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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OO이가 낮잠을 자다가 청소할 시간이 되어서 깨웠는데 못 일어나고 울더니 열이 37.5도에요. 아마 더 오를 것 같아요."

아이를 데리러 갔더니 오후 간식도 안 먹고 지친 표정으로 넋을 놓고 있다가, 엄마를 보고 쪼르르 달려왔다. 아이를 안고 집 대신 곧장 병원으로 갔다. 또 감기인가 싶었는데, 수족구라고 했다. 현재 목이 빨갛게 부어 있는데, 목과 입 안의 물집이 심해져서 그것이 터지면 아이가 아파서 먹지도 못하고 많이 울 수도 있다고 했다.

수족구라 하면 어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익히 아는 여름철 대표 전염병이다. 작년에는 아이가 아직 걷지 못하던 때라 유모차 산책 이외의 야외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탈하게 지나갔는데...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수족구(手足口)는 한자어인데, 말 그대로 입과 손, 발에 물집이 생기는 급성 바이러스성 질환이다. '장 바이러스'에 의해 감염되는데, 바이러스가 포함된 환자의 변, 호흡기 분비물이나 침, 피부 물집에서 나오는 진물에 노출되면서 시작된다고 한다.

영유아에게 흔한 소아과 질환으로, 가정 내 수족구 환자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보육시설이나 놀이터 등 어린이가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 감염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족구에 걸려 온 몸에 물집이 잡힌 아이.
 수족구에 걸려 온 몸에 물집이 잡힌 아이.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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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중순부터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수족구가 돌기 시작했다는 알림을 받았다. 이미 돌발진으로 인해 고열과 열꽃에 시달리느라 일주일을 쉬고 어린이집을 갔는데, 그 사이에 수족구가 돌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다른 원생 두 명이 그로인해 결석 중이라며 어린이집 측에서는 학부모들에게 내 아이에게도 증세가 나타나지 않는지 잘 살펴달라는 주의가 있었다.

우리 아이도 며칠 즐겁게 어린이집 생활을 하더니, 결국 재등원한 지 나흘 만에 수족구 진단을 받았다. 다른 아이들도 5일 정도 결석하다가 다시 나왔기 때문에, 우리 아이도 큰 고생하지 않고 며칠만 집에서 얌전히 치료하면 곧 어린이집에 나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수족구는 무시무시했다. 얼굴만 빼고 온 몸에 커다란 물집이 통틀어 수 백 개는 생긴 것 같다. 처음에는 목 주변과 손발, 팔 다리부터 시작되더니 몸통, 사타구니와 항문 주변, 허벅지 사이, 입 속은 물론이고 귓속과 두피까지 몽땅 물집이 크고 작게 생겼다.

아이의 사진을 본 외할머니는 "저 어린 아기가 말은 못 해도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파 눈물을 흘렸다"라고 했다.

수족구는 조금 가려울 수는 있어도 통증이 심한 것은 아니라고 들었는데, 발바닥에도 물집이 심하게 생긴 아이는 며칠 동안 걷지 않으려 했다. 병원 측에서도 "아이고! 이거 굉장히 심하네요. 오래 가겠어요. 입 속 증세가 심해져서 음식을 잘 못 먹는지 열이 나지 않는지 계속 관찰해주세요"라고 했다.

약을 먹은 뒤 아이의 체온은 안정화 되었지만, 피부 증세는 점차 심화되었다. 전염병이라서 어린이집 뿐 아니라, 놀이터나 공원, 키즈 카페, 백화점과 마트, 교회, 미술관을 비롯하여 각종 공공장소에 갈 수 없었다. 6일째 되던 날 지인들이 근처에 왔다가 점심이라도 먹으러 나오라 했지만, 식당에 아이를 데려갈 수 없어 포기했다.

증세가 좀 가라앉은 뒤에는 집 앞의 인적 드문 산길로만 가끔 유모차 산책을 나갔다. 아이는 집앞에서 출발해 다시 돌아올 때까지 한 번도 유모차에서 내리지 않고 바깥 풍경을 감상하다가 스르르 잠이 들곤 했다. 다행히 폭염의 기세가 덜하고, 구름 낀 날도 많을 때여서 그나마 가능했던 일이다.

며칠에 한 번씩 진찰을 받기 위해 소아과에 데려갔을 때도 아이들이 모인 원내에는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기다리다가 호명이 되면 들어갔다 나왔다.

몸을 뒤덮었던 물집이 어느새 다 가라앉자, 그 자리에서 피부 껍질이 벗겨지기 시작했고, 딱지가 앉은 자리도 눈에 띄었다. 아이도 신경이 쓰이는지 발가락의 피부 껍질을 벗겨내는 데 열중했다. 

피부에 비해 입 속의 증세는 덜 심해서, 아이는 침을 삼키거나 음식물을 먹으며 아프다고 운 적은 없다. 의사도 입 속 증세가 덜한 것은 불행 중 큰 다행이라고 위로했다. 그래도 아이가 밥을 안 먹으려 해서, 요거트, 치즈, 우유 등의 유제품과 아이가 좋아하는 과자류를 자주 주었다.

그렇게 꼬박 13박 14일을 지나서야, 아이는 이제 다른 아이에게 전염될 위험이 없으니 어린이집 생활이 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아직은 피부의 껍질과 손발톱도 벗겨지는 등 후유증이 진행 중이지만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수족구는 수두나 홍역처럼 한 번 앓으면 항체가 생겨 다시 걸리는 일 없는 질병과는 달리, 여러 번 걸릴 수 있단다. 그나마 위로가 되었던 의사의 말은 "이번에 심하게 앓았으니, 다음엔 아마 자세히 들여다 봐야 알 수 있을 만큼 약하게 나타날 거에요"였다.

2주 만에 어린이집에 등원한 아이는 조금도 낯설어함과 어색함 없이 신나게 놀다 왔지만, 고작 이삼일 만에 심한 콧물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폭염으로 인해 땀띠가 나서 걱정했더니, 할아버지 댁에 갔다가 차가운 음식과 선풍기 바람,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밤 바람에 장시간 노출되어 결국은 다시 병치레를 하게 생겼다.  

이제 전염병만 안 걸리면 다행이다 싶었는데, 감기라 해도 아이는 괴로워 잠을 못 자고 고통스러워 하니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더워도 걱정, 추워도 걱정,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 수족구는 갔지만 이제 또 한여름 무더위 그리고 감기와의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태그:#아기 수족구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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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건강하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주부이자, 엄마입니다.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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