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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생, 나는 어떤 여자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어. 그것이 살아남을 이유야."

지난 5월 17일, 대만에서 아시아 최초로 동성결혼 합법안이 통과되었다. 불과 33년 전만 해도 대만은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한 성소수자 인권운동가 치자웨이를 구속하는 나라였다. 그 이후로 대만에서는 적극적으로 성소수자 인권 운동이 일어났다. 이번 변화는 오랜 기간 진행된 대만의 동성 결혼 합법화 운동인 '혼인평권 운동'이 결실을 맺는 날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우리나라에서는 대만 최초로 커밍아웃한 레즈비언 작가 구묘진의 <악어 노트>가 출간되었다. <악어 노트>는 성정체성과 사회적 규범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인공 라즈의 내면을 그린 소설이다. 악어의 성별은 부화할 때의 온도에 따라 달라진다. 남성과 여성 그리고 이성애만 있는 사회에서 라즈는 자신을 악어라고 생각한다.

어쩌다 대만의 악어가 대한민국에 오게 되었을까? 지난달 27일 '악어 노트'를 펴낸 퀴어 페미니스트 움직씨 출판사의 나낮잠, 노유다 대표를 만났다.
 
 움직씨 출판사의 공동대표 나낮잠(위), 노유다(아래)
 움직씨 출판사의 공동대표 나낮잠(위), 노유다(아래)
ⓒ 움직씨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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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씨 출판사가 <악어 노트>를 만나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2007년, 노유다 대표는 대만국제여성영화제에 참여했다. 그때 한 자원봉사자와 친해졌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장소들을 소개했고, '자스민'이라는 헌책방을 둘러보게 되었다.

"그 친구가 어떤 책을 무슨 유물처럼 꺼냈는데, 그게 1996년에 나왔던 구묘진 작가의 <몽마르트 유서>였어요. 레즈비언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대만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공감하고 좋아한다고 알려줬어요. 그 친구가 작가에게 갖고 있는 존경심이 느껴지더라고요." - 노유다 대표

서양의 문화와 문학은 어디에서든지 소개되기 쉽다. 하지만 비서구권의 문화는 그 안에서도 잘 소개되지 않는다. 구묘진 작가는 대만인 레즈비언 작가였다. 노유다, 나낮잠 대표는 아시아와 LGBTQI 진영의 교차점에 있는 이 작가를 우리나라에 소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구묘진 작가의 작품 출판저작권자를 수소문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구묘진 작가는 이미 죽었고, 자녀가 따로 없어서 유가족 협회가 구성될 때까지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었다.

움직씨 출판사는 책을 출간하기로 결정한지 2년 만에 한국 독점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그런데 <몽마르트 유서>보다 <악어 노트>가 먼저 나오게 되었다. <악어 노트>의 주인공 라즈의 삶이 현재진행적인 논의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라즈는 젠더퀴어와 레즈비언 섹슈얼리티가 겹치는 부분에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번역은 나낮잠 대표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나낮잠 대표는 청소년 문학을 가르치던 중 대만의 여성 작가 린하이윈을 알게 되었고, 그녀의 책이 좋아 노유다 대표에게 선물하기까지 했다. 작품과 번역이 너무 좋아서 두 대표는 이번 <악어 노트>를 제작할 때, 린하이윈 책의 번역가를 섭외했다.
 
 움직씨 출판사에서 출간된 구묘진 작가의 『악어 노트』
 움직씨 출판사에서 출간된 구묘진 작가의 『악어 노트』
ⓒ 움직씨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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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에서 번역은 고유한 영역이다. 완성된 번역을 편집자가 너무 많이 수정하면 오역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움직씨 출판사에게는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이 한 가지 있다. 바로 당사자들이 상처받지 않는 언어로 책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번역되고, 출판된 퀴어 문학들이 없는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만든 이가 당사자가 아니라서 생기는 오류가 있었죠. 정체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니 차별적인 언어가 문제의식 없이 사용되기도 했고요. <악어 노트>를 내면서도 더 이상 당사자인 독자들이 읽고 상처 받는 문장은 흘려보내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 나낮잠 대표

책을 펴내는 데에 있어 두 대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 가지가 더 있었다. 바로 디자인이었다. 보통은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부분이지만, 움직씨 출판사는 다른 비용을 줄여서라도 디자인 비용을 충분하게 잡으려 노력한다.

"책의 옷에 불과하지만, 제작 전반에 걸쳐서 평가 받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무엇 하나 허투루 만들지 않고, 잘 만든 책이 퀴어 당사자 독자들에게 일종의 프라이드가 되었으면 합니다." - 노유다 대표
 
 『악어 노트』의 굿즈 평등혼인증
 『악어 노트』의 굿즈 평등혼인증
ⓒ 움직씨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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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의 언어와 세련된 디자인이 움직씨 출판사 책의 가장 큰 특징이다. 여기에 더해 눈을 이끄는 것은 바로 굿즈다. 움직씨 출판사는 책을 낼 때마다 다양하고 예쁜 디자인의 굿즈들을 함께 만든다.

이번에는 대만의 동성결혼 법제화에 맞춰 평등혼인증을 제작했다. 지금의 우리나라에서는 동성, 퀴어 연인의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다. 평등혼인증은 차별적인 대한민국의 현행법이 인정하지 않는 혼인을 증명하기 위해, 그리고 우리나라 역시 대만처럼 평등한 혼인이 가능하길 바라며 제작되었다. 보통은 <악어 노트>를 구매하는 독자들에게 증정되지만, 의외의 인물이 평등혼인증을 가져가는 일도 생겼다.

"이번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저희 부스를 찾아온 어떤 분이 평등혼인증을 꼭 갖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으셨어요. 대만에서 오셨다고 해서, 멀리서 오신 손님이니 제가 한 권 드리겠다고 했죠. 그렇게 서로 명함까지 교환하게 되었는데, 사실은 당신이 대만에서 구묘진 작가의 <몽마르트 유서>를 처음으로 펴냈다고 하시는 거예요. 알고 보니 도서전에서 컨퍼런스도 하신 대만의 출판인 렉스하우(Rex how)씨였어요." - 노유다 대표
 
 움직씨 출판사의 구묘진 작가 초상
 움직씨 출판사의 구묘진 작가 초상
ⓒ 움직씨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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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 노트>의 인물들은 모두 악어다. 라즈와 친구들은 사회적으로 터부시되는 존재이기 때문에 불행하고, 죽음을 생각한다. 그래서 이 소설은 절박하다. 끝내 소설은 언론에 나타난 악어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악어 노트>는 구묘진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다. 작가 역시 1995년, 파리에서 유학하다 <몽마르트 유서>를 남기고 26세의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노유다 대표는 대만에서도 적을 둘 곳이 없고, 유럽에서도 적을 둘 곳이 없는 구묘진 작가의 상황이 그녀를 내몰았던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움직씨 출판사의 두 대표는 작가가 가졌을 절망에 공감했다. 한국 역시 퀴어와 여성에게 친화적인 곳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도 항상 떠나고 싶은 곳이거든요. 그런데 한국어는 우리가 생각하고, 표현하는 가장 기본적인 언어니까 계속 돌아오게 되는 것 같아요. 우리의 첫 번째 언어에 대한 애정과 이해로 한국을 움직이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돼요. 움직씨 출판사의 가장 큰 목표가 10년을 버티는 거예요. 스스로 어느 정도 마무리 했다는 느낌을 가지려면 그 정도 걸리는 것 같아요. 이 기간 동안 독자님들도 많이 살아 남아주시고, 저희도 살아남겠습니다." - 노유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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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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