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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겁이 많다. 태생적으로 그렇다. 4살쯤 되었을 때 마당에서 비명을 지르는 나 때문에 혼비백산해서 달려온 엄마가 해준 이야기는 조금 창피하기도 하다. 귀뚜라미를 보고 온갖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나는 흙도 밟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무서워서인지 더러움을 느껴서 인지는 기억에 없어서 모르지만 아무튼 흙, 벌레 등을 싫어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건 높은 곳이다. 어렸을 때 근처 성당에 돌로 된 미끄럼틀이 있었다. 미끄럼틀에 난간이 없었다. 대신 아주 넓었다. 다른 아이들은 재밌게 타는데 나는 차마 탈 수가 없었다. 난간이 없어서 내가 날아가 버릴까봐. 그 미끄럼틀에서 날아간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운동장에는 여러 가지 놀이기구들이 있었다. 지금은 없어진 놀이기구들이지만 주로 높이 올라가야 탈 수 있는 것들이었다. 지금까지의 내 기억에 나는 정글짐에서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간 적이 없다. 아무튼 나는 땅에 붙어서 노는 게 좋은 아이였다.

비행기를 못 탈 만큼의 고소 공포증은 아니었지만 높은 곳을 싫어하는 게 큰 걸림돌인 적은 없었다. 문제는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다.

강물(큰아들)이가 내 겁 많은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은 것 같다. 강물이는 내 유전자에서 진화된 유전자를 타고 났다. 아장아장 걷는 아가 강물이는 분수대의 물소리도 무서워할 정도였다.

겁 많은 인생을 살고 있는 내가 어찌 강물이에게 용감해지라고 강요를 할 수 있을까. 그 마음을 백배 천배 이해할 수 있으므로 나는 남편과 다툼을 불사하고서라도 강물이 편에 선다.

강물이는 점점 자랐다. 성별을 굳이 구분하고 싶진 않지만 자라면서 남자아이가 되어간다. 조금씩 조금씩 강물이의 마음속에서 용기가 자라고 있지만 여전히 높은 곳은 질색을 한다.

강물이와 마이산(둘째아들)이 일곱 살 무렵에 전주 동물원에 놀러간 적이 있다. 그곳 놀이공원에 처음엔 바닥에서 회전을 하며 출발하고 손잡이를 잡아당기면 공중으로 비행기가 떠오르는 놀이기구가 있다. 모든 비행기가 공중에서 회전하는데 나와 강물이가 탄 비행기만 끝까지 바닥에서 회전했다. 강물이가 올라가는 걸 질색했고 나도 딱히 올라가고 싶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아이들이 열두 살이 되었다. 한국민속촌으로 나들이하러 간 우리는 여러 놀이기구를 탔다. 에버랜드나 롯데월드처럼 규모가 큰 놀이동산이 아니어서 놀이기구들의 규모도 작았다. 그만큼 스릴도 적었다. 무슨 이유인지(지금도 확실히 모르겠다) 나는 바이킹을 타보자고 제안했다.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바이킹을 한 번도 타보지 않았다. 당연히 강물이는 질색을 했다. 나는 별로 높아 보이지 않는다며 강물이를 설득했다.

"바이킹 타면 기념품 사줄게."

내 설득에 넘어온 강물이와 우리 가족은 어느새 바이킹 앞에 줄 서 있었다.

처음타보는 거니 제일 앞줄에 앉았다. 롤링이 시작됐다. "거봐, 별로 높지 않지? 이 정도는 재미있지?"라며 허세를 떨었다. 곧 바이킹은 최고 각도로 올라갔다. 나는 심장이 터져나갈 것 같은 극강의 공포를 느꼈다. 비명을 지를 수도 없었다. 내 옆에는 경기를 일으킬 것 같은 강물이가 있었기 때문에.

바이킹에서는 운행 중에 머리위로 팔을 교차시켜서 X자를 표시하면 중지해준다. '무서워하는 강물이를 위해 중지해 줄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끝까지 타게 해보고도 싶었다. 바이킹을 끝까지 타면 지금까지의 겁 많던 생활이 마무리 될 것도 같았다.

생각은 그럴듯하게 했지만 솔직히 나는 손을 머리 위로 올릴 수가 없었다. 너무 무서워서. 그랬다간 내가 또 날아가 버릴 것 같았다. 놀이기구의 안전 바는 믿음직스럽지가 못하다. 용기내서 오른팔을 들어 강물이를 품이 안아주고 격려를 해줬다.

"강물아, 아래를 보지 말로 위를 봐. 하늘을 봐봐."

강물이는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계속 비명을 질러댔다. 어느덧 롤링의 각도가 줄어들고 있었다. 나는 안도감을 느끼며 강물이에게 "거의 끝나가나 봐. 점점 낮아지지?"라고 말했지만 강물이는 "왜 안 멈춰? 언제까지 올라가?"라며 정신없이 질문과 함께 비명을 질러댔다.

바이킹에서 내려와서, 나는 강물이를 꼭 안아주었다.

"정말 용감했어. 끝까지 타다니. 엄마 감동이야."

나 자신에게도 해주는 칭찬이었다.

"내가 안 탄다고 했잖아. 엄마가 안 멈춰줬잖아."

강물이는 내 감동을 날려버린다.

어쨌든 겁 많은 우리 모자의 바이킹 탑승기는 성공적이다. 바이킹 탑승을 시작으로 용기를 장착하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 보려고 한다. 이제 나는 겁 많은 소녀가 아니라 엄마이니까.

태그:#바이킹, #한국민속촌, #겁많은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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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아들을 키우며 꿈을 이루고 싶은 엄마입니다.아이부터 어른까지 온 가족이 다같이 읽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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