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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은 도시 곳곳에 한민족이 걸어온 역사가 묵묵히 흐른다. 한국전쟁 때도 인천은 대한민국 역사 한 가운데 있었다. 한반도가 두 동강이 나면서 집으로 가지 못한 사람들이 고향과 가까운 인천에 남았다. 새 삶을 찾아 북에서 남으로 온 동포들도 있다. 북녘 땅에서 즐겨 먹던 음식도 함께 흘러들어 왔다.
 
평양냉면이 다가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담백하고 좋았다"라고 평한 온반, 오순도순 여럿이 끓여 먹는 어복쟁반, 북한 서민들의 삶의 애환이 담긴 인조고기밥까지. 그 맛을 알 것도 같으면서도 새로운, 인천에서 맛볼 수 있는 북한 음식들을 찾았다. 

한민족이 아니던가. 원조는 휴전선 너머에 있지만, 남북을 하나로 이어주는 '한민족의 맛'이 여기 있다.

질곡의 역사 담담히 품은 평양냉면
 
평안도에서 인천으로 3대째 이어온 손맛, 경인면옥. ⓒ 류창현 포토디렉터

'경인면옥'은 60여 년 분단의 역사를 지나왔다. 평안도가 고향인 고 임금옥 할머니는 광복을 앞둔 1944년에 서울 종로로 내려와 냉면집을 하다 인천으로 터를 옮겼다. 당시 번화한 중구 신포동에 자리를 잡았는데, 서울과 달리 장사가 잘되지 않았다. 

다소 심심한 육수 맛이 인천 사람 입맛에 생소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끝나고 이북 사람이 몰려들면서 냉면집은 북새통을 이뤘다. 전쟁으로 집을 잃은 사람들이 냉면집에서 고향을 되찾은 것이다.  

경인면옥은 현재 손자 함종욱(50) 씨가 대를 이어가고 있다. 함께 식당을 꾸리던 아버지 함원봉(75) 씨는 몇 년 전에서야 아들에게 육수 만드는 비법을 물려줬다. 

"우리는 순수하게 소고기만 써. 일절 다른 것을 첨가하지 않아." 

소고기 설깃살을 6시간 이상 우려낸 육수는 깊으면서 맑다. 그 맛의 묘미를 모르고 "맹물을 무슨 맛으로 먹느냐"라며 화를 내는 손님도 더러 있다. 하지만 가게 한편에 걸린 문구처럼 '정말 좋은 것은 반드시 담백한 것'이 아니던가.

평안도에서 인천으로 3대째 이어온 손맛은, 갸웃하다가도 한번 맛이 들면 자기 전에도 번뜩 생각나 다음날 찾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든다.

뜨거운 사랑이 담긴 온반
 
"황해도 맛이에요. 어릴 때 먹고 자란 바로 그 맛."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는, 냉면 한 젓가락에 눈물을 왈칵 쏟아내기도 한다. ⓒ 류창현 포토디렉터
  
평양식 냉면은 한국전쟁 이후 서울에서 발달했지만, 인천에도 그 못지 않게 이름난 냉면집이 있다. '경인면옥'은 1944년 서울 종로에서 시작해 1946년 신포동에서 역사를 이어왔다. 오로지 소고기만으로 맛을 낸 육수는 그 맛이 담백하면서도 깊고 풍부하다. ⓒ 류창현 포토디렉터

평양 음식 중에 냉면만큼 널리 알려진 것이 '온반'이다. 평양의 4대 음식으로 남북정상회담 만찬 식탁에도 여러 번 올랐다. "담백하고 좋았다." 2000년 6월 13일 평양에서 열린 첫 남북정상회담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온반을 대접받고 이렇게 평했다.
 
온반은 겨울철에 즐겨 먹는 이북식 국밥이다. 평양과 황해도의 잔칫상에서 빠지지 않는다. 한 여인이 억울하게 옥살이하는 연인을 위해, 한겨울 밥에 지짐을 얹고 뜨거운 국물을 부어 치마폭에 감싸 건넨 것이 이 음식의 시초다. 그 후로 평양에서는 그들처럼 '뜨겁게 사랑하며 살라'는 의미로 온반을 결혼식 상에 올렸다. 

이북 가정식 요리 전문점 '료리집 북향'은 온반을 대표 메뉴로 선보이고 있다. 이북에서는 지역에 따라 고명을 다양하게 올려 먹는데, 이 집 온반은 갓 지은 뜨끈한 밥에 육수를 붓고 속이 꽉 찬 평양 만두와 저민 소고기, 닭 가슴살, 녹두전을 고명으로 곁들인다.

닭고기를 푹 고아낸 육수는 간장과 소금으로만 간해 맛이 담백하다. 여기에 노릇노릇하게 부쳐낸 녹두전을 적셔 먹으면 고소한 풍미가 더한다. 고깃국에 밥을 말아낸 단출한 한 그릇. 별것 아닌 것 같은데 담백하면서도 맛이 깊다. 한겨울 북쪽 땅, 뜨끈한 구들장에서 입김을 후후 불며 먹던 그 맛이리라. 

오순도순 둘러앉아 즐기는 어복쟁반
 
우리 입맛에 맞춘 '얼큰 온반'(위)과 전통 '평양식 온반'. 억울하게 옥살이하는 연인을 위해, 한겨울 밥에 지짐을 얹고 뜨거운 국물을 부어 치마폭에 감싸 건넨 따듯한 한 그릇. ⓒ 류창현 포토디렉터

'어복쟁반'은 이북식 소고기 전골이다. 옛날 백정들이 버려지는 소의 뱃살을 주워다 끓여 먹던 음식이라, 우복(牛腹)으로 불리다 어복이 됐다는 설이 있다.

추운 겨울이면 이북 사람들은 놋 쟁반에 편육과 채소를 담아 육수를 부어가며 여럿이 끓여 먹었다. 소고기가 귀하던 시절에는 사냥으로 잡은 꿩고기로 육수를 끓였지만, 꿩고기를 구하기 힘든 요즘에는 소고기를 쓴다. 

한국전쟁 이후 남한으로 온 실향민들은 각 지역에서 나는 식재료에 맞춰 어복쟁반의 전통을 이어왔다. '료리집 북향'에서는 부드러운 소고기 편육과 버섯, 전, 갖은 야채를 그득 담아 어복쟁반을 만든다.

간을 거의 하지 않은 맑은 국물을 써, 식재료의 고유한 맛이 살아 있고 끓일수록 깊은 맛이 우러난다. 야채와 고기를 비우고, 진하게 우러난 국물에 밥까지 싹싹 비벼 먹는 맛이란. 그제야 어복쟁반을 제대로 맛보았다고 말할 수 있다. 

눈물 젖은 음식에서 별미로 거듭난 콩고기밥
 
소고기 편육과 갖은 야채를 담은, 영양이 꽉 찬 '어복쟁반'.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먹으면, 마음까지 든든히 채워진다. ⓒ 류창현 포토디렉터
 
료리집 북향은 북한 ‘가정식 료리’를 내세우며 그동안 쉽게 만날 수 없던 이북 음식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해 11월 송도국제도시에 북한 가정식 전문 1호점을 냈다. 이북 고유의 맛을 살리면서도 한국식으로 재해석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했다. ⓒ 류창현 포토디렉터

우리에게 떡볶이가 있다면, 북한에는 '콩고기밥(인조고기밥)'이 있다. 북한 사람들이 장마당이나 길거리에서 즐겨 먹는 음식이다. 콩기름을 짜고 남은 찌꺼기로 만든 콩고기에 밥을 싸서 먹는데, 마치 고기 씹는 맛이 난다.

1990년대 북한이 경제적으로 어렵던 '고난의 행군' 시절 주린 배를 채우던 음식이다. '두부밥'은 두부를 세모로 잘라 튀겨서 그 사이에 밥을 넣어 만든다. 두 음식 모두 고추장, 파, 마늘 등을 버무린 양념장으로 맛을 낸다. 

"어릴 때 많이도 먹었어요. 학교 수업이 끝나면 동무들과 형네 가게로 가 콩고기밥을 먹곤 했지요."

북한 음식 전문점 '국화네 맛집'의 허철근(30) 대표는 함경북도 무산군이 고향이다. 지난 2011년에 한국으로 와 인천 논현동에 터를 잡았다. 함께 온 형과 형수는 북한에서 콩고기밥 장사를 했었다. 

탈북 후 고향 생각에 음식을 만들어 이웃에게 선심을 쓰다, 6년 전 가게 문을 열었다. 북에서 온 사람들에게 고향의 맛이라고 입소문이 났다. 손맛은 그대로인데 재료는 더 좋아졌다.

"북한식대로 하면 못 먹어요. 콩을 온전하게 쓴 인조고기를 들여오고, 양념장 재료와 두부도 국내산만 씁니다."

살기 위해 먹던 음식이, 남북이 사이좋게 즐기는 별미가 됐다. "서로를 이해하는 데 음식을 나누는 것만큼 좋은 건 없습니다. 음식부터 합쳐져야 언젠가 통일도 되지 않겠어요." 그의 바람대로 언젠가 한 식탁에서 서로의 음식을 즐기며 웃는 날이 오길 바란다. 

옛날 감성 가득한 북한식 전통 떡
 
새터민에게는 추억의 맛이고, 실향민에게는 생소하지만 반가운 음식인 콩고기밥. '살기 위해' 먹던 음식이 남북이 사이좋게 즐기는 별미가 됐다. ⓒ 류창현 포토디렉터
  
국화네 맛집. 북한에서 콩고기 밥집을 하던 형과 이제 어른이 된 동생이 제2의 고향 인천에 식당을 열었다. 새터민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 전국 각지, 멀리에서도 찾아온다. ⓒ 류창현 포토디렉터

북한 주민들에게 떡은 명절에나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다. '둥이네 통일가게'의 홍은혜(42) 대표는 2003년 북에서 남으로 와 북한식 전통 떡을 빚고 있다. 야무진 손맛은 함경남도 함흥에서 떡과 과자를 만들어 팔던 외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다. 

4년 전 선학동에 음식점을 열었을 때는 한동안 마음고생을 했다. 가족들조차 "누가 북한 음식을 먹겠느냐"라며 확신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고향 맛에 대한 그리움을 저버릴 수 없었다. 아이 셋을 키우면서도 밤낮으로 가게에 나와 반죽을 치댔다. 

어린 시절 외할머니의 굽은 어깨너머로 보고 배운 솜씨다. 맛의 기억을 하나하나 떠올리면서 정성을 쏟아부었다. 지금은 손님들이 "'진짜'네. 북한에서 직접 가져온 음식 같다"라며 치켜세운다. 그 손맛을 전해준 외할머니와 끝내 두만강을 함께 건너지 못한 어머니가 그립고 고맙다.
 
쉼떡, 꼬리떡, 언 감자떡… 북한 떡은 그 모양새와 맛이 우리가 먹는 떡과 비슷하기도 다르기도 하다. 간이 삼삼하면서 손으로 만들어서 더 쫀득쫀득하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어린 시절에 먹던 추억의 맛이라며 반가워한다. 한민족이 아니던가. "함께 살아온 시간이 5000년이다." 남북으로 나뉘었지만 '맛의 뿌리'는 결국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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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먹는 떡과 비슷하기도 다르기도 하다. 간이 삼삼하면서 손으로 만들어서 더 쫀득쫀득하다. 어린 시절에 먹던 추억의 맛이다. ⓒ 류창현 포토디렉터
  
둥이네 통일가게. 함경남도 함흥에서 음식을 만들던 외할머니의 손맛이 휴전선을 넘어 인천에 정착했다. 손가락과자, 깨꽃과자, 막과자 등 북한식 과자도 맛볼 수 있다. 요즘 과자와는 다른 투박한 모양과 퍽퍽한 식감이 낯설면서도 정겹다. ⓒ 류창현 포토디렉터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천시에서 발행하는 종합 매거진 <굿모닝인천> 6월호에도 게재됐습니다.

태그:#이북음식, #평양온반, #어복쟁반, #인조고기밥,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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