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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랭피아 1863년  오르세 미술관
▲ 올랭피아 1863년  오르세 미술관
ⓒ 오르세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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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에서 옷을 벗은 채 침대에 누운 여인은 당당한 표정으로 쏘아보듯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침대는 흐트러져 있고, 그녀는 한 쪽 발에만 슬리퍼를 걸쳤다. 그 옆에는 흑인 하녀가 꽃다발을 들고 서있다. 그녀가 주시하고 있는 정면에는 꽃다발을 가져온 남성이 있을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  

마네는 올랭피아가 성매매 여성이라는 점을 그림 속에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올랭피아라는 이름은 당시 성매매 여성들이 흔히 썼던 이름이고, 그녀 옆의 흑인 하녀, 하녀가 들고 있는 꽃다발, 목에 두른 끈과 팔찌, 슬리퍼, 흐트러진 침대가 그 명백한 증거라고 한다. 그렇다면 꽃다발을 가져온 사람은 성매매 고객 중 한 명이 틀림없다.

마네의 <올랭피아>는 1865년 살롱 전에 출품되어 엄청난 비난과 조소의 대상이 되었다. 주로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공격을 받았다. 고전적인 여성의 나체 그림과 달리 품위 없고 음란한 그림이라 비난하였는데, 그 비웃음과 비판은 거의 회화 역사상 최고의 수준이었고, 이에 마네가 크게 낙심했다고 한다. 서양의 회화 역사상 여성의 벗은 몸을 재현한 무수한 그림이 있지만, 마네의 <올랭피아>가 받았던 엄청난 비난과 공격은 특별한 사례였다.
 
마네의 인간적 소심함과 예술적 혁신

프랑스 작가 조르쥬 바타유는 마네에 대해 책을 썼다. 바타유는 마네의 인간적 연약함과 그가 이룬 예술적 혁신을 교묘하게 대비시켜며, 마네 예술의 현대성을 부각시켰다. <올랭피아>에 대한 그의 언급에서 예술적 혁신에 대한 당대의 몰이해가 그렇게 부당한 것은 아니라는 역설이 읽혀지기도 한다.
 
"마네의 작품들 중 가장 유명한 이 작품은 우선  1865년 '살롱전'에 이 작품이 전시되었다는 사실이 불러일으켰던 증오의 함성들에 빚지고 있다. 피카소의 작품 중 가장 눈에 띄는 것들도 이보다 더 얼빠진 저주들의 합창 같은 공격을 받지는 않았다. 만일 조롱꾼들이, 그로부터 40년 뒤인 1907년에 이 작품이 루브르에 입성하리라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이 외침과 비웃음들은 어떻게 됐을까?... 처음에 대다수가 혐오하던 것이 진정한 미의 징표라든가 형식의 거침없는 혁신이었음이 드러나는 일이 종종 있다."(조르쥬 바타유, <라스코 혹은 예술의 탄생/마네> 320p)

마네는 <올랭피아>를 1863년에 그렸지만 2년 후에 출품했던 것은 이 그림에 대해 쏟아질 비난과 혹평을 예측하였기에 출전을 미루었던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마네는 1863년에 <풀밭 위의 점심>을 살롱 전에 출품하여 낙선하였고, 같은 해에 있었던 '낙선 전시회'에서 비난과 조소를 받았던 경험이 있었다.

마네가 인상파 화가들의 지도적 인물이고 인상파에 속하며 인상주의를 선도한 인물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마네 본인은 인상파 화가들과 동일시되는 것을 꺼렸고, 인상파의 독립 전시회에 출품하는 것도 거부하였다. 그 자신이 상류계급 출신이었고 미술계 주류인 살롱 전에 참여하여 인정받고 두각을 나타내려 계속 노력하였다는 점과 재야파와 거리를 두려한 보수적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그와 그의 그림에 대한 과도한 비난과 조소는 의외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마네는 자신의 개인적인 소심함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예술적 전통을 깨뜨리는 바에 거침이 없었다. 원색의 강렬함, 고전적 규율을 무시하는 모델의 포즈, 강렬한 색채의 대비, 회화적 표현에서 전통적 주제의 폐기, 마네의 작품은 내내 논란과 비난, 그리고 공격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마네로 인해 펼쳐진 회화의 어떤 새로운 형식은, 오늘날 우리에게는 익숙한 것이지만 이전에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었으며, 오직 에두아르 마네의 기이한 반발심과, 무모하고도 불안에 찬 탐색을 통해서만 다다를 수 있는 것이었다."(조르주 바타유, 같은 책, 245)
 
신화의 껍질을 벗겨내다
 
우르비노의 비너스, 티치아노, 1534년경  우피치 미술관
▲ 우르비노의 비너스, 티치아노, 1534년경  우피치 미술관
ⓒ 우피치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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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의 <올랭피아>는 잘 알려져 있듯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를 모티프로 삼아 비슷한 구도를 갖고 있다. 그러나 티치아노의 '비너스'가 이상적인 여성 신체의 모습으로 신화화된 누드화였다면 마네의 '올랭피아'는 여성 신체의 곡선이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 평면적인 묘사에 그쳐 밋밋한 느낌을 주었다. 티치아노의 비너스가 자연스런 빛에 노출된 감각적인 색채의 몸이라면 마네의 올랭피아는 인공적인 강렬한 조명에 노출된 육체를 선으로 드로잉하듯 그려내어 현실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올랭피아>의 모델은 빅토린 뫼랑이었는데, 그녀는 <풀밭 위의 점심>에 등장해 유명해졌고 그녀 자신도 화가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고전적인 여신이 등장해야 하는 여성 누드화에 현실에 존재하는 여성, 그것도 소녀 같은 여성이 도전적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그림을 마네가 내놓았던 것이다.

<우르비노의 비너스>는 애초에 '비너스'의 이름을 갖고 있지 않았지만 이후에 그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마네의 그림은 처음 '비너스'의 이름을 넣었다가 바꾸었다. 티치아노의 비너스는 도발적인 눈빛과 탐욕스런 욕정을 노출하고 있음에도 신화화된 여성성으로 포장되어 있다면, 마네의 비너스는 강한 직접 조명에 의해 노출된 매춘 여성의 나체를 마주한 느낌을 준다.

마크 트웨인이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에 대해 그 노골적인 음란함과 성적 욕망의 발산에 대해 공격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그럼에도 비평가와 관람객 누구도 이 그림을 비난하지 않으며, 오히려 세계적인 명작으로 추앙받으며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의 '관음증'을 당당하게 만족시킨다. 티치아노의 그림이 귀족 남성들의 관음증을 만족시키기 위한 애초의 의도에 신화를 덧씌워 포장하는데 성공했다면, 마네의 그림은 오히려 신화적 의미화의 포장을 처음부터 벗겨냈다고 할 수 있겠다.
 
아! 관음증
 
마네의 <올랭피아>에 대한 비난의 이유에 대해서는, 그가 과거의 회화적 전통에 벗어난 혁신적인 기법과 구도를 이루어낸 바에 대해 당시 대중과 비평가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럼에도 그러한 과도한 공격의 이유 중 하나를 인간의, 특히 당시 부르주아 남성 계급의 관음증에 대한 이야기로 설명할 수 있다. 이 그림의 관람자가 가장 거북함을 느꼈던 부분은 올랭피아의 '도전적 응시'에 있으며, 이는 고전적 여성 누드화가 만족시켜 주었던 관음증의 쾌락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일이었다.

관음증은 일반적인 의미로 '타인의 벗은 몸이나 성적 행위를 비밀스럽게 지켜보면서 성적인 쾌락과 만족감을 느끼는 도착적인 행위'의 일종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윤리적, 도덕적 판단 기준과 관음증의 수위와 정도에 따라 심각한 문제의 원인이 될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의 논의는 단순히 '일상생활에서의 은밀한 훔쳐보기'에 국한하겠다. 

관음증의 쾌락은 훔쳐보는 대상이 관람/관찰의 대상이라는 점을 모르고 있을 때 극대화된다. 즉 무방비의 대상을 일방적으로 관찰할 경우 최대의 만족감을 얻게 될 가능성이 크며, 관찰 대상이 자신을 응시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할 경우 관찰자와 관찰 대상자 상호간의 긴장 관계가 형성되며, 관찰자 역시 언제든 응시의 대상으로 위치가 역전될 수 있다는 위협을 느끼게 된다.

관찰자와 대상 사이의 입장이 언제든 역전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관찰 주체에게 쾌락을 줄 수 없으며, 반대로 자신의 우월한 위상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는 점과 쾌락에 대한 욕망을 들켰다는 점에서 극도의 불쾌감을 느끼게 된다.

마네 그림 속의 여성은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아주 당당한 태도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그 정면에는 당연히 관찰자가 있을 자리이고, 관찰자는 여성의 벗은 몸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싶은 욕망을 충족하고자 기대한다. 그렇지만, 강렬한 불빛에 적나라하게 노출된 올랭피아의 납작한 나신과 그녀의 당당한 응시의 눈길이 돌아온다. 당연히 관찰자 '나'도 '고객'으로 소환될 수 있다.

관찰자는 관음증에 대한 욕망을 채울 가능성은커녕 어색한 장면에 끼어들었다는 무안함만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그 동안 무안함이나 어색한 느낌 없이 지극히 이상적으로 묘사된 여성의 신체를 감상해 왔던 관찰자에게, 관음증의 즐거움에 대한 기대는 쾌락을 빼앗긴 불쾌감으로 급격하게 전환될 수 있다. 이러한 불쾌함은 곧 그림에 대한 강렬한 비난과 공격으로 전환된다.
 
비너스의 탄생, 카바넬, 1863년  오르세 미술관
▲ 비너스의 탄생, 카바넬, 1863년  오르세 미술관
ⓒ 오르세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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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하게도 마네가 <올랭피아>를 그렸던 같은 해, 1863년에 알렉산드로 카바넬은 <비너스의 탄생>을 살롱 전에 출품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 나폴레옹 3세가 그 그림을 즉각 구입하였고 그는 에콜 드 보자르의 교수가 되었다고 한다. 이 그림의 여성은 이상화된 벗은 몸에 관음증을 만족시킬 만큼 노골적인 묘사에다, 당연하게도 스스로 눈을 가리고 자는 듯이 있어 관람자의 은밀한 의도에 거슬리지 않는 자세를 보여준다. 우연한 대비라고 하기에는 시기와 구도상의 유비에서 극단적으로 대조적인 평가에 이르기까지, 아주 적절한 예를 보여주어 신기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당시에 엄청난 비난을 받았던 <올랭피아>, 그리고 마네의 그림들은 유럽의 회화적 전통을 혁신적으로 뒤집은 선구적 작품들로 인정받는다. 마네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건 간에, 그의 <올랭피아>는 당대 사회의 천박한 현실/풍속을 생생히 드러낸 것이다. 이에 당대의 속물적인 부르주아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순순히 채워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신랄하게 면박한 그림에 대해 더 치졸하고 천박한 방식으로 격렬하게 대응했다. 이에 대한 바타유의 평가는 면도날처럼 예리하게 부르주아의 현실을 헤집는다.
 
"부르주아적 사고방식은, 진정으로 위엄 있는 것이라고는, 그러니까 이론의 여지없이 경의를 표하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구상해낼 수 없는 무능력함으로 빚어져 있다... 부르주아지는 텅 비어버린 전통을 수호하려는 자들과 이 전통을 부정하려는 자들로 나뉜다."(조르쥬 바타유, 같은 책, 254-55)

덧붙이는 글 | 유럽에서 절대 왕정이 무너지고, 공고했던 귀족 계급의 지위도 명목상 무너졌다. 공화정 체제의 시민 사회에서 부르주아는 과거 귀족 계급이 누렸던 특권과 우월한 문화의식을 그리워했고 향유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들의 성급한 욕망은 채워질 수 없는 환상이었고, 이는 질탕한 속물주의로 이어졌다.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서 '명품'을 찾는 중산층의 계급/문화 의식에서 과거 부르주아의 속물주의가 떠오른 것이 과도한 착각은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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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학위 받은 지 오래 되었습니다. 문학, 미술, 영화, 미학, 철학, 사회학에 관심이 있고, 이들을 용해, 융합하여 사색한 결과를 글로 만드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서양회화 분야에 집중하여 공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