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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4일 강원도 고성에서 산불이 났다. 2명이 목숨을 잃었다. 주택 565채가 불에 탔고, 1132명이 졸지에 이재민이 됐다. 7월 13일은 산불이 일어나고 꼭 100일째 되는 날. 숫자에 드러나지 않는 천진초등학교 대피소 사람들 이야기를 담아봤다.[편집자말]
 
 고성 산불 이재민 지(63)씨가 천진초 대피소 뒤편에 홀로 앉아 있다.
 고성 산불 이재민 지(63)씨가 천진초 대피소 뒤편에 홀로 앉아 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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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9일 오후 천진초등학교 체육관 대피소 뒷문 현관. 철제 의자에 앉은 남자 주위로 위 꽁지부분부터 갉아 먹다 남은 참외 반쪽, 부식으로 받은 마가렛뜨 과자 껍질, 그리고 초록색 소주병이 어지러이 놓여 있다. 종이 박스를 잘라다 모래를 넣어 만든 간이 재떨이엔 필터가 누래진 담배 꽁초 대여섯 개가 삐죽삐죽 박혀 있었다.

"거기 선생님, 학교 안에서 술 담배 하시면 안 됩니다!"
"아니 뭐야? 당신이 뭔데!"
"학교 보안관입니다."
"보안관이면 다야? 지금 내가 이재민이라고 무시하는 거야? 산불이 다 나가지고 불재민이 된 마당에 대피소 뒷문에 이렇게 쪼그려서, 찌그러져서 술 한잔도 내 맘대로 못 마셔? 이런 젠장!"

방향 없이 튄 화에 시비가 붙었다. 주변 이재민들이 남자의 팔을 한쪽씩 잡고 말렸다. 술에 취한 남자는 사람들에게 붙들려 비틀비틀 멀어져 가면서도 보안관에 대고 '씨팔로마' 연신 욕을 해댔다. 남자는 어느새 울고 있었다. 보안관은 눈살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 몰려온 다른 이재민들은 학교에서 말썽을 피우다 다 같이 쫓겨나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 했다.


  
 지난 5월 8일 이재민들이 한국전력 속초지사 앞에서 규탄 시위를 하고 있다.
 지난 5월 8일 이재민들이 한국전력 속초지사 앞에서 규탄 시위를 하고 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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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에 대한 발화 책임 수사가 장기화되면서 이재민들의 불안은 계속 쌓여갔고 예민해졌다. "내일까지가 유통기한인데 이걸 어떻게 먹어?", "죽인데 숟가락도 없으면 손으로 퍼먹으라는 거야?" 처음엔 고맙기만 했던 구호품들이지만 유통기한이 임박해 도착한 죽이나 빵이 박스째로 대피소 구석구석 쌓여가자 기업들 생색내기 아니냐고 원성이 높아졌다. 국민들이 전국에서 보내온 의류 구호품 사이엔 빨래도 안 된 기분 나쁜 팬티가 발견되기도 했다. "누굴 거지로 아나!" 현장에서 물품을 관리하던 공무원은 밤새 거르고 걸렀는데도 못 본 게 더러 있더라며 난처해 했다. 또 다른 공무원은 사람들이 점점 변해가는 걸 바라보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원래는 그럴 사람들이 아닌데 티셔츠 하나를 놓고 니꺼 내꺼 다투고 토라지는 모습이 낯설다는 거였다.

며칠째 국이 식어서 나오자 화가 난 이재민은 숟가락을 집어 던지며 배식 받은 식판을 그대로 밥차에 내다 버리기도 했다. 어떤 자원봉사자는 '이재민의 갑질'이라고까지 했다. 피해의식을 왜 엉뚱한 데 푸느냐는 거였다. 피해의식이란 말이 식은 국처럼 차가웠다. 이재민들은 하나 둘 텐트 안에 들어가 신경질적으로 지퍼를 북북 잠갔고 밤마다 어느 텐트에서 새나오는 '쌍년아, 쌍놈아' 부부싸움 하는 소리도 점점 잦아졌다. 

강원도 재난심리지원센터에서 나온 사람은 이재민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불이 나던 날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그날 장면이 뇌리에 반복되거나 꿈에 나타나는 증상이 많다는 거였다. 실제 몇몇 이재민들은 없던 우울증과 화병이 도진 것 같다고 했고, 자기 부인이 반쯤 감긴 눈으로 새벽에 일어나 불 났다며 비몽사몽 소리를 지르는 걸 보면 당최 살맛이 안 난다는 사람도 있었다. 평소보다 혈압이 30 이상씩 올랐다는 이들도 여럿이었다.


  
 트랙터 위의 지씨.
 트랙터 위의 지씨.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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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63)씨는 술이 늘어갔다. 가벼운 캔맥주에서 시작해 1.5리터 들이 페트병 맥주가 등장하더니 며칠 만에 결국 깡소주였다. 평소엔 말이 별로 없던 지씨는 술이 한 두잔 들어가면 정치 얘기를 장황하게 하는 버릇이 있었다. "어이 기자야, 내 말 그대로 적어봐라"로 시작하는 일장 연설은 '국회 그 미친 새끼들', '빠따 싸움', '이놈의 한나라당', '추경', '긴급 예산' 같은 단어들로 이어졌다. 두서 없긴 했지만 지씨는 정치 뉴스에 꽤 해박한 듯 했다. "국민이 불재민이 돼서 죽게 생겼는데 법을 바꿔야 되면 빨리 바꾸고 당장 할 수 있는 건 빨리 해야지 정치인들은 뭘 하는 거야!" 지씨는 곧잘 흥분하면서도 예리했다.

대피소에서 지씨와 가장 자주 대작하는 이는 김(61)씨였다. "아유, 형님 그거 다 선거용이라니까요. 다 말로만 지들 선거 때문에 아양 떠는 거지 우리들한테 도움 될 거 하나도 없어요. 정치 얘기 하지도 말라고요. 아, 내 말이 맞다니까 그러네?" 술병을 들이켤 때마다 목소리가 커지는 김씨도 번번이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둘의 언성이 점점 높아지면 사람들은 "또 저런다 또"하며 말리기 바빴다. 둘은 자타 공인 대피소의 말썽꾼들이었다.

무, 배추, 감자, 옥수수 농사를 짓는 지씨는 30년 전 서울에서 넝마주이로 살았다고 했다. 서울서 공장 생활도 많이 해봤다는 그는 서울 사람들이 여기 사정을 어떻게 알겠느냐고 냉소했다. "산골짝 시골인데 무슨... 나는 아무도 안 믿어. 그깟 6300만원 갖고 무슨 집을 지어? 주거 복구비 1300만원에 지원금 2000만원, 국민 성금 3000만원? 결국에 그거 먹고 떨어지라는 거 아니야? 아휴 정치인 놈들 다 죽어버리라고 해." 혀가 꼬부라져서도 그는 정부의 보상 항목과 액수까지 정확히 외웠다. "당장 굶어서 뒈지진 않겠지. 위 대가리들 하는 짓들이 다 그렇지 뭐." 정치 얘기를 입에 달고 다니는 그였지만 막상 정치에 크게 기대하고 있는 것 같진 않았다.

지씨의 트랙터 운전석 발판 쪽엔 아직 병이 많이 들어찬 소주 박스와 맥주 박스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고장이 나 수리를 맡기는 바람에 전 재산 중 유일하게 불에 안 탔다는 트랙터였다. 텅 빈 운동장에 세워둔 트랙터에 홀로 앉은 지씨는 종이컵에 든 미지근한 맥주를 조금 들이마시며 이재민들에게 지급될 7평짜리 컨테이너가 너무 작다고 씩씩거렸다.

"젠장할, 나는 좁아도 상관 없는데 그 정도 크기면 애들 책상 놓을 자리도 없잖아!"

높은 트랙터 자리에 앉아 나를 내려다보던 지씨에겐 갓 스무살 넘은 아들과 중학생 딸이 있었다. 이재민들에겐 2인당 하나씩의 컨테이너 집이 지급될 예정이었다. 거칠게만 보였던 지씨는 아들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뚝뚝 눈물을 흘렸다. "곧 군대를 가는데 내가 해준 게 없다. 대학도 못 보내고 애 학원 다니는데 애비로서 하나 보태주지도 못했고. 울긴 누가 울었다 그래! 젠장할." 얼른 팔뚝으로 얼굴을 닦아낸 그가 먼산을 쳐다본다. 이재민들의 임시 거처인 컨테이너집은 6월 중순께부터 본격적으로 지급되기 시작했다.

아버지들
    
 지난 6월 26일 다시 찾은 고성 화재 현장의 모습. 천진초 이재민들은 이제 대피소가 아닌 7평 짜리 컨테이너 집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 한승호
 지난 6월 26일, 한 고성 산불 이재민의 7평 짜리 컨테이너 집 내부 모습.
ⓒ 한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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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루는 누가 혼자 대피소 인근 편의점 앞 땅바닥에 철퍼덕 엉덩이를 깔고 앉아 대낮부터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김씨였다.

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김씨 앞에 놓인 안주는 초록색 스윙칩 하나가 전부였다. 평소 김씨는 컨테이너라도 놓이게 되면 거기나 빨리 들어가고 싶다고만 할 뿐 자기 얘기는 잘 안 하는 사람이었다. 우물우물 감자 칩을 씹으며 일회용 종이컵에 소주를 가득 따르는 그에게 직업을 물었다. "없어." 예전엔 뭘 했냐고 물었다. "건달." 무슨 건달이었냐고 물었다. "건달이면 건달인 줄 알어, 인마." 그의 대답은 다 짧았다.

연속으로 석잔 정도 종이컵을 비우고 난 김씨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익숙한 솜씨로 사진첩을 한참 내리던 그가 두 청년의 얼굴을 보여줬다. 아들들이라고 했다.

"큰 애는 서른 하나. 아주 똑똑해서 군대 가서도 인정받고 편한 데로 뽑혀가서 근무했어. 지금은 알아서 돈도 벌고. 기특하지. 작은 애는 스물 아홉. 내가 학교도 제대로 못 보냈는데 지가 스스로 공부하더니 4년제 대학에 들어갔지. 예술 쪽으로 갈 거래. 멋있지? 둘 다 아주 잘 생겼잖아. 서울에 있어 다들. 어디 가서 빠지는 인물들이 아니잖아? 그치? 둘 다. 야 이것도 좀 봐봐. 죽이지 않냐."

말을 아끼던 김씨가 아들 자랑은 술술이었다. 잠들 때만 빼고 김씨 오른쪽 귀에 늘 꼽혀 있던 하얀색 무선 이어폰도 아들들이 사준 거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사용하지 않는 동안에도 김씨의 이어폰은 항상 그 자리였다. 김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가 온다며 아들들이 효자라고 칭찬했다. "힘 내야지." 그는 뭉툭한 손가락으로 아들들 얼굴을 확대했다 축소했다 하길 반복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날 이후로 김씨는 눈에 띄게 술을 줄여갔다.
 
 고성 산불 이재민 김(61, 남)씨가 바닥에 앉아 소주를 마시고 있다.
 고성 산불 이재민 김(61, 남)씨가 바닥에 앉아 소주를 마시고 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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