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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부터 이어진 편견과 차별로 인한 한센병 환자들의 고통과 시련이 묻어있는 소록도
 과거부터 이어진 편견과 차별로 인한 한센병 환자들의 고통과 시련이 묻어있는 소록도
ⓒ 김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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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고흥군 도양읍에 위치한 소록도, 사실 이 섬은 작은 사슴과 닮아 있어서 '작은 사슴의 섬', '노루섬'이라고 불리울 만큼 평범한 섬이었습니다. 한때는 배를 타야 들어갈 수 있는 섬이었지만, 2009년 소록대교 개통으로 누구나 쉽게 들어갈 수 있게 되었죠.

허나 이 섬은 근현대사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장소이기도 합니다. 왜 이 곳이 이렇게 중요한 섬이 된거나고요? 과거 이 섬에서는 한센병 환자를 격리수용하면서 거주 이전과 이동의 자유가 박탈되었고, 스오 마사스에 병원장에 의한 불법감금과 강제정관수술은 물론 환자를 동원한 강제노동까지 이루어졌습니다. 심지어 1945년 해방 이후에는 한센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학살도 이루어졌죠.

1916년, 이 섬에는 한센병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한 자혜의원이 세워졌습니다. 하지만 일제가 전쟁 광기를 보였던 1930년대부터 우리나라의 해방 이후까지 환자들을 적극적으로 치료해주기 보다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편견과 차별을 기반으로 하여 각종 비인간적인 일들을 자행해왔습니다.

겉으로 보면 '작은 사슴모양의 섬'이란 말에 걸맞게 사슴들이 많은 아름다운 섬으로 보일지 모르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센병 환자들의 애환과 슬픔이 서려있는 섬, 소록도. 이제 역사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이 섬을 둘러보고자 합니다.
  
 한 달에 한 번 부모와 자식이 면회를 할 수 있었지만 눈으로만 혈육을 만날 수 있었던 근심과 탄식의 장소였던 수탄장
 한 달에 한 번 부모와 자식이 면회를 할 수 있었지만 눈으로만 혈육을 만날 수 있었던 근심과 탄식의 장소였던 수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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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愁)과 탄식(嘆)으로 가득했던 장소(場), 수탄장

차를 타고 소록대교를 건너서 소록도에 도착하게 되면, 입구부터 양 옆으로 소나무가 병풍처럼 둘러진 듯한 길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수탄장이라 불리우는 이곳은 근처 소록도병원과 주민들이 거주하는 구역까지 이어지는 길인 만큼 얼핏 보기에는 평범한 길처럼 여겨질 수도 있지만, 사실 이곳은 과거에 한센병으로 인한 슬픔과 아픔이 가득했던 현장이었습니다.

이곳은 과거 직원지대와 병사지대를 구분하는 경계선 같은 곳이었는데요, 병사지대에서 생활했던 부모와 직원지대의 보육소에서 부모와 떨어진 채 살아야 했던 자녀들은 한달에 한 번 이 수탄장에서만 면회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면회를 어떤 방식으로 했냐고요? 부모와 자녀가 도로를 사이에 두고 갈라선 채로 만나야 했습니다. 그것도 눈으로만 자신들의 혈육을 만나야 했죠. 당시 면역력이 약한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하지만, 이것은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큰 상처를 남긴 '무지의 해프닝'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수탄장이라는 의미가 더 씁쓸하게 다가오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한센병 환자에 주어진 것은 감금과 강제적인 시신해부

소록도 중앙공원으로 가는 길에는 빨간 벽돌로 지어진 두 채의 건물이 자리해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져서 꽤나 유서깊은 건물로 보이지만, 두 건물 모두 일제에 의해 고통받아야 했던 한센인 환자들의 한이 서려있는 곳입니다.
 
 일제가 한센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비인간적인 행위들을 자행했던 소록도의 검시실
 일제가 한센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비인간적인 행위들을 자행했던 소록도의 검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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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감금을 비롯한 불법적인 처벌이 자행된 감금실과 죽은 한센인들을 대상으로 한 강제적인 시신해부를 실시했던 검시실이 바로 그것입니다.
먼저 검시실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1935년에 지어진 검시실은 당시 일본인들이 한센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시체 해부를 자행했던 곳인데요, 두 칸으로 나뉘어진 이 건물은 사망자의 검시를 위한 해부실과 검시에 앞서 시신을 안치하는 영안실로 각각 사용되었습니다.

모든 사망자는 본인과 가족의 의사는 무시된 채 사망원인에 대한 강제적인 시신해부를 마친 후에야 장례식을 치를 수 있었고, 시신은 화장터에서 화장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하여 '3번 죽는다'는 일화가 이 섬의 환자들에게 전해졌는데요, 한센병 발병이 첫 번째이고, 사후 이곳 검시실에서의 시신 해부가 두 번째, 장례 후 화장이 세 번째라고 합니다. 참고로 검시실에는 이전에 사용했던 검시대와 세척시설이 남아있는데요, 이는 당시 일제의 잔악한 행위를 짐작하게 해줍니다.

검시실 바로 뒤에는 감옥같은 건물이 자리잡고 있는데요, 바로 감금실입니다. 검시실과 같은 해에 지어진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당시 인권탄압의 상징물로서 일본이 한센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얼마나 끔찍한 악행을 저질렀는지를 보여줍니다. 당시 소록도의 한센병 환자들은 일제 치하에서 자유를 박탈당한 채 강제노역을 비롯한 만행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저항했던 이들은 이곳에서 감금, 체벌, 금식 등의 징벌을 받아야 했고, 출감 후에는 정관절제술을 받아야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감금실은 2개의 건물이 회랑으로 연결된 H자 형태로 방마다 철창이 설치되어 있어서 소록도의 '작은 감옥'과 다를 게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수목과 기념비로 가득한 섬 속의 공원, 소록도 중앙공원

소록도는 여전히 한센병 환자들이 거주하고 있지만, 각종 수목과 기념비들이 자리해있는 공원이 존재합니다. '소록도 중앙공원'이 바로 그곳인데요, 환자들을 위한 산책지로 가꾸어졌던 곳으로 시작해서 대유원지로 바뀐 곳이죠.

500여 종의 다양한 수목과 식물들이 자라고 있고, 여러 섬에서 돌을 가져와 조성했다고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사실 이 섬의 한센병 환자들에 의해, 공사에 필요한 장비도 없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한센인들의 피와 땀, 눈물로 만들어진 '한 맺힌' 공원이라고 말 할 수 있겠죠.
 
 한센병 환자들의 피와 땀, 눈물로 만들어진 소록도 중앙공원에 위치한 구라탑
 한센병 환자들의 피와 땀, 눈물로 만들어진 소록도 중앙공원에 위치한 구라탑
ⓒ 김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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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이곳에는 환자들의 애환과 박애정신을 드러낸 기념비들이 세워져 있어서 다녀가는 이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습니다. 오마도 간척공사에 참여한 국제워크캠프 단원들이 한센병 근절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세운 '구라탑'과 벨기에 다미안 재단이 우리나라 정부와 의료지원협정을 체결하고 의료봉사에 참여한 이들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다미안 재단 공적비', 오스트리아 출신 간호사 3명(마리안느, 마가렛, 마리아)이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한 것을 기념하고자 세운 이들의 이름 첫 글자를 딴 '세마비(공적비)'가 바로 그것입니다.
  
 한센병 환자들의 피와 땀, 눈물로 만들어진 소록도 중앙공원에 위치한 보리피리 시비(옛 연단)
 한센병 환자들의 피와 땀, 눈물로 만들어진 소록도 중앙공원에 위치한 보리피리 시비(옛 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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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동산 위에 있는 바위에 한하운의 '보리피리'라는 시를 새긴 '보리피리 시비'는 소록도의 애환과 슬픔을 잘 대변해주고 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일본인의 학대에 시달린 한센병 환자들이 "죽어도 (바위를) 놓고 죽자"는 의미에서 유래한 '죽어도 놓고 바위'라 불리우는 이 바위는 본래 4대 원장인 스오 마사스에가 연단으로 사용했던 바위였다고 합니다.

그는 병원장으로 재임할 당시 한센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강제노역을 시키면서 가혹행위를 일삼았고, 환자들의 돈을 갈취하여 만든 자신의 동상에 1달에 1번씩 참배하도록 강요했습니다. 

그러다 1942년 6월 20일, 이러한 원장의 억압에 대한 불만을 대변하는 이춘상 의거가 터집니다. 그는 스오 원장의 학정에 불만을 품고 당시 차에서 내렸던 원장을 칼로 쩔러 살해하는 거사를 일으켰는데요, 이것은 당시 조선인을 억압했던 일제를 향한 공격이면서 동시에 한센인에 대한 억압에 저항하는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은 동상이 철거되어 '개원 40주년 기념비'가 세워졌고, 연단으로 사용되었던 돌에는 한하운 시인의 시 '보리피리'가 새겨져 있습니다. 한 청년의 의거가 만들어낸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죠.

한센병 환자들의 시련을 대변하고 있는 벽돌공장 자리의 십자가상
 
 소록도 한센병 환자들의 고통과 시련이 담긴 벽돌공장 터에 자리잡은 십자가상
 소록도 한센병 환자들의 고통과 시련이 담긴 벽돌공장 터에 자리잡은 십자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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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당시 소록도는 고통과 슬픔의 섬이었습니다. 특히 과거에 존재했던 벽돌공장은 한센병 환자들의 시련을 잘 드러내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1933년에 세워진 벽돌공장은 중국 기술자들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아 환자들이 벽돌을 만들고 그에 대한 보수를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중일전쟁 발발 후 소록도병원의 재정이 전쟁비용으로 사용됐고, 이로 인해 병원 재정을 벽돌공장에서 만든 벽돌로 충당해야 했습니다. 빠른 생산을 위한 강제노동으로 인해 환자들의 병은 심각해졌고, 그 과정에서 죽거나 반항하다가 감금실에 갇힌 환자들도 많았습니다. 일제가 일으켰던 전쟁이 소록도 한센인에게 큰 상처를 안긴 것이었죠. 이후 벽돌공장은 철거되어 터만 남아 저주받은 땅이 되었죠.

그렇지만 지금은 벽돌공장의 굴뚝이 있던 자리에 십자가상이 자리해 있습니다. 과거 소록도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편견과 차별로 시련을 겪었던 한센병 환자들의 처지를 대변해 주는 듯이 말이죠. 그래서 십자가상이 위치해 있는 이 터가 엄숙하고 슬프게 느껴지는 듯 합니다.

덧붙이는 글 | * 소록도에는 한센병 환자들이 600 여명 거주하고 있으므로 방문객에게 개방된 구역(중앙공원, 소록도박물관, 소록도해수욕장)만 출입이 가능합니다.
* 소록도는 오후 5시까지 ,소록도박물관은 오후 4시 30분까지 방문객의 출입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국유지인 소록도에서의 숙박 및 야영은 불가능합니다.
* 본 기사는 필자의 블로그(https://gl-revieuer86.postype.com/post/4353447)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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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프로듀서보다 솔직담백한 국민리뷰어

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