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매년 빈번하게 발생하는 산업재해의 현실을 담은 르포르타주 <노동자, 쓰러지다>에는 인상적인 구절이 나온다. 노동건강연대의 한 활동가가 스웨덴 사람에게 '일하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는데 그는 '사람이 일하다 왜 죽냐'고 되물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한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국제노동기구(ILO)의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3배 많고, 영국에 비해서는 15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세상 어딘가에서는 사람이 일하다 왜 죽는지 의아해하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그런 죽음이 일상인 셈이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5월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년 동안 산재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는 971명이었고, 그 중 가장 많은 376명의 노동자가 추락 사고로 인해 사망했다. 도대체 노동 현장에서 추락사는 왜 이렇게 많이 일어나는 걸까?
 
 2019년 7월 18일 방송된 EBS <다큐 시선> '추락하는 사람들'편 중 한 장면.

2019년 7월 18일 방송된 EBS <다큐 시선> '추락하는 사람들'편 중 한 장면. ⓒ EBS

 
반성 없는 건설현장, 추락사는 계속될 수밖에 

지난 18일 방영된 EBS <다큐 시선> '추락하는 사람들'편에서는 건설 현장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추락사를 비춘다. 방송 첫 장면에서는 지난 1일 있었던 '산업안전보건의 날 기념식'의 현장을 담고 있다. 현장에서는 일터의 사망사고를 절반으로 줄이자는 다짐이 나왔고,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경제 강국에 걸맞지 않는 재래형 사고로서의 추락사가 한국에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어 YTN의 2018년 3월 보도가 <다큐 시선> 방송 중에서 나왔다. 부산 해운대구의 건설현장에서 추락사가 있었다는 보도였다. 승강기와 함께 추락해 사망했다고 한다.
 
 2019년 7월 18일 방송된 EBS <다큐 시선> '추락하는 사람들'편 중 한 장면.

2019년 7월 18일 방송된 EBS <다큐 시선> '추락하는 사람들'편 중 한 장면. ⓒ EBS

 
해당 건물은 85층까지 지어질 예정이었고, 사고는 55층에서 일어났다. 사고 당일 노동자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건물 외벽에 유리를 설치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콘크리트 타설면이 통째로 떨어져 버려서 추락한 것이다. 작업발판대의 볼트가 55mm만큼 깊숙이 들어가야 하는데 10~15mm 정도밖에 박히지 않은 것. 그야말로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사고'였던 것이다. 

담당 경찰서인 해운대경찰서는 해당 사고에서 원청의 책임을 찾기 위해 수사를 진행했다. 시공계획서대로 공사가 이루어지는지 제대로 관리감독을 하지 않았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던 것이다. 이에 원청회사는 하청을 줬기 때문에 본인들 책임이 아니라며 책임을 부인했던 모양이다. 결과적으로 건설사 측의 담당자는 한 명도 구속되지 않았다. 

"이것도 다 돈이에요" 안전 위한 투자에 인색한 사회

안전함의 정도가 현장마다 천차만별인 것이 문제다. <다큐 시선> 제작진은 베테랑 현장 노동자를 따라가며 안전한 현장은 어때야 하는지 그의 말을 듣는다. 그는 "이게 다 돈이에요"라는 말을 자주 한다. 사소하지만 건축물을 지탱하는 중요한 설비들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돈이 많이 든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많은 현장에서는 돈을 아낄 방법을 궁리한다. 그런데 안전에 드는 비용마저 아끼는 바람에 사고가 나면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 아닐까.
 
 2019년 7월 18일 방송된 EBS <다큐 시선> '추락하는 사람들'편 중 한 장면.

2019년 7월 18일 방송된 EBS <다큐 시선> '추락하는 사람들'편 중 한 장면. ⓒ EBS

 
국내에는 산업안전보건법, 건설기술진흥법 등 건설현장에서 안전을 위해 지켜야 하는 법안이 이미 존재한다. 문제는, 위험한 부분을 고용노동부에 신고해서 내야 하는 벌금보다 그 부분을 개선시키는 데 드는 비용이 비싸다는 것이다. 결국 건설사 측에서는 차라리 벌금을 내고 만다는 식인 것. 

방송에서 비춘 장면을 보자. 사고가 나면 회사는 '거기(사고현장)는 원래 들어가는 곳이 아니다'라는 식으로 사고를 당한 노동자 탓하기 바쁘고,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이 허술했던 게 아니냐고 근로감독관에게 물으니 '우리가 어떻게 전국의 현장을 다 돌아보느냐'며 짜증 섞인 어투로 답변을 하고 만다. '취재를 하고 싶으면 본부에 물어보라'는 어이없는 답도 나온다. 모두가 이런 식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문제가 어떻게 해결이 되나 싶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의 말을 빌리면 현장에서 굉장히 높은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간단한 안전수칙이나 안전설비만 제대로 되어 있어도 사망까지 이르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그게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이 오늘날 한국 사회의 전근대적인 그림자가 아닐까.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물어보자. 일하다 사람이 죽지 않아도 된다. 아니, 죽지 않아야 한다. 그게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한국에서는 아직 아닌지 몰라도 말이다. 
 
 2019년 7월 18일 방송된 EBS <다큐 시선> '추락하는 사람들'편 중 한 장면.

2019년 7월 18일 방송된 EBS <다큐 시선> '추락하는 사람들'편 중 한 장면. ⓒ EBS

 
추락사 EBS 노동인권 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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