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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 평등 정의'가 새겨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자유 평등 정의"가 새겨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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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목소리를 견디지 못한 '높으신 분'들은 권한을 칼처럼 휘둘렀다.

19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5부(부장판사 박남천)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재판에서 김민수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 부장판사를 증인신문했다. 김 부장판사는 2015~2016년 법원행정처 기획제2심의관·기획제1심의관으로 근무하며 사법농단의 실행자로 움직였다. 그는 특히 사태의 시발점이었던 법원행정처의 국제인권법연구회 와해 시도에 깊숙이 관여했다.

국제인권법연구회는 2011년 8월 설립 후 빠르게 회원 수가 늘어나 4년 만에 그 수가 400명을 넘었다(법원행정처 2015년 8월 19일 자 보고서 기준). 양승태 대법원은 젊은 판사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고, 진보성향 판사들의 연구모임 '우리법연구회'의 후신이라며 이 연구회를 '문제'라고 판단, 개선과 대응방안을 고민했다. 그 중 하나가 법관의 연구모임 중복가입 해소였다. 예규상 중복가입은 금지였지만 사실상 죽은 조항이었다.

다르면, 반대하면 '문제'다?

김 부장판사의 법정 진술을 종합하면, 2016년 3월 그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지시로 동료 심의관들과 법원 내 연구모임 중복가입자 해소 방안을 논의했다. 당시 박상언 기획조정심의관(현 창원지법 부장판사)이 기획조정실 심의관 전원에게 '차장님이 대법원장님(양승태)과 처장(고영한)께 보고드렸다'고 말한 사안이었다. 두 달 뒤 박 심의관은 동료들에게 '차장님 지시'라며 법원 내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분야 연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김 부장판사는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젊은 판사 사이에서 관심을 집중 받는 편이라 다른 연구회도 개발해보자는 취지로 얘기가 나왔다고 이해했다"고 설명했다. 또 "임종헌 전 차장이 보기에는 (이 연구회가) 현재 대법원이 추진하는 정책을 너무 반대하는 것 아닌가 또 전문분야 연구회들이 고르게 성장하기보다는 국제인권법연구회가 과잉성장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실행'은 지지부진했지만, 법원행정처는 계속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주시하고 있었다. 김 부장판사 등 실무자들은 윗선 지시에 따라 수시로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 대응 방안>, <전문분야연구회 구조 개편 방안>, <국제인권법연구회 관련 대응방안> 등 보고서를 만들어냈다. 2017년에는 결국 중복가입 해소방안이 실행됐다(관련 기사 : '사법 독립' 스스로 흔든 대법원... 내부 반발 이어져).
 
 (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법관사찰과 재판개입 등 양승태 사법부 시절 여러 의혹에 연루된 이규진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23일 오전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되고 있다. 2018.8.23
 법관사찰과 재판개입 등 양승태 사법부 시절 여러 의혹에 연루된 이규진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2018년 8월 23일 오전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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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부장판사는 이때 임종헌 전 차장의 지시를 이규진 전 양형실장에게 전달받아 중복가입 해소 조치 공지글을 작성, 법원 내부전산망(코트넷)에 게시했다. 그는 "2월 국회가 열리는 때라 국회 답변 자료를 보고드리러 가는 김에 처장님께 공지글을 보여드렸다"며 "처장님이 '이거는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고 했다, 그때가 아마 목요일이었는데 이민걸 당시 기조실장이 내일 회의에서 논의해보고 알려줄 테니 오늘은 공지하지 말라고 했다"고 밝혔다.

다음날인 2017년 2월 10일, 이규진 전 실장은 그에게 '국회나 감사원으로부터 예산 지적이 있었다'는 내용 등을 추가해 공지를 게시하라고 했다. 김 부장판사는 이 예산 관련 문구를 두고 "중복 가입을 허용할지 말지는 정책 결정권자가 사법행정 범위 내에서 결정할 문제인데, 가입을 허용한다고 해서 예산이 왜 부적절하게 사용됐다는 것인지 잘 납득되지 않았다"고 했다. 중복 가입 해소 공지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는 뜻이다.

의문을 품었지만, 그는 지시를 충실히 따랐다. 김 부장판사는 최종 문구가 정해지기 전, 전산관리국 이상엽 정보화심의관에게 기술적으로 가능한지 검토를 부탁했다. 그는 "이 심의관이 '2016년도에 논의됐던 걸로 아는데 올해 시행하네, 피의 칼바람이 불겠구나'라는 취지로 얘기했다"고 했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들은 이미 중복가입 해소의 표적이 국제인권법연구회임을 알고 있었다.

'실행자'도 인정... "부적절했다"
 
 지난해 9월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양승태 대법원장 퇴임식이 진행되고 있다.
 2017년 9월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양승태 대법원장 퇴임식이 진행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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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일부 판사들은 양승태 대법원이 추진한 사법행정위원회 개선 요구를 꾸준히 하기도 했다. 그러자 임 전 차장은 '조직적 반대 아니냐'며 대응방안 보고서를 요구하기도 했다.

김 부장판사는 "임 전 차장이 연구회 활동하는 사람들 중에 양 전 대법원장에게 무조건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연구회를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다고 생각했다"며 "(중복가입 해소 조치 등은) 와해까지는 아니어도 견제, 제재 목적 정도로 생각하기 때문에 순수한 예규 집행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은 인정한다"고 증언했다.

법원행정처 윗선은 내부의 이견만 참지 못한 게 아니었다. 2015년 3월 대한변호사협회가 전관예우 방지를 위해 차한성 전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신고를 반려하자 임 전 차장은 '다른 실국에도 얘기가 됐다'며 김 부장판사에게 대한변협과 하창우 회장을 압박할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관련 기사 : "대법관 출신 변호사 안돼"... 변협, 신고서 최종 반려).

김 부장판사는 "임 전 차장이 (대한변협을 두고) 부정적인 말을 많이 했다"며 보고서에서 '꿈많은 돈키호테, 재정 파탄, 포퓰리즘' 등을 써가며 하 회장을 비난한 부분은 지시대로 쓴 것이라고 했다. 또 보고서 중 ▲ 대한변협-대법원 간담회 개최 중단 ▲ 대법원장의 변호사대회 불참 ▲ 대한변협 법률구조재단의 공탁출연금 지원 중단 등은 실제로 이뤄졌다. 김 부장판사는 이러한 지시가 기획심의관 업무인지, 또 적절한지를 묻는 검사의 질문에 "부적절하다"고 답했다.

이날 김 부장판사의 증인신문이 밤늦게까지 이어지자 양 전 대법원장은 "머리가 빠개지는 것 같아 견딜 수 없다"며 재판부에 퇴정명령을 요청했다. 검찰은 그가 "재판을 거부하고 있다, 이런 경우를 본 적이 없다"며 반발했지만 재판부는 양 전 대법원장 의견을 받아들여 오후 11시 45분 심리를 마쳤다. 김 부장판사는 8월 5일 다시 증인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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