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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준(1883~1921)은 몽골에서 활동한 세브란스 출신 의사이자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몽골에서 '까우리 의사'로 불리며 몽골 왕궁에까지 출입하면서 몽골 왕족들의 두터운 신임을 확보했다. 동의의국을 개원하여 몽골 사회에서 의술을 베풀면서 두터운 신뢰를 쌓았고, 이를 토대로 각지의 애국지사와 긴밀한 연락관계를 유지하면서 비밀 항일운동을 도왔다. 신한청년단 대표로 김규식에게 운동자금을 지원하기도 했고, 소비에트 정부로부터 확보한 코민테른 자금을 운송하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그는 의열단에도 가담하여 활약했는데, 그 모습은 수년 전 영화 '암살'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 78쪽.

'몽골의 슈바이처'로 불린다는, 몽골 최고 훈장인 '에르테닌 오치르'를 받을 정도로 의료환경이 열악했던 몽골 의료에 큰 기여를 했다는 독립운동가 의사 이태준. 그가 동의의국을 개원해 활동했던 곳은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이다. 2000년, 그의 업적을 기리는 동시에 기념하고자 재 몽골한인회와 연세의료원 주축으로 울란바토르시 복드 칸에 이태준기념공원을 건립했다.

공원에 기념관도 개관했다. 그의 생애와 활동을 조명하고자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자료는 그다지 많지 않다고 한다. 이태준이 운영했던 동의의국 터 역시 어디인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니 아쉬움은 더욱 크기만 하다.

그가 태어나 자란 함안의 생가 터는 저수지 조성(명관 저수지)으로 수몰되었으며, 세브란스 입학 전까지 한학을 공부한 것으로 알려진 도천재(함안군 군북면)에서의 행적 역시 뚜렷하지 않다고. 국내에서의 그의 흔적 또한 찾기가 쉽지 않다니 아쉽다.

워낙 많이 알려진 이태준에 대한 재조명이 이런데 다른 분들에 대한 현실은 오죽할까. 언제쯤이면 우리는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해 자신의 삶은 물론 가족의 안전한 삶 또한 바친 독립운동가들을 제대로 조명할 수 있을까? 독립운동 관련 책들을 읽을 때마다 생각하곤 한다. 이 책 <근대의학과 의사 독립운동 탐방기>(역사공간 펴냄)는 그래서 반갑다.

'제중원 134주년과 3·1운동100주년을 맞이하여 의사 독립운동을 발굴·정리하면서 근대의학과 국내외 의사 독립운동 유적에 대한 답사 안내서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의 취지의 책이다.
  
<근대의학과 의사 독립운동 탐방기> 책표지.
 <근대의학과 의사 독립운동 탐방기> 책표지.
ⓒ 역사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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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의사학과'는 국내 의과대학 유일의 의학사 전문교육 기관으로 우리의 의학 역사 교육과 관련 책을 발간해오고 있다. 저자는 책을 위해 2년 여간 국내는 물론 중국과 러시아, 몽골 등 독립운동 역사와 맞물려 있는 현장들을 여러 차례 탐방했다고 한다.

책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청사가 있었던 중국 상하이를 시작으로 우리나라 강원도까지, 일제강점기 당시 의술 현장인 동시에 독립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현장들과, 관련 독립운동가들을 기록한다.

이런 이 책을 읽는 내내 아쉬움과 안타까움 그리고 씁쓸함이 되풀이 되었다. 도시개발과 무관심으로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이 되어버린 독립운동 현장들과 제대로 조명되지 않아 잊힌 독립운동가들을 많이 기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수원에 위치한 화성행궁은 워낙에 유명한 곳이지만, 이곳에 일종의 도립병원인 수원 자혜병원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일제는 조선에 건너온 일본인의 치료와 식민 지배의 정당화를 위하여 화성행궁의 봉수당 등을 차출하여 병원을 운영하였다. 병원에는 일제의 자비로운 은혜에 감사하라는 자혜병원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여기에 조선의 궁을 빼앗는다는 의미도 있었으니 일제의 입장에서는 일석이조에 해당하는 일이었다.

물론 조선의 민중 역시 일제의 이러한 의도를 모를 리 없었다. 자혜병원 앞에서의 시위는 기생이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29일, 수원 기생조합에 소속된 기생들은 정기검진을 핑계로 자혜병원으로 향했다. 이들은 김향화를 필두로 수원 경찰서 앞에서 먼저 만세를 외치고... (중략) 이러한 일에도 불구하고, 수원 자혜병원은 나날이 커져만 갔다. 만세 시위가 있고 4년 뒤인 1923년에는 아예 봉수당과 인근 행각을 허물고 벽돌 건물을 신축하였고, 독립 후에도 수원의료원으로 그대로 이용되었다. 이후 1990년대를 지나며 화성행궁 복원 사업이 진행되었으며, 이에 따라 수원 자혜병원이 세워지기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148쪽.

화성행궁처럼 비교적 현대에까지 일제강점기 흔적이 뚜렷했다는 곳에서마저 관련 기록조차 하지 않아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지게 하는 우리의 부실한 역사인식이라니... 참고로 이 책 출간 2019년 2월 현재 '이러한 역사는 수원행궁의 안내문에도 나와 있지 않다'고 한다.

이처럼 복잡한 심정으로 읽었기 때문일까. 이태준에 이어 만나게 되는 배동석에 대한 이야기들과 책에 실린 사진 두 장이 유독 안타깝게 와닿는 것은.
 
배동석 생가를 알려주는 표지판(책에서)
 배동석 생가를 알려주는 표지판(책에서)
ⓒ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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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동상시장 내 배동석 생가 터. 전신주에 작은 안내판이 보인다.(책에서)
 김해 동상시장 내 배동석 생가 터. 전신주에 작은 안내판이 보인다.(책에서)
ⓒ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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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의하면 '함께 만세운동을 펼쳤던 대부분의 학생들이 6개월 내외의 징역형을 받았던 것과 달리 배동석은 1년형을 선고받았을 정도로 3·1운동에서 주역으로 활약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168쪽)' 독립운동가이다.

국가가 아닌 군민들에 의해 설치된 표지판. 그것도 모교인 '세브란스연합의학전문학교'가 '경성연합의학전문학교'로 잘못 기록되어 있고, 폐결핵이 폐렴으로 잘못 적혀 있다는 내용을 읽으면서 우리 독립운동가들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도 들었다.

중요한 역사 현장임에도 그 흔적조차 쉽게 찾지 못할 정도로 바뀌어버렸거나 잊힌 것은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라도 누군가 찾아내 기록하지 않으면 세월이 덧입혀져 더욱 깊게 묻힐 것이다. 책의 취지와 기록이 귀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이런 이 책은 의사 독립운동가들과 독립현장, 우리의 근대의학 도입 초기 현장들을 한곳에 모아 기록했다는 점에서 의학사에 특별한 의미가 되리라.

덧붙이면, 중국이나 몽골 등 국외의 경우 국내에서 갈 수 있는 방법이나 소요 시간, 위치 등 탐방에 도움될 정보를 실었다. 참고하면, 이태준 기념공원이 있는 울란바토르까지는 3시간 10분 정도가 소요되는데 인천에서 직항이 있다. 여행하기 좋은 때는 6월에서 8월까지라고. 국내 현장들의 경우 자세한 주소까지 수록, 찾아가기 쉽게 했다.

근대의학과 의사 독립운동 탐방기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의사학과 (엮은이), 역사공간(2019)


태그:#이태준(독립운동가), #배동석(독립운동가), #제중원, #김해 동상시장, # 3·1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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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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