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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 태국으로 명상 여행을 떠나 두 달간 세 곳의 명상 센터를 전전했다. 태국 북부, 중부, 남부에 위치한 세 곳은 운영 방식이 많은 부분 같았고 조금씩 달랐다. 처음 머문 명상센터는 치앙마이 도심에서 5km 떨어진 숲속 사찰 '왓 우멍(wat umong meditation center)'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입소한 나는 여기서 보름간 기거했다.

내가 명상 여행 떠난 이유
 
센터 간판
▲ 왓 우멍 명상센터 센터 간판
ⓒ 손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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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들어간 첫날 지도 스님이 좌선, 행선(걷기 명상), 호흡법, 절하는 법을 간단히 가르쳐 주지만 체계적인 코스는 없다. 자신에게 맞는 명상법을 알아서 찾고 알아서 연마하는 자율학습 시스템이다. 내외국인을 다 받는 이곳은 들어오고 나감도 자율이다. 짧게 하루나 이틀간 체험하고 가는 사람도 있고 길게는 한두 달 안거하는 이도 있다.

2×2m의 작은 독방(샤워, 화장실은 공용)에 하루 두 끼(아침, 점심, 오후는 불식이다)가 제공되는 1일 체류비는 250바트(한화 약 8000원), 흰색 명상복은 사거나(300바트), 대여(220바트) 해야 한다. 밥, 국, 반찬 두어 개의 식단은 무척이나 소탈하다. 하지만 하루 두 번뿐인 식사인지라 모든 명상자들에게 감개무량한 시간이다.

오후 불식의 배고픔은 며칠만 잘 견디면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는 30년간 즐기던 술 담배를 끊고 들어 왔는데 악몽같은 삼일을 지나자 겨우 몸이 진정 되었다. 특별히 센터 내에는 무인 상점이 있어 우유, 요구르트, 두유, 쥬스 등을 팔았고 야외 정수기 옆에는 신자들이 보시한 커피와 코코아 등의 봉지 차가 비치되어 언제든 타 마실 수 있었다. 
 
명상가가 지켜야 할 규칙과 조건이 빼곡하다.
▲ 명상센터 일정표. 명상가가 지켜야 할 규칙과 조건이 빼곡하다.
ⓒ 손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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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 일정표는 새벽 4시 반부터 밤 9시까지 빼곡하다. 그러나 이곳을 관리하는 스님들은 별다른 간섭이 없다. 휴식 시간에 잡담을 나누거나 핸드폰을 사용하여도 아무런 제지가 없다. 대체로 명상자들은 이런 점을 만족했다. 자율 시스템이지만 그외의 규율과 일정표는 알아서 충실이 따랐다.
 
 야외에 정수기와 각종 차가 비치되어 언제나 타서 마실수 있다.
▲ 야외 음료 시설, 삼층 건물의 일층은 태국인 명상홀, 2,3층은 여자 기숙사다.  야외에 정수기와 각종 차가 비치되어 언제나 타서 마실수 있다.
ⓒ 손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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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숙소와 내외국인 명상홀은 분리되어 있지만 하루 두 번 낙엽 청소와 식사는 함께 한다. 명상자 수는 매일 바뀌는데 많을 때는 50~60명, 적을 때는 10여 명 안팎이다. 대부분 홀로 입소하지만 가끔 친구, 연인, 가족이 함께 들어오기도 한다.

외국인은 유럽인이 대다수며 독일, 미국 사람들이 특히 많다(세 명상센터 동일). 먹고 살 만한 나라가 명상 인구도 많은 것이다. 초심자와 숙련자, 남녀 비율은 비슷했고 연령대는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했다.

나같이 직장 없는 한량은 드물고 방학과 휴가를 명상에 투자하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각별히 은퇴 후 가족을 떠나 홀로 명상여행을 다니는 서양 어르신들을 여럿 보았다.

그분들은 마치 인도인들의 인생 4주기 중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학습기와 가주기를 졸업한 뒤 세상사 인연을 정리하고 조용한 숲에서 은거하거나 유랑하며 내세를 준비하는 임서기와 유랑기를 맞이한 듯 보였다. 
 
좌선을 오래하여 몸이 무겁거나 통증이 올 때, 잠이 엄습할 때 걷는 명상이 도움이 된다.
▲ 걷는 명상을 하고있는 수련자들 좌선을 오래하여 몸이 무겁거나 통증이 올 때, 잠이 엄습할 때 걷는 명상이 도움이 된다.
ⓒ 손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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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인도에서 시작된 명상은 현재 유럽과 북미에서 사회적 트렌드가 되었다. 미국 인구의 18%(6000만명, 요가 포함)가 명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 된다. 타임지는 2003년 미국 내 명상 열풍을 이렇게 정의했다. '명상은 무한 효능이 깃든 과학이다'. 그리고 2014년 커버 스토리는 '마음 챙김 혁명'으로 명명했다.

불교 명상을 근간으로 하는 마음 챙김(mindfulness) 명상은 미국 심리치료가의 40% 이상이 치료 방법으로 사용하고 있다. 꾸준한 명상은 집중력과 창의력은 높여주고 통증과 스트레스는 완화되며 병이 생기기 전 예방하는 셀프케어(selp-care), 즉 면역력을 증진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의학적으로 검증 받아 주류 치료법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만병의 근원이라는 스트레스가 치유 된다면 이거야말로 만병 통치제가 아닌가. 
 
 남자 숙소앞 글귀.
▲ "마음을 제어 하는 자 인생을 통제 한다."  남자 숙소앞 글귀.
ⓒ 손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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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경우 명상여행을 떠나게 된 것은, 어른들이 들으시면 코웃음 치겠지만, '더 늙기 전에'라는 이유에서다. 50줄에 접어들며 몸 여기저기 늙음의 징후가 생기기 시작했다. 오랜 기간 방만 경영한 라이프 스타일을 지금 바꾸지 않으면 비참한 말년을 맞이 할 것이라는 회한이 들었다. 담마파다(Dammapada)에 이런 구절이 있다.
 
"젊었을 때 수행 하지 않고 재물도 모아두지 못하면 늙은 백로가 고기 없는 빈 못을 기웃거리듯 쓸쓸히 죽어 갈 것이다." (수행은 바른 행실, 재물은 정신적인 재산을 뜻함)
 
이득 없는 것을 쫒아 젊은 날을 허비한 나이기에 빈 못을 기웃거리며 쓸쓸히 죽어갈 늙은 백로는 미래의 내 모습이지 않은가. 내게 명상 여행은 한 살이라도 젊은 지금 바른 수행법을 배우고 정신적 재산이라는 말년 보험에 가입하는 것이다. 

"다음 휴가 때는 한 달 내내 명상에만 올인할 거야"
 
  가부좌 자세는 모든 주의를 기울여 명상 주제에 집중하게 해주는 가장 적합한 자세다.
▲ 명상중인 태국 처자.  가부좌 자세는 모든 주의를 기울여 명상 주제에 집중하게 해주는 가장 적합한 자세다.
ⓒ 손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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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도 하나의 예술이라면 나는 재능이라곤 1도 없는 사람이다. 10여 년 전 친구의 권유로 마음 챙김 명상으로 알려진 위빠사나 명상 1주일 코스를 시도한 적이 있다. 7일 내내 내 머리 속은 순도 99.9%의 잡념을 뽐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하루 한번 연습을 했다. 명상이 아니라 꾸역 꾸역 앉아서 버티는 시간이었다. 첫날 10분이 몇 달 지나 50분은 겨우 참고 앉아 있을 수 있었다. 허나 늘어난 시간은 어둠 속 잡념의 산속을 도돌이표로 더 오래 헤맨 것일 뿐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

절박감에 명상 여행을 계획했다. 길들여진 환경에서 벗어나 명상의 최적지에서 장기간 집중 수련할 곳을 찾던 중 태국이 눈에 들어 왔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므로 바른 방향을 알려주는 가이드북을 한 권 선정 했다. 오래전 위파사나를 지도하신 법사님이 번역한 '붓다의 호흡법 아나빠나삿띠'를 가이드 삼아 여행을 시작했다.

태국의 존경받는 붓다다사 선사가 집필한 이책은 호흡 명상 수행에 관한 책 중 전 세계적으로 가장 상세하고 체계적으로 되어 있는 안내서로 인증받고 있다.
 
 가부자가 익숙지 않은 사람은 의자를 사용 할 수 있다.
▲ 의자에 앉아 명상중인 서양 친구.   가부자가 익숙지 않은 사람은 의자를 사용 할 수 있다.
ⓒ 손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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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는 깨닫기 전에도 깨달음 이후에도 항상 호흡 수행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이 호흡 수행 방법을 아나파나사티경(입출식염경 入出息念經)에 상세히 설해 놓았다. 아나(ana)는 들숨, 아파나(apana)는 날숨, 사티(sati)는 마음 챙김을 뜻한다. 이것은 '마음이 호흡에 집중되도록' 하는 것이고 '수행자가 숨의 들이쉬고 내쉼에 마음의 초점을 맞추어' 마음을 고요하게 만드는 수행법이다. 잡아함경에는 호흡 수행을 이렇게 극찬한다.
 
"호흡 수행은 성자의 세계, 신들의 세계, 청정의 세계, 배움의 세계, 더 이상 배울것이 없는 세계, 삶 이 자체가 최상인 세계, 여래의 세계이다."

왓우멍에 입소한 후 나는 붓다다사 선사가 초보자들에게 권하는 호흡에 숫자를 붙이는 수식(數息)과 호흡의 접촉 지점에 집중하는 것을 명상 주제로 삼아 매일 반복 수련하였다. 여러 명상자들과 함께한 왓우멍에서의 보름간은 홀로 8개월 연습한 것보다 이익이 많았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들어와 같은날 퇴소한 라이언 고슬링을 쫌 닮은 인상 좋은 캐나다 젊은이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그간의 소감을 말했다.

"여기 있는 동안 너무나 좋았어. 딱 내 스타일이야. 내년 휴가는 한 달 내내 여기서 명상에만 올인할 거야!"

누구보다 진지하고 성실하게 명상에 임했던 그는 자신을 조절하는 법을 발견한 듯 눈빛을 반짝였다. 사람 좋고 날씨 좋은 이곳에서 단 하나 단점를 꼽으라면 비행기 소음이다.

치앙마이로 얼마나 많은 관광객이 오고 가는가를 알리는 이 소리는 명상센터와는 참 어울리지 않는 소리다. 하지만 일단 명상에 들어가면 내면이 내는 소음이 문제지 외부의 소음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면의 소음은 어리석음이라는 활주로에 불필요한 욕망이라는 비행기가 쉼없이 이착륙 하며 내는 소리다.

명상은 자신의 내면에 휴식을 주는 연습이다. 휴식(休息)은 나무 그늘 아래에서 숨쉬는 것이다. 꿈, 희망, 근심, 걱정 따위의 세속적 대상들에 몰두하던 마음을 전심전력으로 호흡에 묶어 두면 진정한 휴식인 고요함이 찾아든다고 가이드는 말한다.

고요함은 멈춤이다.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는데 내 마음은 결코 멈추질 않는다. 언제쯤 이 마음이 멈추려나. 다시 먼 길을 나선다.

태그:#명상 여행, #태국, #치앙마이, #왓 우멍 명상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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