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 다르크(1412~1431)에게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는 프랑스 북동부 국경 근처 동레미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농민 출신 문맹에다 자신이 살던 마을 밖을 벗어나본 적도 없던 17세 '시골뜨기' 소녀였다.

이런 그가 돌연 '신의 계시'를 받았다며 참전해 조국 프랑스를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해냈다. 잔 다르크는 영국과 프랑스 간의 '백년전쟁'을 끝낸 사실상 장본인이다. 귀족들 간의 복잡한 권력 다툼과 왕족 오를레앙 가(家)와 부르고뉴 가(家)의 왕위 쟁탈전이 한창이던 15세기 초반, 프랑스는 망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때 혜성처럼 나타난 게 소녀 잔 다르크다.

잔 다르크가 참전하게 된 계기
 
잔 다르크 갑옷을 입고 칼을 든 채 전장을 누비는 잔 다르크

▲ 잔 다르크 갑옷을 입고 칼을 든 채 전장을 누비는 잔 다르크 ⓒ 조이앤시네마

  
그는 동화 속 소녀가 아니라 역사상 인물이다. 지금도 프랑스의 구국 영웅이자 가톨릭에서는 성녀로 추앙받는다. 오래 전에 잔 다르크 생애를 소개한 가톨릭의 어느 출판사가 펴낸 만화책을 구입해 읽은 적 있다. 하지만 잔 다르크의 눈부신 활약을 알기 힘들었고 그다지 실감나지도 않았다. 프랑스 영화 감독 뤽 베송이 제작한 영화 <잔 다르크>를 보고서야 비로소 베일에 싸인 그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지난 1999년에 제작된 영화는 소녀 잔 다르크(밀라 요보비치)가 왜 돌연 '신의 계시'를 내세워 프랑스 구원에 떨쳐나섰는지 그 배경을 제시함으로써 설득력을 높인다. 잔 다르크는 영국군이 마을을 약탈하던 중에 언니가 참혹한 죽임을 당한 뒤 윤간당하는 장면을 숨어서 목격한다. 이는 그간 알려진 잔 다르크의 생애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이다. 감독은 잔 다르크 참전의 직접적 계기를 논리적으로 이해시키고자 이런 설정을 한 것으로 보인다.
 
잔 다르크가 받은 계시의 골자는 "오를레앙에서 영국군을 무찌르고 황태자 샤를 7세(존 말코비치)를 왕으로 옹립하라"는 내용이다. 하지만 한 개인이 받은 신의 계시는 사실 여부를 객관적으로 검증하기 거의 불가능하다. 가령 정신분열증 환자 중에는 자신을 예수의 현신이라거나 하나님이 육화한 존재라 주장하는 자들이 적지 않다. 만약 오늘날 하늘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고 확신하는 자가 있다면 다른 사람들이 그 진실성을 검증하기란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잔 다르크는 샤를 7세가 호위병으로 변장하고 다른 사람을 황태자처럼 꾸며 자신의 자리에 앉혔는데도 샤를 7세를 대번 알아봤다고 한다. 또 그가 받은 계시처럼 영국과의 전쟁에서 연전연승을 거두어 영국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당시 프랑스 민중은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잔 다르크를 절대 신뢰하였고 그가 나타나면 사기가 충천했다고 한다. 프랑스는 기독교 국가였기에 신의 계시를 받았다는 잔 다르크가 함께 한다면 승리는 확실하다는 신앙적 믿음과 자신감이 작용한 결과였을 것이다. 전쟁에서 병사들의 사기는 승패를 좌우하는 핵심 요인 중 하나이지 않던가.
 
영화에 담긴 잔 다르크의 모습
 
출전한 잔 다르크 깃발을 들고 출전한 잔 다르크

▲ 출전한 잔 다르크 깃발을 들고 출전한 잔 다르크 ⓒ 조이앤시네마

 
잔 다르크가 전쟁 영웅으로 맹활약하다 기세가 크게 꺾인 시점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후원자 샤를 7세가 대관식을 치른 뒤부터다. 샤를 7세는 왕위에 즉위하자 영국과 더 이상 전쟁을 벌이기보다는 외교적 협상에 주력한다. 그는 영국이 점령한 파리를 공격해 되찾자는 잔 다르크의 강력한 제안을 들어주지 않았다. 결국 잔 다르크는 영국의 포로가 돼 마녀 혐의 등으로 종교 재판을 받았고, 화형에 처해지고 만다. 이처럼 생애 자체가 드라마틱하다.
 
이 영화는 잔 다르크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환상 중에 극심한 심적 갈등을 벌였음을 잘 묘사한다. 그에게 자주 출몰하는 정체불명의 한 남성 환영(幻影)인 콘시언스는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확신하는 잔 다르크에게 여러 의문을 제기하며 실은 그 모든 게 착각일 수 있음을 지적한다. 만약 하나님이 잔 다르크에게 군대를 이끌고 나가 영국군을 격파하고 프랑스를 구원하라는 계시를 내렸다면 하나님은 프랑스군 편이란 이야기다. 하나 당시 영국도 하나님을 섬기는 기독교 국가였다. 더욱이 하나님이 한 소녀를 앞세워 무수히 많은 전사자가 발생할 전쟁에 개입해 특정 국가의 승리를 돕는다는 건 언뜻 수긍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잔 다르크에게 자주 출몰하는 환영인 콘시언스 수감 중인 잔 다르크에게 자주 나타나 '계시'에 대해 의문 제기를 하는 환영인 콘시언스

▲ 잔 다르크에게 자주 출몰하는 환영인 콘시언스 수감 중인 잔 다르크에게 자주 나타나 '계시'에 대해 의문 제기를 하는 환영인 콘시언스 ⓒ 조이앤시네마

  
감독은 이런 의문을 해결하고자 잔 다르크가 옥중에서 심각한 회의의 과정을 겪었음을 보여주려 한다. "잔 다르크에게 신적 계시가 내린 게 사실이라면 그 계시는 하나님에게서 온 것인가, 사탄의 위장술에 의한 건가?" 이런 논란은 실제 12번에 걸친 잔 다르크 신문 과정에서도 중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잔 다르크는 프랑스에서는 영웅이자 성녀였으나 당시 영국에서는 이단자이자 마녀로 화형에 처해졌다.
 
하지만 24년 후 샤를 7세는 종교재판을 열어 잔 다르크가 마녀가 아닌 신의 계시를 받은 사람임을 인정함으로써 그의 명예를 회복시켰다. 이는 자신의 정통성과도 직결되는 문제였기에 샤를 7세로서는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가톨릭은 잔 다르크가 화형 당한 지 수백 년이 지난 1920년에 이르러서야 그를 성인으로 공식 인정하였다.
덧붙이는 글 <여수넷통뉴스>에도 싣습니다.
잔다르크 백년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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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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