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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회찬 의원님 보고싶습니다" 정의당 고 노회찬 의원 1주기를 맞아 김영숙 국회 환경미화노조위원장이 보내는 영상상편지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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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27일 고 노회찬 의원 발인 당일. 국회 본청 앞 한쪽에 19명의 청소노동자들이 나란히 선 채 무언가를 기다렸다. 국회를 찾은 고인의 운구행렬이다.

"그날 새벽 4시에 출근하는데 아들이 꼭 보라면서 기사 하나를 보내줬어요. 노 의원님 추모 기사였죠. 거기에 6411번 버스를 언급한 연설 전문도 같이 나왔더라고요. 새벽버스 타는 청소노동자, 투명인간 취급 받는 사람들... 모두 제 얘기였어요. 그걸 무려 7년 전에 저희들을 대신해서 얘기해주셨더라고요. 전 그 연설을 그분 돌아가신 후에야 알게 됐어요."

어느덧 1년이 지난 김영숙(64) 국회환경미화노조위원장의 기억이다. 언급된 연설문은 2012년 진보정의당 출범 당시 노 의원의 당 대표 수락연설이다. 새벽에 출근하는 청소노동자를 조명한 이 연설은 그의 명연설로 꼽힌다. 지난 17일, 기자를 만나 1년 전 기억을 풀어놓던 김 위원장은 대화 도중 수차례 휴지로 눈을 가렸다. 그는 "아직도 눈에 선하다"며 목이 멘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사실 그때 운구차를 배웅할 엄두도 못 냈어요. 근무시간이기도 했고, 더군다나 우리는 마음대로 활동할 수 없으니까. 나중에 빈소에 가서 문상만 할 줄 알았지... 그런데 그 기사를 읽고 나니 도저히 가만 있을 수가 없겠더라고요. 우리를 투명인간에서 사람 대접 받게끔 끌어내준 분인데 마지막 모습은 봬야 하지 않겠냐고... 그래서 시간 되는 사람들 모아서 바로 나간 거예요. 우리가 그 분께 할 수 있는 마지막 진심이었어요."
 
 영결식 당일 노회찬 의원을 떠나 보내고 있는 국회 청소 노동자들.
 2018년 7월 27일 영결식 당일 노회찬 의원을 떠나 보내고 있는 국회 청소 노동자들.
ⓒ 민주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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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 마석모란공원에서 진행된 고 노회찬 의원의 하관식에서 추모객 사이로 영정이 보이고 있다.
 2018년 7월 27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 마석모란공원에서 진행된 고 노회찬 의원의 하관식에서 추모객 사이로 영정이 보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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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청소노동자들의 운구행렬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그날 김 위원장은 밖에서 30분가량 서있었다. 하지만 정작 운구차를 직시한 시간은 몇 초 채 되지 않는다. 영정 사진을 보자마자 쏟아져버린 눈물 탓이다. 그는 그 자리에서 고개를 떨군 채 한참동안 "어떻게 보내드리냐"며 오열했다. 지난해를 곱씹던 김 위원장은 "우리를 그렇게 행동하게 만든 건 일상에서 느껴온 그의 진심이었다"고 말했다.

그가 봐왔던 고 노회찬 의원은 어떤 인물일까. 김 위원장의 기억 속에 있는 노 의원의 모습을 함께 되짚어봤다.

"노회찬 의원은 다른 의원들과 달랐다"
 
 김영숙 국회 환경미화노조 위원장이 전임 위원장 활동을 하며 사용하는 노조사무실. 사무실에는 청소노동자들을 위한 안내 포스터들이 붙어 있다.
 김영숙 국회 환경미화노조 위원장이 전임 위원장 활동을 하며 사용하는 노조사무실. 사무실에는 청소노동자들을 위한 안내 포스터들이 붙어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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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5-1호. 국회 환경미화노조 사무실이 위치한 곳이다. 국회 내에서도 조금은 생소한 공간이다. 국회의원회관에 들어가기 위해 '915-1'호를 적어 안내데스크의 직원들에게 건네자, "이곳이 어디냐?"며 한 번씩 되물었다.

이름만큼이나 내부도 어딘가 낯설다. 915호는 청소관리실 공간이다. 그 옆에 '-1'을 달며 청소관리실의 약 1/3을 간이 벽으로 나눠 공간을 냈다. 김 위원장은 "이 공간도 노회찬 의원님 덕에 얻을 수 있었다"고 했다.

"2016년 총선 때, 국회사무처에서 저희보고 노조 사무실과 청소미화 휴게실을 비우라고 했어요. 본청 내에 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유였어요. 그런데 이 공간 모두 없어지면 저희는 이 넓은 국회 안에서 쉴 곳, 머물 곳 하나 없어지는 거거든요. 나가라고 할 때 대안이 있었냐고요? 없었죠. 그냥 빨리 비우라고만 했죠."

때마침 총선이 끝난 2016년 5월 말 경, 노회찬 의원이 김 위원장을 비롯한 청소노동자들에게 함께 점심을 먹자고 제안했다.

"그때 의원님께 처음으로 이 고민을 얘기했어요. 절박하기도 했지만, 의원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으니까 터놓고 말할 수 있던 거였죠. 그때 의원님께서 '잘 안 될 경우, 내 사무실을 같이 쓰자'고 하셨어요. 동시에 당신이 우리를 같은 동료로 생각한다는 말도 해주셨고... 그 말 하나가 정말 큰 힘이 됐죠. 그날이 저희 청소노동자들이 의원님과 더 가까워질 수 있던 계기였어요."

이후 관련 기사가 보도되고, 노회찬 의원을 비롯한 여러 의원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면서 우려할 만한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휴게실과 사무실은 지금의 국회 의원회관 9층으로 옮겨졌다. 

"의원님께서 해주신 말씀 중에 '당신이 있는 한 우리 청소노동자들 외롭게 하지 않겠다'고 하신 게 제일 기억에 남아요. 살면서 언제 이런 말을 들어보겠어요. 외롭게 하지 않겠다는 말을. 투명인간 취급 받던 우리들을 가장 인간답게 대해준 분이었죠. 연말 되면 연하장도 보내주셨고요, 여성의 날 때는 장미꽃도 선물해주셨어요. 아, 연하장 보여드릴까요?"
 
 김영숙 국회 환경미화노조 위원장이 보관하고 있던 고 노회찬 의원에게 받은 2018년 연하장.
 김영숙 국회 환경미화노조 위원장이 보관하고 있던 고 노회찬 의원에게 받은 2018년 연하장.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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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년 전에 받은 것인데도, 마치 그 위치를 외우고 있는 듯 서랍 속에서 곧장 꺼내어 왔다. "계속 갖고 계시나 봐요?"라고 묻자, 그는 "그럼, 절대 못 버리죠"라고 했다. 연하장에는 노회찬 의원의 친필 사인이 적혀 있었다.

김 위원장은 노 의원을 떠올리며 "다른 의원들과는 달랐다"고 했다. 인간 노회찬이 곧 국회의원 노회찬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편했고, 든든했고, 의지할 수 있었다고 했다. 노 의원을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겠느냐고 묻자, 그는 "옆집 아저씨 같았다"며 웃었다.

"제가 의원님을 처음 뵌 건 2011년 즈음이었어요. 그때부터 2년간 정의당 의원실 청소업무를 했죠. 저를 포함한 동료들이 그곳에서 고무장갑을 끼고 청소하고 있으면, 노 의원님이 먼저 와서 고생한다며 손을 잡아주셨어요. 그럼 저희는 고무장갑이 더러우니까 죄송하다면서 손을 빼려고 하죠. 그런데도 노 의원님은 거리낌이 없었어요.

본관 2층에 원내대표실이 있거든요. 거기서도 마찬가지였어요. 다른 의원님들은 바빠서 눈길 한 번 안 주시고 지나치시는데, 의원님은 그런 적이 없었어요. 꼭 멀리서도 먼저 저희를 알아보시고 다가와주셨어요. 이렇게 진정으로 사람대우 해주셨던 분이에요. 이런 사람, 앞으로도 만날 수 있을까요?"

노 의원이 없는 지금의 국회는 어떨까. 청소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는 이가 있을까? 김 위원장의 대답은 간명했다.

"솔직히 없죠. 노회찬 같은 분은 그분 한분이지... 또 있을까. 만날 수나 있을까."

"노회찬 의원이 있었더라면..."
 
 김영숙 국회 환경미화노조 위원장이 국회 로고가 새겨진 직원임을 증명하는 국회 출입증.
 김영숙 국회 환경미화노조 위원장이 국회 로고가 새겨진 직원임을 증명하는 국회 출입증.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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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 인간 취급 받으며 휴게실과 사무실에서 쫓겨날 위기까지 처했던 청소노동자들은, 이제 엄연한 국회 식구다. 2017년 1월 1일, 국회가 청소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면서 생긴 변화다. 이들은 2016년 말까지 사회적 기업 소속의 용역노동자였다. 국회가 1981년 청소업무를 민간에 도급계약으로 맡긴 뒤 35년 만의 일이다.

"많은 게 바뀌었어요. 저는 2006년에 입사했거든요. 그땐 용역 소속이었을 뿐더러, 노조도 없고, 인권도 없을 때였죠.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하늘과 땅 차이예요. 처우나 복지는 물론이고,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감도 사라졌죠. 아프면 병가도 쓸 수 있고요, 직접 국회에 우리 목소리를 낼 수도 있어요. 국회 직원들이 우리를 대하는 태도도 정말 많이 바뀌었어요. 이전에는 국회 내 카페에 앉아있는 것조차 눈치 봤거든요. 누가 제게 지금은 어떻냐고 물으면 '천국 같다'고 말해요."

'노회찬 의원이 있었더라면' 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래도 아직 개선돼야 할 것도 참 많아요. 산재를 줄이기 위해 필요한 인력 충원 같은 것들. 물론 다른 의원님들도 많이 도와주시겠지만, 역시 '노 의원님이 살아계셨더라면'이라는 생각은 지울 수 없어요. 300명의 의원님들 중에 우리에게 같은 직원이라고 해주신 유일한 분이었으니까. 살아계셨더라면 이 크고 작은 변화들을 함께 해나갈 수 있었을 테니까..."

그는 1년 중 어느 때에 노회찬 의원을 떠올렸을까.
   
 김영숙 국회 환경미화노조 위원장이 국회 의원회관 5층에 있는 여영국 의원실 앞에서 노회찬 의원을 추억했다. 지금은 고 노회찬 의원의 지역구를 이어 받은 여영국 의원이 510호를 사용하고 있다.
 김영숙 국회 환경미화노조 위원장이 국회 의원회관 5층에 있는 여영국 의원실 앞에서 노회찬 의원을 추억했다. 지금은 고 노회찬 의원의 지역구를 이어 받은 여영국 의원이 510호를 사용하고 있다. 벽에는 노회찬 의원 1주기 추모식 안내 포스터가 붙어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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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님이 국회의원회관 5층에 계셨어요. 지금도 제가 그곳을 포함해 현장 순회를 돌거든요. 그때마다 5층을 가면 의원님 생각이 참 많이 나요. 그리고 제가 새벽에 출근할 때마다 6411번 버스를 보거든요. 새벽 4시에 운행하는 그 버스. 볼 때마다 의원님 연설이 생각나요. 이것 외에도 이번 여성의 날 때도 그렇고... 정말, 매 순간 떠오르는 잔상이 있어요."

그는 "노회찬 의원님이 저희들에게 힘이 돼주셨던 것을 발판삼아, 우리 청소미화들의 업무가 더 나아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우리 국회 청소미화원들이 청소미화 업무에서 더 좋은 선례들을 남길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그에게 조심스레 마지막 질문을 건넸다.

"노 의원님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김 위원장은 머쓱한지 짧게 웃었다. 이윽고 두 눈을 창가에 둔 채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2분여 지났을까. 그는 "아, 눈물부터 나오려고 하는데..."라며 또다시 휴지를 집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의원님 보고 싶고, 또... 늘 지켜봐주시고, 많이 응원해주실 거라고 저희들 기대합니다. 의원님,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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