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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부터 다시 군산 한길문고 상주작가(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작가회의가 운영하는 '2019년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로 일합니다. 문학 코디네이터로 작은서점의 문학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자리를 만듭니다. 이 연재는 그 기록입니다. - 기자말
  
'나도 글을 쓰고 싶다. 그런데 쓸 수 있을까?'

글쓰기의 경계 앞에서 서성이는 사람들을 포착할 수 있는 곳이 한길문고였다. 그 욕망을 모른 척 하지 않는 게 상주작가의 일이겠지. 뭐라도, 특히 내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한길문고 에세이 쓰기'를 열었다. 언젠가는 그이들 책이 서점 매대에 눕는 날이 올 거라고 낙관하면서 시작했다.

에세이 쓰기 수업을 열다

군산은 작은 도시. '선착순 10명'이라고 못 박았지만 서점 문 앞에서 쾅쾅 두드리면 인정사정을 봐주는 곳. 에세이 쓰기 1기는 열네 명이서 시작했다. "하우 아 유? 파인 땡큐"만 할 줄 아는 사람, 영어 문장 100개를 외운 사람, 미국에서 3년 살다온 사람이 모인 회화반 같았다. "뭐 써요?"라고 묻는 선생님부터 단편소설처럼 글을 써오는 선생님도 있었다.

"날카롭게 얘기해주세요. 블로그를 하고 있지만 아무도 글에 대해서는 지적을 안 해 주잖아요. 진짜 잘 쓰고 싶어요."

에세이 쓰기 수업을 두 번째 하고 나서 들은 말이었다. 써온 글마다 "잘 썼어요"부터 말하는 나를 다그쳤다. 그 뒤로는 선생님들이 써온 글을 하나하나 첨삭해주면서 "전적으로 제 말을 믿으시면 안 됩니다"라고 했다. "제가 한 말도 의심하셔야 합니다"라고 꼭 덧붙였다.

에세이 쓰기를 하기 전에 나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수련 같은 건 하지 않았다. 희한도 하지. 선생님들이 가끔씩  '내 글은 왜 이렇게 못나 보이지?' 하는 생각들이 눈에 보였다. 막 다른 곳에 이르면 길은 두 가지다. 벽을 뚫고서라도 앞으로 나아가든지, 그만두든지.

열네 명이 시작한 에세이 쓰기는 일곱 명만 남았다. 원래 글을 잘 쓰는 선생님들도 있었다. 하지만 지인을 따라온 선생님도, 한글 자판을 칠 줄 모르는 선생님도, 에세이보다는 일기에 가까운 글을 쓰는 선생님도 비슷한 높이의 능선에 오르는 데 다섯 달쯤 걸렸다. 겨울이 긴 군산은 여전히 추울 때였다.

"왜 나는 안 받아줍니까?"

한길문고에 항의전화가 걸려오곤 했다. 똑같은 상주작가 프로그램인데 북클럽(책모임)은 사람이 많아도 조르면 가입할 수 있었다. 일주일에 두 번은 '읽고 쓰는 사람들을 위한 고민상담소'에 올 수 있었다. 에세이 쓰기는 왜 안 되느냐고 의아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물어온 거였다. 앙심(?)을 품은 사람들은 모두 해서 아홉 명.

사람은 흔들리면 옛날 일까지 끄집어낸다. 나는 수십 년 전에 우리 동네 아짐들이 또랑에서 걸레 빨면서 주고받던 말을 생각했다. "죽으믄 썩을 놈의 몸. 애껴도 별것 없씨야." 아짐들은 초봄의 바람이 매울 때도, 땡볕이 내리쬐고 찜통 같은 훈기가 바닥에서 올라올 때도, 가을 모기가 달겨들 때도 웅크리고 밭을 맸다.

에세이 쓰기 수업을 늘린다고 해서 노트북 자판을 치는 상주작가 손가락이 부러지거나 노안이 앞당겨 오지는 않겠지. SNS에 안내문을 올렸다. 숙제를 잘해 오겠느냐는 질문에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한 선생님들은 모두 열다섯 명. 3월부터 '한길문고 에세이 쓰기 2기'를 시작했다.

독자들 만나러 가는 길 
  
 한길문고 에세이 쓰기 2기 선생님들. 둘째 아이 같다. 우쭈쭈~  조금만 뭐를 해도 다 예쁘다.
 한길문고 에세이 쓰기 2기 선생님들. 둘째 아이 같다. 우쭈쭈~ 조금만 뭐를 해도 다 예쁘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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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과 이웃한 도시 익산에 사는 선생님도 두 명이어서 밤 10시에 수업이 끝나면 서둘러 가야 했다. 그런데 3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선생님들은 끝나고 나면 느리게 가방을 쌌다. 각자 써온 글을 읽고 합평한 여운을 즐기느라고 서점에서 머뭇거리고는 천천히 돌아갔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썼을 뿐인데, 공감을 받고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게 보였다. 한길문고 귀퉁이에서 시작한 글쓰기가 세상으로 나가서 독자를 만나도 될 것 같았다. 나는 에세이 쓰기 선생님들에게 여기저기 매체에 글을 보내라고 했다. 거기는 벼랑이 아니라고, 선들바람이 부는 너른 들판에는 큰 나무 그늘이 있을 거라고 등을 떠밀었다.

카페 '음악 이야기'를 하는 이현웅 선생님이 먼저 오마이뉴스에 글을 보냈다. 포털에 걸린 글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악플이 달렸다. 공포영화를 보는 것처럼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반응이 궁금해서 눈만 보이게 손가락을 벌렸지만 다 읽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현웅 선생님은 독자들이 시간을 들여서 써준 글을 소중하게 여기며 싹 읽었다고 한다.

"1000개 정도의 댓글 중에서 50개 정도는 다음 편이 기대된다고 하더라고요. 내가 세상에 책을 내놨을 때 5%는 공감해준다는 거잖아요. 그 중에서도 '이건 에세이네!'라고 한 댓글이 좋았어요. 내 글을 알아봐주는 거니까요."

그토록 많은 댓글 앞에서 에세이 쓰기 선생님들은 뒷걸음쳤다. 두근대고 오그라든 심장은 시간이 지나니까 말랑말랑해졌다. '내 글에 저런 댓글이 달리면 어쩔까?' 상상도 해봤다. 견딜 수 있을 것 같은 선생님들이 뒤이어 글을 보냈다. 댓글이 안 달리면, 독자들이 아무 말도 걸어주지 않는 것 같아서 서운한 기분이 든다고도 했다.
  
 한길문고 에세이 쓰기 1기 선생님들. 큰애 같은 기분이 들어서 듬직하다. 가만히 냅뒀는데도 잘 컸다.
 한길문고 에세이 쓰기 1기 선생님들. 큰애 같은 기분이 들어서 듬직하다. 가만히 냅뒀는데도 잘 컸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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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쓰기 선생님들은 글을 쓰면서 알아갔다. 아기 셋 낳고 기르고 산 10년 세월도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어느 때는 생각만 해도 한숨이 나오는 친정엄마나 남편과도 글을 쓰고 나니 비로소 화해할 수 있다는 것을. 사소한 것들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못나 보일 때도 많은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게 됐다는 것을.

마구 자랑하고 싶은 세 번째 출산(?)

지금은 모두 열두 명의 선생님들이 글쓰기 플랫폼인 브런치나 오마이뉴스에 글을 보내고 있다. 세상에 글을 보내기 위해 마지막 용기를 모으는 선생님들도 있다. 백만 원에 가까운 원고료를 받은 선생님은 기어이 재력자랑을 하느라 밥을 샀다.

"우리 중에서 누가 먼저 책을 낼까요?"

앞날을 내다보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젊어졌다. 백일도 안 됐는데 아기가 뒤집었어요, 오늘은 배밀이 했어요, 짚고 섰어요, 맘마라고 했어요, 세 발짝 걸었어요, 라고 자랑하던 시절로 돌아갔다. 1999년에 큰아이를 낳았고, 2009년에 작은아이를 낳았는데, 2019년 작가로서 또다른 의미의 출산을 한 셈이다. '생물학적 엄마'는 아니지만.

"우리 에세이 쓰기 선생님들이 글을 이렇게 잘 썼습니다."

페이스북에 글을 한 편씩 꼼꼼하게 올렸다. 붙잡고 막 알려주고 싶었다.

두 달 전에 '2018년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은 끝났다. 에세이 쓰기 선생님들은 여전히 원고 마감을 정하고 글을 쓴다. 2주에 한 번씩 한길문고에 모여서 합평을 한다. '내가 잘 쓰고 있나?' 의심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다.

"옳다구나, 사치할 기회구나!"
 

얼마 전에 에세이 쓰기 1기 선생님들은 서점에 떡을 돌렸다. 한길문고가 '2019년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에 선정됐기 때문이다. 아장아장 걸으면서 첫 생일 떡을 나눠주는 아기 같은 사람들을 보며 나는 다시 젊은 엄마 마음이 됐다. 주어와 서술어가 호응하지 않는 문장을 써 와도 시간을 들여서 보살펴 주고 싶었다.

어찌됐든 올해는 출산의 해. 8월부터 한길문고 에세이 쓰기 3기를 시작한다.
 
 한길문고 에세이 쓰기 1기 선생님들이 만든 문집
 한길문고 에세이 쓰기 1기 선생님들이 만든 문집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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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독립청춘>, <소년의 레시피>, <서울을 떠나는 삶을 권하다>를 썼습니다.

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