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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색. 2008년 애니메이션으로 보았던 이란 소녀 마르잔 사트라피의 성장기 <페르세폴리스>에는 빨간 색이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난 내 마음엔 '빨강'의 이미지가 새겨졌다.

혁명과 전쟁, 억압과 공포로 점철된 이란의 현대사는 핏빛 빨강을 떠오르게 했고, 이를 온 몸으로 겪어내면서도 자유를 추구해온 마르잔의 열정 역시 빨간색으로 느껴졌다.

올해 두툼한 한 권의 책으로 재발간 된 <페르세폴리스>(휴머니스트, 2019)의 표지도 빨간색이었다. 빨간색에 이끌려 책으로 마르잔을 다시 만났다. 이번에도 마르잔이 뿜어내는 자유 의지가 감동적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유독 한 지점. 마르잔이 자유 뿐 아니라 삶의 의지를 완전히 상실하는 지점에 눈길이 갔다.

핏빛 전쟁 속에서도 피어났던 마르잔의 열정을 꺾은 건, 전쟁의 공포도, 지독한 외로움도 아니었다. 그건 먼 나라 이란에만, 폭력과 억압이 가득한 시대에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 우리 사회에도 만연해 있는 그 무엇이었다.

20세기 후반 이란에서 살았던 저자의 자서전적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이 2019년 대한민국에서 재발행된 이유를 조금은 알 것만 같았다. 

혁명의 배신과 전쟁의 폭력

아빠 차가 캐딜락인 게 부끄럽고, 가정부가 함께 식사하지 못하는 걸 부조리하다 느꼈던 이란 소녀 마르잔. 마르잔은 세상의 불평등을 바로잡기 위해 '선지자'가 되기를 꿈꾸던 신앙심 깊은 아이였다.

마르잔이 10살 쯤 되었을 때 부패한 팔레비 왕조를 몰아낸 이슬람 혁명이 일어난다. 마르잔과 가족들은 혁명 후 세상이 보다 좋아질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혁명 후 몰아닥친 건 이슬람 원리주의에 의한 억압, 그리고 내부의 혼란을 외부로 치환시키기 위한 명분 없는 전쟁이었다.

죄없는 사람들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마르잔은 신에 대한 믿음과 '선지자'의 꿈을 내려 놓는다. 학교에선 히잡 착용이 의무화되었고, 마르잔은 몸을 꽁꽁 싸매고 외출을 해야만 했다. 또한, '교재, 교수진 등 교육시스템이 퇴폐적'이며 '젊은이들이 이슬람의 길을 제대로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p78)'는 이유로 대학이 폐쇄된다.
 
나는 똑똑하고 자유분방한 여성이 되고 싶었다. 또 하나의 다른 꿈 하나가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78쪽)
 
그렇게 사회는 마르잔의 꿈을 앗아간다. 하지만, 꺾인 꿈도, 공습시마다 방공호로 숨어들어야 하는 공포도 삶에 대한 마르잔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억압 속에서도 마르잔은 금지된 서양음반을 몰래 사서 들으며 자신의 세계를 지켜나간다.
 
 <페르세폴리스> (마르잔 사트라피 저, 박언주 옮김, 휴머니스트, 2019)
 <페르세폴리스> (마르잔 사트라피 저, 박언주 옮김, 휴머니스트, 2019)
ⓒ 송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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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선 세계에서의 혼란

마르잔이 14살이 되었을 때, 가족들은 마르잔을 오스트리아로 유학보낸다. 떠나는 마르잔에게 할머니는 "늘 품위를 잃지 말고, 네 스스로에게 정직해지도록 해라(155쪽)"라고 당부한다.

마르잔은 오스트리아에서 실로 오랜만에 원하는 옷을 입고 원하는 노래를 마음껏 들을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한다. 하지만, 그토록 갈구했던 자유는 오히려 혼란으로 다가온다.
 
그들과 비슷해지고 애를 쓰면 쓸수록, 나의 문화로부터 멀어지는 것 같았다. 나의 부모님과 나의 뿌리를 배신하고, 내 것이 아닌 놀이에 속수무책으로 빠져드는 것 같았다. (199쪽)
다 잊고 싶었고, 내 과거도 지우고 싶었다. 하지만, 내 무의식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200쪽)

결국 마르잔은 어느 날 파티에서 자신을 '프랑스인'이라고 소개하고 만다. 하지만, 스스로를 속일수록 공허해지던 마르잔은 오스트리아 유학 1년이 지난 시점에서 마침내 "난 이란 사람이고 그게 자랑스럽다구!"(203쪽)라고 외친다.
 
나는 1년 만에 처음으로,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할머니 말씀이 무슨 뜻인지 똑똑히 깨달았다. 나 자신에게 정직하지 않으면, 그 어디에도 동화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203쪽)

그 후 마르잔은 자유분방한 친구들과 어울리고 남자친구도 사귀지만 마약에 빠지고 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르잔은 남자 친구가 마약 거래에 자신을 이용해왔음을 알아차리고 이별을 한다.

마침 돈까지 떨어진 마르잔은 노숙을 할 정도로 방황하며 괴로워한다. 하지만 정체성 혼란, 사랑했던 남자와의 이별, 지독한 고독 속에서도 삶의 의지는 내려놓지 않는다.

아무것도 아닌 나

결국 마르잔은 살기 위해 가족이 있는 이란으로 되돌아온다. 하지만, 무기력감은 점점 심해져갔다. 어느 날 그녀는 친구들과 자신이 더 이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오스트리아에서의 자유분방한 삶에 대해 '창녀와 다른 게 뭐니?'라고 반문하는 친구들. 자신의 삶의 경험을 존중해주지 않는 사람들의 반응에 마르잔은 깊은 절망에 빠져든다.
 
 내게 닥친 불행은 한마디로, '난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사실이었다. 나는 이란에서는 서양 여자였고, 서양에서는 이란 여자였다. 정체성이라곤 없었다. 왜 사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281쪽)

전쟁의 공포 속에서도,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의 억압에도, 홀로 지내는 외국생활의 어려움 속에서도 살고자 했던 그녀. 그런 그녀가 삶의 의지를 상실한 그 순간은 바로 이 지점이었다. 나의 경험이 존중받지 못하고,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당했을 때, 마르잔은 자신의 정체감을 완전히 상실하고 자살을 시도하고 만다.

다행히 마르잔은 우울증 약 한 병을 들이키고도 죽지 못한다. '난 죽을 팔자가 아님'을 알게 된 마르잔은 '내 인생은 내가 살아야 해(282쪽)'라고 다짐한다. 운동도 하고, 대학에서 그래픽 아트를 공부하고, 한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사회는 여전히 억압적이지만, 그녀는 그녀만의 자유 의지를 다시 살려나간다.
 
 우리의 공적인 행위와 사적인 태도는 정반대였다. 이런 불균형과 격차 때문에 우리는 정신적 분열을 겪고 있었다. 겉으로라도 균형을 찾기 위해, 우리는 거의 매일 밤 파티를 벌였다. (314쪽)
  
이렇게 다시금 억압 속에서 자유를 누릴 방법을 찾기 시작한 마르잔은 자신만의 독특하고도 자유로운 삶을 위해 프랑스 파리로 떠난다.

'난 아무것도 아니다.'

결국 이거였다. 마르잔이 겪은 그 모든 폭력과 억압보다 더 무서운 것은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여겨지는 것, 즉 정체성을 존중받지 못하는 것이었다. 마르잔이 그랬듯, 모든 사람들의 삶에는 제각각 살아온 공간과 시간의 역사가 새겨진다.

한 시대를 관통하는 흐름부터 각 개인의 독특한 경험까지 한 사람이 살아낸 고유한 역사들은 그 사람을 유일하고 특별한 존재로 만든다. 그런데 그 특별함이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당하는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결국 정체성 자체를 상실하게 된다.

이럴 때 사람들은 살고 싶은 본능을 저버리게 된다. 반면, 마르잔이 죽음에서 깨어나 '내 인생은 내가 살아아 한다'라고 다짐했듯, 나만의 독특함을 존중할 때 삶의 의지는 다시 살아나고 저항할 힘을 얻는 법이다.

책을 덮은 후에도 길게 여운이 남았다. 난 나의 독특함을 존중해 주었던가. 누군가의 특별한 정체감을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한 적은 없었던가. 떠오르는 이웃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저마다의 역사를 간직한 한 사람 한 사람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에도 실립니다.


페르세폴리스

마르얀 사트라피 (지은이), 박언주 (옮긴이), 휴머니스트(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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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사람은 물론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하며 평등과 생명존중을 담은 글을 쓰고 소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