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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수십만 미군 병사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원폭을 투하한 것이 아니다. 원폭 공격이 없었어도 전쟁은 비교적 이른 시일에 끝났을 것이며, 일본 본토 상륙은 필요 없었다는 것이 학자들의 일치된 견해다."(J.새뮤얼 워커, 역사학자)
"우리는 소련이 참전하기 전에, 일본을 상대로 한 전쟁을 끝장내기를 원했던 것이다. (제임스 번스 당시 국무장관)
 
1945년 8월 일본의 패전을 앞두고, 미국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했다. 특정한 군사시설 또는 전략시설을 표적으로 하는 정밀 폭격이 아니라, 민간인 밀집지역에 대한 무차별적 핵 공격이었다. 이로 인해 23만여 명의 인명이 희생되었고, 대부분은 민간인이었다. 그 중 4만 명은 일본으로 강제동원된 조선인 노동자와 그 가족이었다. 강제연행으로 끌려온 중국인과 붙잡힌 미군 포로, 네덜란드 사람 도 있었다.

당시의 핵 공격으로 인한 피해는 피폭자는 물론이고 74년이 지난 오늘 그 후손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 또한 전후 핵무기 경쟁 속에서 우위에 선 미국의 핵 패권 추구는 계속되고, 북한 핵 위협까지 포함해 한반도를 둘러싼 핵 전쟁의 위험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지난 22일과 23일 양일간, 고려대학교 백주년기념관과 문과대 강의실 곳곳에서 <제8회 역사NGO대회>가 개최되었다. 메인행사인 개막 심포지엄의 주제는 <1919년의 동아시아적 함의: 역사화해와 평화>였다. 메인행사 외에도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과 재일 '코리안'>을 주제로 한 학술회의 및 동아시아 역사에 관한 다양한 주제의 워크숍과 특강이 진행되었다.

기자는 그중에서도 '원폭피해자와 시민이 함께 만드는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비핵평화'(주최: 아시아평화시민네트워크, 우리역사바로알기, 한일반핵평화연대 외)를 주제로 진행된 '동아시아 풀뿌리 시민 역사대화 워크숍'에 참가했다.

워크숍은 한국과 중국, 일본, 미국에서 바라본 원폭 투하에 대한 견해를 나누고, 한반도와 동아시아 및 전세계의 비핵 평화를 위한 공동의 과제와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각국에서 온 발표자들은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과 불법적인 식민지배, 학살행위는 당연히 용서할 수 없는 범죄이지만, 이와는 별개로 일본의 패전과 대한민국의 8.15 해방이 '원자폭탄 투하 덕분에 가능했다'는 '신화'의 허구성을 지적하며, 미국의 원폭 투하는 오히려 핵이 인류 존망을 위협하는 시대를 열었고, 그 행위 자체도 민간인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한 전쟁범죄라는 데 공통된 시각을 보였다.
 
제8회 역사NGO세계대회 중 '동아시아 풀뿌리 시민대화 워크숍' 참가자들의 단체사진.
 제8회 역사NGO세계대회 중 "동아시아 풀뿌리 시민대화 워크숍" 참가자들의 단체사진.
ⓒ 아시아평화시민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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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발표자로 나선 한국 측 연구자 이승무 박사(한일반핵평화연대 공동대표)는 "1945년 초 당시의 전황에서 일본의 패전과 항복은 가시적인 것"이었으며, 미군의 원폭 투하보다는 소련의 선전 포고가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원폭 투하가 침략국이자 패전국인 일본에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  피해국에서 독립국이 된 한반도의 분단을 고착화하고 한국전쟁과 냉전 체제 하에서 잔혹한 현대사의 비극이 이어지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지적했다.

"원폭 투하는 트루먼을 위시한 미국 정부가 일본과 한국에서 강압적인 군정을 실시하고, 소련에 대하여 공세적인 전략을 펼치는 데 자신감을 가지게 해 주었다. 한국과 일본 국민에게 미국의 힘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어, 한국과 일본에서 보이지 않는 손으로서 위상을 오늘날까지 유지하고 있다."

또 "원폭 투하 자체는 한반도의 분단과 인과관계를 가지지 않으나, 이 둘 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트루먼 정부의 공산주의 국가에 대한 봉쇄정책에서 나온 것이라는 공통점을 가지며, 원폭 투하는 미군정의 힘을 통해 한반도의 분단을 고착화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그는 "호주의 아담 브로이노프스키는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대한 미군의 원폭 투하를 1944~1945년 일본 도시를 표적으로 한 미국의 폭격 및 1950~1953년 한반도, 특히 한반도 북부에서의 미군의 민간인 거주 지역 무차별 폭격에 의한 학살의 흐름 속에서 함께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며 설명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원폭 투하도 어렵거나 특별한 결단에 의해 행해진 것이 아니라, 도시를 더욱 효과적으로 파괴하고 더 많은 사람을 살상하기 위한 전략으로서 행해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덧붙여 "제2차세계대전 이전까지는 군사시설이나 전략시설에 대한 정밀 폭격만이 허용되었으나, 제2차세계대전의 진행과정에서 군사와 민간인을 구별하지 않고 특정 도시나 지역 전체를 무차별적으로 폭격하는 전략적 폭격이 교리화되었다"고 말했다. 이어 "일제의 상하이 폭격, 독일과 이탈리아의 게르니카 폭격, 나치 독일의 바르샤바 폭격 등 파시즘 세력의 범죄는 논외로 하더라도, 영국이나 미국의 전쟁 지휘부가 전쟁 목적의 효과적 달성을 위해 민간인 학살을 당연시한 것은 파시즘에 대한 전쟁이라는 명분을 훼손하고 의심케 한다"고 설명했다. 

이승무 박사는 "미국은 전쟁 중의 양민학살 범죄에 대해 한 번도 사죄하거나 배상한 일이 없다. 이로써 똑같은 행위를 언제든 반복할 수 있다는 것을 대내외적으로 암시하여 주변국과 백성들에게 보이지 않는 위협을 가하고 있다. 미국의 과거사 책임 인정과 사죄 없이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도 미국의 폭력적 틀 안에 머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에서는 미군정의 정책이 한반도에서 벌어진 비극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도, 미군에게 절대 권력의 행사를 가능케 한 원폭 투하에 대해 '한국민을 해방시킨 계기'라는 신화가 허구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미국 측의 양심적인 연구자, 시민과 협력하여 더 많은 진실을 밝혀내고, 미국 정부의 전쟁 범죄 책임을 묻는 일에 힘을 합쳐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중국인인 내가 본 원폭 투하'를 주제로 발표한 하운염 박사(나가사키대 대학원 박사)
 "중국인인 내가 본 원폭 투하"를 주제로 발표한 하운염 박사(나가사키대 대학원 박사)
ⓒ 아시아평화시민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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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에서 중국인 강제연행 문제 및 민간평화자료관의 역할 등을 연구 중인 하운염씨(나가사키대학 대학원 수산 환경과학종합연구과 박사)는 "미국에 의한 원폭 투하가 일본의 침략전쟁 종결을 가속화시킨 면도 있지만, 십수만에 달하는 민간인의 존엄한 생명까지 희생시켰고, 그중에는 조선인과 중국인, 네덜란드인, 미국인도 있었다"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에 침략을 당한 나라의 사람들도 원자폭탄으로 인해 구조되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일본은 세계 유일의 피폭국이라고 하지만, 일본인만이 유일한 피폭 국민이 아니다. 핵무기는 인류 전체의 생사존망에 큰 위협을 주는 대량파괴무기다"라고 말했다.

하운염(何雲艶) 박사는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는 일본의 제품을 구매하지도 사용하지도 않는 열혈 애국 청년이었는데, 다도에 쓰이는 전통 사발인 덴모쿠다완(天目茶碗)이나 우롱차의 발상지인 젠양시에서 나고 자란 탓에 차(茶)에 관심이 있어, 결국 국제문화교류 도시인 나가사키까지 유학을 오게 되었다고 자기소개를 했다. 그는 나가사키에서 공부하는 동안 평화운동과 핵문제, 중국인 강제연행 문제 등 역사에도 관심을 갖고 중국인 강제연행 피해 실태조사 과정에서 나가사키 민간평화운동이 한 역할을 박사 논문으로 쓰게 되었다.

그는 원폭의 참상에 대해 전시한 히로시마 시립 평화기념관에 대해 "핵무기의 역사는 잘 정리해놓았지만, 일제가 일으킨 침략전쟁의 역사가 빠져 있다"며, 역사적인 진상의 탐구를 분명하게 기록하는 것은 원한과 증오를 부채질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진정한 우호와 평화를 실현하는 기초를 쌓는 데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또 "일본이 아무리 원폭의 참상과 핵무기 폐기를 부르짖어도, 침략전쟁의 역사를 정직하게 마주보지 않으면 다른 나라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는 어려울 것"이라고도 말했다.

반면, 후세대에게 일본의 침략과 가해의 역사도 함께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며 나가사키 시민들이 직접 설립한 민간자료관 '오카 마사하루 기념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을 소개하며, 자료관 관계자들의 수십 년에 걸친 활동에 감동했다고 말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는 조선인, 중국인을 위한 원폭희생자 추도비도 건립되어 있는데, 모두가 일본 시민이 세운 것이라며 민간 차원의 노력을 높게 평가했다.

현재 그는 나가사키 유스 대표단의 일원으로서 NPT 재검토회의 3차 준비위원회를 방청하고, 활동을 펼치는 등 핵 폐기 운동에도 참여하고 있다면서, "핵무기 폐기는 국경과 민족감정, 이념을 뛰어넘어 연대하고 전 세계를 설득해서 반드시 실현해야 할 우리 세대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원자 폭탄 투하 책임과 시민의 역할'을 주제로 발표한 재미 평화통일운동가인 정연진 액션 원 코리아(Action One Korea) 대표는 미국의 역사학계 및 당시 군과 정부에 있었던 핵심인물의 발언을 소개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사용한 야만적인 무기는 일본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윌리엄 대니얼 리히 해군 제독, 합참의장)
"일본은 이미 항복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끔찍한 무기로 공격할 필요는 없었다."(아이젠하워 장군)


그리고 미국의 핵 전문가인 워드 윌슨이 일본의 항복은 원폭보다 소련 요인이 더 컸다는 사실을 광범위한 자료 발굴을 통해 실증적으로 입증했다며, "당시 막강한 소련의 군사력을 고려할 때, 일본이 소련과 미국을 상대로 동시에 전쟁을 치른다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이것이 결정적으로 일본의 항복을 이끌어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 "미국의 원폭 투하 대신 미국 소련의 연합작전으로 일본의 항복을 받아냈다면, 독일 처리와 마찬가지로 4개 전승국의 합의에 따라 한반도가 아닌 일본이 분단 또는 공동 관리에 들어갔을 가능성이 크다"며, 핵무기 경쟁에서 우위에 선 미국의 자신감이 결국 미국의 한국 전쟁 개입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미국이 한국전쟁에 개입할 수 있었던 것도 원폭 덕택"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녀는 2015년 5월 NPT 재검토회의에 참여해 미국의 책임과 사죄 요구 및 국제적인 공동행동을 제안한 한국인 원폭피해자 심진태씨의 활동을 비롯해, 2016년 8월 원폭을 제조하고 투하한 미국 정부에 대한 소송을 추진했던 한국인 피폭자 1,2세의 활동과 그 의미를 소개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일본과 한국의 원폭피해자에게 사죄하지 않는 이유는 미국이 핵 패권을 추구하는 나라이며, 미국에게 핵무기는 '사용할 수 있는 무기'로 남아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책임을 묻는 소송 등 미국 법원에서의 소송은 "재판관할권 문제와 정부가 행한 행위에 면책을 부여한다는 주권면책특권으로 인해 쉽지 않은 상황이며, 역사상 성공적으로 진행된 원폭피해 소송도 없다"면서 "사법부만이 아닌 여론을 활용한 재판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했다.

또 미국은 역사적으로 반핵운동이 유럽만큼 활발하지는 않지만, 자성론이 일고 있다면서 미국 내의 반전 반핵 평화운동 세력과 연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미국의 원폭투하가 일본 대신 한반도를 분단시키고, 한국전쟁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직시하여, 한반도 평화시대를 열어가는 데 있어 원폭투하 책임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결합시키고 대중적 지지를 확산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워크숍에는 히로시마 미쓰비시 중공업 강제동원 피해자의 유족으로서 재판에도 참여 중이며, 그 자신이 원폭피해자의 2세인 박상복 경기도원폭피해자협의회 회장도 참석해 한국인 원폭피해자 및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활동을 소개하고, 많은 시민의 관심과 협력을 요청했다.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손해배상하라'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두고 미쓰비시 중공업과 일본 정부 등이 반발하고 있다. 또,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방침을 비롯해 연일 한일 간 역사전쟁이 전개되고 있다. 이 가운데 곧 광복 74주년 및 원폭투하 74주년을 맞이한다. 일제의 불법적인 식민지배와 침략전쟁 과정에서 희생된 피해자의 아픔을 공감하고 역사를 바로잡고자 하는 많은 노력은 앞으로도 끝없이 전진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일본 제국주의 파시즘의 폭력과는 별도로 미군의 원폭 투하가 가진 전쟁범죄와 비인도성, 그리고 핵무기 시대의 도래가 가져온 한국 현대사와 비극도 함께 성찰하는 계절이 되었으면 한다.

태그:#미국의 원폭 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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