시 20분쯤 안개 낀 노고단대피소(1350m)에 이르렀다. 여기서 노고단고개까지는 0.4km. 거친 돌길을 오르자 연분홍 둥근이질풀꽃, 주홍빛 동자꽃 등이 그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피어 있는 모습에 반가웠다. 제때 알아서 피는 꽃들을 보면 언제나 감탄스럽다. 무엇보다 엄마 아빠를 따라온 초등학생들이 눈에 많이 띄어 대견스러웠다.

천왕봉(1915m), 반야봉(1732m)과 더불어 지리산 3대 봉우리로 일컫는 노고단은 지리산 신령인 산신할머니를 모시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신라 화랑들의 심신 수련장으로 쓰이기도 했던 곳으로 1920년대에는 외국인 선교사들이 풍토병을 치료하기 위해 건물을 짓고 여름을 보내기도 했다.

노고단고개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원추리를 비롯해 소박하고 이쁜 야생화들을 한껏 볼 수 있어 천상의 화원이 따로 없다. 평화롭고 한가한 풍경에 일상을 잊을 만큼 단순해져서 좋다. 그런데 노고단 정상 구간은 사전예약이 필수적이다. 한동안 군부대 주둔, 무분별한 야영 등으로 황무지처럼 훼손됐던 이곳이 이렇게 아름다운 꽃밭으로 다시 태어나기까지 각고의 복원작업이 있었고 탐방예약제 시행 또한 한몫을 하고 있다.
 
둥근이질풀꽃에 끌려 조흰뱀눈나비가 살포시 내려앉고.
 둥근이질풀꽃에 끌려 조흰뱀눈나비가 살포시 내려앉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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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바람이 불어 대던 노고단 정상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 대던 노고단 정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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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흰뱀눈나비가 둥근이질풀꽃 향기에 끌려 너울거리며 다가오고 노닥거리듯 노란 원추리꽃에 잠자리가 앉아 있는 길을 지났다. 낮 12시께 노고단 정상 표지석 앞에 섰다. 지난해에는 파란 하늘에 떠 있던 하얀 구름이 환상적이었는데, 안개가 산 정상부를 감돌고 있었다.

조망이 없어 아쉽기도 했으나 자연이 내주는 대로 즐기는 지혜를 이미 산길에서 배웠다. 바람은 그때나 지금이나 무더위를 한 방에 날려 버릴 정도로 엄청 시원하게 불어 댔다. 정말이지, 찜통더위에 끝내주게 시원한 바람이었다.

피아골 연곡사에서 우리 역사의 비극을 보다
 

 
연곡사 동승탑(국보 제53호). 통일신라 후기의 걸작품으로 일제 강점기 때 일본으로 반출될 뻔한 위기도 있었다 한다.
 연곡사 동승탑(국보 제53호). 통일신라 후기의 걸작품으로 일제 강점기 때 일본으로 반출될 뻔한 위기도 있었다 한다.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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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왔던 길을 다시 내려가 산악회 버스를 타고 1시간 정도 거리에 위치한 피아골 직전마을(전남 구례군 토지면)을 향했다. 하산시간까지 시간이 남아 있어 피아골 입구에 자리한 연곡사에 혼자 내렸다.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조사에 의해 세워졌다고 전해지는 연곡사는 우리 역사의 비극적인 사건들을 아프게 품고 있는 절집이다.

정유재란 때 왜군에 의해 불탄 기록이 남아 있고, 고광순 의병장이 이곳을 본영으로 삼고 일본군과 싸웠던 1907년에도 불타 버려 잿더미가 되었다. 그 후 한국전쟁 때 또 다시 전소되는 수난을 겪었다.
 
연곡사 동승탑비(보물 제153호). 몸돌은 없고 받침돌과 머릿돌만 남아 있다.
 연곡사 동승탑비(보물 제153호). 몸돌은 없고 받침돌과 머릿돌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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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곧장 동승탑과 동승탑비가 있는 곳으로 갔다. 통일신라 후기를 대표할 만한 걸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는 연곡사 동승탑(東僧塔, 국보 제53호). 도선국사의 승탑이라 전해지고 있으나 확실히 알 수는 없다. 동승탑의 윗받침돌에는 극락에 사는 새로 아름다운 울음소리를 지닌 가릉빈가를 새기고 지붕돌에는 서까래와 기와의 골, 기와를 끝맺음 할 때 두는 막새기와까지 정교하게 표현해 놓아 참 아름답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으로 반출될 뻔한 위기도 있었다 하니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동승탑 앞쪽에 있는 동승탑비(東僧塔碑, 보물 제153호)는 몸돌은 없고 받침돌과 머릿돌만이 남아 있다. 받침돌 등부분에 새 날개 모양의 무늬를 조각하고 등뼈까지 선명하게 표현해 놓아 인상적이다. 문득 10여 년 전 함께 동승탑과 동승탑비를 감상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지인들 얼굴이 떠올랐다.

정유재란, 한말(韓末) 격동기, 한국 전쟁 등 우리 역사의 슬픔이 뼈아프게 서려 있는 지리산 피아골을 뒤로하고 마산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불볕더위와 팍팍한 일상 속에서 한동안 노고단의 시원한 바람이 잊히지 않을 것 같다.

태그:#노고단, #연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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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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