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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과 시민들이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열린 ‘경제보복 평화위협 아베 규탄 촛불 집회’에 참석해 일제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무역보복으로 답한 아베 정권을 규탄하고 있다.
 학생과 시민들이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열린 ‘경제보복 평화위협 아베 규탄 촛불 집회’에 참석해 일제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무역보복으로 답한 아베 정권을 규탄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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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대법 판결로 촉발된 일본의 경제보복 파장이 거세다. 일본은 반도체 등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의 한국 수출 규제를 단행한 데 이어 한국을 화이트국가 그룹에서도 제외할 것임을 예고한 상태다.

일본의 이 같은 조치에 대해 지난 15일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를 통해 일본이 과거사 문제를 경제문제와 연계시킨 건 현명치 못한 처사로 규정하며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18일 청와대서 열린 여야 5당 대표 간 회동에서도 이 문제에서만큼은 협력해야 한다는 입장이 나왔다.

이번 한일 간 갈등에서 표면 상으로 드러나는 것은 경제적 조치들이지만 본질은 일제시대 때 있었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양국의 입장 차이다. 19일 고노 다로 일본 외상은 담화문을 통해 한국이 1965년 청구권 협정을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담화문 발표에 앞서 남관표 일본 주재 한국대사를 초치한 자리에서는 "한국이 국내 판결을 이유로 국제법 위반 상태를 방치하고 있다"며 이는 "2차 대전 이후의 국제질서를 뒤엎는 일과 같다"고 주장했다.
 
한국이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여기서 고노 외상이 말하는 국제질서는 1951년 전후 처리 과정에서 승전국인 연합국과 일본이 체결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의미한다. 당시 한국은 승전국의 지위를 얻지 못했고 전범국인 일본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조약엔 일본과 식민지 관계에 있던 국가의 재산 상 관계를 특별약정으로 처리한다는 규정이 들어가 있고, 이에 근거해 1965년 한일 기본조약과 더불어 한일 청구권 협정(정식 명칭은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이 체결됐다(이같은 협정을 체결하게 된 본질적인 이유는 당시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가 정치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때 일본으로부터 받은 3억 달러가 한국경제 성장에 큰 도움이 되었는지와 관련한 논란은 차치하고, 이 과정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미국의 역할이었다. 2차 대전 이후 냉전이 심화되는 과정에서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일본을 중심으로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공산주의 진영을 포위하는 경제·안보블럭 구축을 기획했고 이를 위해 일본과 한국의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국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한일 청구권 협정은 언급한 것과 같은 미국의 의도와 노력의 산물인 셈이다.

이 같은 일은 2015년에도 이뤄졌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한일이 갈등관계에 빠지자 미국은 다시 적극적으로 나섰다. 클린턴 정부와 부시 정부에서 안보관료로 잔뼈가 굵은 마이클 그린의 증언대로, 미국은 오랜 시간 동안 동북아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국과 일본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군사동맹체제 구축을 시도해왔다. 또, 한국·일본과 각각 동맹체제를 구축해 놓은 상태에서 한일 간에만 군사협력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면 소위 한미일 3각 군사동맹체제를 완성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있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은 한일 양국의 과거사 문제에 다시 한 번 개입했다. 2015년 2월 당시 미 국무부 서열 3위이던 웬디 셔먼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며 "과거의 적을 비난함으로써 박수를 받는 것은 쉬운 일"이라며 "이 같은 도발은 진전이 아니라 마비를 초래한다"며 한국 정부를 공격했던 일은 유명하다. 여기에 미 국방장관까지 가세하며 한일이 미래를 향해 나아갈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이 같은 미국의 압력은 결국 그 해 말 한일 간 위안부 합의로 귀결되었고 다음해인 2016년 11월 한일은 미국이 그토록 바라던 '군사정보공유협정(GSOMIA)'을 체결했다.

청구권 협정과 GSOMIA는 미국 작품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지금 다시 유사한 상황이 전개되려 하고 있다. 강제징용판결로 시작된 한일 간의 갈등이 심화되자 그동안 먼 산 보듯 하던 트럼프 정부도 다시 움직일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국 외교부가 미국의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워싱턴을 방문하며 분주한 탓도 있을 수 있지만 미국 입장에서 핵심은 GSOMIA다.

17일(현지시간), 미 하원 외교위원회는 한미일 3각 협력을 재확인하고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촉구하는 결의안 채택했으며 결의안에는 한미일이 인도태평양 지역의 발전을 위해 협력해야 할 중요한 동맹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한국 외교부 당국자를 만난 미국의 정부인사들도 한일 간 경제 갈등이 어떤 경우에도 안보분야로 번져 "교차오염(cross contamination) 돼서는 안된다"며 "GSOMIA가 흔들려선 안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변수는 미국의 전통적 정치권에 어울리지 않는 도널드 트럼프라는 인물이다. 그는 19일(현지시간), 한일 갈등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개입 요청을 받았다며 "양국의 요청이 있으면 돕겠다"는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나는 (그에게) 북한 문제는 물론 다른 여러 문제에도 개입하고 있는데 얼마나 많은 일에 내가 개입해야 하느냐고 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미국 대통령의 반응은 오랜 기간 한미일 군사동맹에 공을 들여왔던 미국의 외교안보세력의 태도와는 결을 달리 하는 것이다. 그 이유가 취임 초기부터 주창해 온 미국 우선주의 때문인지 전임 오바마 대통령이 해놓은 일은 일단 무시하고 본다는 태도에서 나온 것인지는 두고 봐야 한다.

문제는 반복되어 온 한일 역사 갈등에 대한 해결이 온전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애초, 2018년 대법원이 '일제에 의해 피해 받은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요지의 판결을 하게 된 원인은 한일 청구권 협정이다. 또, 졸속적인 일본군 '위안부' 합의도 오히려 한일 간 갈등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됐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제대로 해결하는 것이다. 지금 한일 간 갈등의 뿌리는 '일제시대 일본이 저지른 전일쟁범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점이다. 그 해결의 방식은 저지른 범죄에 대한 일본의 명백한 사과 그리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다. 더 이상 어떤 정치적 목적과 군사적 의도가 개입되어서는 안된다. 잘못된 역사가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박석진씨는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상임활동가입니다.


태그:#일본 경제보복, #강제징용, #일본군 위안부, #GSOMIA,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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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에 대한 감시와 비판적 제언'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Civilian Military Watch)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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