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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구천동 계곡으로 유명한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에는 조선 후기 화단의 거장으로 이름을 떨친 최북미술관이 자리하고 있다. 무주 출신인 최북(1712-1786?)을 기념하여 세운 최북미술관은 순수비평문학의 선구자인 이곳 출신 김환태(1909-1944)문학관과 같은 기념관을 쓰고 있다.
 
최북미술관 안에 전시된 애꾸눈의 최북 모습
▲ 애꾸눈의 최북 최북미술관 안에 전시된 애꾸눈의 최북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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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읍 최북미술관 전경
▲ 최북미술관 무주읍 최북미술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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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으로 생업을 잇는다는 뜻의 호생관(毫生館)이란 호를 가진 최북은 북(北)자를 나누어 칠칠(七七)이라고도 불렀다. 조선 후기 영·정조 시대에 활동한 대표적인 직업화가로 꽃과 풀, 새와 짐승, 바위, 고목, 메추라기와 호랑나비를 특히 잘 그려 최메추라기, 최산수(崔山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 최북은 술을 좋아했으며 괴팍한 성격으로 숱한 기행과 일화를 간직한 화가이기도 하다.

순조 때 재상을 지낸 남공철(1760~1840)이 지은 <금릉집>의 최북 전기를 보면 최북은 주량이 하루 5~6되씩 되었으며 술을 마시고 취하면 광기와 호기를 부려 '주광화사'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남공철 기록에는 "칠칠(최북)은 술을 좋아해 책 나부랭이 등을 모두 술값으로 주어 버려 살림이 어려웠다. 칠칠은 결국 평양과 동래로 떠돌아다니며 그림을 팔게 되었다. 두 도시 사람들이 비단을 가지고 문지방이 닳도록 줄을 이어 섰다. 어떤 사람이 산수화를 그려 달라고 부탁했더니, 산만 그리고 물은 그리지 않았다. 그 사람이 괴상히 여겨 따지자, 칠칠이 붓을 던지고 일어서며 '이 종이의 여백은 모두 물이다'"라고 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최북미술관 안, 기인으로 알려진 최북의 일화를 소개하는 영상
▲ 최북의 일화 최북미술관 안, 기인으로 알려진 최북의 일화를 소개하는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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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화, 진경산수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탁월한 그림 솜씨를 뽐냈던 최북의 그림세계가 잘 설명되어 있다.
▲ 최북의 그림세계 풍속화, 진경산수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탁월한 그림 솜씨를 뽐냈던 최북의 그림세계가 잘 설명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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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을 비롯하여 최북의 유명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 최북의 유명한 작품 "일출"을 비롯하여 최북의 유명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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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북은 자신의 그림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는데 그림을 마음에 맞게 잘 그렸음에도 보상이 적으면 그 자리에서 성을 내며 욕하고는 그림을 찢어 버리는가하면 흡족하게 그려지지 않은 그림에 대해 그림 값을 너무 많이 주면 손가락질하면서 "그림 값도 모르는 놈"이라고 하며 비웃기도 하였다. 또한 금강산 구룡연에서 '천하의 명사는 천하의 명산에서 죽어야 한다'고 외치면서 못속으로 뛰어들어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이야기라든가 한 벼슬아치가 지위를 이용해 억지로 그림을 그려달라고하자 자신의 눈을 찔렀다는 일화 등 예사롭지 않은 일화가 전한다.

"최북이 그린 그림은 150여 점으로 추정됩니다. 그 가운데 60점은 영인본으로 미술관에서 전시하고 있습니다. 조선 후기 화가라고 하면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 등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최북 선생을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또한 겸재 정선이나, 현재 심사정 같은 분들은 중국 산수에서 벗어나 우리 국토에 관심을 갖고 진경산수화를 그린 분들이지만 최북 선생 역시 진경산수화의 대가입니다. 전시된 그림들을 살펴보시면 최북 선생을 조선 후기의 거장이라고 부르는 까닭을 이해하시게 될 겁니다."

이는 최북미술관을 상세히 안내해준 김진남 무주군 관광해설사의 말이다. 그에게 무주 출신의 화가 최북의 출생과 예술세계, 작품 등 해박한 설명을 듣고나니 조금 더 폭넓게 이해할 수 있었다. 
 
최북의 명작 '일출'
▲ 일출 최북의 명작 "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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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북은 당대 시인과 어울려 그림을 남겼다.
▲ 단구승유도 최북은 당대 시인과 어울려 그림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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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졸하고 게으른 나는 평생 장관을 못 봤건만 그대는 바다 건너 하늘 밖을 노닐게 되었구나. 해 뜨는 동쪽에는 진짜 해가 있을 지니 그것을 그려 가져와 내게도 보여 다오." - 성호 이익이 최북의 일본행을 송별하면서 지은 3수 가운데 1수

김진남 해설사는 최북이 그린 일출 그림을 가리키면서 "붉은 태양과 힘차게 출렁대는 파도가 잘 묘사된 그림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북의 '일출' 앞에서 성호 이익의 시를 감상해보았다. 최북은 1748년 2월에 부산포를 떠나 그 해 윤7월까지 화원인 이성린(1718-1777)과 함께 통신사를 따라 일본에 다녀왔다. 또한 중국을 다녀 온 사실을 문헌에서는 찾을 수 없으나 신광하(1729~1796)가 지은 <최북가>의 시에 숙신(중국)을 다녀왔다고 하였고, 최북이 지은 <독작>시에 동쪽 달을 바라보고 고향을 생각한다는 글이 있어 중국에도 다녀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최북은 평소 <서상기>와 <수호전>을 즐겨 읽었다고 한다. <수호전>은 영웅호걸들이 나쁜 벼슬아치들을 의리, 용기, 무예, 지혜로써 혼내주는 이야기를 담고 있으므로 조선에 처음 유입된 이후 읽어서는 안 되는 금서로 지목된 바 있다. 최북을 말할 때 흔히 '저항기질이 강한 화가' 라는 평이 있는데 이는 <수호전> 등에 나오는 영웅호걸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평이 있다.
 
최북의 '일출'은 피마준법으로 그렸음을 알 수 있다. 산수화 기법에 대한 설명
▲ 산수화 기법설명 최북의 "일출"은 피마준법으로 그렸음을 알 수 있다. 산수화 기법에 대한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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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북미술관에는 조선회화의 흐름을 한 눈에 알 수 있도록 설명해놓고 있다
▲ 조선회화의 흐름 최북미술관에는 조선회화의 흐름을 한 눈에 알 수 있도록 설명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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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간이었지만 무주의 최북미술관을 둘러 본 것은 매우 뜻깊었다. 평소 최북 선생의 예술세계를 흠모해왔기에 무주읍에 이렇게 훌륭한 최북미술관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설레었다. 이제 무더운 7월이 시작되었다. 산과 계곡으로 떠나기 좋은 계절이다. 덕유산과 무주구천동을 품고 있는 무주에 방문할 기회가 된다면 내친김에 조선 화가의 거장인 최북미술관에도 발걸음을 해보면 의미 깊지 않을까?

김환태문학관&최북미술관: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최북로15
전화: 063-320-5636 
 
최북미술관과 김환태문학관을 관람한 사람들이 쓴 감상문을 붙여놓았다
 최북미술관과 김환태문학관을 관람한 사람들이 쓴 감상문을 붙여놓았다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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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남 무주군 관광해설사는 조선의 화가 거장(巨匠) 최북을 기리는 최북미술관에서 친절한 설명을 해주었다.
▲ 김진남 무주군 관광해설사 김진남 무주군 관광해설사는 조선의 화가 거장(巨匠) 최북을 기리는 최북미술관에서 친절한 설명을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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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우리문화신문에도 보냈습니다.


태그:#최북, #최북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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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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