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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에 건립된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은 2005년 경찰청인권센터가 들어섰다가 2018년 12월 경찰이 완전히 철수하고, 이제는 민주인권기념관 조성을 준비하고 있다.
▲ 옛 남영동 대공분실 이관식 장면(2018. 12. 26) 1976년에 건립된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은 2005년 경찰청인권센터가 들어섰다가 2018년 12월 경찰이 완전히 철수하고, 이제는 민주인권기념관 조성을 준비하고 있다.
ⓒ 김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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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지난해 12월 경찰이 완전히 철수한 이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아래 사업회)와 남영동대공분실인권기념관추진위원회(아래 추진위원회)는 <옛 남영동대공분실 활용방안에 대한 합의문>(2018. 5. 16)에 근거하여 새롭게 들어설 민주인권기념관의 조성방안에 대한 논의를 진행해왔다.

이 논의는 지난 4월 3차에 걸친 전문가 토론회를 거쳐 오는 7월 13일 시민사회 100인과 함께 하는 '민주인권기념관 설계를 위한 공론화 토론회'(장소 : 민주인권기념관 7층)를 거칠 예정이다.

이 날의 공론화 토론회는 크게 1) 민주인권기념관의 성격과 기능, 전시범위, 2) 민주인권기념관의 부지 활용 문제 등 두 가지로 압축하여 논의를 진행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권의 부침에도 흔들리지 않을 민주인권기념관의 독립적인 운영방안 역시 대단히 중요한 사안이지만, 이는 공론화 토론회 이후 집중 검토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공공특수법인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시민사회 연대체인 남영동대공분실인권기념관추진위원회는 지난 2018년 5월 16일 옛 남영동 대공분실 활용방안에 대한 합의문을 작성하고, 이에 기초한 공동위원회를 구성하여 운영하고 있다.
▲ <옛 남영동 대공분실 활용방안에 대한 합의문>(2018. 5. 16) 공공특수법인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시민사회 연대체인 남영동대공분실인권기념관추진위원회는 지난 2018년 5월 16일 옛 남영동 대공분실 활용방안에 대한 합의문을 작성하고, 이에 기초한 공동위원회를 구성하여 운영하고 있다.
ⓒ 남영동대공분실인권기념관추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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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기념관의 성격을 강조할 것인가, 인권기념관의 성격을 강조할 것인가

옛 남영동 대공분실에 들어설 민주인권기념관의 성격을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모든 논의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다.

사업회는 민주인권기념관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 제6조(사업)의 1호(민주화운동기념관의 건립 및 운영)에 근거한 사업으로 본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에 따라 공공특수법인으로 설립된 사업회가 지난 2001년 출범 이래 숙원사업인 민주화운동기념관 건립 사업이 부침을 거듭하다 마침내 옛 남영동 대공분실 부지를 확보하여 19년 만에 실현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업회의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새롭게 조성될 민주인권기념관은 4·19혁명 이래 지속적으로 전개된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담고, 이를 기반으로 미래 세대와 소통하는 민주화운동기념관의 성격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

반면, 추진위원회는 남영동 대공분실의 장소성에 주목하면서 인권기념관의 성격이 강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남산 안기부 터, 보안사 서빙고 대공분실과 더불어 국가폭력의 3대 상징 장소인데, 이중 유일하게 원형이 보존되어 있는 장소라는 것이다.

추진위원회는 특히, 2005년부터 시작된 '남영동 대공분실을 시민의 품으로!' 캠페인이 2017년 영화 <1987> 상영을 계기로 다시 한 번 대대적으로 전개되면서 '인권경찰로 거듭 태어난 경찰상을 과시하는 공간'으로 변질되었던 옛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경찰이 완전히 철수하게 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에 따라 추진위원회는 민주인권기념관이 국가폭력에 의한 인권침해의 역사, 고문 피해자와 고문 가해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공간이 되어야 하며, 고문 피해자를 비롯한 민주화운동 세대와 미래 세대가 소통하면서 민주주의와 인권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주제와 관련해서는 이동기 교수(강릉원주대 사학과)의 논문 <'민주인권기념관' 건립 구상 : 10개의 테제>의 아래 대목이 주목된다.
 2019년 현재 <민주인권기념관> 건립은 2002년부터 2012년까지 민기사(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구상 내지 민기사 발주의 연구용역 결과에 의지할 수 없다. 상황의 변화는 기본적으로 기념관 건립지가 '남영동'으로 정해졌고 기념관의 기본 성격이 '민주화운동'기념관에서 '민주인권'기념관으로 수정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민기사가 그동안 마련했던 "한국의 민주화운동 역사를 총괄하고 종합"적으로 다루는 '민주화운동기념관' 구상은 뒤로 물려야 한다. 남영동의 장소성을 염두에 두면, <민주인권기념관>의 전시 핵심 주제는 국가폭력과 인권으로 잡는 것이 적절하다. 1970/80년대 한국의 독재 정권이 가한 인권유린과 정치폭력의 가해와 피해를 기억하고 전승하는 형식과 내용을 찾는 것에서 모든 논의가 출발해야 한다.
- <'민주인권기념관' 건립 구상 : 10개의 테제>
 
 
이동기 교수는 "민주화운동기념관 구상은 뒤로 물려야 한다"고 사업회에 '권고'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민주인권기념관의 전시가 "1970/80년대 국가폭력을 중심으로 하되 '민주화운동'을 포함"해야 한다고 하여 그 방향을 분명히 제시한다.

이는 사업회와 추진위원회의 <옛 남영동대공분실 활용방안에 대한 합의문>(2018. 5. 16) 4항 "남영동대공분실인권기념관추진위원회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조성될 (가칭)민주인권기념관 운영의 성과가 한국 민주화운동을 계승하는 기념관으로 확장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한다"는 문제의식과도 일치하며, 지난 4월 개최된 전문가 토론회(3차)에서 강조된 3개항의 '특기사항' 중 "3. 포괄적 민주화운동을 담아내는 기념공간은 추가로 만드는 것이 추후 적극 검토되어야 한다"고 한 대목과도 정확히 일치한다.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포괄적으로 담는 민주화운동기념관은 추후 광화문 같이 대중적 접근이 보다 용이한 곳에 규모 있게 건립되어야 하며, 민주인권기념관은 남영동이라는 장소성을 고려할 때 국가폭력과 인권을 중심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인식은 이제 시민사회에서 점차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부족한 전시공간, 교육공간, 사료관 등을 위한 부지활용 방안은?
    
민주인권기념관의 기본 성격 문제가 풀린다고 해서 기념관 조성 과정에서 부닥치게 되는 옛 남영동 대공분실의 부지활용 방안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옛 남영동 대공분실의 7층 건물과 부속건물이 고문을 위해 특화된 건물이다 보니 전시공간으로는 적합하지 않은 점이 있고, 공간도 비좁기 때문에 추가로 필요한 공간의 규모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여전히 있을지라도 '증축이 불가피하다'는 데는 사업회와 추진위원회가 인식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영화 <1987>에서 박처장이 테니스를 즐기는 곳으로도 등장하는 테니스장 부지가 핵심 장소로 떠올랐다.
  
영화 <1987>에도 등장하는 테니스장은 5층 조사실에서 고문을 일상 업무로 하는 고문경관들이 체력단련과 여가생활을 즐기던 장소이다.
▲ 남영동 대공분실 5층 조사실에서 내려다본 테니스장 영화 <1987>에도 등장하는 테니스장은 5층 조사실에서 고문을 일상 업무로 하는 고문경관들이 체력단련과 여가생활을 즐기던 장소이다.
ⓒ 민주인권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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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회는 2천평 규모의 추가 공간이 필요하다면서 현 테니스장 부지에 '위아래'로 신축을 하자는 입장을 제시하고 있다. 옛 남영동 대공분실의 원형보존은 건물과 육중한 출입문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내부적으로는 의왕에 있는 사업회를 새로 조성될 민주인권기념관으로 이전하기 위한 충분한 공간 확보의 필요성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공식 입장은 아니지만, '과거'를 상징하는 현 검은색 건축물과 대비되는 '미래'를 상징하는 흰색 건축물을 맞은편 테니스장 부지에 같은 규모(7층)로 건립하면 과거와 미래가 상징적으로 대비되면서 교육적 효과도 극대화될 수 있다는 견해도 보인다.

반면, 추진위원회는 기존의 건물만으로 필요한 전시장, 사료관, 교육 공간 등을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므로 '증축'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남영동 대공분실의 경관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신축건물의 지상화가 아닌 지하화를 주장한다.

추진위원회는 역사적 현장으로서의 남영동 대공분실은 본관 건물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육중한 철문과 철조망이 처진 담장으로 둘러싸인 부지 전체를 가리킨다면서 테니스장은 본관 건물 5층 조사실에서 벌이던 고문경관들의 '일상 업무'인 고문을 더 잘하기 위해 그들이 체력단련과 여가를 즐기던 곳으로 '악의 일상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이므로 보존가치가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테니스장 부지 지상에 신축건물이 들어서는 순간 고문을 위해 치밀하게 설계된 옛 남영동 대공분실의 '아우라'가 근본적으로 훼손된다고 주장한다. 건축가 김수근이 주변 경관까지 고려하여 롯데제과 건물(4층)과 면해 지을 수밖에 없었던 남영동 대공분실을 보안의 절대적 중요성 때문에 건물 뒷면은 5층 조사실만이 아니라 모든 층의 창문을 좁게 설계한 반면, 앞면에는 특별한 건물이 없었기 때문에 5층 조사실 창문만 좁게 설계한 그 '치밀함'은 사라지고 이제는 단지 '멋'을 추구한 설계로 왜곡·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다.
 
건축가 김수근은 본관 건물 앞면은 보안에 신경쓸 만한 높은 건물이 없어 고문실이 있던 5층의 창문만 좁게 설계하였다. 5층만 조심하면 된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 테니스장 옆에서 바라본 옛 남영동 대공분실 본관 건물 건축가 김수근은 본관 건물 앞면은 보안에 신경쓸 만한 높은 건물이 없어 고문실이 있던 5층의 창문만 좁게 설계하였다. 5층만 조심하면 된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 김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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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의 뒷면은 5층 조사실만이 아니라 모든 층의 창문을 좁게 설계하였다. 바짝 붙어 있는 왼쪽의 건물은 옛 롯데제과 건물(4층). 롯데 건물에서 남영동 대공분실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 남영역 쪽에서 바라본 옛 남영동 대공분실 본관 건물의 뒷면 건물의 뒷면은 5층 조사실만이 아니라 모든 층의 창문을 좁게 설계하였다. 바짝 붙어 있는 왼쪽의 건물은 옛 롯데제과 건물(4층). 롯데 건물에서 남영동 대공분실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 김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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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온 안이 '증축의 지하화'이며, 보존된 테니스장은 민주인권기념관에 반드시 필요한 야외전시장, 탐방객을 위한 휴식 공간, 문화행사 공간 등으로 활용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 주제와 관련하여 지난 4월의 전문가 토론회(3차)에서 '특기사항' 3개항 중 1항으로 정리된 "테니스장을 포함한 외부공간 훼손을 최소화하자는 취지가 강조되었다"는 지적도 참고할 만하다.

경찰이 떠난 옛 남영동 대공분실을 민주인권기념관으로 조성하는 과정에서 여러 의견이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만큼 민주인권기념관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오는 7월 13일의 공론화 토론회를 거친 이후에는 민주인권기념관의 운영방안, 세부 전시 내용과 전시 방안 등에 대한 생산적인 토론으로 확산되길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덧붙이는 글 글쓴이 김학규는 (사)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이며, 남영동대공분실인권기념관추진위원회 집행위원입니다.


태그:#민주인권기념관, #남영동 대공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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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역사문화연구소에서 서울의 지역사를 연구하면서 동작구 지역운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사)인권도시연구소 이사장과 (사)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동작구 근현대 역사산책>(2022) <현충원 역사산책>(2022), <낭만과 전설의 동작구>(2015)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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